레스큐 시스템89화
“그럼 수색을 재개하죠.”
수혁이 제작진들을 데리러 나가고, 혼자 남은 박정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장소가, 지금은 발자국 소리조차 크게 느껴질 정도로 적막했다.
“예전에 이런 현장을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화재가 발생했었는데…….”
박정우는 그런 적막이 싫었던 것인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두서가 없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 같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현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박정우의 뒤를 따르는 제작진은 긴장한 얼굴로 그의 말에 집중했다.
박정우가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
그때, 제작진이 뭔가를 발견한 듯 발걸음을 멈추며 의문성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박정우도 입을 다물고 뒤를 돌아봤다.
“왜요?”
“저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본 거 같은데…….”
정확히 본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한번 가보죠.”
박정우는 제작진이 가리킨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누구 계십니까? 신일서 구조대입니다. 혹시 숨어계신 거라면 나오셔도 됩니다.”
조금 전 발견한 요구조자들처럼, 겁에 질려 숨어 있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박정우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화재 현장에서 구조대가 왔다는 말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없던가, 있지만 의식이 없던가.
박정우는 내심 이 층에서 더 이상의 요구조자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누군가 정신을 잃거나 부상을 당할 만한 현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도 있었기에, 박정우는 제작진이 가리킨 곳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수색을 진행하며 제작진의 안전까지 신경을 쓰는 그의 모습은 한없이 진지해 보였다.
요즘 들어 방송에 나간다며 들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박정우를 담당해 촬영했던 제작진이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재밌다고 해야 하나?’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박정우가 이렇게 돌변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상급자에게 구박도 받고, 고양이만 보면 정신 못 차리며, 왠지 철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한 소방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괴리감이 흥미롭기도 했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아, 저쪽이요!”
제작진이 다시 한쪽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확실히 봤다.
아니, 확실히 들었다.
저쪽에서 뭔가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들은 제작진이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누워서 어딘가를 수색하고 있는 박정우가 바로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것이다.
“자, 잠깐! 혼자 가면 안 돼요!”
박정우가 뒤늦게 소리치며, 빠르게 그의 뒤를 쫓았다.
“여깁니다!”
제작진이 도착한 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문 앞이었다.
“여기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그 말에 박정우는 그쪽으로 달려가며 귀를 기울였다.
제작진의 말대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박정우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거기서 떨어져요!”
“……네?”
제작진은 이미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댄 상태였다.
“앗, 뜨거! 손잡이가 왜 이렇게 뜨……?”
“피해!”
박정우가 몸을 날려 그를 강하게 밀쳐버렸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그 와중에 문이 조금 열고, 그 사이로 붉은 화염이 밖을 향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꽈아앙-!
제작진은 가까스로 화염을 피했다.
하지만 박정우는 아니었다.
화염이 그런 박정우를 뒤덮었다.
방화복을 입고 있었기에 불이 옮겨붙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충격마저 막아준 것은 아니었다.
“아아악!”
박정우가 뒤로 튕기듯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백 드래프트.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한 실내에서 갑자기 다량의 산소가 유입되면, 연소 가스가 순간적으로 발화하는 현상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의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현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 뜻하는 건…….
화재는 23층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 * *
수혁은 뒤에서 따라오는 제작진들에게 신경 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들려온 폭발음과 함께 박정우가 다쳤다.
수혁의 마음이 다급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박상태를 만났다.
그도 폭발과 무전을 듣고 다급히 계단 쪽으로 나온 것이었다.
“저도 모릅니다!”
수혁은 박상태마저 따돌릴 정도로 빠르게 계단을 올라, 순식간에 28층에 도착했다.
‘……젠장!’
자신이 내려오기 전까지 이곳에는 연기만 자욱했을 뿐,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길이 일어나, 사방을 태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던 수혁은, 곧장 ‘생명 감지Ⅱ’를 사용해 박정우가 있는 곳을 찾아 달려갔다.
“으으으!”
박정우는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제작진이 몸을 떨며 불길을 피해 박정우를 옮기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수혁이 박정우를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저, 저는…….”
하지만 제작진은 너무 당황한 탓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혀를 찬 수혁이 박정우를 품에 안아 들며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이 없어.’
박정우의 방화복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고통이 심한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무, 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불이……!”
제작진은 그제야 수혁의 물음에 대답했다.
‘백 드래프트?’
그의 말에 수혁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왜 그게 일어났는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화재는 23층에서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신고 내용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아, 이런 멍청한 놈!”
수혁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2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해서, 다른 곳에 화재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어떤 이유로 처음부터 같이 화재가 발생한 것이든, 나중에 일어난 것이든.
28층에 화재가 일어났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 수색할 때 그것 먼저 확인했어야 했는데…….
요구조자를 구한다는 것에만 정신 팔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수혁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그동안 너무 안일해졌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었다.
“이건 또 뭐야?”
뒤늦게 도착한 박상태가 28층의 상태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곤 쓰러져 있는 박정우를 보곤 눈을 부릅떴다.
“저, 정우야!”
깜짝 놀라 뛰어오는 박상태를 향해, 수혁이 현재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진압대한테 얘기해 주세요. 저는 정우 선배 데리고 나갈게요.”
“그, 그래.”
박상태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박정우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백 드래프트 현상을 한 번 겪어보았기에, 박정우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었다.
절대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수혁은 박정우를 품에 안아 들고는 그대로 미친 듯이 달렸다.
둘의 장비 무게만 해도 40㎏이 넘고, 80㎏이 넘는 박정우를 들고 뛰는 수혁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당황한 둘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카메라만이 그것을 찍고 있을 뿐.
수혁은 순식간에 1층에 도착했다.
중간에 제작진과 뒤늦게 진입을 시작한 화재 진압대를 만났지만,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부상자!”
1층에 도착한 수혁이 소리를 지르자, 구급대원들이 곧바로 달려왔다.
“수, 수혁아…….”
그사이 정신이 든 박정우가 수혁을 불렀다.
“정우 선배!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박정우는 얼굴에 미소를 짓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통증 때문인지, 그의 미소는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너,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누구한테……?”
질문하던 수혁은 말끝을 흐렸다.
그 자리에 박정우를 제외하면 남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수혁은 순간 화가 치솟아 올랐다.
분명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그, 그 사람도 나를 도와주려다 그, 그런 거니까.”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대화는 나중에 해주세요.”
구급대원은 박정우의 상태를 잠시 살펴보고는, 곧장 이송을 결정했다.
정확한 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구급대원에게 허리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구급대원은 그런 수혁을 향해 한번 웃어주고는 박정우와 함께 구급차에 탑승했다.
“하아…….”
갑자기 박정우와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해졌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그만 찍자고 해야겠다.’
다큐멘터리 촬영은 분명 소방관의 현실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동료가 부상당했다.
뜻도 좋고, 효과도 좋다지만, 그것의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안 찍느니만 못하다.
수혁은 굳은 표정으로 다시 현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 * *
“죄송합니다!”
PD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는 자신의 스텝 중 하나가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박정우가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절초풍했다.
구조 작업에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촬영 허가를 받았는데, 그 약속이 무색해진 것이다.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PD님이 사과할 건 아니고.”
박상태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PD를 만류했다.
사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그 누구보다 박상태였다.
그의 책임하에 있는 팀원이 다쳤으니까.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PD는 그런 박상태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에헤이, 그러실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다시 한 번 PD를 말린 박상태는 그의 몸을 일으키며 눈을 마주쳤다.
“정말로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촬영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직 촬영 날짜가 며칠 남아 있었다.
하지만 PD는 박상태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PD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교양국 국장을 설득해 추가 지원을 얻어낸 것이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서장님도 더 이상의 촬영은 허락해 줄 수 없다고 하셨고, 서 분위기도 그리 좋지 못하니…….”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하는 PD의 표정에 아쉬움과 죄송스러움이 묻어났다.
“지금까지 촬영한 건 방송에 내보내도 된다고 허가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분량은 충분했다.
정말이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나가는 출동을 보면, 절로 측은지심이 일 정도였다.
“그동안 감사했고, 정말 죄송했습니다.”
PD는 제작진들의 철수를 명하기 전에 박상태와 구조 3팀에게 다시 인사했다.
“좋은 방송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지요.”
그렇게 다큐멘터리 촬영은 끝이 났다.
끝맺음이 그리 좋지는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