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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87화 (87/425)

레스큐 시스템87화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작된 지 나흘이 흘렀다.

첫날을 제외하면 스펙터클한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고, 웬일인지 평소보다 출동도 별로 없었다.

김강식은 이게 전부 다큐멘터리 제작진들 덕분이라며, 촬영을 한 1년 정도 더 연장하면 어떠냐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구조 3팀의 입장에서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일상이었지만, 제작진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괜히 박정우만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 요즘 왜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가만있지를 못하냐?”

방금 전까지도 제작진들에게 치즈를 소개해 주며 분주하게 돌아다닌 박정우에게, 박상태가 물었다.

“좀 미안해서요.”

“뭐가 미안해?”

“아니, 우리를 촬영하려고 왔을 땐 뭔가 기대한 게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쉬고만 있으니… 왠지 눈치도 보이고…….”

박상태는 그런 박정우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인마, 그럼 뭐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말이냐?”

“아니, 그건 아니죠!”

박정우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럼 싸돌아다니지 말고 업무나 봐. 제작진들은 가만있는데, 왜 너만 난리치고 지X이야.”

박상태의 핀잔에 박정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박상태가 야속해졌다.

“아, 여기들 계셨네.”

PD였다.

“박상태 팀장님, 잠시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그는 혹시나 박상태와 박정우가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일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하시죠.”

박상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PD를 따라갔다.

“에휴…….”

그렇게 박상태가 사라지자 박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응? 무슨 일 있어요?”

마침 밖으로 나오던 수혁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던 제작진들이 잠시 쉬는 사이, 수혁도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러 나오던 중이었다.

“수혁아.”

박정우는 하소연할 상대를 찾았다는 듯, 반색하며 수혁에게 다가갔다.

“왜요? 뭐 심각한 거예요?”

수혁은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뽑아 그에게 건넸다.

“야, 내가 방송을 위해서 노력하는 거, 넌 알지?”

수혁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눈치챘다.

아무래도 오버하다 박상태한테 한 소리 들었나 보다.

“아이고, 그럼요.”

사실 수혁은 박정우의 그 노력이라는 게 뭔지 몰랐지만,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 하나는 알겠다.’

박정우가 머리에 치덕치덕 바른 왁스인지 무스인지.

박정우는 나름대로 방송에 나온다고 한껏 멋을 부린 것이겠지만…….

‘솔직히 좀 웃기다고 말하면 화낼까?’

수혁은 속으로만 웃었다.

“그런데 팀장님은 뻘짓 하지 말라신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에 수혁은 괜히 뿌듯해졌다.

하지만 겉으로는 심각한 척 연기를 했다.

“정우 선배가 이해해요. 원래 상태 형이 좀 꼰대 기질이 있잖아요.”

“그렇지? 내가 잘못한 거 아니지?”

박정우는 수혁의 말이 위로가 됐는지,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이런 걸 보면 아직 박정우가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지만, 박정우는 아직 치기 어린 모습이 남아 있었다.

처음 수혁을 적대했던 것도 그런 성격에 기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나보다 형이긴 하지만…….’

속은 수혁이 훨씬 아저씨였다.

“잘못은 아니죠. 괜히 그런 걸로 시비 거는 상태 형이 잘…….”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수혁은 말을 하다 말고 곧장 몸을 돌려 달려나갔다.

박정우 역시 그대로 수혁의 뒤를 따랐고.

“잠시만요!”

갑작스런 출동 명령에 카메라를 든 제작진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빨리 타요!”

가장 먼저 도착한 수혁이 구조 차량에 탑승하며 소리쳤다.

아무리 촬영 중이라고는 하지만, 저들을 기다리기 위해서 출동을 늦출 수는 없었다.

다행히 제작진들은 늦지 않게 차에 탑승했다.

“헉, 헉!”

그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대원들에게 고정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직업정신에 절로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상황 설명 부탁드립니다.”

[XX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입니다.]

‘XX 빌딩?’

수혁도 이름을 들어본 건물이었다.

신일서 관할 구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층 빌딩이며, 수많은 회사가 입주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몇 층이요?”

[신고 내용에는 23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이고야.”

상황실의 무전을 들은 대원들이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재라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면 꼬박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얘긴데…….

아무리 체력이 좋은 소방관들이라지만, 20㎏이 넘는 장비를 메고 23층까지 뛰어 올라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고생들 좀 하시겠네요.”

수혁이 카메라맨들을 돌아보며 웃었다.

처음에는 수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그들은, 잠시 뒤에 ‘아!’ 하며 울상지었다.

자신들도 거기까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화재 현장에 도착하면, 저희랑 너무 붙지는 말아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수혁은 그들에게 안전 수칙을 일러주었다.

지난 며칠간 같이 출동을 나간 터라 몇 번이나 들은 내용이었지만, 수혁은 다시 설명했다.

그만큼 안전은 아무리 강요를 해도 부족한 법이었으니까.

수혁과 대원들이 방화복으로 옷을 모두 갈아입을 때쯤이었다.

“도착했습니다.”

구조차는 어느새 화재가 일어난 빌딩에 도착했다.

“서둘러!”

박상태의 재촉과 함께 대원들이 구조차에서 튀어나갔다.

현장에는 이미 펌프차와 구조 사다리차가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수혁이 장비를 내리며 빌딩 위를 쳐다보았다.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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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내용 : 고층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폭발의 위험성은 적다. 하지만 연기로 인해 고통받는 요구조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을 안전하게 빌딩 밖으로 대피시켜라.

*보상 : 경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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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이 현장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내용이나 보상을 보면 그리 어려운 현장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니, 방심하면 안 되지.’

바로 며칠 전에도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단순한 교통사고가 대형 참사로 번질 뻔하지 않았던가?

수혁은 해이해 지려던 마음을 붙잡았다.

구조 3팀은 전원 장비를 메고 박상태의 명령을 기다렸다.

잠시 후, 화재 진압대의 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박상태가 돌아왔다.

“진압대랑 같이 들어간다.”

“같이요?”

“화재가 그리 큰 규모는 아닌 것 같다. 해서 같이 들어가기로 결정했으니까, 서로 방해 안 되게 조심들 하고.”

“예, 알겠습니다,”

박상태의 말에 대원들이 힘있게 대답하고는 곧장 돌입 준비를 시작했다.

대원들의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박상태는 이번엔 제작진들에게 다가갔다.

“힘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얼굴에는 방연 마스크를 쓴 상태로 23층까지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였다.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라가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기어서라도 따라가겠습니다.”

PD가 들었으면 참 좋아했을 말이었다.

“올라가다 힘들면 잠시 쉬다 오셔도 됩니다.”

“저희도 체력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제작진들은 하나같이 자신 있는 얼굴이었다.

박상태는 제작진들을 빤하게 쳐다보다, 무전기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촬영하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이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굳이 힘들게 따라오겠다는데, 말리기도 좀 그랬다.

아주 위험한 현장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박상태가 제작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돌입 준비가 끝이 났다.

“들어가자.”

면체 마스크에서 슈욱- 거리는 호흡 소리와 함께, 구조 3팀이 빌딩 내로 진입했다.

빌딩 내부는 시끄러웠다.

위층에서부터 대피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아직 여기까진 연기가 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손수건을 입에 대며 콜록거리는 모습으로 봐선, 꽤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잠시만요, 좀 지나가겠습니다.”

구조 3팀은 그런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제작진들은 그런 대원들의 모습을 뒤쪽에서 찍었다.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소방관의 뒷모습이 왠지 비장하게 비쳐졌다.

“진압대 애들이 바로 쫓아올 거니까, 우리는 일단 화재보다는 구조에 신경쓴다.”

박상태가 앞서가며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계단에 도착했다.

대원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저들을 뚫고 위로 올라가는 게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계단을 밟았다.

타타탓-!

“비켜주세요! 소방관입니다, 길 좀 터주세요!”

박상태의 바로 뒤쪽에 따라붙은 수혁이 크게 외쳤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오다, 그 소리를 듣고는 난간 쪽으로 몸을 붙였다.

덕분에 이동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2층, 3층… 그리고 10층.

거기까지 오르는 동안 수혁은 쉬지 않게 계속해서 외쳤다.

그런 수혁의 모습에 제작진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냥 뛰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수십 ㎏의 장비를 메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어찌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움직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런 수혁의 모습을 다른 대원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난 안 되겠다!”

제작진 중 한 명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억지로 힘을 더 짜내면 몇 층 정도는 더 올라갈 수 있겠지만, 아직 절반도 못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한 명이 포기하자,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제작진들도 하나둘 포기를 선언했다.

“저, 저건 못 따라가.”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그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현장을 제대로 찍지 못했으니 뒤에 올 PD의 호통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그딴 게 문제가 아니었다.

“괜히 소방관, 소방관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저들은 지난 며칠간, 그리고 바로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자신들과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1초도 발을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영웅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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