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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85화 (85/425)

레스큐 시스템85화

‘이런, 젠장!’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그래도 아직 조금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수혁은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폭발 범위에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박상태와 박정우는 세단에 있던 요구조자를 구조한 뒤, 구급차 쪽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방금 수혁이 구조한 요구조자와 구급대원, 그리고 작은 카메라를 든 채 수혁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까지.

‘세 명인가?’

수혁은 지체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피해요!”

갑자기 들려오는 수혁의 다급한 외침에 반응한 것은 구급대원 한 명뿐이었다.

그는 당황했지만, 처음부터 유조차의 폭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라, 곧장 수혁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요구조자의 다리를 세심하게 응급처치하던 그는 수혁의 음성을 듣자마자 손을 빨리 움직였다.

압박 붕대를 이용해 그냥 다리를 꽉- 묶어버린 것이다.

“제가 듭니다!”

수혁은 구급대원에게 손짓했다.

요구조자는 자신이 들고 뛰는 것이 훨씬 빨랐다.

구급대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구급차가 있는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뭐 해요? 빨리 피하라고!”

요구조자를 품에 안은 수혁이, 아직도 자신을 찍으며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카메라맨을 향해 소리쳤다.

“예?”

그는 아직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혁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터진다!”

수혁이 눈짓으로 유조차를 가리키자, 카메라맨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뛰라고!”

호통과도 같은 수혁의 외침에, 카메라맨이 그제야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

수혁의 품에 안긴 요구조자가 물었지만,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수혁은 고개를 돌려 유조차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기름이 실려 있는 탱크 쪽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늦었어.’

수혁 혼자서 라면 충분히 피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 피하지 못하더라도 ‘실드’스킬이 있었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화학 공장 폭발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요구조자는 둘째치고,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인지 다리가 느린 카메라맨도 있었다.

수혁은 고민했다.

이대로는 절대 폭발 범위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슈화아아악-!

뒤쪽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진다!’

수혁은 직감적으로 폭발의 때가 다가왔다고 판단했다.

짧은 고민을 끝낸 수혁은 카메라맨의 옆을 스쳐 달려가며, 그대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곤 곧바로 바닥에 엎어졌다.

“아악!”

내동댕이치듯 땅에 떨어진 요구조자가 비명을 질렀고, 카메라맨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수혁을 돌아봤다.

“고개 숙여!”

수혁은 자신의 몸으로 둘을 감싸며 소리쳤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유조차가 폭발했다.

불길보다 먼저 셋을 덮친 것은 충격파였다.

속이 울렁거리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충격이 수혁을 엄습했다.

그리고 이어진 화염의 폭풍.

수혁은 등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받으며 속으로 외쳤다.

‘실드!’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수혁을 중심으로 둥글게 만들어졌다.

수혁은 스킬을 쓰면서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실드’는 사용자인 수혁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방어막이었다.

하지만 그 보호의 영역이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하는진 알 수가 없었다.

사용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수혁은 제발 효과가 있길 빌며 눈을 감았다.

화르르륵-!

수혁의 등을 태우기 위해 타오르던 불길은,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감히 침범하지 못하고 멀어졌다.

그리고 몇 초 후.

주변을 한바탕 휩쓸었던 화염이 사그라졌다.

“김수혁!”

박상태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 있어요! 괜찮습니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무사함을 알렸다.

그러곤 품 안에 있던 요구조자를 살펴봤다.

격한 움직임 때문인지, 압박 붕대를 뚫고 출혈이 시작되고 있었다.

“출혈이 다시 시작됐어요!”

수혁은 다시 요구조자를 안고 달렸다.

출혈이 심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날지도 몰랐다.

순식간에 구급차 옆까지 도착한 수혁은, 요구조자를 내려놓고 뒷일을 구급대원들에게 맡겼다.

“괜찮냐?”

박상태가 다급히 수혁을 향해 다가왔다.

“네, 다행히 조금 데인 것 빼곤 괜찮아요.”

아주 찰나에 불과하지만, 수혁은 고열의 폭발에 등이 노출되었다.

당연히 화상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화상도 그리 심하지 않았고.

박상태는 그런 수혁의 등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괜찮다니까요. 이 정도는 그냥 연고 바르고 며칠 쉬면 나아요.”

“미친놈.”

누가 들으면 라면 끓이다 냄비에 손가락 데인 정도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은 그보다…….”

수혁이 폭발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게 문제네요.”

수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박상태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의 충격에, 고가에 걸쳐 있던 유조차가 아래로 추락했다.

단순한 교통 사고라고 생각했던 현장이, 대형 사고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 * *

“이거 보셨습니까?”

다큐멘터리 PD는 제작진이 가져온 한 영상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촬영을 시작한 첫날.

대수롭지 않게 따라간 교통 사고 현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찍혔다.

영상 속에서는 요구조자를 안은 수혁과 카메라맨이, 유조차 폭발에 휩쓸리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 괜찮아요? 다친 사람은 없고?”

PD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수혁 씨를 담당하던 동근이가…….”

PD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동근이라면 영상 속에서 수혁과 함께 폭발에 휘말린 카메라맨이었다.

당연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작진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넘어지면서 팔꿈치가 좀 까졌어요. 그거 말고는 없네요.”

제작진의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놀랐잖아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PD는 다시 한 번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PD는 솔직히 이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폭발, 긴박감, 그것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과 그들을 지킨 소방관.

심지어 그 소방관의 정체가 자신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김수혁이었다.

다큐멘터리 PD로써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상도 한번 봐보세요. 동근 씨 카메라에 찍힌 영상인데…….”

PD는 그가 가져온 영상을 재생시켜 봤다.

“음…….”

정신이 없다.

화면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초점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긴박감과 다급함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마치 파운드 푸티지 기법으로 촬영된 모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유조차가 폭발하는 순간이 찍힌 부분이 나왔다.

콰아아아앙!

너무도 커다란 폭발음에, 카메라는 제대로 소리를 잡지도 못했다.

그리고 온통 붉은 화염만이 화면에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 팔꿈치만 까졌다고?”

PD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수혁 씨가 동근이의 몸을 위에서 감싸 안았다고 하네요. 덕분에 안전했답니다.”

“수혁 씨는?”

“예?”

“수혁 씨가 위에서 불길을 막았다며? 그럼 수혁 씨는 괜찮으냐고.”

“아, 등 쪽에 화상을 입긴 했는데, 다행히 심각해 보이진 않았어요.”

제작진은 다시 다른 영상을 틀었다.

그것은 유조차 폭발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유조차가 고가 밑으로 추락한 후, 아래쪽 상황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다행히 주택가나 건물을 덮치진 않았지만, 지나가던 차들이 폭발로 인해 무너진 일부 잔해와 유조차에 깔려 버렸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뒤에서 오는 차량들과 연쇄 추돌을 일으켰고.

고가도로 위에서 발생한 교통 사고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규모의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수혁과 구조 3팀은 빠르게 그 상황을 수습해 나갔다.

화재를 진압하고, 차 안에 갇힌 요구조자를 구조하고, 사람들을 통제해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활동에는 수혁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다친 사람처럼은 안 보이죠?”

확실히 그랬다.

오히려 다른 구조 3팀의 대원들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PD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 속의 수혁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처음엔 그냥 소방관의 일상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기획한 다큐였다.

그 와중에 수혁이라는 화제의 인물도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서 신일서를 선택한 것이었고.

BBC에서 극찬한 영웅이자 바로 얼마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찍다가 걸 그룹 멤버 한 명의 생명을 살리기도 했으니, 시청률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더 좋은 내용이 나올 것 같았다.

첫날, 첫 출동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장면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PD는 잠시 고민하다 제작진에게 말했다.

“차 준비해.”

“갑자기요? 어디 가시려고요?”

PD의 갑작스런 말에 제작진이 당황하며 물었다.

“국장님 한번 뵈려고. 아무래도 판을 좀 더 키워야겠어.”

“판을 키우다니요?”

“인력 보충도 좀 하고, 제작비도 더 받고, 편성 시간도 옮길 생각이다.”

“……그게 가능하겠어요?”

“안 되면 되게 해야지, 그게 내 일이고. 그리고 이 영상들 보면 국장님도 내 말을 안 들어주실 순 없을 거야.”

PD는 확신했다.

* * *

“아으, 죽겠다.”

수혁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몸을 파묻다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많이 아프냐?”

“그런 건 아닌데, 조금 따끔거리긴 하네요.”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이렇게 대충 넘어갈 정도의 화상은 아니었다.

화상을 입은 면적이 꽤나 넓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되었으니까.

“까불지 말고 병원이나 다녀와. 그런 거 제대로 치료 안 하고 내버려 두다가 나중에 골병드는 거야.”

“어휴, 그놈의 잔소리. 누가 보면 우리 엄만 줄 알겠네요.”

“이 새끼가.”

수혁이 투덜거리자 박상태가 눈을 부라렸다.

그 모습에 대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구조 3팀의 분위기는 평소와 같았다.

한 번 같이 출동을 다녀와서인지, 카메라나 제작진들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수혁과 박상태가 투닥거리는 모습에 제작진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진지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서의 그들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조 3팀의 그런 두 모습은 제작진들에게 꽤나 인상 깊은 느낌을 주었다.

‘소방관들도 사람이구나.’

영화나 드라마, 뉴스에서 보던 소방관들은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미지에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서로 장난도 치고, 다치기도 하며,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을 줄도 아는.

구조 3팀을 바라보는 제작진들의 얼굴에 지어진 푸근한 미소는 그날 촬영이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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