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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84화 (84/425)

레스큐 시스템84화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카메라맨들은 구조차에 타지 못할 뻔했다.

구조 3팀은 그들을 배려해 주지 않았다.

평소대로 행동하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던 제작진은 꽤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설마하니 촬영 중에 자신들을 놓고 그냥 가버리려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조 3팀에게 있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카메라맨 한 명 더 태우자고 출동을 늦출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잠깐의 시간 때문에 요구조자를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상황 부탁드립니다.”

박상태가 무전기를 들고 말하자, 상황실에서 자세한 상황을 가르쳐 주었다.

[교통사고입니다. 네 대의 차량이 고가도로에서 충돌했고, 그중 하나는 유조차라고 합니다.]

유조차라는 말에 박상태가 흠칫했다.

“화재 가능성은요?”

[아직 파악 안 되고 있습니다.]

사고 차량에 유조차가 있다면, 폭발의 위험성이 있다.

단순한 접촉사고라면 모를까…….

“빨리 가지.”

박상태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기관원에게 말하자, 구조차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심각한 겁니까?”

제작진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박상태의 긴장이 그들에게 옮은 것인지, 그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글쎄요. 정확한 건 도착 후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상태는 말을 아꼈다.

‘유조차 사고?’

수혁은 무전을 들으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수혁은 그것이 그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 기억났으면 좋았을 텐데.’

수혁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만약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도, 수혁은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여긴……?’

예전에 보육원 버스사고가 일어났던 바로 그 고가도로였다.

구조차에서 내린 수혁은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를 바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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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고, 유조차의 폭발을 막아라.

*내용 :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은 상황.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차에서 빠져나왔지만, 아직 두 명의 요구조자가 남아 있다. 그들을 모두 구조하고, 얼마 남지 않은 유조차의 폭발을 막아라.

*보상 : 경험치,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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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퀘스트의 내용에 따르면, 만약 수혁이 막지 못했을 시엔 유조차가 폭발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젠장, 네 대라며!”

박상태의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이 시선을 돌리자, 일곱 대가 넘는 차들이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유조차는 난간을 들이받은 채, 고가도로에 반쯤 걸쳐 있는 상황이었고.

“정우랑 효상이는 장비 챙기고, 나머지는 요구조자 파악해!”

퀘스트가 알려준 요구조자의 수는 두 명.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수혁은 ‘생명 감지Ⅱ’를 사용해 요구조자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야! 어디 가!”

가까운 쪽에 있는 차량들을 모두 무시한 채, 안쪽으로 뛰어가는 수혁을 보며 박상태가 외쳤다.

“이쪽에 요구조자 있습니다!”

수혁이 뒤도 안 돌아보고 대답하자, 박상태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첫 출동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수혁은 요구조자가 있을 법한 곳들을 모두 무시한 채, 엉뚱한 곳만 수색했다.

그리고 요구조자를 찾아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박상태는 김강식과 이재한에게 뒤를 맡기고, 그대로 수혁을 따라나섰다.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어디냐?”

수혁에게 다가간 박상태가 물었다.

“여기요.”

수혁이 차량 하나를 가리켰다.

검은색의 고급 세단은 유조차의 탱크를 들이받은 상태였다.

본네트는 사정없이 우그러졌고, 그 사이로 유조차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박상태가 문을 잡아당겨 봤지만, 차량이 심하게 찌그러진 덕분에 문은 열리지 않았다.

“스프레다 가져와!”

박상태가 박정우에게 외쳤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열지 못할 것 같았던 것이다.

차량의 운전자는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것인지,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에어백이 안 터졌나 본데요?”

꽤나 비싼 차량이었으니, 에어백이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본네트가 형태를 잃을 정도의 충격에서도 에어백은 터지지 않은 것 같았다.

“국산이 뭐 그렇지.”

충돌각이니 뭐니, 헛소리를 해댈 게 뻔했다.

“출혈도 심한 것 같다.”

깨진 창문 너머로 붉은 피가 선명하게 보였다.

“가져왔습니다!”

박정우가 장비를 가지고 도착했다.

스프레다를 받아 든 박상태는 지체하지 않고, 날을 문틈에 끼워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이곳은 둘에게 맡기기로 하고, 다른 쪽으로 가기로 했다.

수혁의 활약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박상태는 수혁이 인정하는 베테랑 구조대원이었다.

이런 구조 정도는 박상태에게 그리 어려운 난이도가 아니었다.

“야, 너 또 어디 가?”

수혁이 움직이자 박상태가 돌아봤다.

“유조차 안에도 요구조자 있습니다!”

수혁은 유조차의 운전석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 올라탔다.

난간에 걸쳐져 있어 위험천만한 모습이었지만, 수혁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안에는 사십대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이 말을 걸자 그는 화들짝 놀랐다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다, 다리가 끼었습니다.”

수혁이 문을 열고 안쪽을 확인했다.

그의 말대로 시트와 핸들 사이에 허벅지가 끼어 있었다.

‘안 좋은데.’

수혁의 힘이라면, 그의 다리를 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저 힘을 조금 줘서 틈을 벌리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수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운전자의 다리가 그냥 끼어 있기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출혈이 심하다.’

그의 허벅지는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꽤 심각한 출혈이 발생했는지, 피가 주르륵- 흐르는 상태였다.

핸들이 압박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저만큼의 출혈이라면…….

‘동맥이 파열됐을 수도 있어.’

만약 정말로 동맥이 파열되어 출혈이 생긴 것이라면, 이대로 운전자를 빼내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운전자는 수분 내로 사망할 게 분명했으니까.

“진정하시고, 몸을 움직이지 마세요.”

수혁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운전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제가 구해 드릴 테니까, 저를 믿고 잠시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계세요.”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운전자는 고통과 당황으로 인해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지금도 수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운전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심지어 차가 밑으로 추락할까 두렵기까지 했다.

당장 꺼내줘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 얌전히 앉아 기다리라니?

운전자는 수혁에게 버럭- 화를 냈다.

“빨리 꺼내줘야 할 거 아니야!”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 지르는 그를 보며, 수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어떤 심정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함부로 움직이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

수혁이 겁을 주듯 말했다.

보통이라면 요구조자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겁을 줘서라도 진정시켜야만 했다.

“동맥이 다쳤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대로 당신을 밖으로 꺼내면, 출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고요. 여기서는 그 출혈을 잡을 방도가 없습니다.”

수혁이 담담하게 말하자, 운전자는 흠칫- 하며 입을 다물었다.

흥분한 와중에도 수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것이다.

“그, 그럼?”

“방법을 찾아서 오겠습니다.”

수혁은 강한 확신이 들어찬 눈동자로 운전자를 쳐다보았다.

“……알겠수.”

운전자는 수혁의 모습에 주눅이 든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수혁이 유조차에서 내려와 박상태에게 다가갔다.

한창 구조에 집중하고 있던 박상태는 수혁이 돌아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요구조자 있다며?”

“그게 좀 곤란하네요.”

수혁이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박상태는 얼굴을 찌푸렸다.

“구급대 한 명 데리고 가서 어떻게든 해봐. 난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말고.”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수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구급대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한창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던 구급대원은 수혁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부상자가 한 명 더 있는데, 상황이 좀 안 좋습니다.”

“갑시다.”

응급처치를 마친 구급대원은 수혁을 따라 유조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무래도 동맥파열인 것 같은데, 그거 처리 못 하면 구조 작업을 할 수가 없어서.”

수혁은 요구조자가 듣지 못하도록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구급대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유조차에 올라탔다.

자칫 잘못했다간 떨어질 수도 있었으니, 그의 행동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고개만 빼꼼 내밀어 요구조자의 상태를 확인한 구급대원은 난감한 듯 수혁을 손짓해 한쪽으로 불렀다.

“수혁 씨 말대로 동맥이 손상된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응급처치라고 해봐야 강하게 압박해서 지혈을 해주는 수밖에 없고요.”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급대원을 불렀지만, 역시나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럼 일단은 구조하겠습니다. 그 이후의 처치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방법밖에는 없겠네요.”

대답하는 구급대원은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동맥파열은 심각한 상황이다.

병원 내에서 일어나도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수혁은 구급대원이 구급차로 돌아가 처치키트를 가지고 돌아오자, 심호흡하며 요구조자 쪽으로 이동했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수혁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음성으로 그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제 끼인 다리를 빼낼 겁니다. 근데 그러면 출혈이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운전자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 됐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당황하지 마세요. 피가 얼마나 나든, 쳐다보지도 마시고. 다리를 빼면 제 손 잡고 밖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그, 그렇게 합시다.”

수혁은 그가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자 손을 뻗어 핸들을 붙잡았다.

그러곤 힘을 주었다.

우드드득-!

요구조자의 다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던 핸들이 수혁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졌다.

푸슉-!

동시에 막혀 있던 피가 순간적으로 치솟아 오르며 수혁의 얼굴을 적셨다.

“어헉!”

요구조자는 자신의 다리에서 나는 피에 깜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제 손 잡으세요. 빨리.”

수혁은 얼굴에 묻은 피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요구조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수혁을 보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손을 붙잡았다.

“조심, 조심.”

그를 밖으로 꺼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혁은 한 손으로 유조차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를 들어 올려 도로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이 곧장 달려와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던 수혁이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주변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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