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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82화 (82/425)

레스큐 시스템82화

“얼굴 좀 봐요.”

최은송의 싸늘한 음성에 수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벼, 별거 아니에요. 그냥 좀 긁힌 것뿐 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 조금 긁힌 것 좀 보자고요.”

상처를 보기 전까진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붙어 있는 반창고를 떼어냈다.

“아, 진짜…….”

수혁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본 최은송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내가 못 살아.”

당장에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은 최은송의 모습에 수혁은 재빨리 다시 반창고를 붙였다.

“금방 아문다고 했어요. 흉터도 안 생길 거고. 하나도 안 아프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요.”

수혁은 안절부절못하며 최은송의 손을 붙잡았다.

최은송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수혁을 쳐다보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안 아파요?”

“그럼요!”

최은송의 화가 어느 정도 풀린 듯하자 수혁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수혁 씨는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제 옆에만 있어야 할까 봐요.”

“왜요?”

“어디 돌아다니기만 하면 사고가 나니까.”

“하하…….”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최은송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이상하게 저희를 쳐다보는 사람이 많네요?”

그 말에 수혁도 고개를 돌렸다.

둘이 앉아 있는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확실히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이 몇 명 눈에 들어왔다.

“은송 씨가 너무 예뻐서 그런가?”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 듣는데 그런 말 하지 마요. 아저씨 소리 들을 테니까.”

진짜 아저씨는 맞았지만, 최은송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상할 것만 같았다.

“나 말고 수혁 씨 보는 거 같아요.”

“나를요?”

“이번에 또 화제가 됐잖아요. 기사도 많이 나왔고.”

“아아…….”

시애가 다친 일이 언론에 알려지며, 꽤 크게 기사가 났다.

그 와중에 수혁의 이름도 또 한 번 인터넷에 오르내렸고.

“근데 나를 어떻게 알아보고?”

7일간의 서바이벌 방송이 나간 상태라면 모를까, 아직 방송이 나가려면 한 달이나 남아 있었다.

“푸켓에서 찍힌 영상 있잖아요. BBC에서 내보낸 거.”

“그거 가지고 나를 알아본다고요?”

그 영상이 유행한 지 시일이 좀 흘렀다.

게다가 영상 속 수혁의 모습과 지금은 꽤 괴리감이 있었다.

“그거 말고도 돌아다니는 사진이 좀 있어요.”

“사진이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최은송은 잠시 망설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인터넷에 수혁 씨를 검색하면 이렇게…….”

스마트폰 액정에 수혁의 사진들이 주르륵- 하고 올라왔다.

수혁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푸켓에서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래요.”

최은송의 설명과 함께 사진을 보던 수혁은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그때 공항에서…….’

그때 시애는 수혁에게 팬이라며, 사진도 많이 찾아봤다고 했었다.

‘그 사진이 이거였나?’

수혁은 괜히 쑥스러워졌다.

“어제부터 수혁 씨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서, 또 사진들이 돌기 시작했어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와 조쉬가 찍었던 영상에 비하면, 수혁의 얼굴이 훨씬 자세하게 나온 사진들이 많았다.

“그래서 웃통 벗고 다니지 말라고 그런 거였구나…….”

“아, 아니. 꼭 그래서 한 말은 아니었어요.”

최은송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보다! 언제쯤 오실까요? 약속 시간 다 되어가는데.”

수혁은 최은송이 일부러 말을 돌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속아주기로 했다.

“슬슬 오실 때가 된 거 같네요.”

시계를 보니 그녀의 말대로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둘이 기다리던 사람이 카페 안쪽으로 들어왔다.

“여기예요!”

최은송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이거 늦을 뻔했으이.”

허허-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장영수였다.

푸켓에서 수혁이 구해주었던.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앉아 있게.”

장영수는 그런 수혁에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러곤 수혁의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구먼.”

장영수는 수혁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엔 정말 고마웠네. 나를 살려주고, 우리 안사람도 찾아줘서.”

감사 인사를 듣자고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어르신을 업고 올라온 것밖에 없는데요.”

“그게 고맙다는 게지.”

장영수는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도 또 사람을 구했다면서?”

“별일 아니었습니다.”

수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장영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나. 겸손으로 하는 말인 것은 아네만, 자네가 별일 아니었다고 말하면, 구함을 받은 사람의 목숨도 별거 아닌 게 되니.”

수혁은 장영수의 말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자네가 왜 그리 말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늙은이가 주제넘게 참견한 것이라 생각하게.”

손을 저으며 말을 하는 장영수의 모습에서 수혁은 뭔가를 느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건 다른 게 아니고…….”

장영수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왠지 수혁의 눈치를 조금 보는 것도 같았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최은송이 웃으며 부담을 덜어주었다.

“흠흠,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이런 사람이라네.”

장영수는 수혁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명함에는 수혁도 몇 번 들어본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대표이사 장영수’라는 문구가 있었다.

“내가 평생 동안 일궈온 곳이라네.”

그 회사는 대기업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커다란 회사였다.

“내 자네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는데 말일세.”

“저를 말입니까?”

장영수의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어안이 벙벙하던 수혁은, 갑작스런 말에 눈을 끔뻑였다.

알아볼 게 뭐가 있다고 자신을 알아본단 말인가?

“한낱 미물도 자기 목숨 구해준 사람한테는 은혜를 갚는 법인데, 내가 가만있을 수야 있겠나?”

수혁은 그제야 장영수가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장영수가 말을 꺼내기 전에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르신.”

“내 말부터 듣게.”

하지만 장영수는 그런 수혁의 입을 막았다.

“자네가 이런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네.”

장영수는 긴장했는지, 잠시 목을 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도 없을 것 같네. 그러니 아무 말 말고 내 성의를 받게나.”

수혁은 장영수의 말에 한숨을 내뱉었다.

“어르신이 어떤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줄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무원입니다. 이렇게 사적으로 뭔가를 받는 건 법에 저촉될 겁니다.”

“그 김영란인지 장영란인지 하는 법 말인가?”

“네.”

“이 늙은이가 그런 것도 알아보지 않았을까?”

하긴, 이런 법 같은 문제는 수혁보다야 장영수가 훨씬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덥석- 받을 순 없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말이다.

“저는 뭔가를 바라고 어르신을 구한 게 아닙니다.”

“알고 있네. 자네는 내가 누군지도 지금 안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본래 선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결정하는 법이지.”

장영수는 수혁이 아무리 거절을 해도 준비한 선물을 주겠다는 의지가 넘쳐 보였다.

“사람들이 저에게 손가락질할 수도 있습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비난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일례로, 한 대학 병원에서 소방관들을 위해 커피와 생수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환자 이송을 위해 병원에 오는 소방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함이었다.

훈훈한 이야기였다.

이대로 끝났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훈훈한 일이 계속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것을 본 한 시민이 민원을 넣은 것이다.

커피와 생수가 뇌물이라면서…….

덕분에 대학병원 측은 더 이상 소방관들에게 그런 것들을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대다수의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오히려 민원을 제기한 사람을 욕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장영수가 무엇을 선물할지는 몰라도 커피보다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고작 커피만으로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과연 가만있을까?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네. 내가 자네에게 줄 선물은 그리 눈에 띄는 게 아니니까.”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뭔지 들어나 봐요, 수혁 씨.”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은송이 미소를 지으며 권했다.

사실 그녀는 장영수가 무슨 선물을 줄지 기대하고 있었다.

수혁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최은송의 말대로 일단 그게 뭔지 들어나 보기로 했다.

너무 값비싸거나,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그때 거절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수혁이 허락하자, 장영수의 눈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말했다.

“집이라네.”

“……네?”

수혁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집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대한 저택이나 최고급 빌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수혁의 월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집인 것은 확실했다.

“여기네.”

장영수가 수혁과 최은송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 쪽에 위치한 타운하우스였다.

“여, 여기는 너무 비싼 곳 아닙니까?”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5억 이상은 할 것이다.

아니, 요즘 집값을 생각해 보면 7, 8억까지 할지도 몰랐다.

이런 집을 준다고?

절대 받을 수가 없는 수준의 선물이었다.

“비싸긴 하지.”

장영수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집은 못 받습니다.”

수혁은 그런 장영수를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의도 좋고 선물도 좋지만, 이건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누군가 비난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혁 자신이 용납할 수가 없었다.

“누가 준다고 했나?”

“……어? 네?”

수혁이 순간 당황하며 눈을 끔뻑였다.

“내가 그렇게 상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 물론 나야 그냥 주고 싶긴 하네만, 자네가 받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선물이란 건……?”

수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장영수가 허허- 웃었다.

“내가 알아보니,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다더군.”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집을 좀 알아보고 있긴 했는데…….”

“월세가 40만 원? 그 정도 하나?”

“35만 원에 살고 있지요.”

수혁의 대답에 장영수가 턱을 긁적이며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이 집을 자네에게 세놓겠네.”

“세를요?”

“월세 10만 원에 보증금은 없이. 그 정도면 내 선물을 받아주겠나?”

이 타운하우스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디자인해서 이 근방에선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집 자체도 너무 예쁜 데다, 예술과 실용성을 적절히 조화시켜, 인기가 높기도 했다.

덕분에 보증금 1억에 월세 130만 이상의 시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곳을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 원에 세를 준다고?

수혁의 눈이 더 할 수 없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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