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81화
꿈을 꾸었다.
수혁은 불길에 집어삼켜진 한 건물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스킬은 단 하나도 써지지 않았다.
‘위험 감지Ⅱ’, ‘생명 감지Ⅱ’, ‘실드’, ‘미니 맵’.
그 어떤 것도 수혁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덕분에 수혁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화르르륵-!
갑자기 치솟아 오른 화염에 수혁은 얼굴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
방화복 덕분에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대신 공포가 엄습해왔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누군가를 구하러 오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어디냐? 어디야!’
스킬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어디선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요구조자를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조급함과 두려움이 한데 섞여 수혁을 괴롭혔다.
그렇게 불 속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저 멀리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
불길이 시야를 방해해 정확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요구조자가 두 명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수혁은 지체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음에도, 수혁은 한참 동안이나 달려야만 했다.
“허억- 허억-!”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온몸을 적셔왔다.
그리고 마침내 요구조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괜찮으십……!”
말을 하던 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쓰러져 있던 두 명의 요구조자 중 한 명의 얼굴이, 자신과 똑같았다.
아니,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입고 있는 방화복이나 장비들까지, 완벽히 수혁과 닮아 있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다리 쪽으로 향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의 다리는, 화재로 인해 무너져 내린 잔해에 깔려 꼼짝도 못 하는 상태였다.
‘이건…….’
수혁의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었다.
평생을 가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나다.’
이전 생의 마지막 모습.
이 눈앞의 소방관은 수혁 자신이었다.
수혁은 또 다른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왜 그렇게 애를 쓰는 거냐?”
그때, 그가 말을 걸어왔다.
수혁은 깜짝 놀랐지만,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하게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왜 그렇게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를 쓰냐고.”
수혁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왜? 왜 애를 쓰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소방관이니까.’
몇 번이고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상하게도 그 대답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소방관이라서?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 어떤 소방관도 너처럼 몸을 아끼지 않고 들이대지는 않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소방관이 수혁처럼 행동한다면,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혁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이 있어.”
“레벨이나 스킬 같은 것 말이지?”
만약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수혁 역시 이렇게까지 행동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지금까지 무사한 게 그 능력들 때문이야?”
수혁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산불에서도? 지하철역에서도? 모두 네 능력 덕분에 살아 돌아온 거야?”
무엇인가가 목구멍을 콱- 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닐걸?”
이번에도 그 말이 맞았다.
그때는 수혁 혼자만의 능력으론 살아나올 수가 없었다.
모두 다른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수혁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럼 다시 묻지. 왜 그렇게 애를 쓰는 거지?”
수혁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은 소방관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자신의 몸을 내던져 가며 사람을 구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아끼면서 살아도 됐을 텐데…….
그러다 문득.
눈앞의 또 다른 자신을 쳐다보았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요구조자를 품에 안은 채, 건물의 잔해에 깔려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모습.
그것을 본 수혁은 왠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지금까지 구한 건, 너 자신이야.”
또 다른 자신이 말했다.
두려움과 절망에 떨고 있는 요구조자들의 모습에서 수혁은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자신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두지는 않겠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수혁은 몸을 사리지 않고 자신을 내던졌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게 뭐?
“잘못된 건가?”
수혁이 물었다.
“아니, 잘못된 건 아니지.”
또 다른 자신이 대답했다.
“그래도…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마라.”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 * *
“수혁 씨, 정신이 좀 드십니까?”
“으음.”
누군가의 음성에 수혁의 눈꺼풀이 힘겹게 위로 올라갔다.
“여긴……?”
수혁은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시애를 데리고 정글을 통과했었지?’
그 후에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병원입니다.”
수혁에게 말을 건 사람은 PD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PD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수혁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덕분에 시애 씨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수혁의 얼굴에 작게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그거 참 다행이네요.”
수혁은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좀 더 누워계셔야 할 텐데.”
“괜찮습니다.”
몸에 힘이 조금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별다른 통증도 없었고.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까?”
“한 네 시간 정도? 의사의 말로는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저 조금 지쳐서 그런 것뿐이라고. 아, 얼굴의 상처도 금방 아물 거라 하더군요.”
수혁이 손을 들어 뺨을 만져 보았다.
감각이 조금 이상하다 했더니, 꼼꼼하게 드레싱이 되어 있었다.
‘은송 씨한테 뭐라고 한다?’
상처보다, 최은송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가 더 걱정되었다.
“시애는요? 어떻습니까?”
“다행히 수혁 씨 덕분에 늦지 않고 잘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정된 상태이고요.”
다행스럽게도 뇌에서 출혈이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두개골에 금이 갔고, 출혈도 있던 터라, 시간이 촉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정말 심각해질 수도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다행이네요.”
시애가 무사하다는 말에 수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모두 도착했습니까?”
“네. 촬영을 계속할 상황도 아니었는지라, 일단 제작진들이 모두 데리고 나왔습니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는데, 모두 잘 빠져나왔다니 다행이었다.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PD의 거듭되는 감사 인사에 수혁이 손사래를 쳤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뭘.”
수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럼 방송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대로 가만두면 밤새 허리를 숙일 것 같았는지라, 수혁은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음…….”
PD의 얼굴에 고민이 떠올랐다.
“일단 방송은 계획대로 내보낼 생각입니다. 수혁 씨가 활약해 주신 덕분에 괜찮은 장면도 많이 뽑힐 것 같고. 문제는 오늘 일어난 일인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시애에 대한 이야기는 퍼질 수밖에 없다.
아니, 벌써 퍼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은, 분명 제작진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것이 뻔했다.
그런 상황에 사고 장면을 내보낼 순 없었다.
“그건 저희가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PD의 말에 수혁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쪽 방면에 아는 게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PD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예정했던 대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나요?”
“네. 오늘은 여기서 쉬시고, 내일 점심 비행기로 귀국하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PD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다, 수혁이 지쳐 갈 때쯤 돌아갔다.
PD의 수다에 진이 다 빠진 수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는지, 피곤했다.
* * *
공항은 조용했다.
PD가 제작진들의 입단속을 제대로 했는지, 아직 한국까지 시애에 대한 소식이 들어오지는 않은 듯했다.
예원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 덕분에 소란이 조금 일어났다.
수혁의 시선이 예원을 향했다.
팬들 앞이었는지라 애써 미소를 짓고는 있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하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좋을 리가 없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원을 제외한 출연자들과 제작진들은 서둘러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곤 간단하게 서로 작별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시애 씨는 조금 더 치료를 진행한 뒤에 귀국하기로 했어요.”
혼자서 멀뚱히 서 있는 수혁을 향해 유예림이 다가오며 말했다.
“PD님한테 들었습니다.”
“시애 씨가 수혁 씨한테 꼭 감사 인사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도 들었습니다.”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느린 거예요? 아니면 PD님이 빠른 거예요?”
유예림은 자신이 할 말을 PD가 모두 빼앗아가 버리자 입술을 삐죽였다.
“아무튼,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그럼 여기서 어떻게 가시려고요?”
“버스나 지하철 타고 가면 됩니다.”
수혁의 말에 유예림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수혁 씨가 그렇게 돌아가면 저는 PD님한테 맞아 죽어요.”
유예림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혁의 짐을 강제로 빼앗아 들었다.
“따라오세요. 아주 편안하게 모실 테니까.”
대답은 듣지도 않고 쌩- 하니 가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혁은 유예림과 함께 방송국 차에 탔다.
“아, 예원이 수혁 씨한테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던데.”
“……저한테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 때문에 시애가 그렇게 다치고, 수혁 씨가 고생한 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나 봐요.”
‘죄송하면 자기가 와서 직접 사과할 것이지.’
수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리 인상이 좋지 못했던 예원이었기에, 수혁은 기분이 나빠졌다.
수혁의 표정을 확인한 유예림이 슬쩍 미소 지었다.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마세요. 그 아이도 나름대로 마음고생 많이 했을 거예요.”
유예림의 말에 수혁은 예원이 얼마나 이미지 관리를 잘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그의 편을 드는 제작진이 있을 정도면…….
“나중에 시애가 회복되면 수혁 씨랑 같이 식사 대접을 하겠다네요.”
“별로 생각 없는데.”
“그러지 말고요. 이번에 사고를 좀 치긴 했지만, 정말 괜찮은 애예요.”
계속되는 유예림의 부탁에 결국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시간 되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진짜 예원과 만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