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80화
수혁이 조심스럽게 시애를 업기 시작했다.
“괜찮겠습니까? 차라리 함께 이동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제작진들은 시애를 업는 것을 도우며 그렇게 물었다.
수혁이 뛰어난 구조대원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세 시간이 넘는 길을, 그것도 혼자 시애를 업고 골든타임 내에 통과한다는 것이 실현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혼자 가는 편이 훨씬 빨라요.”
다 같이 이동한다면 세 시간은커녕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정말 시애가 뇌출혈이 일어난 것인지는 이곳에서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1초라도 더 빨리 가야만 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직 수혁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작진들은 한숨을 내쉬며 끈을 가져와 시애와 수혁을 한데 묶기 시작했다.
“조금 더 꽉 묶어주세요.”
수혁은 줄을 한 번 잡아당겨 보고는 더 타이트하게 묶을 것을 요구했다.
지금부터는 정말 미친 듯이 달려야만 한다.
가는 도중 끈이 풀어지기라도 하면 속도가 더 늦어질 테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처음부터 꽁꽁 묶는 게 나았다.
“아프실 텐데.”
“괜찮습니다.”
다행히 시애는 의식이 없어 통증을 느끼지 못할 테고, 수혁에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꽈아악-!
있는 힘껏 끈을 묶은 제작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혁을 쳐다봤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이렇게 두 번만 더 묶어주세요.”
사람들은 그런 수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목적 지점에 구급차를 대기시켜 달라고 연락해놨어요. 도착하시면 곧바로 이송할 거예요.”
수혁은 발목을 몇 바퀴 돌려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이따 뵙죠.”
수혁이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닷-!
수혁은 정글 속에서, 한 사람을 등에 업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수혁이 사라지자 침묵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시애가 다친 것을 확인한 뒤부터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예원이 입을 열었다.
“죄송? 죄송이요? 그게 지금 할 말……!”
“효진아.”
효진이 눈물을 흘리며 예원에게 소리를 지르다, 제스의 만류에 이를 앙다물었다.
그들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느끼고 뒤늦게 왔다가, 피를 흘리는 시애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상황이 너무도 급박하게 느껴져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수혁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눈치는 있었다.
예원과 사람들의 표정에서 대충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챈 것이다.
예원은 효진의 비명과도 같은 질책에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X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예원이라고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장난이었고, 예능이라면 이 정도는 그냥 웃으며 넘어갈 정도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년 하나가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간수 못 하는 바람에, 사고로 번져 버렸다.
예원은 반성은커녕, 재수가 없었다며 시애를 욕했다.
“진짜 괜찮을까요?”
안나경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혁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며 물었다.
구체적으로 대상을 정해놓고 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대답을 했다.
“제발 그러길 바라야죠.”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는 일이었다.
* * *
“후욱- 후욱-”
수혁은 잠시 발을 멈추었다.
조금 숨이 차긴 하지만, 지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느린데.’
원래 수혁은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로 달려본 결과, 처음 예상했던 것만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길이 좋지 않아.’
이곳은 정글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수혁의 질주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린 탓에 진흙으로 변해 버린 땅이 너무도 미끄러웠다.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달렸더니,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별로 안 좋은데.”
뇌진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더 빠른 길로 가야 하나?”
‘미니 맵’에 표시된 길은 최단 거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안전하고 편한 길 중 그렇다는 뜻이었다.
정말 최단 거리는…….
“일직선이지.”
‘미니 맵’이 있었으니 중간에 길이 틀어질 염려도 없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고민했다.
조금 늦더라도 안전한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일직선으로 달릴 것인가?
둘 모두 장단점이 있었다.
“으으음…….”
등에 업힌 시애가 간헐적으로 신음 소리를 흘렸다.
“후우.”
수혁은 잠시 시애를 돌아보다, 결심한 듯 몸의 방향을 틀었다.
일직선으로 달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여차하면 ‘위험 감지Ⅱ’스킬도 있으니까.”
목적지를 정확히 정면으로 둔 수혁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확실히 푸른 선으로 표시되었던 길보다는 험했다.
수혁은 시애에게 너무 큰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찌익-!
미처 피하지 못한 나뭇가지 하나가 수혁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음.”
뺨에 붉은색의 실선이 기다랗게 그어지며 핏방울이 흘렀다.
그런 상처는 이미 온몸 이곳저곳에 가득했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수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앞으로 질주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조금만 더 빨리!’
수혁은 쏜살처럼 정글을 통과하고 있었다.
* * *
“어떻게 되고 있답니까?”
먼저 철수한 뒤, 목적지에서 다음 일정을 준비하고 있던 제작진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수혁 씨가 시애를 업고 출발했다는 것밖에는 저희도 알고 있는 게 없습니다.”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릅니까?”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촬영 막바지에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PD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팽개치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뭐라고 했어! 출연자들 안전에 신경 쓰라고 했어, 안 했어! 근데 사고가 나?”
‘7일간의 서바이벌’ 제작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출연자들의 안전이었다.
재미도 좋지만, 만에 하나 출연자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될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야심차게 준비한 편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그것도 걸그룹 멤버가.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대체 현장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사람이 그렇게 다쳐?”
그쪽 스텝들은 그저 시애가 부상을 입었다는 말만 전해왔을 뿐, 그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쪽에서는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급차는 준비됐어?”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합니다.”
시애가 다쳤고, 수혁이 그녀를 데리고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벌써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적어도 세 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으니, 아직도 한참 남은 것이다.
“수혁 씨 도착하면 바로 이송할 수 있게 준비해 두라고 해.”
“알겠습니다.”
PD는 수혁이 얼마나 대단한 소방관인지 알고 있었다.
푸켓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영웅이라 불릴 정도였으니까.
섭외 전에 수혁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본 그였기에, 더욱 잘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수혁을 믿었다.
늦지 않고 시애를 데리고 올 수 있다고 말이다.
‘부탁 좀 합시다, 수혁 씨.’
PD는 눈을 감고 수혁에게 부탁했다.
제발 자신의 바람이 닿기를 빌면서.
* * *
“허억- 헉-!”
목이 따가웠다.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퍼부었지만, 수혁의 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식혀주지는 못했다.
시애를 업고 달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 20분째.
수혁은 조금 전 고민할 때를 제외하곤, 단 1초도 쉬지 않았다.
평범한 평지라면 모를까, 비 내리는 정글 속이었으니…….
아무리 수혁이라 할지라도, 지칠 수밖에 없는 강행군이었다.
폐가 목구멍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수혁은 쉬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무리한 덕분일까?
수혁의 생각처럼 목적지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흐으으읍!”
수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발을 뻗었다.
그런데 잠깐 다른 생각을 한 까닭일까?
수혁의 발이 미끌- 하며 쭉 밀려났다.
‘이런!’
수혁의 눈에 당황이 서렸다.
단순히 넘어지는 것 정도는 위험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인지, ‘위험 감지Ⅱ’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수혁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버렸다.
재빨리 디딤발을 고정시키려 했지만, 너무 빠르게 달려오고 있던 데다, 등에 시애까지 업고 있어 쉽지가 않았다.
“젠장!”
수혁은 자신이 넘어질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이런 곳에서 한 번 넘어진다고 수혁이 크게 다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애는 달랐다.
수혁은 몸을 비틀어 시애를 위쪽으로 오게 한 뒤, 팔로 단단히 붙잡았다.
콰가각-!
수혁의 얼굴이 그대로 땅에 처박히며 쓸렸다.
나뭇가지에 긁히며 난 상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수혁은 욕을 하는 대신 재빨리 시애를 살폈다.
“하아…….”
다행이었다.
수혁이 재빨리 보호한 덕분인지,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충격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응급처치한 머리 쪽에서 출혈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수혁이 몸을 일으켰다.
옷은 넝마가 되었고, 얼굴에선 피가 흘렀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수혁은 다시 달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수혁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 외에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분을 더 달렸다.
‘다 왔다!’
무성했던 숲이 조금씩 드문드문해지더니, 이내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수혁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정글을 빠져나갔다.
파앗-!
갑자기 정글 안쪽에서 누군가 튀어나오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그쪽을 쳐다봤다.
“어? 어!”
잠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던 제작진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수혁을 가리켰다.
“김수혁 씨!”
“수혁 씨야!”
그들은 비틀거리는 수혁을 향해 달려왔다.
“구급차! 빨리 여기로!”
제작진은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수혁이 도착 예정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이 넘게 빨리 도착한 덕분이었다.
그들은 수혁의 몸에 묶여 있는 끈을 잘라내고 시애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곧바로 구급차를 향해 달렸다.
“괘, 괜찮으세요?”
작가 중 한 명이 수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그녀가 보기엔 시애보다 수혁이 훨씬 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니요.”
수혁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얼굴과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정말로 피곤했다.
구급차에 실리고 있는 시애의 모습을 확인한 수혁은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조금 쉬어야겠어.’
상처 치료는 그 이후에 하기로 했다.
지금은 조금 누워서 쉬고 싶었다.
“수혁 씨? 김수혁 씨!”
방금 말을 걸었던 작가가 비명을 질렀지만, 수혁은 눈을 뜨지 않았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