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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79화 (79/425)

레스큐 시스템79화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쏴아아아아아-!

수혁과 VJ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국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더위를 어느 정도 식혀주었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체력을 빼앗아갔다.

“이거 안 되겠는데요?”

제작진이 난색을 표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빗줄기였다.

현지 코디네이터와 안전 요원들 역시 이 이상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며 잠시 이동을 멈출 것을 권고했다.

“일단 다시 뒤쪽으로 좀 돌아가야겠습니다.”

수혁은 이동하며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한 10분 전쯤 한 곳을 발견했었다.

그때는 비가 오지 않아 지나쳤었는데, 지금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찮은 곳이 있습니까?”

“아까 봐둔 곳이 있습니다.”

제작진들은 잠시 회의를 거친 뒤, 수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비가 아프네요.”

빗줄기가 얼마나 거센지, 맞은 곳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더 가면 쉴 만한 곳이 있으니까.”

수혁은 칭얼거리는 시애를 달래주었다.

같이 지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팀원들끼리는 꽤나 친해진 모습이었다.

“여깁니다.”

수혁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 곳은 커다란 나무가 자라 있는 곳이었다.

나무에는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빗방울을 막아주는 지붕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라면 조금 쉴 만할 겁니다.”

십여 명이 충분히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에 사람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대체 언제 이런 곳을 찾은 겁니까?”

제작진이 묻자 수혁이 어깨를 으쓱- 했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이동하면서 눈여겨봤던 곳입니다.”

이쯤 되면 수혁이 소방관이 아니라 생존전문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불을 좀 피웠으면 좋겠는데…….”

수혁이 제작진을 돌아봤다.

아무리 수혁이라 하더라도 이런 빗속에서 맨손으로 불을 피워내는 것은 좀 무리였다.

“여기 라이터 있습니다.”

다행히 제작진은 이런 상황에까지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라이터를 받아 든 수혁은 주변에서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을 긁어모은 뒤 불을 붙였다.

비에 젖은 상태라 잘 붙진 않았지만, 몇 번 시도하자 불이 붙었다.

타닥- 타닥-

가끔 펑- 하며 젖은 나뭇가지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모닥불이 주변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다.

“저쪽 팀은 어떻게 하고 있을는지.”

하성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쪽도 비를 피하고 있지 않을까요?”

수혁이 있는 자신들도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예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팀장으로서의 능력은 수혁과 비교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예원 팀 역시 어디 한 곳에 멈춰 비를 피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긴, 그쪽에도 제작진들이 알아서 조치를 취했겠지.”

예원 팀에 대한 걱정을 접은 사람들은 멍하니 모닥불을 쳐다보았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와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소리가 너무도 평온했다.

“무슨 ASMR 듣는 것 같네.”

“그러게요.”

운치마저 느껴지는 분위기에 사람들의 표정은 빗속에 갇혀 있는 이들답지 않게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비는 여전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시간 안에 끝날 비 같지는 않으니.”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간 여기서 하루를 더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럴 바에야 조금 힘들더라도 빗길을 가는 편이 더 나았다.

수혁은 그 말에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꼭 사고가 나게 마련이었으니…….

하지만 제작진의 말대로 이곳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발밑을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땅이 미끄러우니 자칫 잘못했다간 넘어져서 다칠 수도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출연자, 제작진 할 것 없이 모두 수혁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죠.”

수혁이 앞장서서 길을 나섰다.

* * *

“예원 씨, 비가 조금 약해지면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제작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예원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예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대로 쭉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 힘들어하시는데…….”

“지금 좀 고생하고 나중에 푹 쉬는 쪽이 좋지 않을까요?”

예원이 자신의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효진과 제스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예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원이 그녀들보다 선배이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가 조금 무서웠던 것이다.

“예원 씨가 그렇게 결정하면 저희는 따라야죠.”

이진성 역시 여기서 쉬었다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도 한시라도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팀원들도 그렇다니, 이대로 계속 가시죠.”

제작진은 난색을 표했지만, 예원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렇게 예원 팀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지쳐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효진이 잠시 옆쪽을 쳐다봤을 때였다.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효진의 음성에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봤다.

“저기에 다른 팀이 있는 것 같아요.”

효진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자,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네요.”

“저기도 쉬지 않고 이동했나 봅니다.”

“상품이 상품이니…….”

사실 충분히 쉴 만큼 쉬고 다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이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예원은 그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직 자신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쉿!”

예원은 몸을 낮추며 검지를 들어 입을 막았다.

“왜, 왜요?”

뜬금없는 예원의 행동에 효진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예원은 그런 효진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저쪽 팀 좀 골려줄까요?”

“그게 무슨……?”

이동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갑자기 무슨 말인지 몰라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동안 우리가 저 팀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한 번쯤 장난을 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예원의 말에 제작진은 눈을 반짝였다.

잘만 하면 재밌는 그림이 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효진과 제스는 반대했다.

“그냥 가면 안 돼요?”

지금도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촬영만 아니었다면 배 째라며 드러누웠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괜한 곳에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거창하게 뭔가를 할 건 아니야. 그냥 말 그대로 좀 놀라게 하겠다는 거지.”

지금 자신의 움직임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찍히고 있었다.

덕분에 수위가 높은 장난은 칠 생각도 없었다.

예원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아니, 거창하게 계획이라고까지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미리 좀 앞서가서 숨어 있다가 저 팀이 다가오면 깜짝 놀래켜 주는 거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지만, 예원은 정말 즐거운 듯했다.

‘초딩도 아니고…….’

효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예원은 효진과 제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자신이 튀어나가면 수혁이 얼마나 깜짝 놀랄지 기대가 되었다.

운이 좋아서 뒤로 자빠지기라도 하면 금상첨화였고.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킨 예원은, 수혁의 팀이 이동하는 진로 앞쪽에 있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수혁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짜요? 그렇게 위험했어요?”

“그래. 하마터면 그 안에서 죽는 줄 알았지.”

수혁과 시애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음성은 자신의 팀과 달리 활기차 보였다.

마치 푹 쉬다 온 것처럼 말이다.

예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간 했던 고생이 떠오르며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개망신 한번 당해봐라.’

예원은 그냥 소리만 질러 놀래키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주변을 살펴 꼭 뱀처럼 생긴 나뭇가지를 하나 챙겨 든 예원은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지금!’

“왁!”

예원이 밖으로 튀어나와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던졌다.

수혁의 깜짝 놀란 표정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반응이 약하긴 했지만, 편집만 잘하면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예원이 흡족해하는 찰나였다.

“꺄아아악!”

문제는 수혁의 옆에 달라붙어 있던 시애였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치다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어, 어?”

수혁이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한발 늦었다.

간발의 차이로 수혁의 손을 붙잡지 못한 시애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아이고, 깜짝이야!”

“아, 진짜! 뭐예요?”

하성우와 안나경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예원을 향해 소리쳤다.

“하하, 놀라셨습니까? 그러니까 조금 살살 해주지 그러셨어요.”

예원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얼굴 한가득 지으며 다가왔다.

“놀랐잖아요!”

“예원 씨도 장난이 심하시네, 하하!”

잠깐의 해프닝에 사람들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수혁은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수가 없었다.

대신 넘어진 시애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잠시 예원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다, 뒤늦게 수혁의 모습을 확인했다.

“……왜 그러세요?”

안나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혹시 시애 많이 놀랐어요?”

“이런, 제가 장난이 좀 심했나 봅니다.”

사람들이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정신을 잃은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시애의 모습을 말이다.

“의료진 불러주세요, 빨리.”

수혁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서, 선생님!”

제작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다행히 각 팀에는 의료진이 한 명씩 붙어서 따라다녔기에, 곧바로 시애를 살펴볼 수 있었다.

“뇌진탕이에요.”

시애를 확인한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시, 심각합니까?”

제작진 중 한 명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여기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일단 후두부 쪽 두개골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운이 안 좋으면…….”

의사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외상성 뇌출혈이 있을 수도 있어요.”

“뇌출혈이요?”

안나경이 손을 떨며 주저앉았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만약 정말로 뇌출혈이 일어났다면, 세 시간 내에는 도착해야…….”

의사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 목적지까지 절반 정도밖에 오지 못했다.

이 정글을 빠져나가는 데만 앞으로 두 시간 이상 걸린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비도 오고, 정신을 잃은 시애를 데리고 세 시간 안에 병원에 가야 한다?

“헤, 헬기를 부르면?”

누군가 말했지만,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날씨에는 헬기가 뜰 수 없습니다.”

“아…….”

너무 당황해서 잊고 있었다.

지금은 비가 미친 듯이 내리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의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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