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77화
한 시간이 지나고, 약속 시간이 되자 수혁 팀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 이게 다 뭐예요?”
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오셨어요?”
수혁은 톱을 이용해 나무들을 매끈하게 다듬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이 많은 걸 오빠 혼자 했어요?”
시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무와 수혁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소방관이니까요.”
시애는 하마터면 ‘이게 소방관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하고 소리칠 뻔했다.
수혁의 농담에 사람들은 얼빠진 표정을 지우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옮긴 것도 혼자 하신 겁니까?”
“정말 하나도 안 도와주더라고요.”
하성우가 묻자, 수혁은 제작진에게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한 시간 만에…….”
하성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라면 이 많은 나무를 그냥 옮기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다른 분들은 많이 모아오셨어요?”
수혁이 시애와 안나경을 돌아봤다.
“그, 그게…….”
둘은 손에 쥐고 있던 나무줄기들을 뒤로 감췄다.
나름대로 많이 모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수혁이 해온 나무를 보자 턱없이 부족했다.
“모자라면 더 구하면 되죠, 뭐.”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그들을 위로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왕 짓는 거 좀 크게 지어봅시다.”
약간은 짓궂게 느껴지는 수혁의 얼굴에 다른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 * *
“이제야 도착했네요…….”
예원은 잔뜩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예의가 바르던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더 빨랐을걸요?”
효진은 지친 와중에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 말이 맞죠?”
그녀는 자신 있게 제작진들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하성우 팀은 한 시간 반쯤 전에 이미 도착했습니다.”
“마, 말도 안 돼!”
이진성과 예원이 동시에 소리쳤다.
자신들도 나름 빠르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예원은 독도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조금 헤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저쪽 팀보단 빠르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 반이나 차이가 나다니.
“미션 드리겠습니다.”
제작진은 그들이 한숨 돌릴 시간도 없이 곧바로 미션을 공개했다.
“집 짓는 건 자신 있습니다.”
예원이 자신의 팀원들을 향해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는 이번 방송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정글에서 집을 짓는 방법이나, 불을 피우는 방법 등.
서바이벌 전문가에게 직접 교육을 받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조금 늦었지만, 앞으로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을 먹어봅시다.”
예원은 팀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상품을 들먹였다.
“당연하죠!”
“배고파요…….”
효진과 제스가 주먹을 쥐며 파이팅 했다.
예원은 팀원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집을 지을 것인지 상의했다.
예원이 구상한 집은 원뿔 형태였다.
만드는 방법은 완벽하게 숙지해 왔기 때문에, 자재들만 준비되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흩어져서 모아오도록 합시다.”
예원은 팀원들에게 각자 가지고 올 것들을 설명해 주고는 집 만들기에 돌입했다.
‘여기서 이것보다 좋은 집을 만들긴 힘들지.’
예원은 괜히 원뿔 형태의 집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숱하게 나왔던 허접한 것들과 다르게, 아늑하고 튼튼했다.
게다가 만들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예원은 수혁을 떠올렸다.
운 좋게 BBC 뉴스를 타고 유명해진 소방관.
자신이 이 바닥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수혁이 도저히 마음에 들질 않았다.
이전에는 연예인도 아니었으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예능까지 출연하는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무슨 생각으로 출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묻어주지.’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도 있었으니, 대놓고 수혁에게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수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래서 화제성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 수혁은 공기처럼 지워질 것이다.
예원은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각도로 고개를 돌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이진성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집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예원 씨가 이렇게 일을 잘할 줄은 몰랐네.”
이진성의 칭찬에 예원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평소에 이런 쪽에 관심이 좀 많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예원의 겸손에 이진성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사람이 겸손할 줄도 알고, 인기가 괜히 많은 게 아니라니까?”
그는 예원에게 푹 빠진 듯했다.
“이 정도면 저희가 이겼겠죠?”
예원은 집을 하나만 만들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잘 수 있도록 두 개를 지은 것이다.
생각 같아선 1인당 하나씩 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진 좀 무리였다.
“물론이죠. 저쪽 팀이 아무리 우리보다 빠르게 시작했다고 해도, 이것보다 잘 만들진 못했을 거예요.”
예원은 확신했다.
“일단 모두 베이스캠프로 모여주세요.”
제작진들은 투표와 결과 발표를 위해 출연자들을 베이스캠프로 이동시켰다.
힘들게 왔을 때와는 달리, 제작진들의 안내를 따라가자 너무도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예원은 허탈한 표정으로 베이스캠프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어?”
그 안에는 수혁 팀이 먼저 도착을 해 있었다.
“이제야 다 지은 거예요?”
하성우가 예원을 향해 깐족거렸다.
“조금 늦어버렸네요.”
하지만 예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우리보다 한 시간 반이나 빠르게 도착했다며? 어떻게 한 거야?”
효진과 제스는 시애를 보자마자 조르르- 달려가 그것부터 물었다.
“우리 팀엔 수혁 오빠가 있잖아. 우리도 길 못 찾고 헤매고 있었는데, 수혁 오빠가 나서더니 그냥 한 방에 빡-! 찾아버렸지.”
시애의 말에 효진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엄청 고생했는데…….”
“제작진이 준 지도가 너무 이상했어. 막 이리저리 빙빙 돌린 거 같고.”
셋은 서로 재잘거리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다를 떨었다.
“그럼 투표 시작하겠습니다.”
수혁과 예원 팀의 집을 모두 확인하고 온 제작진들이 한쪽으로 모여 투표를 시작했다.
잠시 후.
투표 결과가 나왔는지, 제작진 중 한 명이 PD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PD는 그것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PD의 말에 출연자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상품이 삼겹살 세트다.
긴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무려 만장일치로 한쪽 팀이 선택됐습니다.”
만장일치라는 말에 예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만든 집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자는 바로…….”
PD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하성우 팀입니다!”
“꺄아악!”
“예쓰!”
시애와 안나경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껴안았고, 하성우는 방방 뛰었다.
반면 예원 팀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우, 우리가 졌다고요?”
예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PD에게 물었다.
“평가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PD가 투표용지를 들어 거기에 적혀 있는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 집에서 계속 살아도 될 것 같다.
-이런 정글 속에서 이런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김수혁 씨는 소방관이 아니라 건축가를 해도 성공했을 듯.
-미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조회 수 100만 쌉가능.
-김수혁 씨는 사람이 아니다. 로봇이다.
“……등등의 이유로 하성우 팀을 선택하셨네요.”
예원 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수혁에게로 향했다.
집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혁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저런 평가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각자 어떤 집을 지었는지 궁금하시죠?”
PD의 질문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집들이 시간을 갖겠습니다.”
예원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어떻게 집을 지었기에 만장일치가 나왔는지, 그리고 수혁에 대한 칭찬이 이렇게 자자한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제작진들을 따라 이동해 주세요.”
출연자들은 상대편의 집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이걸 여기서 지었다고요?
“말도 안 돼!”
예원 팀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솔직히 자신들이 만든 집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정도면 방송이 나간 뒤 꽤나 화제가 될 정도로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집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이거 그냥 통나무 집 아니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기둥을 세우고 나뭇잎으로 덮은 집이 아니었다.
기둥이 아닌, 굵은 나무들로 벽을 세우고, 문까지 달려 있는, 정말 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예원은 뭔가에 홀린 듯 문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하…….”
내부는 더욱 기가 막혔다.
자신들의 집은 안쪽에 깨끗한 나뭇잎을 깔아 잠자리로 만들었다.
아늑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잠을 자는 것 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아니었다.
“침대가 있다고?”
나뭇잎을 깐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형태의 침대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뭡니까?”
감탄을 넘어 경악한 표정으로 집 안을 둘러보던 이진성이 집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바닥에 꽤 큰 구덩이가 있었다.
“수혁 씨가 화구라고 하더군요. 밤에는 추울지도 모르니 불도 때고, 벌레도 쫓는 용도랍니다. 아, 그리고 거기다 삼겹살 구워 드신다던데.”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만장일치가 나왔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자신들의 집은 이곳에 비하면 소꿉장난이나 다름없었다.
예원은 효진과 제스가 부러운 눈으로 집을 둘러보는 것을 보고는 짙은 패배감을 느꼈다.
“집을 이렇게 만들면 반칙이지.”
이진성은 연신 헛웃음을 터트리며 예원에게 다가갔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 집도 나쁘지 않아, 솔직히 말해서 난 그냥 맨바닥에서 잘 줄 알았으니까.”
이진성은 왠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예원을 위로했다.
“다음에 이기면 됩니다, 다음에.”
“그, 그렇지.”
예원의 차가운 음성에 이진성이 흠칫- 놀랐다.
사람 좋은 줄로만 알고 있던 예원의 이런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예민하게 굴었네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예원이 곧바로 이진성에게 사과했다.
“응? 아니야, 아니야. 남자가 승부욕도 좀 있고 그래야지.”
이진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예원의 어깨를 도닥였다.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이 됐는지 제작진들이 소리쳤다.
예원 팀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 한 명.
예원만은 다른 팀원들과 다르게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