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75화
“긴장 안 돼요?”
최은송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수혁을 흘깃 보며 물었다.
“긴장할 게 뭐 있어요?”
“아니, 처음으로 방송에 나가는 건데.”
그녀의 말에 수혁이 살짝 웃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은 아니거든요?”
“아……. 그렇지, 참.”
뉴스에는 수도 없이 많이 나갔다.
“그런데 안 피곤해요?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운전하려면 피곤할 텐데.”
“조금 졸리긴 해요.”
“그러니까 그냥 혼자 간다고 했는데.”
최은송은 수혁이 혼자 공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데려다준다며 새벽부터 차를 몰고 왔다.
“이러고 출근하면 더 힘들 텐데.”
“괜찮아요, 아직 젊으니까.”
“하하…….”
미워할 수가 없는 여자였다.
“조심하면서 촬영해요. 아무리 다른 사람들도 있다지만, 오지에서 찍는 건데.”
“저야 항상 조심하죠.”
“뉘예뉘예. 항상 조심해서 맨날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죠.”
최은송이 수혁을 놀리듯 말하고는 혼자 웃었다.
“아, 그리고.”
공항 앞에 도착해 차를 세운 최은송이 수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웃통 막 훌렁훌렁 벗고 그러지 마요. 내가 전에 뉴스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푸켓에서 구조하며 티셔츠를 붕대 대신 사용하는 바람에 맨몸으로 영상을 찍힌 것을 말하는 듯싶었다.
“뭐, 봐서요.”
수혁은 그런 최은송에게 씨익- 웃어주고는 차에서 내렸다.
“일주일 후에 봐요. 조심히 들어가고.”
수혁은 차 밖으로 나와 짐을 꺼내주는 것을 도와준 최은송의 볼에 입을 맞춰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갈게요.”
최은송은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여자친구신가 봐요?”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수혁이 깜짝 놀랐다.
옆을 돌아보자 언제 왔는지, 커다란 안경을 쓴 여자 한 명이 수혁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누구……?”
수혁이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아차!’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7일간의 서바이벌 작가, 유예림입니다.”
유예림은 수혁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어요, 헤헤.”
작은 키에 장난감 같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꽤나 귀여워 보였다.
“수혁 씨가 제일 빨리 오셨어요.”
“그래요?”
그렇게 서두르지도 않고 약속 시간에 거의 정확히 도착했는데, 가장 빨리 왔다니.
“원래 좀 많이들 늦으세요.”
유예림이 누가 들을까 작게 속삭였다.
“……그렇군요.”
연예인이라는 사람들은 원래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죠.”
수혁은 그녀의 뒤를 따라 공항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임에도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공항 내부는 북적이고 있었다.
“이쪽이에요.”
유예림이 안내한 곳에는 카메라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여기서부터 촬영을 시작하나요?”
“네. 일단 오프닝 찍고, 그 뒤에 출발할 거예요.”
어쩐지 약속 시간이 비행기 출발 시간보다 훨씬 빠르다 했다.
“혹시……. 면세점 같은 곳에 들를 시간도 있을까요?”
수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유예림이 소리 죽여 웃더니 입을 열었다.
“여자친구 선물 사시려고요?”
수혁이 헛기침을 했다.
정곡을 찔렸던 것이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시간은 충분할 테니까.”
그녀의 대답에 수혁이 안도했다.
“아, 누구 도착하신 거 같네요.”
유예림이 공항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꺄악!”
“오빠, 팬이에요!”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었다.
‘아이돌인가?’
출연자 중에는 아이돌이 몇 명 있었다.
걸 그룹 멤버와 보이 그룹 멤버 모두 말이다.
비명 소리를 들으니 아무래도 그들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이쪽입니다, 예원 씨.”
스태프 중 한 명이 손을 흔들자, 공항 안으로 들어오던 남자가 촬영 장소 쪽으로 다가왔다.
‘잘생겼네.’
수혁은 예원이라 불린 청년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괜히 아이돌이 아니었다.
키는 훤칠했고,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예원은 스태프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런 예의 좋은 태도에 스태프들은 손사래를 쳤다.
“늦기는요. 다른 분들보다 훨씬 빨리 오셨는데.”
예원은 이번 출연자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이다.
시청률은 예원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스태프들이 저렇게 대우해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원은 그런 스태프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다가 수혁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복장을 봐선 출연자 쪽인 것 같은데,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예원입니다.”
그는 수혁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아, 그……?”
미리 출연자에 대한 정보를 들은 예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출연하신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예원의 태도가 살짝 바뀌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수혁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지만, 수혁이 갑자기 예원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빛도 조금 변했고.’
수혁이 정말 이십대의 나이였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보다 살아온 세월이 많았다.
그랬기에 예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쯧, 이것 참…….’
예의 바르던 청년이 한순간에 바뀌는 모습을 본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방송은 처음이라서.”
“저에게 맡기세요.”
예원은 그런 수혁에게 눈웃음을 한번 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무슨 얘기 하셨어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유예림이 다가오며 수혁에게 물었다.
“그냥 인사했죠, 뭐.”
“우리 예원이 참 진국이죠?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도 그 흔한 연예인 병 같은 것도 안 걸리고. 이 바닥에서도 예의 바르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그래요?”
스태프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이해가 갔다.
저게 가식이 아니라, 진짜 모습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제 슬슬 다른 분들도 도착하고 계시네요. 그럼 전 준비 좀 하러 갈 테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유예림은 다른 사람과 섞이지 못하고 혼자 동떨어져 있는 수혁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세요.”
수혁은 유예림이 떠나고 잠시 혼자 남아 사람들을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출연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유명한 남자배우도 있었고, CF 퀸이라 불리는 여배우도 있었다.
개그맨과 걸 그룹 멤버들까지.
잠시 후, 수혁을 합치면 총 여덟 명이나 되는 출연자가 모두 모였다.
“혹시 김수혁 소방관님이세요?”
출연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다 수혁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출연자 중 연예인이 아닌 사람은 수혁이 유일했으니까.
“반갑습니다,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수혁이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와, 진짜 뵙고 싶었습니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할 수 있는 개그맨 하성우가 수혁을 보곤 방방- 뛰었다.
“아, 저분이 그분이야?”
“뉴스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다른 출연자들 역시 수혁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바로 얼마 전까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사람이었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자신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하성우 덕분에 진땀을 빼고 있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수혁에게 다가와 밝게 인사했다.
‘고등학생?’
아무리 봐도 성인처럼은 안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그것도 세 명이나.
“저는 버블걸스의 효진이라고 해요.”
“저는 제스.”
“전 시애입니다!”
“아.”
걸 그룹 멤버들이었다.
“바, 반가워요.”
수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녀들은 환하게 웃었다.
“팬이에요! 저 막 뉴스에서 나오신 것도 다 챙겨보고, 사진들도 다 찾아봤어요!”
그중 시애라는 아이는 정말로 흥분한 기색이었다.
“……사진이요?”
자신의 사진을 어디서 찾아본단 말인가?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시애가 갑자기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왠지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시애가 진짜 오빠 팬이거든요. 아,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효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친화력이 좋은 것인지, 스스럼없이 수혁과의 거리를 좁혔다.
수혁은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예원과 다르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그녀들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수다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자, PD가 나서며 상황을 정리했다.
‘괜찮은 그림이 나오겠어.’
사실 카메라는 수혁이 도착했을 때부터 돌아가고 있었다.
수혁이 다른 출연자들과 만나 허둥거리는 모습은 잘만 편집하면 재밌는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D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오프닝 촬영을 시작했다.
“와, 더워!”
시애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티셔츠를 훌러덩 까고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찐다, 쪄.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큰일인데.”
하성우 역시 혀를 휘둘렀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 역시 줄줄 흐르는 땀에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오직 수혁만이 더위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오빠는 안 더워요?”
효진이 그런 수혁을 보며 물었다.
“덥지.”
수혁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더운 사람 얼굴이에요? 여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뽀송뽀송한 거 봐!”
효진의 말에 사람들이 수혁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소방관이시잖아. 우리랑 다르게 매일 불 속에서 일하시는데, 이 정도쯤이야 거뜬하시겠지.”
예원이 그런 효진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렇겠네요.”
그의 말에 효진은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저거 비꼬는 건가?’
말의 내용을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괜히 그의 말이 신경을 건드렸다.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겠지.’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예원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이 베이스캠프입니다.”
앞장서던 PD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꽤 널찍한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오, 좋은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네요.”
그간 별로 말수가 없던 배우 이진성과 CF 퀸 안나경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만큼 공터는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7일 동안 지내는 건가요?”
효진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오지보다는 휴양림의 느낌이 더 강하게 나는 장소였는지라,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PD는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저희 스태프들이 지낼 곳입니다. 여러분이 7일간 생존할 곳은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사람들이 실망하며 탄식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이번 라오스 편의 생존 룰을 공개하겠습니다.”
“생존 룰?”
“그런 게 있었나요?”
수혁을 포함한 출연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예능에 출연한다고 지난 방송들을 찾아서 봤지만, 생존 룰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PD는 그런 출연자들을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 편부터 적용된 새로운 규칙입니다.”
PD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고는 출연자들을 향해 펼쳤다.
-경쟁.
종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두 팀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각 팀은 서로 생존을 위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