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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74화 (74/425)

레스큐 시스템 74화

“15번! 16번!”

수혁의 앞 번호가 불렸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수혁은 슬슬 자신의 차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때였다.

옆에 있던 소방관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수혁을 불렀다.

“혹시 김수혁 씨?”

“아, 네.”

수혁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방관은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이었군요!”

그 소리에 주변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소방관들 역시 수혁을 알아본 것이다.

수혁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푸켓에서의 일로 자신이 조금 유명세를 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귀국 날 공항에 그렇게 많은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방송 섭외까지 오는 마당이었으니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알은체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신일서 분이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얼굴을 보니 알아보겠더라고요.”

“아…….”

확실히 평범한 사람보다는 소방관 쪽이 알아보기는 더 쉬웠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었고.

“이렇게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여, 영광은요, 무슨.”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그를 보며 수혁은 손사래를 쳤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아 과거로 회귀했고, 이상한 능력을 얻어 사람들을 구한 것뿐이다.

사람들을 구한 행동들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수혁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니까.’

수혁이 왠지 꺼리는 기색이자, 처음 말을 걸었던 소방관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경기에 집중해야 하셨을 텐데…….”

호기심에 한번 말을 건 것에 불과하지만, 수혁에겐 꽤나 곤혹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수혁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 경기가 수혁에게 있어 긴장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파이팅 하세요!”

소방관은 수혁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던지고는 다른 쪽으로 자리를 비켰다.

더는 수혁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다른 소방관들 역시 수혁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가끔 시선이 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최대한 경기를 준비하는 데 집중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수혁은 그런 소방관들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부담스럽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이 아주 살짝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17번! 18번!”

그사이 수혁의 차례가 다가왔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한 수혁은 천천히 경기장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아무리 자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는 그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김수혁 파이팅!”

“수혁 씨, 힘내요!”

“신일서의 괴물 김수혁이다!”

‘마지막은 누구냐…….’

수혁은 집중했던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김수혁?”

“그 사람이지?”

“그 태국에서 사람 엄청 구했다던.”

구경을 왔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푸켓에서의 일이 아직 한 달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이다.

지금도 간간이 방송에서 수혁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던 터라, 사람들은 아직 수혁을 기억하고 있었다.

“와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나들이를 나와 무슨 경기를 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다 유명한 사람을 보게 됐으니, 신날 만도 했다.

수혁이 살짝 울상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같이 경기를 하게 된 소방관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신은 둘째치고, 경기에 집중해야 할 선수에게 괜한 부담감을 주게 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아니요. 저도 이렇게 떠들썩한 게 더 좋습니다.”

경쟁 선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수혁은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출발선에 섰다.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잠시 당황했던 관계자들은, 둘이 출발선에 서자 정신을 차리고 시합을 재개했다.

탕-!

총성이 울리자, 수혁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전에 기록했던 성적 정도만…….’

그때보다 레벨이 훨씬 높아진 수혁이었는지라, 속도 조절에 조금 더 힘을 써야 했다.

등에 메고 있는 장비는 수혁에게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했다.

이 장비의 무게보다, 푸켓에서 들었던 잔해들의 무게가 열 배는 더 무거웠다.

속도 조절을 했음에도, 수혁은 순식간에 코스를 끝내 버렸다.

기록은 1분 27초.

이전에 세웠던 기록보다 1초나 더 단축됐다.

‘좀 빨랐나?’

아무래도 신체 능력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뭐, 됐나?’

27초나 28초나.

제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닌 소방관이라 할지라도 세우기 어려운 기록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와아아악! 또 신기록이야!”

“저 괴물 새끼!”

“수혁 씨! 와아!”

대충 누구인지 알 것 같은 음성들이 터져 나왔다.

수혁은 그쪽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정확히는 최은송을 향해서 말이다.

“새끼…….”

“귀찮은 척하더니, 그래도 선배들이 응원 왔다니 저렇게 아는 척도 해주네요.”

“저놈이 가끔 미친 짓을 좀 해서 그렇지, 개념은 꽉 차 있다니까.”

아저씨 두 명 정도는 흐뭇한 얼굴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우승자, 신일 소방서 김수혁.”

시상식의 마지막에 수혁의 이름이 불렸다.

쏟아지는 환호성 속에 수혁은 담담한 얼굴로 시상대에 올라섰다.

총 기록은 5분 36초.

세계 신기록과 불과 1초 차이였다.

당연히 주최 측은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있을 세계 대회가 얼마 후에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세계 대회 우승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그 기록을 낸 사람이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수혁이었으니…….

여러모로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시군요.”

수혁에게 수상하러 나온 소방청장 김용의가 뿌듯한 얼굴로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계속해서 좋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그는 수혁과 악수를 한 번 하고는 사진 몇 방을 찍었다.

‘좋은 활약이라…….’

김용의 소방청장이 말한 활약이 세계 대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구조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분위기로 봐서는 대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해달라고 말하는 쪽이 낫긴 했지만…….

수혁은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도 많이 구하고, 경기도 잘 치르면 되겠지.’

트로피와 상장을 받아 든 수혁은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최은송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상도 좋고, 특진도 좋지만, 역시 최은송이 저렇게 즐거워하는 게 가장 좋았다.

수혁은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대에서 내려왔다.

같이 경기에 참가했던 소방관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잠시 대화도 주고받은 뒤, 간신히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올 수가 있었다.

“축하한다?”

“임용된 지 1년도 안 돼서 진급하네, 이 새끼.”

“정우야, 쟤랑 너랑 동 계급이야.”

“어, 그러네. 수혁아, 이제 정우랑 말 까라.”

아저씨 두 명은 질투인지 축하인지 모를 표정으로 수혁과 박정우를 놀려댔다.

“그럴까요?”

“죽는다, 이 새끼야!”

수혁이 장단을 맞춰주자, 박정우가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다른 대원들이 폭소했다.

“축하해요, 수혁 씨.”

“저 잘했죠?”

“네, 진짜 잘했어요. 들어보니까 세계 신기록하고 1초밖에 차이 안 난다던데. 정말 대단해요!”

최은송은 눈을 반짝이며 배시시- 웃었다.

“밥은 제수씨가 싸 온 도시락 먹고, 좀 쉬다가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그건 내가 쏜다.”

“오, 그냥 넘어가실 줄 알았더니?”

“내가 너처럼 좀생이인 줄 아냐?”

수혁은 신나게 떠들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람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가요.”

최은송이 수혁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오늘은 뭐 싸 왔어요?”

수혁이 도시락 메뉴를 물었다.

“고기요.”

그 말에 수혁의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라오스요?”

동남아의 한 오지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지금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라오스 관광청과 협의를 통해 섭외해 둔 장소가 있습니다.”

“정글 같은 곳인가요?”

수혁의 물음에 PD가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예전에 방송됐던 그 프로그램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글에서 살아남는…….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조작과 말도 안 되는 물의를 빚으며 어느 순간 폐지되고 말았다.

“수혁 씨에겐 안 좋은 말일 수도 있지만, 저희 프로그램은 절대 조작하지 않으니까요.”

그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작은 하지 않지만, 그만큼 참가자들이 더 힘들 것이란 얘기였다.

“물론 안전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현지 코디네이터와 안전요원들도 동행할 거고, 섭외된 장소 역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뿐이지, 큰 위험이 없는 곳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하시죠.”

수혁은 결국 예능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서장의 은근한 눈치나 박상태의 설득 때문이 아니었다.

‘은송 씨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깟 예능 한 번 출연하는 게 대순가?

“잘 생각하셨습니다.”

PD는 싱글벙글했다.

가장 섭외하고 싶었던 사람이 승낙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냥 대충 넘겼다.

‘출연료도 주네.’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돈을 준다는데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출발은 거기 적혀 있는 대로 일주일 뒤입니다. 저희 쪽에서 시간에 맞춰 픽업하러 가겠습니다.”

“아, 아니요. 그냥 제가 직접 공항으로 갈게요.”

방송국 사람이 데리러 온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수혁은 PD의 말을 거절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출발할 때와 도착하기 몇 분 전에 저에게 연락을 주시죠.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서.”

“알겠습니다.”

수혁은 계약서에 대충 사인을 휘갈기고는 PD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방송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며, 이번 편의 출연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PD가 수혁에게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 모습인지까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그들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식사하고 가시지.”

“괜찮습니다. 저도 약속이 좀 있어서.”

사실 약속 같은 건 없었지만, 좀 피곤했던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촬영 날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PD와 헤어진 수혁은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라오스라……. 설마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수혁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다행히 라오스에 관련된 재난 같은 건 없었다.

“아, 상태 형은 괜한 얘기를 해서.”

X전일이니 코X이니 하는 얘기를 들었더니 어디 간다고만 하면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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