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73화
“오늘 제수씨 방문하기로 했지?”
“네.”
“이야, 드디어 제수씨가 만들어준 밥을 먹어보겠네. 유명한 식당에서 요리한다며?”
김강식은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수혁과 박상태가 푸켓에서 돌아온 지 2주가 흘렀다.
떠들썩했던 주변이 진정되고, 이젠 어느 정도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괜히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박상태는 최은송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은송 씨가 꼭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한 거니까 괜찮을 거예요. 정 일손이 바쁘면 주방 아주머니에게 부탁해도 되니까요.”
“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박상태라고 최은송의 요리를 먹는 게 싫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제발 오늘은 밥 먹을 때 출동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박정우가 기도하는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수혁은 그 모습에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 시간 출동은 일종의 징크스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꼭 밥만 먹으려고 하면 출동이 걸리니, 원.”
주방 아주머니가 아무리 맛있는 밥을 해주면 뭐 하나?
먹기도 전에 출동 나갔다 들어오면 음식은 죄다 식어 있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오늘도 그러면 진짜로 내가 가만 안 둔다.”
“가만 안 두긴, 누굴 가만 안 둬?”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던 이재한이 손에 든 서류로 박정우의 뒤통수를 툭- 치며 말했다.
“치즈 밥이나 줘라. 배고픈지 아까부터 자꾸 울더라.”
“아차!”
박정우는 깜짝 놀라며 치즈를 찾아 떠났다.
“그건 뭐예요?”
수혁이 이재한의 손에 있는 서류를 보며 물었다.
“너한테 온 거다.”
“저한테요?”
수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서류를 건네받았다.
“방송 섭외 요청서……?”
이게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이재한을 쳐다보았다.
“무슨 방송에서 너를 섭외하려고 하는데, 도통 네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서에 팩스로 보냈다고 하더라고.”
방송이라니?
“무슨 다큐멘터리 같은 겁니까?”
“한번 읽어봐.”
수혁이 서류를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송 프로그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7일간의 서바이벌?”
해외 오지에 나가 7일 동안 생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거 예능 아니에요?”
TV를 즐겨보지 않는 수혁이었지만, 이야기는 몇 번 들어볼 정도로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래. 거기서 너를 꼭 좀 섭외하고 싶단다.”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유명해졌다 싶더니, 이런 예능 섭외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가 이런 데 나갈 시간이 어디 있어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하루 잠깐 다녀오는 것이라면 생각해 볼 여지라도 있었다.
비번 날을 이용해 촬영하면 되니까.
하지만 방송 제목에서도 나와 있다시피, 무려 7일이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다른 동료들이 힘들어진다.
하물며 수혁이 빠진다면 그 빈자리는 더욱 클 게 뻔했다.
무엇보다, 위에서 허락할 리도 없었고 말이다.
“서장님이 허락하셨다.”
“……예?”
수혁은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서장님은 허락하셨다고. 아니, 오히려 웬만하면 출연 좀 해달라고 하시더라. 그 프로그램 팬이시라면서.”
“허허…….”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팬이니까 방송에 나가라고?
일주일이나 출근하지 말고?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네 덕분에 우리나라 소방관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지 않냐. 이 기회에 네 얼굴 좀 팔아서 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드시고 싶으신가 보더라.”
박상태가 말을 덧붙였다.
“이거 알고 계셨어요?”
“나도 오늘 알았지. 서장님이 나한테도 부탁하시더라고. 네가 방송 출연하도록 설득 좀 해달라고.”
끄응-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나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야, 인마. 서장님께서 유급처리 해주신다고 했고, 출연료도 나오고. 무엇보다 아이돌도 만날 수 있다, 너?”
“아이돌…….”
솔직히 그건 좀 솔깃하긴 했다. “잘 모르겠네요.”
박상태의 말처럼 조금 귀찮다는 것만 제외하면 꽤나 괜찮은 일이었다.
푸켓에서 꽤나 고생했으니, 이번 기회에 숨을 돌리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생각은 해볼게요.”
수혁이 귀찮은 기색으로 그렇게 대꾸했다.
“예능이요? 정말요?”
최은송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은송 씨도 당황스럽죠?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예능이라니…….”
수혁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최은송의 반응은 수혁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게 어때서요? 좋잖아요, 예능!”
오히려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조, 좋아요?”
“그럼요! 와아, 내 남자친구가 예능에 출연한다니…….”
아직 출연한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최은송은 이미 수혁이 출연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일도 해야 하고…….”
“서장님도 허락하셨다면서요. 오빠들도 나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그랬고.”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최은송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 좋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최은송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출연을 거부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출연해요? 이번엔 어디로 간대요? 누구누구 나와요?”
수혁은 최은송이 이렇게 수다스러웠던가? 하는 생각을 하며 대답을 해주었다.
“나가기로 한다면 2주 뒤부터 촬영을 시작한다고 하네요. 촬영지는 저도 아직 듣지 못했고……. 누가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박상태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돌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수혁 씨가 7일간의 서바이벌에 나온다니……. 저 그 프로그램 애청자거든요.”
애청자도 많다.
서장도 그렇고, 최은송도 그렇고.
꽤나 인기가 많은 예능인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니까.’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최은송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출연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전에 소방 기술 경연 대회에 참가해야 해요.”
“아, 전에 말했던 대회죠?”
최은송의 얼굴에 미안함이 서렸다.
지방예선 때 일이 너무 바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을 떠올린 듯했다.
“굳이 힘들게 시간 내서 올 필요는 없어요.”
수혁은 최은송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했다.
“대회 날이 마침 비번이라, 형들이 응원하러 오기로 했으니까. 전처럼 혼자 외롭게 있진 않을 거예요.”
“아뇨, 이번엔 꼭 갈 거예요.”
지난번 일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수혁이 대회에 나가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는데.”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꼭 가고 싶어서 그래요.”
최은송은 그날 거하게 도시락을 싸서 갈 계획까지 세웠다.
다른 사람들도 온다고 하니,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말이다.
“아주 깨가 쏟아지는구만.”
“그러게나 말입니다.”
박상태와 김강식이 그런 둘을 보며 투덜거렸다.
“누군 연애 안 해봤나…….”
“꼭 여기서 저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저씨들의 궁상에 수혁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거기서 뭐 하고 계세요?”
“뭐 하긴, 인마! 밥 기다리지!”
“점심시간 다 끝나겠다! 제수씨, 밥 좀 주세요. 나 제수씨 요리 먹으려고 어젯밤부터 굶었단 말이야.”
최은송이 아하하- 하고 웃었다.
“죄송해요. 거의 다 됐으니까 5분만 기다려 주세요.”
최은송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서둘러 요리를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음식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오, 김치찌개다!”
“계란말이도 있네.”
하지만 구조 3팀의 대원들은 희희낙락했다.
그들에겐 어떤 음식이냐보단 누가 만든 음식이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잘 먹을게요, 제수씨.”
“잘 먹겠습니다!”
대원들은 최은송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허겁지겁 식사하기 시작했다.
먹는 모습을 보면 며칠 굶은 사람들 같았다.
“이야, 맛있다.”
“내 마누라보다 낫네.”
“비교할 걸 비교하셔야죠. 그게 비교가 됩니까?”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밥을 먹는 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최은송이 미소 지었다.
역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다행히 징크스도 발휘되지 않았다.
식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출동 명령은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제수씨가 요리해서 그런지, 출동도 안 떨어지네.”
“그러게. 수혁이 놈하고는 다르다, 야.”
박상태의 말에 최은송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혁 씨가 왜요?”
“아, 저놈은 아주 불행을 몰고 다니거든요.”
“X난이 따로 없지.”
“아, 진짜…….”
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최은송을 잡아끌었다.
“저런 사람들이랑 놀지 마요. 안 좋은 물 들라.”
“이 새끼가 형들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오랜만에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보낸 그들은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수혁은 반사적으로 달려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최은송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최은송 역시 그런 수혁을 마주 보며 웃었다.
“조심히 다녀와요.”
“근데 이거 꼭 나가야 해요?”
수혁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야, 인마. 다른 사람들은 본선 진출도 못 해서 난리인데, 뭐? 꼭 나가야 하냐고?”
최강 소방관 경기 본선이 열리는 날이었다.
지방 예선 때도 느낀 거지만, 꽤나 공을 들여서 준비한 것 같았다.
“입상하면 1계급 특진이야. 당연히 나가야지.”
수혁 역시 특진이 아니었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징계 위원회도 취소된 마당에, 굳이 참가할 이유가 없었다.
“긴장 안 되냐?”
“긴장은요, 무슨.”
수혁보다 다른 대원들이 훨씬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긴, 너라면 입상은 따놓은 당상이지.”
수혁은 지방 예선에서 세계 신기록과 고작 2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 기록을 세웠다.
그 정도면 입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엔 세계 신기록을 노려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괴물 같은 놈.”
박상태는 질투심 가득한 표정으로 수혁을 노려봤다.
“수혁 씨!”
그때 멀리서 최은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을 포함한 대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최은송은 양손에 커다란 짐을 가득 든 상태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 해? 가서 안 받고.”
박상태의 말에 수혁과 박정우가 달려갔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요?”
“도시락이에요. 다른 분들하고 같이 드시라고.”
최은송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어이쿠, 뭘 이런 걸 다.”
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전에 서에서 먹었던 최은송의 요리가 꽤나 맛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 박상태의 표정이 가장 밝았다.
“팀장님, 돈 굳으셨네요.”
사실 오늘 대회가 끝나면, 박상태가 한턱 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은송이 이렇게 도시락을 싸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경기는 언제부터예요?”
“한 시간 후에요.”
“자신 있어요?”
최은송이 물었다.
그리고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