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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71화 (71/425)

레스큐 시스템 71화

“와아아!”

사람들이 놀람에 가득 찬 환호성을 질렀다.

“벌써 몇 명째야?”

“아니, 그전에 저게 가능한가?”

놀란 사람들 중에는 구조대원도 다수 섞여 있었다.

한 남자가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사실 구조대원들은 중장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했었다.

그만큼 돌덩이의 무게는 사람의 힘으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혼자서 그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놀라는 와중에도 그 안에 깔려 있던 요구조자를 밖으로 꺼냈다.

쿠웅-!

사람이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남자가 돌을 놓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조대원 중 한 명이 남자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김수혁 씨!”

남자의 정체는 수혁이었다.

구조대원은 기쁜 얼굴로 수혁을 향해 빠르게 말을 했다.

“다행히 요구조자의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들은 수혁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네.”

그나마 영어는 눈치로 때려 맞출 수 있었지만, 태국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대충 맞장구를 쳐주자, 구조대원은 더욱 신나서 말을 걸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대체 어떻게 그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수가 있는 겁니까?”

수혁은 계속 웃었다.

그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쪽에도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 외치자 구조대원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수혁 역시 그쪽을 쳐다보았다.

뭔가 다급해 보이는 것이, 요구조자를 발견한 것 같았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렇게 수혁이 구한 사람의 숫자가 이곳에서만 벌써 열 명을 넘어간다.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수혁을 하늘이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내려준 존재라고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혁! 수혁! 수혁!”

조금 전 누군가 이름을 물어보기에 아무 생각 없이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퍼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괜히 낯이 부끄러워진 수혁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수혁은 이번에도 사람을 구조해 냈다.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에게 있어 수혁은 구원자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섣불리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요구조자들을, 쉴 새 없이 구조해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그렇게 사람들의 환호 속에 계속해서 구조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 * *

“이건 무조건 따라다녀야 해요!”

에밀리는 조쉬에게 강력히 주장했다.

“나도 저 수혁이라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 에밀리. 하지만 위에선 허락을 안 해줄 거야.”

조쉬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에밀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죠?”

“우리 일이 아니니까.”

“우리 일이라는 게 뭔데요?”

따지듯이 묻는 에밀리의 모습에 조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의 참혹한 현장을 세상에 알리는 거지. 이곳은 지금 도움이 절실해. 우리가 제대로 알려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거야.”

조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편집장이 내린 지시도 그와 같았다.

하지만 에밀리의 생각은 좀 달랐다.

“도움? 물론 필요하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알려줄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태국에는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본래 이곳에 상주하고 있던 특파원들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였다.

에밀리가 일하고 있는 BBC에서도 몇 팀이나 파견한 상태였다.

“조쉬, 사람들은 희망을 원해요.”

사람들은 기적을 원하는 만큼, 영웅도 원한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수혁은 영웅이었다.

이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사람들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저는 저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단호하게 말을 하는 에밀리의 모습에 조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카메라맨이다.

이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에밀리였다.

“좋아, 하지만 시말서는 미리 써두는 게 좋을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조쉬. 그 손에 시말서가 아니라 퓰리처상을 거머쥐게 해줄 테니까.”

에밀리는 자신만만했다.

조쉬는 쓰게 웃으며 수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기는 했다.

거침없이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은 에밀리가 충분히 반할 만한 모습이었다.

“어? 이동하네요.”

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구한 모양이었다.

수혁이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본 둘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잠시만요!”

에밀리가 크게 수혁을 불렀다.

처음엔 자신을 부르는 줄 몰랐던 수혁은 계속해서 웬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뒤를 돌아보았다.

“헉, 헉!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요!”

“뭐라고요? 혹시 요구조자가 더 있습니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에밀리는 그가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에밀리의 얼굴에 잠시 당황이 서렸다.

앞뒤 생각하고 불렀지만, 수혁이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상황은 상정하지 못한 듯했다.

“나한테 맡겨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조쉬가 앞으로 나섰다.

“맞아, 한국에서 특파원을 했었다고 했었죠?”

에밀리가 손뼉을 짝-! 하고 치며 웃었다.

“유창하진 못해.”

그래도 조쉬는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한 덕분에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BBC입니다.”

자신을 불러 세운 외국인들이 서로 대화를 하다 갑자기 한국말을 내뱉자 수혁은 깜짝 놀랐다.

그러다 BBC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BBC요?”

BBC면 영국의 방송국 아니었던가?

수혁은 조쉬가 든 카메라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 분들이셨네.”

재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만큼 많이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기자였다.

특히 이 정도로 대형 재난이 터졌으면, 기자들은 어느 곳에나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조쉬는 자신과 에밀리의 이름을 소개하고는 수혁과 악수를 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들이 기자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왜 자신을 부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을 취재하겠다. 알겠냐?”

순간 수혁이 움찔했다.

“어, 어. 네?”

“우리는 리포터입니다. 당신에게 흥미가 있다. 이해했냐?”

“하하…….”

수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어를 어디서 배우셨는지, 잘 배우셨네요.”

수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그런 기색을 지우고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서…….”

하지만 조쉬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거절은 거절한다. 당신은 우리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 일을, 우리는 우리 일을.”

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기자가 따라다니는 것은 상관없었다.

무려 BBC의 기자가 자신을 취재한다는데, 기분이 나쁠 리도 없었고.

문제는 괜히 자신을 따라다니다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위험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었다.

수혁이라면 문제가 될 것 없었지만, 이들까지 챙기다 보면 괜히 신경만 분산되어 귀찮아질지도 모른다.

수혁은 다시 한 번 거절하려고 했지만, 조쉬가 한발 빨랐다.

“사람들 필요하다. 영웅.”

에밀리가 했던 말을 수혁에게 했다.

그 말에 수혁은 입을 다물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수혁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조쉬가 말하는 영웅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수혁은 간절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에밀리와 조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야.”

“걱정도 팔자구나.”

“허허…….”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에게 한국말을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세 사람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혁만이 단 1초도 쉬지 않았다.

에밀리와 조쉬는 수혁이 사람들을 구할 때, 잠깐씩 휴식을 취했으니까.

수혁의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속의 슈퍼 히어로나 별다를 바 없었다.

만약 자신의 두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여러 번 펼쳐졌다.

맨몸으로 차를 움직인다거나, 커다란 나무를 치우고, 한 번에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혼자서 옮겼다.

그러면서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잘 찍고 있어요?”

“물론.”

조쉬는 연신 감탄하며 수혁에게서 렌즈를 돌리지 않았다.

“이거 정말 시말서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제 말이 맞죠?”

수십 년간 이 일을 하며 갈고닦은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정말 대박이라고.

“스토리도 좋아.”

중간 중간 이동하며 인터뷰한 덕분에, 그들은 수혁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가 한국에서 소방관이며, 푸켓에는 여자 친구와 여행을 온 것이라고.

그러다 쓰나미가 발생해 홀로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는 것까지.

양념을 하나도 치지 않고, 이대로만 기사를 내도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였다.

그가 지금까지 구해낸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랬다.

“진짜 영웅이 될지도 몰라요.”

자신들만 제대로 일을 한다면…….

수혁의 미담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찍어야지.”

조쉬는 더욱 열정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배터리는 충분하다.

단 한 순간도 수혁의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전해져 왔다.

* * *

“푸켓에서 전달된 소식입니다.”

BBC World News의 앵커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절망의 땅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황폐화된 푸켓의 모습을 공중에서 비춰주던 화면은, 이내 구조 작업을 하는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기적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온 소방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면은 다시 누군가의 등을 비추었다.

그는 윗도리는 벗어 던진 것인지 근육질의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돌더미를 혼자 옮기더니 그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을 밖으로 꺼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보시는 화면처럼, 한국에서 온 이 소방관은 벌써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혼자 구조해 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혼자서 백 명 이상의 요구조자를 구해내다니.

무슨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수혁! 수혁! 수혁!”

화면 속의 사람들은 마치 응원가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영화 속이 아닌, 정말 살아 있는 슈퍼 히어로입니다.”

앵커가 다시 한 번 격하게 말했다.

그리고…….

“니가 거기서 왜 나와?”

푸켓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하며 뉴스를 보고 있던 박상태가 벙찐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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