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70화
“힘들지 않나?”
짐 머레이가 물었다.
“뭐라고요?”
하지만 수혁은 알아듣지 못했다.
‘젠장, 영어 공부 좀 할 걸 그랬나?’
대화라도 통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요구조자를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영어를 공부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끝나면 고시원으로 돌아와 지쳐 쓰러지기 바쁜데, 언제 영어 공부를 할까?
소방 공무원 시험을 치를 때 공부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질 못 했다.
‘이제라도 해야 할까?’
이전 생과는 달리, 지금은 퇴근을 해도 체력이 남는다.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문제는 공부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 통역 스킬 같은 건 안 나오나?”
그런 게 있다면 이런 해외에서 구조 활동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무슨 일 하시는 분이세요?”
괜히 한 번 투덜거려 본 수혁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왠지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What?”
하지만 그 질문을 짐 머레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워크. 왓 워크 하시냐고요.”
짐 머레이는 수혁의 개똥 같은 영어를 찰떡처럼 알아들었다.
“작은 사업을 하나 하고 있다네.”
“아, 비즈니스?”
수혁이 알아들은 건 그게 전부였다.
“사장님이시네, 하하!”
영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었다는 기쁨에 수혁은 크게 웃었다.
짐 머레이는 수혁이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고.
“뭐, 됐네.”
짐 머레이는 수혁이 웃는 걸로 봐선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그나저나 저 아이의 엄마도 찾아야 하네만…….”
이번에도 수혁은 Mother라는 단어를 캐치해 냈다.
“엄마? 아, 아내 분 말이죠?”
그러고 보니, 딸과 아빠밖에 없었다.
수혁이 이번엔 제시카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어디 계시니?”
간단하게 영어 문장이었지만, 수혁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I don’t know…….”
제시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수혁은 제시카의 어머니가 쓰나미에 휩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찮으실 거야. 돈 워리, 돈 워리.”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제시카의 모습에 수혁이 다급히 안심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제시카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너무 긴박한 상황 속에 잊고 있었던 엄마가 너무도 보고 싶어졌다.
“이런…….”
수혁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짐 머레이가 입을 열었다.
“제시, 네 엄마는 괜찮을 거란다.”
기침마저 콜록- 이며 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 제시카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엄마도 너무 보고 싶었지만, 자신을 구하다 다친 그도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요, 짐?”
“무, 물론이고말고.”
사실 괜찮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상처 부위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이 아저씨 힘 정말 세지 않니?”
짐 머레이는 제시카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수혁의 이야기를 꺼냈다.
“네, 정말 대단해요.”
등에는 짐 머레이를 업고, 앞으로는 커다란 배낭을 멨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 자신과는 다르게, 수혁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면, 이 아저씨한테 네 엄마를 찾아달라고 부탁해 보자. 이 힘센 아저씨라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게 좋겠어요!”
제시카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우리 대화를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네만……. 이 아이의 엄마를 좀 찾아주게.”
짐 머레이가 수혁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둘이 대화를 하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Mom과 Find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로 봐선, 엄마를 찾아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오케이.”
수혁이 제시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사, 사람 살려요! 살려주세요!”
그때, 누군가 한국말로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수혁은 걸음을 멈추고는 곧장 ‘생명 감지Ⅱ’ 스킬을 사용해 요구조자의 위치를 파악했다.
‘저기다!’
수혁은 잠시 등에 업혀 있던 짐 머레이를 내려놓았다.
그나마 평평하고 깨끗해 보이는 간판 위에 그를 눕힌 수혁은 손짓 발짓을 하며 말했다.
“다녀올게요.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오케이?”
짐 머레이는 끝에 오케이만 붙이면 다 알아듣는 줄 아냐며 속으로 웃었다.
그래도 대충 이해는 되었다.
“알았으니까 다녀오게.”
짐 머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혁이 빠르게 요구조자를 향해 달려갔다.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
“지금 갑니다!”
수혁이 간절하게 외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아, 아……!”
요구조자의 음성에 안도감이 서렸다.
“구하러 왔습니다!”
수혁의 눈에 요구조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삼십대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자동차와 벽 사이에 양쪽 다리가 낀 상태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지만, 수혁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거 안 좋은데?’
한눈에 봐도 양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거기다 최소한 몇 시간은 이런 상태로 있었을 테니…….
‘어쩌면 절단해야 할지도 몰라.’
수혁은 의사가 아니었으니, 지레짐작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살짝 보이는 그의 다리는 이미 검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수혁은 애써 표정을 감췄다.
“저, 저 좀 꺼내주세요.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남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도 자신의 다리를 볼 수 있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수혁은 배낭에서 압박붕대와 소독약 등을 꺼냈다.
“일단 제가 차를 밀어서 공간을 만들 겁니다. 좀 아프시겠지만, 참으시는 수밖에 없어요.”
수혁의 말에 남자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자동차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남자는 설마? 하는 눈으로 그런 수혁을 쳐다보았다.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짐 머레이 역시 같은 눈빛이었다.
“아, 아니. 그게 손으로 당긴다고 해서 될 일이…….”
끼이이이익-!
남자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의 다리를 압박하고 있던 자동차는 그리 크지 않은 경차였다.
하지만 아무리 경차라고 한들, 사람이 이렇게 잡아당긴다고 움직일 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차는 수혁 쪽으로 끌려 왔고, 덕분에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아아악-!”
남자의 다리는 그를 지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압박이 풀어지자,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참아요!”
수혁은 곧장 꺼내둔 소독약을 그의 다리에 부었다.
이번엔 아끼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소독약으로 다리를 깨끗이 씻어낸 수혁은, 부러진 뼈가 튀어나온 상처에 지혈제를 뿌리고 붕대를 감았다.
거친 그의 손길에 남자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다리를 압박하고 있던 것이 사라지자,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붕대는 좀 아끼자.’
수혁은 자신의 티셔츠를 찢어 남자의 허벅지를 꽉- 묶었다.
출혈을 최대한 피해 보고자 한 조치였다.
“끄으으으.”
일련의 응급 조치가 끝나자 남자는 신음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됐습니다. 저한테 업히세요.”
수혁은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등에 업었다.
그러곤 짐 머레이와 제시카가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둘은 수혁을 마치 슈퍼 히어로를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맨손으로 차를 옮기는데,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이제 어쩐다?’
수혁은 남자와 짐 머레이를 보며 고민했다.
둘의 상세는 누가 더 좋고, 나쁨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한 사람은 다리가 완전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했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이 위독할 정도였다.
모두 위급한 환자라는 뜻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이 제시카를 쳐다보았다.
“혹시 이 배낭 들 수 있겠니?”
수혁이 배낭을 가리켰다.
하지만 제시카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그저 멀뚱히 수혁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음, 그러니까…….”
그때 남자가 영어로 제시카에게 말을 건넸다.
“이, 이 배낭을 들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데…….”
그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통역을 해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아, 영어 할 줄 아시네요!”
수혁이 다행이라는 듯 소리쳤다.
“충분히 들 수 있답니다.”
남자는 제시카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그럼 좀 부탁한다고 전해 주세요.”
제시카는 씩씩하게 수혁의 배낭을 받아들고는 등에 멨다.
워낙 커다란 배낭이었기에 제시카의 허벅지까지 덮을 정도였지만, 그리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좋아. 그럼 이제 두 분은…….”
수혁은 남자를 등에 업고는 티셔츠의 남은 부분을 이용해 자신과 그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후, 짐 머레이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허, 허허…….”
한 번에 두 사람을 짊어진 수혁의 모습에 짐 머레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차도 움직일 정도로 힘이 센 인간인데…….’
고작 사람 두 명 드는 게 대수랴?
제시카는 입을 쩍- 벌린 채로 수혁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이제 가자.”
수혁이 앞장서 걷자, 그 뒤로 제시카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이제 병원까지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수혁은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었고,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간호사 한 명은 그런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다, 문득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웬 동양인 남자 한 명이 건장한 남성 두 명을 혼자 옮기고 있었다.
수혁이었다.
“이, 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수혁을 한쪽으로 안내했다.
급조한 것인지, 나무로 만든 지저분한 침대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 내려주세요. 조심히, 조심히…….”
수혁은 짐 머레이와 남자를 그곳에 내렸다.
처음 수혁의 모습에 놀랐던 간호사는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눈에 봐도 두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을 모시고 올게요.”
간호사는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시면 될 겁니다.”
수혁이 그렇게 말을 하고 몸을 돌릴 때였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짐 머레이의 힘없는 음성이 수혁을 붙잡았다.
수혁이 남자를 쳐다보자, 그는 통역해 주었다.
“아,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김이라면, 한국 사람이겠군.”
“네, 맞습니다.”
짐 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대부분 수혁의 인적사항에 대한 것들이었다.
수혁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몇 분간 이어진 질문 끝에, 짐 머레이는 이번엔 제시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탁이니, 제발 저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게.”
그 말에 수혁은 둘이 부녀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혁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시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짐 머레이는 힘에 부치는지 눈을 감았다.
“그럼 전 이만.”
수혁은 제시카에게서 배낭을 건네받고는 병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사람들을 구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