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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69화 (69/425)

레스큐 시스템 69화

제시카는 수혁의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짐 머레이가 비명을 지르자, 조금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갑자기 자신들을 덮친 거대한 나무더미.

매트리스는 순식간에 뒤집어졌고, 짐 머레이는 물에 휩쓸린 제시카를 구하다 배에 큰 상처를 입었다.

운 좋게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짐 머레이는 제대로 된 거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흘러가는 간판을 붙잡은 채, 물이 빠질 때까지 버틴 둘은 힘겹게 이곳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짐 머레이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제시카가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고 판단이 되자, 긴장이 풀리며 참아왔던 통증이 한 번에 몰아친 탓이었다.

그 이후로 제시카는 그의 곁을 지키며 간호하다, 수혁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었고.

‘좋지 않아.’

수혁은 짐 머레이의 응급 처치를 끝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다리에 입은 상처도 문제였지만, 옆구리는 정말로 심각했다.

당장에라도 병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꺼내놓은 약들을 다시 배낭 안으로 넣던 수혁이 이번엔 제시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겉으로 보기엔 일단 괜찮은 듯싶었다.

지저분하긴 했지만, 자잘한 상처 외에는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이리 와보렴.”

수혁이 제시카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제시카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상처 소독을 좀 해야 돼. 별거 아닌 것 같아 이런 게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수혁은 최대한 친절하게 말을 해주었다.

그런 수혁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제시카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제시카의 팔과 얼굴에 난 상처를 소독해 주고 난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병원으로 가자.”

제시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호스피탈, 호스피탈.”

수혁이 토종 한국 발음의 영어를 내뱉었고, 제시카는 용케 그것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보자…….”

수혁은 배낭을 앞으로 멨다.

그러곤 제시카의 도움을 받아, 등에 짐 머레이를 업었다.

“으으윽!”

몸을 움직이자 다시 통증이 느껴지는지 짐 머레이가 신음했다.

“조금만 참아요.”

많이 아플 것이다.

수혁은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무 같은 게 배를 뚫고 들어간 것 같은데…….’

쇼크로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이제 우리 호스피탈 갈 거거든요? 그때까지만 좀 아프더라도 참아주세요.”

수혁은 최대한 그에게 충격이 덜 가도록 신경을 쓰며 걸음을 옮겼다.

“가자, 렛츠 고.”

수혁이 제시카에게 따라오라며 눈짓하자, 제시카가 빠르게 수혁의 뒤에 붙었다.

‘딸인가?’

수혁은 둘이 부녀 사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리 닮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함께 있었으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병원에 가면 괜찮아지실 거야.”

수혁은 ‘생명 감지Ⅱ’와 (미니 맵)을 통해 사람들이 몰려가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이 그곳을 향하는 것을 보면 병원일 확률이 높았다.

“고맙네…….”

수혁의 등에서 짐 머레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힘은 없어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고마움은 충분히 느껴졌다.

“별말씀을.”

이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다치고 지쳐, 구조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말이다.

수백? 수천? 수만?

수혁이 기억하기로, 이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의 수는 수십만에 달한다.

인류 역사를 모두 뒤져 봐도 이만한 피해가 발생한 재난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혁은 마음이 급해졌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짐 머레이와 제시카였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수혁은 둘에게 말을 하며 병원을 향해 계속해서 이동했다.

* * *

“내일 새벽에 출발입니다.”

박상태는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소방청은 태국에 구조 지원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박상태는 그 지원팀에 차출되었다.

굳이 서장에게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운이 좋게 선택받았다.

“태국에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구조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늦어도 너무 늦었다.

초반 몇 시간을 갈팡질팡하며 그냥 통째로 날려 먹어버린 것이다.

그사이 사망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무슨 축제가 있어서, 피해가 더 커진 모양입니다.”

“그래, 수혁이도 그 축제에 참가한다고 들떠 있던 게 생각난다.”

“……무사할까요?”

박정우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무사하길 빌어야지.”

“아니, 대체 그놈은 왜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혁만을 생각하면 운이 나빠도 이보다 나쁠 순 없겠지만, 그에게 구조될 사람들은 생각해 보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그놈이 거기 있다는 게 천운이 될 수도 있지.’

만약 수혁이 무사하다면, 지금 가만있진 않을 것이다.

분명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가면 한 번 물어보마. 조상 중에 X전일이라는 분이 계신지 말이야.”

“한번 꼭 좀 물어봐 주세요.”

둘은 수혁을 걱정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놈이 정말로 어떻게 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런 위기가 닥쳐왔음에도, 항상 살아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박상태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퇴근했다.

‘제발 무사해라, 인마.’

* * *

투두두두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헬기다!”

저 하늘 높이에서 들리는 방송국 헬기가 아니었다.

호텔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

사람들이 창문에 붙어 밖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구조대야!”

마침내 구조대가 구조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헬기는 근처를 몇 바퀴 돌더니, 이내 호텔 옥상 쪽으로 다가왔다.

최은송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장영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장영수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아내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받기 전까진, 저 얼굴에 미소가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최은송은 그런 장영수의 손을 잡아주었다.

“구조대가 왔나 봐요.”

“다행이군…….”

장영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대라는 말에도 장영수의 표정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모님은 괜찮으실 거예요.”

벌써 몇 시간째 반복되는 위로.

귀찮고 지칠 만도 했지만, 최은송은 계속해서 장영수를 위로했다.

그런 최은송의 노력을 느낀 장영수는 괜찮다는 듯 허허- 웃어주었다.

그때, 옥상에 헬기를 착륙시킨 구조대원들이 호텔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일단 환호하는 사람들은 안정시킨 뒤에 영어로 크게 소리쳤다.

“최은송 씨! 최은송 씨 어디 계십니까?”

갑자기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최은송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 여기요. 제가 최은송인데…….”

최은송이 손을 들며 말하자 구조대원 중 한 명이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당신이 최은송입니까?”

“네, 네.”

최은송이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구조대원은 그녀의 옆에 있는 장영수를 쳐다보았다.

“그럼 이분이 장영수란 분이시겠군요.”

대체 자신들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최은송이 궁금한 표정으로 구조대원을 쳐다보자, 그는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김수혁 씨가 전언을 부탁했습니다.”

“수혁 씨가요?”

“네, 그분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구조대원의 얼굴에는 감탄이 가득했다.

“아차, 이럴 시간이 없지. 일단 김수혁 씨가 부탁한 말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구조대원은 장영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장영수 씨의 아내 분께서 무사하시다는군요.”

그의 말을 알아들은 장영수가 양손을 얼굴에 가져다대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어디 다치신 곳도 없고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시랍니다.”

“가, 감사합니다…….”

장영수는 결국, 그간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본 최은송 역시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최은송 씨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수혁 씨도 지금 괜찮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펄펄 날고 있다고 해야 하나…….”

수혁에 대한 설명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조대원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펄펄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부탁받은 것도 전해 드렸으니, 이제 저도 제 일을 해야겠습니다.”

구조대원은 둘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다행이에요, 정말.”

“고맙네, 고마워.”

장영수는 연신 최은송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 제가 뭘 했다고요.”

“그래도 고마워…….”

그런 장영수의 모습에, 최은송은 눈시울을 붉혔다.

잃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감정.

최은송은 그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얼마 전, 그녀 역시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 말이다.

“이제는 움직이셔도 됩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들은 근처의 대피소나 병원 쪽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조대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현재 이곳에는 부상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부상자들도 대부분 움직이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고.

헬기 한 대로 모든 사람을 이송할 순 없었으니, 부상이 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도보로 이동하도록 했다.

“차는? 차는 없습니까?”

누군가 물었다.

“물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아직 차가 지나다닐 정도는 안 됩니다.”

“걸어갈 수는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미 많은 분이 대피소를 향해 이동 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조대원의 말에 사람들이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혹시 이분, 헬기에 태워주실 수 있나요?”

최은송이 손을 번쩍- 들고는 장영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아니. 나는 괜찮네만.”

장영수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 발로는 오래 못 걸어요.”

그렇지 않아도 노회한 육체인데다, 발목마저 성치 않으니 걸어서 대피소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

최은송의 말을 들은 구조대원이 다가와 장영수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음…….”

그러곤 잠시 고민했다.

헬기로 이송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걸어가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영수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보니, 이 정도만으로도 거동이 쉽진 않아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구조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은 헬기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구조대원은 장영수를 헬기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잘됐네요!”

최은송이 환하게 웃었다.

“나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을 텐데…….”

하지만 장영수는 헬기를 타고 간다는 것이 영 부담스러운지, 난색을 표했다.

“자리는 충분합니다.”

지금은 고작 한 대였지만, 몇 분 후에는 수십 대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장영수가 타고 갈 자리는 충분했다.

“그럼 대피소에서 봬요.”

최은송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대피소까지 걸어서 가야 했으니, 서두르는 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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