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68화
떠들썩하던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이면 충분했다.
즐거운 환호성은 비명으로 바뀌었고, 미소는 공포에 질려 일그러졌다.
한 걸음이라도 더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한들 쓰나미보다 빠를 순 없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거대한 물줄기에 집어삼켜졌다.
짐 머레이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크어어억!”
온몸이 박살 나는 기분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정신이 날아가 버릴 듯한 충격.
짐 머레이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여기서 기절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흙탕물이 계속해서 입으로 넘어와 호흡을 방해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팔을 움직였다.
취미로 수영을 계속해 왔지만, 솔직히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저 간신히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있을 뿐, 몸을 가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그의 손에 뭔가가 걸렸다.
“흐어억!”
커다란 나무였다.
쓰나미에 휩쓸리며 통째로 뽑혀 나온 것인지, 나무는 그의 옆을 스치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짐 머레이는 본능적으로 나무를 붙잡았다.
더는 헤엄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그에게, 나무는 충분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콰과과과과-!
‘이런, 젠장!’
당장의 위기는 벗어났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의 주변으로 온갖 잔해가 미친 듯이 쓸려 내려오고 있었다.
콰과광-!
본래는 무엇인지도 알아보지 못할 물건 하나가 떠내려가던 자동차를 들이받으며 굉음을 터트렸다.
무슨 교통사고라도 난 것 같았다.
짐 머레이는 그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만약 저런 게 자신과 부딪힌다면?
자동차조차 뒤집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일개 인간에 불과한 자신이 충돌한다면…….
‘박살이 나겠어!’
두려웠다.
정말로 미친 듯이 두려웠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일정을 이곳으로 선택한 비서의 멱살을 붙잡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의 비서는 지금쯤 산 사람이 아닐 테니까.
짐 머레이는 보았다.
처음 쓰나미가 들이닥쳤을 때, 커다란 나뭇조각 하나가 비서의 머리에 박히는 장면을 말이다.
사람이 피할 수 있을 만한 속도가 아니었으니, 살아 있을 가능성은 적었다.
짐 머레이는 나무를 세게 움켜잡았다.
자신 역시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 너무도 무서웠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50년이라는 세월을 살며, 자신의 마지막이 이런 식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엄마아아!”
그때였다.
누군가의 음성이 그의 귓가를 때렸다.
작고 가냘픈 음성.
여자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음성이었다.
자칫하면 굉음 속에 묻혀 듣지 못할 뻔했다.
짐 머레이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딨니!”
짐 머레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여자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예요!”
아이의 음성은 공포에 잔뜩 질려 있었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던 짐 머레이는, 이번엔 확실히 방향을 알 수가 있었다.
‘이쪽이다!’
짐 머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아이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아직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
아이는 어디선가 흘러나온 매트리스를 부여잡은 채 울고 있었다.
‘젠장, 젠장!’
짐 머레이는 순간 고민했다.
아이를 구하러 갈 것인가?
아니면 이 나무를 붙잡고 계속해서 안전을 추구할 것인가?
지금 당장 위험하지 않아 보였으니, 굳이 구하러 갈 필요가 있을까?
그의 마음은 조금씩 이대로 가만있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정반대였다.
자신도 모르게 나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떼고 아이가 있는 쪽을 향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미친놈!’
짐 머레이는 자신의 행동을 어리석다 생각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내가 뭐라고…….’
그저 취미로 수영을 조금 한 중년의 사업가에 불과했다.
자신이 아이에게 간다고 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짐 머레이는 아이를 향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 헤엄을 쳤다.
“푸하아아!”
짐 머레이는 아이가 붙잡고 있던 매트리스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왔고, 온몸이 삐그덕거렸지만, 그는 아이를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괘, 괜찮으냐?”
왠지 얼굴이 푸들대며 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짐 머레이를 보며, 아이는 한결 안도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엄마가…….”
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안도와 동시에 잃어버린 엄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복받쳐 오른 듯싶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얘야. 엄마는 괜찮을 거야.”
아이의 엄마가 진짜로 무사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해줄 순 없었다.
짐 머레이는 최대한 아이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
“어디서 왔니? 나이는 몇 살이고?”
그의 질문에 아이는 히끅거리며 대답했다.
“미, 미국이요. 열한 살이고…….”
열 살도 안 된 것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다 해도 아직 어린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름은? 이름은 뭐니?”
“제시카요.”
제시카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내 손 한 번 잡아볼래?”
짐 머레이가 제시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제시카의 작디작은 손이 그의 손에 잡혔다.
“끄응-!”
짐 머레이는 힘을 줘 아이를 매트리스 위로 끌어 올렸다.
잔해가 마구 휩쓸려 다니는 물속보다는 이 위가 안전할 것이다.
“아, 아저씨는요?”
제시카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매트리스는 짐 머레이까지 올라가기엔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랬다가는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아저씨는 괜찮단다.”
그는 제시카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음!’
물론, 정말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방금도 뭔가가 그의 허리를 치고 지나갔다.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간신히 참았다.
“이대로, 조, 조금만 있으면 사람들이 구하러 올 거다.”
고통에 목소리가 떨려왔지만, 다행히 제시카는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는?”
“그래, 엄마도. 조금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짐 머레이는 제시카에게 상냥하게 말을 하면서도 그런 자신이 낯설었다.
‘리암에게도 이렇게 대하진 못했는데…….’
자신의 아들을 떠올린 그는 쓰게 웃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너무 소홀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큰소리쳤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자신의 욕심이었던 것 같았다.
결국 가정은 파탄 났고, 아들인 리암을 보지 못한 게 벌써 5년이나 되었다.
짐 머레이는 제시카를 붙잡은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는 아들을 찾아갈 것이라 결심했다.
* * *
“이쪽으로 갈까?”
‘생명 감지Ⅱ’를 이용해 주변을 살펴본 수혁이 방향을 결정했다.
가까운 근처에는 생존자가 없었지만,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는 생명 반응이 꽤 많았다.
수혁은 그중 사람이 적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생존자가 많은 쪽은 자기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을 테니…….’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먼저 구하기로 한 것이었다.
수혁은 빠르게 움직였다.
여전히 물바다였지만, 수혁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미니 맵)을 보며 가장 빠른 길로 쉼 없이 걸은 수혁의 눈앞에 드디어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원래는 리조트였던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무너지고, 파괴된 흉가 같았다.
‘저긴가?’
약한 생명 반응 두 개가 느껴졌다.
수혁은 그쪽으로 이동하며 소리쳤다.
“사람 있습니까!”
그러자 그 음성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예요! 여기 사람 있어요!”
‘아이?’
어린 여자아이의 음성이었다.
수혁이 달렸다.
물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소리를 쳤던 아이가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쪽이에요! 여기 아저씨가 많이 다쳤어요!”
아이는 수혁을 보자마자 으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영어였는지라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뭔가 다급해 보였다.
수혁은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안아 들며 물었다.
“어디? 어디로 가면 돼?”
수혁이 묻자, 아이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처음 들어보는 언어에 긴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수혁은 아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아저씨!”
수혁이 도착한 곳에는 한 중년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었다.
“으음…….”
수혁은 아이를 내려놓고는 중년인을 향해 다가가 상세를 살폈다.
“누, 누구요?”
중년인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자 감고 있던 눈을 힘겹게 떴다.
“구하러 왔습니다.”
수혁이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으며 대답하자, 중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일단 대화를 뒤로 미루고, 치료를 먼저 하기로 했다.
중년인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왼쪽 옆구리 부분이 길게 찢어져 있었고, 다리 역시 상처가 가득했다.
쓰나미에 휩쓸리며 잔해들과 충돌한 것 같았다.
‘소독부터.’
수혁이 무슨 거창한 의학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응급치료법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일단 응급 처치를 해둔 뒤, 병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수혁은 배낭에서 소독약과 거즈를 꺼냈다.
“조금 아플 거예요.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수혁은 거즈에 소독약을 적셨다.
생각 같아선 그냥 상처에 들이붓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소독약의 양이 너무 부족했다.
거즈가 충분히 젖었다고 판단한 수혁이 그대로 옆구리의 상처에 가져다댔다.
“아아아아악!”
중년인이 눈을 번쩍 뜨며 비명을 질렀다.
“참아요!”
상처도 상처지만, 이대로 뒀다간 감염이 될지도 모른다.
상처를 입은 채 흙탕물에서 한바탕 굴렀으니, 감염의 위험이 더 높았다.
수혁은 발버둥 치는 중년인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누르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1분가량이 흐르자, 중년인은 조금 진정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바늘하고 실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찢어진 상처가 너무 커서 당장에라도 꿰매야 할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바늘과 실은 없었다.
대신 수혁은 그의 복부를 붕대로 단단히 동여맸다.
“이름이 뭡니까?”
수혁이 남자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가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다.
중년인이 대답하지 않자, 그제야 그것을 깨달은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곤 짧은 영어를 섞어 다시 물었다.
“왓츠 유얼 네임? 어? 네임이 뭐냐고요.”
그제야 중년인이 대답했다.
“짐, 짐 머레이.”
짐 머레이는 힘겹게 대답하고는 수혁에게 되물었다.
“What’s your name?”
수혁의 것과는 발음 자체가 달랐다.
“나? 수혁 김. 아임 파이어맨,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