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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67화 (67/425)

레스큐 시스템 67화

수혁의 눈앞에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이전까진 글자만 떠올랐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지도’였다.

물론 모든 것이 세세하게 나타나 있는 디테일한 지도는 아니었다.

이름에서도 나와 있듯이 ‘미니’ 맵이었으니까.

오히려 내비게이션과 비슷했다.

미니맵의 범위는 수혁을 중심으로 지름 1㎞ 정도.

대략적인 지형지물과 도로만을 심플하게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호텔까지 찾아가기엔 충분해 보였다.

레벨 업에 퀘스트, 스킬에다 이제는 미니 맵까지.

‘점점 게임 같아지네.’

헛웃음이 나올 타이밍이었지만, 수혁은 웃지 않았다.

지금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였다.

수혁은 미니 맵의 사용 방법을 숙지하기 시작했다.

일단 미니 맵은 줌인, 줌아웃이 가능했다.

줌인할수록 디테일이 좋아졌고, 줌아웃하면 더 넓은 범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내비게이션 기능도 있었다.

목표 지점을 설정하면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최단 거리가 푸른색으로 표시되었다.

그것도 ‘현재 상황’에 맞춘, 실시간 최단 거리 말이다.

‘이건 좀 대단한데?’

미니 맵의 기능은 지금도 쓰기에 좋았지만, 여기보단 대형 화재 현장 같은 곳에서 구조 활동할 때 유용할 것 같았다.

처음 가보는 현장이라 하더라도, 내부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시야의 한쪽 구석에 떠올라 있는 미니 맵을 보며, 호텔을 목표 지점으로 설정했다.

그러자 미니 맵에 푸른색의 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텔까지 갈 수 있는 최단 거리였다.

“가자.”

수혁은 푸른 선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도중 몇 번이나 물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 중 살아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익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잔해와 충돌하여 사망한 이들도 많았다.

처음 수혁은 그들의 시신을 모두 수습해 주었다.

그렇게 수습해 준 시신의 숫자가 열 구가 넘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았다.

10? 20?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수혁의 눈에 보이는 것만 백여 구에 가까운 것 같았다.

저들을 일일이 수습하는 건 불가능했다.

‘미안합니다.’

수혁은 시신 수습을 포기했다.

이대로 가다간 일주일이 지나도 호텔에 도착할 수가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수혁은 애써 그들을 무시하며 그저 걸었다.

중간중간 멈춰서 ‘생명 감지Ⅱ’ 스킬을 써보았지만, 수혁의 주변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곳엔 높은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물 안으로 대피했다고 한들, 쓰나미에서 안전하진 못했다.

수혁은 씁쓸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호텔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한 시간이 두 시간 정도 흘렀다.

지금이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걸어서 2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를 두 시간이나 이동한 것이다.

“다 왔다.”

수혁의 눈앞에 높은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수혁이 최은송을 데리고 피신한 빠통 타워만큼은 아니어도, 쓰나미를 피하기엔 충분할 정도로 높았다.

수혁이 ‘생명 감지Ⅱ’ 스킬을 사용하자, 과연 안쪽에는 생존자들이 감지되었다.

그것도 꽤 많은 숫자였다.

최소한 백 명은 넘어 보였다.

‘이 정도면 무사하실 확률이 높겠다.’

장영수의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쉬고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저 생존자 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

위쪽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수혁이 고개를 드니, 현지인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수혁을 발견하고는 놀란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수혁이 구조대가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구조 장비도 없고, 구조복도 입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제발 수혁이 구조대이길 바라고 있었다.

‘이거 실망하겠는데…….’

수혁이 구조대원인 것은 맞았지만, 지금은 그들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철벅-

수혁이 호텔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이미 쓰나미에 쓸려 모조리 깨져 나간 상태였으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엉망인 상태의 로비가 보였다.

본래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흙탕물에 잠겨 있는 쓰레기장 같았다.

“$%&%#!”

계단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곳을 바라보자, 젊은 청년 몇 명이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없습니까? 한국말?”

수혁이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몇 번을 외치자, 그제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한 명이 계단 위로 뛰어올라 갔다.

“아 유 오케이? 어? 다친 덴 없어?”

수혁이 청년들을 살피며 물었다.

“I’m fine, OK.”

수혁의 짧은 영어를 알아들은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무슨 말이 통해야지.”

수혁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하, 한국 분이십니까?”

계단 위쪽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수혁은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말을 건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닌, 현지인 같았다.

“저는 이 호텔의 매니저입니다.”

“아…….”

자신이 묵었던 리조트에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매니저가 있었다.

워낙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기에, 호텔에서는 한국말이 가능한 매니저들을 두기도 했던 것이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혹시 이곳에 조순애라는 한국 분 계십니까? 나이는 육십대 중반에 여성분이신데…….”

“계십니다! 저희 호텔 고객님이세요.”

수혁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분께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저를 따라오세요.”

매니저는 수혁을 향해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혁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내부를 살폈다.

계단에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금발의 서양인도 있었고, 중국인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은 없나?’

세계 각국의 언어들이 들려왔지만, 그중 한국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매니저가 가리킨 곳에는 10여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혹시 조순애 씨가?”

“저인데…….”

수혁이 묻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녀를 확인한 수혁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장영수 씨 부탁으로 왔습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을 찾자 긴장했던 조순애는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남편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 살아 있나요?”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자신의 약을 사러 밖에 나간 사이 쓰나미가 몰려왔으니…….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죄책감과 슬픔에 잠겨 반쯤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다니?

“물론입니다. 다리를 조금 삐끗하신 걸 빼면 아주 멀쩡하세요.”

“아아, 감사합니다!”

조순애는 수혁의 손을 붙잡으며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감사하긴요.”

수혁은 그런 조순애를 한참 동안이나 달래주었다.

“당장은 거기로 가기 힘듭니다, 아직 물이 다 빠지질 않아서. 일단 남편분께서 무사하시다는 걸 알았으니, 이곳에서 구조대를 기다리세요.”

조순애는 당장에라도 남편이 있는 빠통 타워로 가고 싶어 했지만, 수혁도 힘들게 온 길을 그녀가 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지금부터 수혁은 본격적인 구조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일차적인 목표였던 조순애의 생사를 확인했으니, 이젠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설 때였다.

“하지만…….”

“제 말대로 하시는 게 좋아요. 기다리다 보면 구조대가 올 겁니다. 남편분을 만나는 건 구조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수혁이 차분하게 그녀를 설득했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수혁은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조순애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순애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매니저를 불러 조순애를 부탁하고는 주변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매니저는 수혁이 이곳을 떠날 것 같은 모습이자 당황해서 물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예? 대체 왜……?”

매니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가만히 여기서 구조대를 기다려도 모자랄 판에 밖으로 나가다니?

물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수혁은 그런 매니저를 보며 웃어 보였다.

“제가 원래 하는 일이 이런 거라서.”

“원래 하는 일이요?”

“네. 소방관이거든요, 저.”

“아…….”

매니저의 얼굴에 감동이 묻어 나왔다.

자신의 나라도 아니고,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타국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위험한 곳으로 향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매니저는 아직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는 자신의 나라 구조대를 떠올리며 부끄러워졌다.

“제가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몇 가지 더 챙겨 드리겠습니다.”

매니저는 수혁이 말릴 새도 없이 어디론가 뛰어갔다.

“……급한데.”

수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를 기다렸다.

잠시 후, 매니저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의 양손에는 뭔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호텔에 마련되어 있던 구급상자에서 꺼내온 약들입니다. 소화제나 감기약 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소독약과 붕대, 연고 소염제 같은 것들만 따로 빼서 챙겨왔습니다.”

수혁은 그가 가져온 것들을 보며 감탄했다.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항생제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호텔 구급상자에서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리고 이 가방…….”

투숙객의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배낭도 건네주었다.

“배낭여행을 하던 고객님께서 주신 겁니다. 안쪽 공간이 넓으니 사용하시기에 충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서둘러 그 배낭 안에 물품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말했던 것처럼 배낭의 크기는 상당해서, 모든 것을 집어넣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수혁이 배낭을 등에 멨다.

부피에 비해 그리 무겁진 않았다.

대부분이 약품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매니저가 손으로 받치며 도와주었다.

“고맙습니다.”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었지만, 수혁은 매니저의 호의에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다른 나라의 사람도 이렇게 나서서 도움 주려는데, 자신은 호텔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여기서도 매니저님이 해야 할 일은 많으니까요. 죄송해할 필요 없습니다.”

수혁처럼 밖으로 나가 직접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이 구조 활동이 아니다.

여기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을 돕는 것도 구조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니저는 충분히 뛰어난 구조 대원이었다.

수혁의 위로에 매니저가 미소 지었다.

“그럼 전 이만 출발해 보겠습니다.”

비록 구조 장비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지만, 매니저가 챙겨준 것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심하세요.”

매니저가 로비로 내려가는 수혁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웅했다.

수혁은 그런 매니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사람 구하는 데는 우리나라 1등입니다.”

매니저는 왠지 수혁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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