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66화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
도로는 물이 흐르는 수로로 변한 지 오래였고, 축제로 활기찼던 분위기는 이제 죽음의 냄새만 물씬 풍겨대고 있었다.
대자연이 할퀴고 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물이 꽤 많이 빠졌네요.”
얼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흉물스러운 철골만 군데군데 남아 있는 저것을 건물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조대는 언제쯤 올까요?”
처음 쓰나미 경보가 울린 지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조대는커녕, 밖에선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한국이었다면 벌써 구조대가 투입되었을 것이다.
헬기와 보트를 이용한 구조 작업도 진행 중이었을 테고.
그런데 지금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헬기가 몇 대 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구조 헬기가 아니었다.
이곳의 상황을 찍으러 온 방송국 헬기였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지만…….”
이곳은 호텔이다.
다행히 어느 정도의 물품들은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객실에는 여행객들의 짐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상비약들도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은 일단 그것들을 주인의 허락 없이 꺼내 다친 사람들을 치료했다.
물론 응급처치에 불과한 정도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여기서 몇 날 며칠을 보내진 않을 테니, 물과 음식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쓰나미에 휩쓸린 이들 중에서도 분명 생존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생존만 했을 뿐,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 뻔했다.
구조대가 늦으면 늦을수록, 그들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수혁은 잠시 고민을 했다.
이곳에서 최은송과 함께 구조대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
수혁의 눈앞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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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라.
*내용 : 참혹하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곳에도, 생존자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들 역시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절망과 고통에 빠져 있는 요구조자들을 최대한 많이 구하라.
*보상 : 경험치, 인맥,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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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가 뜬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떴다는 것이 의문스러울 정도로 늦었다.
그런데 차분히 퀘스트 내용을 읽던 수혁의 눈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단어들이 들어왔다.
‘인맥?’
수혁은 인맥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뜻의 단어인지 고민했다.
거기다 명성이라는 것도 보상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퀘스트를 완료하면 인맥도 생기고, 명성도 높아진다는 말인가?’
수혁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왕 줄 것이면 스킬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어쨌든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 수혁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은송 씨.”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이 최은송을 불렀다.
그러자 최은송은 이미 수혁이 무슨 말을 할지 알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요?”
“사람들 구하러 가겠다고 하려는 것 아니었어요?”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정답!’ 하고 외칠 뻔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가 한번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물이 완전히 빠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이제 허리 정도의 높이까지 수위가 낮아졌다.
이 정도라면 수혁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최은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씨는 소방관이니까요.”
그 말에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죠, 소방관이죠.”
“대신 너무 무리하지는 마요.”
“그럴게요.”
수혁은 최은송을 한번 가볍게 안아주고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장영수를 쳐다보았다.
“어르신.”
그러자 하염없이 스마트폰만을 보고 있던 장영수가 고개를 들었다.
“사모님께서 계신 호텔이 어느 쪽이라고 하셨죠?”
수혁의 물음에 장영수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러니까 거기가…….”
그런데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쓰나미를 피해 도망치다 보니,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제가 알아요.”
그때 최은송이 대신 나섰다.
“아, 그 호텔이 어딘지 안다고 했었죠?”
“저쪽이에요.”
최은송이 창가로 가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푸켓에 와본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때문에 정확한 길은 설명할 수가 없었고,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저 그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된다.
수혁의 시선이 최은송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저 높은 건물 말하는 거죠?”
“네, 확실해요.”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 호텔까지 가며 눈에 보이는 요구조자가 있다면 구조할 생각이었다.
“제가 저기로 가서 사모님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수혁의 말에 장영수가 눈을 적시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고마워.”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수혁은 얼른 그런 장영수의 몸을 부축해 다시 소파에 앉혔다.
그러곤 그에게서 아내의 이름을 비롯한 인적사항들을 전해 들었다.
“사모님을 데리고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진 무리하지 마시고, 여기서 쉬고 계세요. 여기 이 예쁜 아가씨가 말동무해 드릴 겁니다.”
수혁은 최은송과 한번 시선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올게요. 구조대가 온다면, 저 기다리지 말고 어르신과 함께 가요.”
“알겠어요, 조심해요.”
최은송의 살짝 떨리는 눈동자를 보며, 수혁은 안심하라는 듯 웃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 * *
냐아앙-
현재의 분위기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치즈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박정우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지금은 간식 줄 정신이 없다. 아빠가 조금 이따 줄 테니까, 저기 가서 놀고 있어.”
아무리 애교를 떨어도 간식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치즈는 삐친 듯 한쪽 구석으로 가버렸다.
그런 치즈를 보며 잠깐 고민하던 박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치즈가 귀엽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박정우! 뭐 좀 알아낸 거 있어?”
치즈가 떠나가기가 무섭게 박상태의 질문이 쏟아져 내렸다.
“중앙청에 있는 동기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박정우의 말에 박상태의 귀가 솔깃했다.
“뭐래? 지원 나간대?”
박상태가 다급하게 물었다.
“네, 구조대 파견 결정이 됐다고 합니다.”
“역시…….”
박상태가 생각했던 대로 해외 지원을 나가기로 결정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쓰나미로 인해 예상되는 사상자의 숫자가 최소한 수십만 명이다.
피해 지역이 너무 넓은 데다, 송크란 축제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고, 쓰나미 경보도 너무 늦었다.
당연히 피해가 클 수밖에!
그런데 태국의 구조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뉴스에서도 피해 지역의 모습이 나오는 이 판국에, 구조대는 제대로 된 작전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지원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식으로 한다고 하디? 중앙구조대만 가는 거야? 아니면…….”
“신청자들도 동원할 예정이랍니다.”
박상태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예전에 해외 지원 파견에 신청해 뒀었다.
물론 신청자라고 해서 모두 뽑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서장에게 말을 잘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나 서장실 다녀온다.”
“지금요?”
“그래. 아, 그리고 우리 애들 중 해외 지원 신청해 둔 사람 있는지도 좀 파악해 놔.”
“아, 알겠습니다.”
박정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멀어지는 박상태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거길 가시려고 그러는 건가?”
* * *
“끄응.”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의 높이는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셌다.
마치 급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물살보다, 그것을 타고 흐르는 잔해들이었다.
콰과과과-!
“큭!”
철판으로 만들어진 간판 하나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수혁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위기 감지Ⅱ’ 스킬이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을 할 뻔했다.
“젠장.”
길가의 전봇대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르려던 수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혁의 시선이 닿은 곳에 작은 신발 하나가 물에 동동 뜬 채 전봇대에 걸려 있었다.
손바닥 한 뼘 정도나 될까?
그 작은 신발을 신고 있었을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았지만, 참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와서 축제에 참가했던 외국인인 듯했다.
수영복 차림의 남자는 물살을 따라 빠르게 바다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수혁은 전봇대에서 손을 떼고 그를 향해 빠르게 헤엄을 쳐서 다가갔다.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봐선 시체 같았지만, 그런 판단은 나중에 해도 된다.
“푸흐흡!”
수혁은 남자를 붙잡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마땅히 잡을 만한 곳도 없었고, 계속해서 잔해가 밀어닥쳤기에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남자를 멈춰 세우는 것에 성공했다.
“하아…….”
역시나 남자는 이미 숨진 뒤였다.
수혁은 침울한 얼굴로 그를 어깨에 메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시체라고는 하지만, 이대로 바다를 향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분명히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전할 수 있게는 해야 했다.
남자는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수혁에겐 그리 부담 가는 무게는 아니었다.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 그나마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자, 옷을 팔던 가게가 모여 있는 곳이었는지 젖은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수혁은 남자의 시체를 한쪽에 조심히 내려놓은 뒤,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까 싶어 수색해 보았다.
“아무도 없네.”
생존자는 없었다.
다행히 제때 피했는지 시체도 없었다.
수혁은 주위의 옷가지들을 모아 남자의 몸을 덮어주었다.
“부디 편히 잠드세요.”
잠시 남자의 명복을 빌어준 수혁은 남은 옷가지 몇 개를 챙겨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갔다.
물은 빠르게 바다 쪽으로 다시 흘러가고 있었지만, 아직 바닥이 보이려면 한참 남아 있었다.
때문에 수혁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음…….”
최은송이 가르쳐 준 호텔까지 가는 길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쓰나미에 휩쓸린 자동차들과 잔해들로 인해 도로가 막혀 있기도 했고, 아예 건물 자체가 무너져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저 방향만 보고 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듯했다.
하지만 수혁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이전에 신일역 붕괴사고 후, 얻었던 스킬을 떠올렸다.
“‘미니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