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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64화 (64/425)

레스큐 시스템 64화

‘쓰나미 경보는?’

주변이 온통 붉게 물든 것으로 보아, 쓰나미가 얼마 안 있어 들이닥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쓰나미 경보는 울리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몸을 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해변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웅성거릴 뿐이었다.

“피해요! 쓰나미가 오고 있으니까, 빨리 여기서 피해!”

수혁이 달리며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알 수 없는 말로 소리치는 수혁을 술에 취한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피하래요! 쓰나미가 오고 있대요!”

그러던 와중, 현지인 중 한 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같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듯, 수혁의 말을 이해하고는 주변에 태국말로 그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경보도 없었는데 무슨 쓰나미?”

“술 취해서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런 말을 하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그때였다.

왜애애애애앵-!

드디어 쓰나미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늦어!’

경보가 울리려면 최소한 쓰나미가 육안으로 관측되기 몇 분 전에는 울려야만 했다.

그런데 해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이미 쓰나미가 눈에 보일 정도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그 말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였고.

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도망가!”

수혁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래서 피해가 더 컸어!’

경보만 제때 울렸다면…….

“수, 수혁 씨!”

최은송이 불안 가득한 음성으로 수혁을 불렀다.

“잠시만요.”

불안할 것이다.

그리고 무서울 것이다.

수혁도 무서운데, 최은송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최은송을 안심시킬 시간이 없었다.

1초라도 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야만 했다.

‘높은 곳, 높은 곳!’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높은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푸켓은 고층 건물 자체가 드문 편이기 때문이다.

“수혁 씨!”

최은송이 수혁의 팔을 꽉 잡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수혁은 그제야 무슨 일이냐는 듯, 최은송을 쳐다봤다.

“제가 높은 건물을 알아요.”

“아…….”

그러고 보니 최은송은 푸켓에 몇 번 와봤다고 했었다.

“따라와요!”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번엔 최은송이 수혁의 팔을 잡고 앞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의 뒤를 따라가며 감탄했다.

쓰나미라는 말에 두려워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도망치고 있는 주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최은송은 이 와중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수혁보다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쪽이에요!”

최은송이 작은 골목길에서 방향을 틀자, 그들의 눈앞에 높은 빌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빠통 타워.

두 사람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고층 건물이었다.

‘저기라면!’

충분히 쓰나미에게서 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쓰나미의 위력에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는 와중에도, 저 건물만은 붉은색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빨리요!”

주변의 현지인과 관광객들도 둘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 건물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못 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수혁은 그렇게 판단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인근의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이곳으로 달려왔으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업혀요!”

엘리베이터가 무리라면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하지만 계단으로 가기엔 최은송의 체력이 걱정된 수혁은 곧바로 등을 들이댔다.

덥석-!

평소였다면 부끄러워하며 시간을 끌었을 최은송도, 지금은 그런 내숭을 부릴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최은송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수혁의 등에 업혔다.

“꽉 잡아요!”

양팔로 그녀의 다리를 단단히 고정한 수혁이 그대로 내달렸다.

사람들은 대부분 엘리베이터 앞에 몰려 있어, 계단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수혁의 뒤를 따라 계단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수혁은 한 번에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올랐다.

그것도 등에 업혀 있던 최은송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말이다.

덕분에 수혁은 순식간에 건물 상층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철컥-!

계단에서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철문이 잠겨 있었다.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콰직-!

손잡이가 무슨 종이로 만들어진 것처럼 빠그라지며 그대로 쑥- 하고 뽑혀 나왔다.

“부, 불량품인가 봐요.”

수혁이 어색한 표정으로 그렇게 변명을 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에 최은송이 분명 이상하게 볼 것이 뻔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그러게요.”

최은송 역시 고작 손잡이 따위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고.

수혁이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객실이 있는 층이 나타났다.

복도는 한산했다.

지금쯤이면 모두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시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수혁은 복도 로비에 있는 소파에 최은송을 앉혀두고는 다시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혁 씨! 어디 가려고요!”

최은송이 놀란 얼굴로 그런 수혁을 붙잡았다.

“아직 시간이 좀 있어요. 그때까진 최대한 사람들을 이곳으로 오도록 해야 해요.”

그뿐만이 아니다.

아까 1층에서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을 꽤 많이 보았다.

그들은 절대 계단으로 이 높이까지 올라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밑은 혼란 그 자체였으니까.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자신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수혁은 그런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걸 수혁 씨가 왜……!”

최은송이 울상을 지었다.

수혁이 죽다 살아난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스스로 위험 속에 몸을 던진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을 가만히 쳐다보다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왜긴요, 소방관이니까.”

최은송은 수혁에게 뻗었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래, 소방관이지.’

최은송은 두려웠다.

다른 사람 백 명, 천 명이 죽는 것보다, 수혁이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은 수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다.

아무리 무섭고 두렵다 할지라도, 수혁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최은송은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기다릴게요.”

기다릴 수 있었다.

수혁은 지금까지처럼 무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돌아와요.”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네, 반드시 돌아올게요.”

수혁은 최은송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몸을 돌렸다.

최은송은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 * *

장영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쓰나미 경보를 듣고 주변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로 뛰어들어 오긴 했지만, 이 안은 너무도 혼잡했다.

아무리 힘을 써봐도 엘리베이터에는 근처도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단을 이용하기에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환갑을 넘기고,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평평한 땅을 걷는 것도 힘겨운 판에, 계단이라니…….

차라리 조금 더 기다리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의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차례를 지키면 언젠간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안일한 판단이었다.

이곳에 질서란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젊고, 힘이 강한 자들이 계속 차지했다.

힘없는 노인에 불과한 장영수는 계속해서 뒤쪽으로 밀려,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계단으로 가야 하나?’

이대로라면 엘리베이터를 제때 타기에는 그른 듯싶었다.

결국 장영수는 계단으로 선택을 바꾸었다.

힘겹겠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허억- 허어억-”

고작 세 개 층을 올랐을 뿐인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뒤쪽에서는 누군가 그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태국말이라 알아듣진 못했으나, 뜻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빨리 가라는 것이겠지.’

장영수의 움직임은 느렸다.

덕분에 뒤쪽에서도 정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쓰나미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이 상황에, 장영수의 움직임이 답답하고 화도 날 것이다.

장영수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

하지만 그는 여전히 느렸다.

결국 참지 못한 남자 한 명이 장영수의 어깨를 붙잡고 밀쳐 버렸다.

“어이쿠!”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발을 잘못 디뎌 삐끗하고 말았다.

“끄응.”

큰일이었다.

몸이 멀쩡했어도 올라가기 힘든 와중에, 발까지 삐었다.

이대로라면 절대 위쪽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장영수의 얼굴에 절망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괜찮으십니까?”

누군가 장영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한국말에 장영수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그곳에는 건장한 청년 한 명이 자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 다리가…….”

장영수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잠깐 사이에 그의 발목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려 장영수를 향해 등을 내밀었다.

“업히세요!”

사실 수혁은 1층까지 내려간 뒤, 사람들을 통제해 볼 생각이었다.

젊은이들에게 몸이 조금 불편하신 분들이나 노약자들을 챙겨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면 충분히 모두 피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통제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일단 말도 통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거의 패닉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수혁이 아무리 동분서주한다고 한들,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런 와중에 장영수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혼자서는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은 노인이었다.

거기다 다리까지 다쳤으니…….

수혁은 최소한 이 한 사람만이라도 살리자고 결심했다.

“꽉 붙잡으세요.”

수혁은 그렇게 경고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장영수는 마치 생명줄이라도 붙잡은 듯, 수혁의 등에 꽉- 매달렸으니까.

수혁은 다시 빠르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최은송과 올랐을 때보다 사람이 많아져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다.

하지만 최은송이 기다리고 있는 27층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수혁은 장영수를 최은송이 있는 곳에 내려준 뒤, 다시 계단으로 돌아갔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계단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콰과과과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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