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62화
수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달려서 출근했다.
꽤나 빠른 속도로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의 호흡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제 그냥 버스 타고 다닐까?’
처음에는 체력 측정도 할 겸 운동 삼아 달려서 출근했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 정도 달린다고 운동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리 상쾌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미세먼지만 마셔댈 뿐이었다.
“이제 그만하자.”
수혁은 내일부턴 그냥 버스로 출근하기로 결정했다.
“뭘 그만해?”
“아이고, 깜짝이야!”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수혁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사내새끼가 간덩이는 콩알만 해가지고.”
박상태였다.
“아니, 그렇게 갑자기 말을 거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어요?”
“현장에서는 겁대가리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놈이, 평소에는 왜 이렇게 쫄보가 되는 건지, 원.”
현장에서도 제발 평소의 반만큼이라도 겁을 좀 먹으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게 내 맘대로 됩니까?”
이전 생에서 홀로 불길 속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던 기억 때문일까?
수혁은 요구조자만 보면 반드시 구해내고야 말겠다며 앞뒤를 재지 않고 움직였다.
일종의 강박과도 같은 증세였다.
덕분에 회귀 초반에는 구조 3팀의 대원들과 갈등도 많지 않았던가?
수혁도 자신의 이런 모습이 정상적이지는 않다고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자제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아무튼 인수인계 준비해라.”
낄낄거리며 돌아가던 박상태는 이내 곧 뭔가가 생각났는지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수혁을 쳐다보았다.
“아, 오늘 서장님이랑 면담 있을 거다.”
“면담이요? 저 혼자?”
“아니, 우리 팀 전부. 지난번 신일역 붕괴사고 때문에 할 얘기가 좀 있으신 것 같더라.”
수혁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님 면담이라…….’
솔직히 서장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 적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 갑작스레 대원들과 면담하는 이유가 좀 궁금해졌다.
“네, 그럼 인수인계 후에 대기하고 있을게요.”
수혁의 대답을 들은 박상태는,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인수인계를 마친 수혁과 구조 3팀은 각자의 자리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구조대라고 해서 현장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일지도 써야 했고, 기타 서류 작업들도 있었다.
지루한 일들이긴 했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자자, 주목!”
한참 동안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와중에 박상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말했던 대로, 지금부터 서장님과 면담을 할 거다.”
수혁 외에도 모두 전달을 받은 것인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박상태 역시 서장이 왜 부른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준비하고 나와. 옷 좀 정리해서 입고.”
신일서의 서장은 기본적으로 대원들에게 터치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기도 했고, 솔직히 현장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한선같이 무능력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원들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고, 현장에 많은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다만 선은 확실히 지키는 느낌이랄까?
좋은 사람이었지만, 거리감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넌 뭐 아는 거 없냐?
“글쎄요. 저도 그냥 지난번 붕괴 사고 때문이라고만 들었는데.”
대화를 나누는 대원들의 음성에는 약간이지만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혹시나 현장을 이탈했던 것을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좀 걱정이었다.
평소 서장의 성격으로 보면 그냥 넘어갈 확률이 크긴 했지만,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대원들은 각자의 표정을 숨기며 서장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박상태입니다.”
“아, 들어와.”
박상태가 노크하자 안쪽에서 서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박상태를 필두로 구조 3팀의 대원들이 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들 와. 바쁜데 시간 뺏어서 미안하네, 편히들 앉고.”
다행히 서장의 표정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질책하기 위해서 부른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럼 그냥 수고했다는 말을 하려고 부른 건가?’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서장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거, 차라도 한 잔씩 줘야 하는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서장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괜찮습니다.”
물론 박상태를 비롯한 대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서장이 마시는 차보다는 믹스커피가 취향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오늘 구조 3팀을 부른 이유는 말이야…….”
서장은 잠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이 길어질수록 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짙어졌다.
“원래는 그냥 박 팀장만 따로 불러서 얘기할까 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런데 생각을 끝마친 서장의 표정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뿌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거두절미하고 바로 얘기하지. 이번에 위에서 너희에게 표창을 주기로 했어.”
“……표창 말입니까?”
“그래. 너희가 이번에 언론에 꽤 주목을 받았잖아. 특히 김수혁. 인터넷에서는 너를 국민 영웅으로까지 부른다던데?”
서장은 하하- 하며 웃었다.
국민 영웅이라는 단어에 수혁의 얼굴에 민망함이 서렸다.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급속히 퍼져 나가며, 그런 별명이 붙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좋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민망했다.
“상황이 이러니 상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래서 논의 끝에 표창을 주기로 한 모양이야.”
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고생했지만, 표창은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표창은 아니지만, 그래도 행안부장관 표창이야. 게다가 성과상여금도 나온다니……. 좋지?”
성과상여금이 나온다는 말에 박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웃음을 지었다.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창도 좋지만, 성과상여금은 더 좋았다.
‘휴가비에 보탤 수 있겠어!’
이곳이 서장실만 아니었다면 크게 웃음을 터트렸을지도 몰랐다.
“이게 내가 너희를 전부 부른 이유야. 이런 건 다 같이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박상태가 대원들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했다.
“인사는 내가 해야지, 이 사람아. 구조 3팀 덕분에 내가 좀 면이 살았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서장은 자신의 대원들이 표창을 받는다는 소식에 곧장 조연서 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실적을 두고 라이벌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조연서였기에, 서장의 어깨는 더욱 치솟았다.
“표창 수여식은 다음 주에 있을 예정이니까, 알아서들 잘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대원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내가 살다 살다 표창을 다 받는다?”
김강식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수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게요.”
얼떨떨한 것으로 따지자면 수혁이 김강식보다 더했다.
수혁은 이전 생에서도 표창은 구경도 못 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창 들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제가 그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이재한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효상 역시 살짝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저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좋았다.
돈도 주고, 표창도 준다는데 그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흥분이 식자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은 수혁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
그동안 쭉 그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표창까지 받는다고 하니 이제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뭘 그딴 걸 신경 쓰고 있어? 주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받으면 되지.”
“상태 형 말이 맞아요. 누가 뭐래도 선배들은 구조 3팀이니까, 받아도 전혀 이상할 거 없습니다.”
“형들이 논 것도 아니고, 그게 뭐가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대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웃기는 소리 한다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재한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자,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 정말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이러시는 게 더 불편하거든요?”
“……고맙다.”
이재한과 강효상은 수혁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태도였다.
“고맙다는 말도 그만하시고.”
수혁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우리 팀 회식이나 하자. 내가 쏜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박상태가 나섰다.
“상여금도 받는데, 회식 한번 해야지!”
“이야, 역시 우리 팀장님.”
“뭐 먹을 겁니까? 소? 돼지? 저는 개인적으로 소가 좋은 것 같은데.”
김강식과 박정우가 호들갑을 떨었다.
“닭. 치킨 먹자, 치킨.”
“아…….”
둘의 얼굴에 실망감이 서렸다.
“뭐, 왜. 치킨이 어때서? 너 지금 치킨 무시하냐?”
그렇게 오늘의 회식은 치킨으로 결정이 났다.
일주일 뒤 거행된 표창 수여식은 별것 없었다.
정해진 식순대로 무난하게 흘러, 무난하게 끝났다.
참석한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신일서 서장과 대원들, 그리고 기자 몇 명이 전부였다.
“좀 북적북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없네.”
한창 주목을 받았던 소방관의 표창식 수여이다.
당연히 기자들도 몰릴 줄 알았다.
그래서 대원들은 꽤나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좀 흘렀잖아요. 잊을 때도 됐지, 뭐.”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일에 관심을 갖기엔, 세상은 너무도 빨리 돌아갔다.
“조용해서 좋긴 한데, 그래도 좀 아쉽기도 하고…….”
“그보단 돈이죠, 돈.”
성과상여금 봉투를 든 김강식이 으하하- 하고 웃었다.
그는 적지 않은 금액에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이번 달은 마누라한테 안 시달려도 되겠어.”
유부남이란…….
“너는 그 돈 어따 쓸 거냐?”
박상태가 박정우를 향해 물었다.
“우리 집 주인 새끼들 간식이랑 장난감 몇 개 사주고, 치즈 간식 좀 사주려고요. 남는 돈은 저금할 생각입니다.”
“……젊은 놈이, 쯧쯧.”
박상태가 혀를 찼다.
“너도 인마, 수혁이 좀 본받아라. 저놈은 제수씨랑 여행 가서 쓴다는데!”
갑자기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수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태국으로 간다고 했나?”
“네, 은송 씨가 태국이 좋겠다고 하네요.”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봤다더니, 좋겠다야.”
그것도 혼자나 남자들끼리 가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와의 여행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잠을 자다가도 휴가 생각만 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근데 언제 가기로 했냐?”
아직 여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하지만 동남아를 여름에 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차라리 이맘 때쯤에 가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수혁은 휴가를 조금 당겨쓰기로 했다.
서장에게 이미 허가도 받았기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10일 후에요.”
수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