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60화
“반갑네.”
최문식은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수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반면 공손하게 두 손으로 그와 마주 악수한 수혁은 저승사자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딸아이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대체 최은송이 자신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일어나지 말고 누워 있어요, 몸도 안 좋은데.”
안절부절못하는 수혁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사람은 최은송의 어머니였다.
그녀를 본 순간 수혁은 최은송이 과연 누구를 닮아 이렇게 참하게 생겼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래도 제가 어떻게…….”
“아휴, 그냥 누워 있으라니까.”
최은송의 어머니, 유영자는 직접 수혁의 몸을 누이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편하게 있어요, 편하게. 이이가 쓸데없이 좀 무섭게 생겨서 그렇지, 마음은 그래도 착하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허허, 이 사람이.”
은근슬쩍 자신을 흉보는 아내의 말에 최문식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몸은 좀 어떤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수혁은 유영자의 따뜻한 분위기에 조금 편해졌는지, 말도 더듬지 않고 대답했다.
“다행이군. 우리 딸아이가 어찌나 걱정하던지…….”
“집에서 아주 어찌나 울고불고 난리던지, 눈이 개구리처럼 퉁퉁 부어서는…….”
“엄마!”
긴장한 기색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최은송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머, 얘는. 여기 병원이야.”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로 입술을 막으며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최은송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듣던 것보다 훨씬 잘생겼네.”
예의상 하는 말일 것이다.
지금 수혁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유영자에게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은송 씨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예쁜지 궁금했었는데.”
아저씨 특유의 넉살에 유영자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흠흠.”
그 옆에서 최문식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왠지 이 자리의 분위기가 너무도 훈훈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의 얼굴에 다시 긴장이 서렸다.
최문식은 유영자가 말했던 것처럼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지하기 그지없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는 기색이자, 절로 긴장이 되었다.
“자네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자네가 병원으로 이송될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네.”
최문식이 수혁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최은송과 함께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집중 치료실로 이송되는 모습을 멀리서 얼핏 본 것이 전부였다.
정신을 잃고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인 채,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모습.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네가 죽을 줄 알았어.”
너무도 직설적인 말에 최은송과 유영자가 화들짝 놀랐다.
“이 양반이 지금 못하는 소리가 없…….”
유영자가 그런 남편을 말려보려 했지만, 최문식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만큼 자네가 위급해 보였다는 말일세.”
수혁 역시 이야기를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였는지 말이다.
때문에 최문식의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이렇게 잘 회복하고 있으니 다행이긴 하네만…….”
말을 하던 최문식이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의 딸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무거운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자네가 우리 딸아이를 만나는 것에 반대하네.”
최은송은 최문식이 이런 소리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아, 아빠…….”
“자네가 그 안에 갇혀 있을 때도, 병원에 있을 때도. 나는 이 녀석이 마음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네.”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바랄까?
이번 한 번뿐이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혁의 직업은 소방관이었다.
언제, 어느 때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분명 벌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야속하긴 하지만, 그는 아버지였다.
의외로 수혁의 표정은 담담했다.
최은송과는 달리 전혀 충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런 최문식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식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그가 어찌 다 알겠느냐마는, 만약 자신에게 딸이 있다 하더라도 최문식과 같은 입장이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선택하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은송이와 계속 만나던지, 아니면 헤어지던지.”
“……이제 와서 일을 그만두면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할 일은 내 책임지고 구해줄 테니.”
취업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최문식의 말에 수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을 그만두겠나?”
“아빠!”
최은송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 일어나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조용히 하라니까.”
유영자가 그런 최은송의 팔을 잡아끌며 자리에 앉혔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에게 한번 웃어주었다.
그러곤 단호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
최문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헤어지겠다는 뜻인가 보군.”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허, 앞으로도 내 딸아이를 고생시키겠다는 뜻인가? 평생을 불안 속에서 살게 하면서?”
최문식은 만약 수혁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으면 한 대 때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최문식을 보며 수혁이 쓰게 웃었다.
하지만 결코 최은송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훔쳐서라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원래 사위는 모두 딸 도둑놈이 아닌가?
“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그리고 제가 구해야 할 사람은, 꼭 요구조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문식은 선뜻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 돌아오는 것. 그것 역시 구조의 일환입니다.”
“그게 생각처럼 되는 일이라면 내가 걱정하지 않겠네만?”
최문식이 미간을 찌푸리자, 이번에 수혁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은송 씨와 약속했습니다. 무조건 살아서 곁으로 돌아오기로.”
수혁이 마치 ‘그렇죠?’ 하는 얼굴로 최은송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최은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이 절대적으로 지켜질 것이라는 듯이.
“그깟 약속 가지고는…….”
“지킵니다.”
“……뭐?”
“저 약속 잘 지키는 놈입니다. 특히나 은송 씨와 한 약속이라면, 절대로 어길 생각이 없습니다. 바가지 긁히고 싶지 않거든요.”
최문식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수혁의 말은 너무도 가볍게 들렸다.
현실을 보지 않고 고작 약속을 들먹이며 안심시키려는 모습은 그에게 신뢰를 주기엔 부족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
최문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그때, 수혁이 말했다.
“저를 믿어달라는 말 한마디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최문식이 멈칫- 하며 수혁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수혁과 눈이 마주쳤다.
‘음…….’
수혁의 검은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교제를 반대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눈앞에 둔 이의 것이 아니었다.
확신과 자신감이 가득 들어차,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최문식은 순간 자신이 압도당하는 느낌에 마른침을 삼켰다.
“은송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걱정 끼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원래 그런 일이니까요.”
수혁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문식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살아서 돌아올 겁니다.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져도, 온몸에 성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은송 씨에게 돌아올 겁니다.”
최문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수혁의 말이 그냥 뱉은 게 아니라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조금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같은 말이더라도 주는 무게감이 전혀 달랐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내뱉을 뻔했다.
그만큼 수혁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웠고, 그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만해요, 여보.”
최문식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자, 유영자가 나섰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남편이 오늘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수혁과 최은송의 사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 수혁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정도는 보고 싶었기에 가만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수혁은 합격이었다.
‘남자가 자신감이 있어야지.’
속으로 암암- 하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수혁에게 미소를 지었다.
“바깥양반이 생긴 것답지 않게 겁이 많아서 그래요. 자기 딸 얘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라서 그런 거니, 이해해 줘요.”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유영자의 모습에, 수혁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처음부터 둘이 만나는 것에 찬성이었어요. 지금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기뻐요.”
유영자는 수혁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앞으로도 내 딸 잘 부탁해요.”
“……감사합니다.”
수혁과 최은송은 괜히 가슴이 뿌듯해졌다.
두 사람만의 교제가, 이제는 부모님에게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럼 결혼은 언제쯤? 아니, 아이를 먼저 갖는 게 빠를까? 요즘은 속도위반이 흠도 아니고, 혼수라고 여기기도 한다던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엄마!”
쉬지도 않고 내뱉는 유영자의 모습에 최은송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얘가 정말? 소리 좀 치지 말라니까.”
무겁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밝아지며 떠들썩하게 변해 버렸다.
수혁은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문식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왠지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혁은 입원한 지 40일 만에 퇴원하고, 드디어 오늘 일터에 복귀했다.
가장 먼저 그를 맞아준 것은 박상태였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수혁을 한번 안아주었다.
“복귀했습니다.”
“그래.”
잘 돌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등을 몇 번 토닥여 주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오, 왔다, 왔어!”
김강식은 박상태와는 달리, 잔뜩 기뻐하는 얼굴로 달려와 수혁을 얼싸안았다.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개뿔, 살아서 돌아왔으면 된 거지.”
수혁을 구하기 위해 개고생했고, 그가 그 안에서 죽었을까 봐 마음고생도 했다.
하지만 그딴 건 잊은 지 오래였다.
말한 것처럼 살아서 돌아왔으니 오히려 그 고생한 것이 뿌듯했다.
자신들이 고생한 덕분에 수혁을 살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구조 3팀을 비롯해,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의 대원들에게도 축하를 받으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자신의 자리도 그대로였고, 사람들 역시 그대로였다.
수혁은 익숙하게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아, 그리고 김수혁. 전달사항이 몇 개 있다.”
박상태가 그를 불렀다.
“먼저 말해줄 건 구조대장님이 새로 발령 오셨다는 거고.”
임시로 구조 1팀장이 맡고 있던 구조대장의 자리에 누군가가 온 모양이었다.
‘고한선 같은 사람만 아니면 되니, 뭐.’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넘겼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수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네 징계 위원회가 취소되었다는 거다.”
“어? 정말요?”
지금까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소식이 없다는 것이 의아하긴 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취소가 됐다는 소식에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도 징계는 없을 예정이었다더라. 네가 구한 사람이 워낙 많았어야지.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징계를 내리면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수혁의 구조 성공률은 전국을 뒤져 봐도 가장 탑급에 속했다.
거기다 언론이 집중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도 해결한 전력이 있었으니, 징계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