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58화 (58/425)

레스큐 시스템 58화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이었죠?”

“네, 그렇습니다. 신일역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만 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뉴스 속 아나운서는 감격한 표정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생존자들이 발견되었으니, 감격할 만도 했다.

“소방청에서는 신일역 내부에서 열일곱 명의 생존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안에서 무려 5일간 갇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건강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도 전해왔습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생존자들이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한 소방관 때문이라는 말도 있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생존자들이 말한 소방관은 신일 소방서의 구조대원인 김수혁 씨로 밝혀졌습니다.”

“김수혁 소방관님이요?”

“네, 김수혁 씨는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지하철역 안으로 진입한 분이기도 하고요.”

뉴스에서는 한창 생존자들에 대한 정보를 방송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2차 붕괴 당시에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살아서 다른 사람들을 살렸다?”

“그렇습니다. 생존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수혁 씨는 자신의 몸도 살피지 않고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존경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방송사의 뉴스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와 인터넷까지 어제 구조된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수혁에 대한 관심은 단연 최고였다.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생존자들이 한목소리로 입을 모아 수혁을 칭찬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이목이 수혁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정작 수혁은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

*퀘스트 성공!

*당신은 퀘스트를 수행했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필요 경험치 충족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 업!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레벨 16이 되었습니다.

*등급 : 베테랑 소방관을 부여합니다.

*화상을 입을 확률이 대폭 감소합니다.

*스킬 : ‘미니 맵’을 획득하셨습니다.

==========================

병원에서 정신 차린 수혁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로 이 글자들이었다.

‘레벨 업.’

공장 폭발 사고 이후 오랜만에 레벨 업을 했다.

‘아니, 오랜만은 아닌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건지, 천천히 흐르는 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실제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체감하기로는 벌써 한참 전의 일 같았다.

‘퀘스트 완료가 떴다는 건, 대충 수습이 됐다는 뜻인가?’

수혁은 자신이 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 불안해졌다.

이전 생에선 구조 활동이 15일간 이어졌다.

‘설마 보름 동안 의식이 없었다는 건 아니겠지?’

웬만한 부상도 며칠 쉬면 나을 정도로 엄청난 회복력을 자랑하는 육체다.

그런데 15일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뜻일까?

“어? 깨어나셨네요.”

그때, 수혁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한 간호사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제, 제가 얼마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직 말씀하시긴 좀 힘들 거예요. 워낙 몸이 상하셔서…….”

그제야 수혁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뭔지도 모를 이상한 것들이 온몸에 붙어 있었다.

“음, 환자분은 사흘 동안 의식이 없으셨어요.”

수혁의 상태를 잠시 체크한 간호사가 그제야 질문에 대답했다.

‘사흘?’

역 안에 갇혀 있었던 시간을 모두 합쳐도 10일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구조 작업이 끝났다는 말인가?

“구, 구조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존자는 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아직 구조는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더는 구해야 할 요구조자가 없다.’

그래서 퀘스트가 끝난 것이다.

수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전 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때는 15일간의 구조 작업 끝에, 겨우 두 명만이 생존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다.

구해낸 기쁨보다,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이 훨씬 컸다.

‘퀘스트 완료는 무슨.’

수혁에게 있어 이번 퀘스트는 실패나 다름없었다.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쓰지 말고 푹 쉬세요. 환자분 정말로 위험했거든요. 사흘 만에 정신 차리신 것도 대단한 거예요.”

수혁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간호사가 이불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지금 밖에서 환자분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요?”

“네, 같이 일하시는 소방관분들이랑, 지인으로 보이는 분들도 와계시고. 뭐, 가장 많은 건 기자들이지만요.”

소방관이라면 구조 3팀일 테고, 지인은…….

‘설마 은송 씨인가?’

물론 고승우나 다른 친구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바로 최은송이었다.

미안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저히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에 벌써 몇 번이나 그녀에게 걱정을 끼쳤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간 정말로 차여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수혁이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응? 기자? 그분들이 왜요?”

눈을 번쩍 뜨고 간호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기자들이 자신을 왜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의식이 없으셔서 잘 모르시겠네요.”

간호사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뽑으라면 그게 바로 환자분이거든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 * *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박상태는 힘겨워하는 최은송을 위로했다.

그에게 있어 이런 분위기는 낯설지 않았다.

소방관이 구조 도중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언제나 펼쳐지는 광경이었으니까.

“그놈이 몸 하나는 정말 튼튼해요. 예전에 산불 현장에 출동 나갔을 때도…….”

“인마.”

박정우가 대화에 끼어들었지만, 박상태가 그의 입을 막았다.

가뜩이나 수혁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 앞에서, 예전에 부상 당했던 이야기를 왜 한단 말인가?

박상태가 험악한 얼굴로 말리자, 박정우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어, 음. 네. 굉장히 튼튼한 놈입니다.”

결국 어색하게 말을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경써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은송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대원들의 모습에 최문식이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딸을 생각해 주는 그들의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쪽 분들도 우리 딸아이 남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무리를 좀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 예. 저희야 워낙 단련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박상태와 김강식, 박정우도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수혁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 역시 꽤나 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쉬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쯤 그놈이 깨어날 것 같다기에 잠시 들른 것뿐입니다.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박상태는 최문식과 대화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고생한 걸 어떻게 알고 있지?’

단순히 구조 현장에서 고생했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자신들이 현장을 이탈해 단독으로 구조 작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특구 애들과 지원을 나온 구조대원 정도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약속했던 대로 비밀에 부쳐졌다.

오죽하면 신일서 구조대장 대리로 있는 1팀장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문식이 그 일을 알고 있다?

박상태는 순간 특수구조대 팀장인 김갑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위쪽에 있는 누군가가 구조에 속도를 내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했었지?’

그 누군가가 최문식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비약일까?

잠시 고민하던 박상태가 고개를 저었다.

속으로 끙끙- 앓는 건 박상태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냥 대놓고 묻는 편이 속 시원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박상태가 최문식을 향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김수혁 환자 보호자 분?”

간호사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에 집중됐다.

“보호자 분?”

박상태, 김강식, 박정우, 최은송, 최문식.

총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죄다 그쪽을 쳐다보고 있자, 누가 보호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보호자입니다.”

“제가…….”

박상태와 최은송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 분이십니다.”

결국 박상태는 보호자의 권한을 최은송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환자분이 지금 의식을 찾으셨어요.”

“아……!”

“그것 보세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순식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언제나 그랬듯 금세 털고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이번에도 무사했다.

“어,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

집중치료실의 면회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하루에 두 번.

그것도 보호자만 면회가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은 면회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당장에라도 수혁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가 정말로 괜찮은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최은송의 간절한 표정에 간호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가해 주세요.”

뒤쪽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선생님.”

“김수혁 환자, 면회시켜 드리세요. 제가 허락해 드릴 테니, 괜찮습니다.”

그는 수혁의 주치의였다.

수혁이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려왔다가, 최은송의 부탁을 들은 것이었다.

정해진 시간 외의 면회는 규정 위반이었지만, 그 정도는 자신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가능했다.

“저도 환자분을 보러 가야 하니, 같이 들어가시죠.”

의사는 최은송을 향해 친절하게 웃어주고는 앞장서 걸어갔다.

“다, 다녀와요.”

박상태는 아쉬운 눈빛으로 의사의 뒤를 따라가는 최은송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왠지 처량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최문식이 허허- 웃었다.

“잠시만. 손 소독을 해주셔야 해서.”

의사가 집중치료실 입구에 있는 손 세정제를 가리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들어가려던 최은송이 아차-! 하며 손을 씻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시죠.”

집중 치료실의 문이 열리고,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중환자처럼 보이는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은송은 빠르게 그들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수혁을 발견했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본 최은송이 흑-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은송 씨?”

최은송의 모습을 본 수혁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녀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최은송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던 수혁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