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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3화 (53/425)

레스큐 시스템 53화

“여기는 안전할 것 같아요!”

열차 안으로 들어온 박수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확실히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습니다.”

무려 두 번의 붕괴에도 열차는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유리창들은 견디지 못하고 깨지긴 했지만, 차체는 충분히 견고했다.

“일단은 이곳에서 좀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뒤늦게 건너온 사람들은 열차 안에 떨어져 있는 유리조각과 흙더미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을 눕히기 위해 수혁이 대충 치우긴 했지만, 아직 치워야 할 곳이 많았다.

마음 같아선 그냥 좀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괜히 다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이곳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작은 상처라고 무시했다가 나중에 덧나기라도 하면 고칠 방법도 없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소방관 아저씨.”

“박수진 씨, 다시 말하지만 저는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

“그냥 왠지 아저씨 같아서요.”

헤헤- 하고 웃으며 말하는 박수진을 보며 수혁은 식은땀을 흘렸다.

‘너무 예리한데.’

수혁은 혹시나 자신에게서 아재의 냄새가 풍기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회귀 이후 최대한 젊게 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나저나, 다른 칸은 확인해 보셨어요?”

“그건 아직입니다.”

수혁도 박수진의 말대로 다른 칸들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객실 자체는 멀쩡했지만, 객실과 객실 사이에 있는 연결로는 그렇지 못했다.

붕괴의 잔해가 통로를 막고 있었다.

물론 그 간격이 좁았으니 충분히 길을 만들 순 있었지만…….

‘나도 좀 쉬어야지.’

온몸이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수진은 그제야 수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많이 힘드실 텐데.”

“별거 아니에요. 이 정도는 좀 쉬면 회복될 겁니다.”

수혁이 애써 웃으며 팔을 들어 알통 만드는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박수진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저씨 맞네.”

웃고 있던 수혁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아, 그런데 사람들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이에요.”

배고픔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런 상황에서라면 하루이틀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갈증은 달랐다.

특히나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먼지도 많이 들이마셨고, 움직임도 많았다.

아직은 크게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더 흐르면 한계에 다다를 것이 분명했다.

“제가 조금 있긴 한데…….”

박수진이 속삭였다.

그러면서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안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도 가방을 잊지 않고 챙긴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가방 안에는 500㎖짜리 생수가 한 병 들어 있었다.

“음…….”

너무 적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마시기에는 턱도 없는 양.

그래도 아예 한 방울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박수진에게 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괜한 분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너무도 적은 양이었기에, 수혁은 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양만큼만 주기로 결정했다.

순간의 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보단, 정말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위험한 사람에게 더 필요할 테니 말이다.

“아저씨가 제일 필요하지 않아요?”

박수진이 보기에 지금 가장 물이 절실한 사람은 수혁이었다.

지금까지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이 바로 수혁이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신들은 꼼짝없이 이곳에서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직 버틸 만합니다.”

거짓말이었다.

사실 수혁은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박수진의 가방 안에 있는 물병을 보자마자 충동적으로 그것을 꺼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그것을 참아낸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약하긴 하지만 폰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열차 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지치고 두려움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을 본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판기 같은 거라도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하철 플랫폼에 꼭 몇 개씩은 있는 음료수 자판기가 생각났다.

평소에는 잘 거들떠보지 않는 자판기였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그게 너무도 간절해졌다.

“빠져나가는 데 너무 오래 걸리면 어떡하죠?”

박수진은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본래 성격이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애써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 그게 언제냐는 것이었다.

만약 너무 늦는다면 이 중에서도 죽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그게 부상 때문이든, 목이 말라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박수진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노력해 봐야죠.”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들이 여기까지 죽지 않고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두 번에 걸친 붕괴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산소도 부족한 고립된 공간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다.

‘이전 생에서도 생존한 사람이 다섯 명도 안 됐었지, 아마?’

15일간 고립된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상태 형은? 어떻게 됐지?’

이전 생에서 박상태는 바로 이 현장에서 수혁을 구하고 순직한다.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김강식의 경우를 보면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 터였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수혁이 그의 옆에 붙어 있었다면 어떤 위험에서도 지켜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수혁이라 하더라도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을 구해줄 능력은 없었다.

현재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박상태에게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갑자기 무거워진 수혁의 표정을 본 박수진도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힘든가요?”

“아, 아니요.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고는 그런 표정을 지었으니, 박수진이 오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박수진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수혁이 말을 둘러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수혁이 미소 지으며 말하자, 박수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가 완전히 풀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혁을 믿고자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일단은 좀 쉬세요. 수진 씨도 힘드실 텐데.”

박수진 역시 매우 지친 상태였다.

군인을 비롯한 다른 이들과 함께 사람들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붕괴를 피해 도망치며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지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건장한 남자들도 지쳐 쓰러지는 판이었으니…….

“네, 그럼 저도 좀 쉬러 갈게요.”

박수진은 수혁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장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장소였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 보였다.

수혁은 그런 박수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휴식이 간절했다.

‘한 시간. 딱 한 시간만 쉬고 움직이자.’

터무니없이 적은 휴식시간이었지만, 언제까지 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지옥을 벗어나야 할 테니 말이다.

* * *

“조심, 조심!”

박상태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박정우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거기 위험해. 아무 생각 없이 파내지 말고, 주변 잘 살피면서 파란 말이야!”

박정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이 건드리던 곳 주변을 살폈다.

머리털이 쭈뼛하는 느낌이 들었다.

박상태의 말대로 잘못 건드렸다간 그대로 돌에 깔려 죽을 뻔했다.

“후우-”

숨을 고른 박정우가 조심스럽게 다른 곳을 파내기 시작했다.

“50m야, 50m만 길을 뚫으면 돼.”

평지에서 달린다면 아무리 느린 사람도 10초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지금은 마라톤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고작 세 명이 길을 열기에는 너무도 고된 작업이었다.

“젠장, 그놈만 있었으면…….”

지금 박상태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다른 대원들의 지원도, 최첨단 장비도 아니었다.

바로 수혁.

수혁의 존재가 가장 절실했다.

“그놈이라면 이 정도쯤은 후딱후딱 다 처리하고 벌써 길을 뚫었을 겁니다.”

김강식 역시 박상태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수혁이 매몰되기 전에 길을 뚫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했다.

“대체 그놈은 어떻게 그리 쉽게 길을 뚫은 거야?”

마치 어딜 건드리면 무너지는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수혁은 그렇게 길을 열었다.

박상태 역시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꽤나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했지만, 수혁은 박상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만약 여기에 수혁이 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길을 뚫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 지금은 그놈을 구하러 가는 길이지.’

슬픔과 동시에 희망이 찾아왔다.

그런 능력이 있는 수혁이라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그렇다면 더 속도를 내야 해.’

저 안쪽엔 부족한 것 천지일 것이다.

공기도 부족하고, 물도, 음식도, 응급약도 없다.

그런 환경에선 아무리 수혁이라 할지라도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붕괴가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나고, 이제 이틀째에 접어들었다.

추가 붕괴가 일어난 게 최초 붕괴 이후 반나절이 흐른 시점이었으니, 수혁이 매몰된 것도 이제 이틀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겠지만, 한계는 분명 생각보다도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선 부족한 것이 더욱 절실해지는 법이니.

박상태는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작 50m지만, 그 끝에 도달하는 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가 걸릴 수도, 이틀이 걸릴 수도.

재수 없으면 일주일이 넘을 수도 있었다.

‘제발 살아 있어라, 이 새끼야.’

* * *

“구조가 시작된 지 이틀째. 아직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 기자가 카메라 앞에 서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최은송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수는 120명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몇 명의 생존자가 구조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더는 구조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붕괴 현장이 참혹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자의 말이 진행될수록 최은송의 표정이 점점 무너져 갔다.

처음 구조 3팀이 구조한 요구조자 몇 명을 제외하면, 모두 시체뿐이었다.

여기도 시체, 저기도 시체.

정말 간혹 생존자를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병원으로 채 이송이 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구조자 0명인 상황.

그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최은송으로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가만히 기자를 바라보고 있던 최은송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든 그녀의 표정에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아빠.

“아…….”

그러고 보니 집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최은송은 도망치듯 가게에서 뛰어나온 뒤로,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혼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붕괴 현장을 바라만 보면서 말이다.

만약 이재한이나 강효상이 챙겨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탈진으로 진즉에 쓰러졌을 것이다.

최은송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응, 아빠…….”

[은송아, 너 지금 어디야?]

최은송의 아버지는 이틀이나 무단외박을 한 자신의 딸을 단단히 혼내기로 마음을 먹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힘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딸의 목소리에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 나 지금… 흑.”

최은송은 결국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 수혁 씨 좀 살려줘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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