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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2화 (52/425)

레스큐 시스템 52화

“젠장.”

박상태가 땅을 향해 침을 뱉으며 욕을 했다.

“결국은 이쪽이구만.”

회의에서 결정 난 구조 방법은 위쪽부터 차근차근 파고드는 것이었다.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간 또다시 추가적인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상태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결정한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박상태는 그 결정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수혁이 저 안에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박상태에게 냉정함을 앗아갔다.

“이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안전하고, 중장비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너무 느리다.

박상태는 내심 터널 쪽을 이용해 곧장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뚫고 싶었다.

위험하지만, 그게 빠르니까.

그리고 빠르면 빠를수록, 수혁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니까.

박상태가 자신도 모르게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애타게 수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최은송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다.

정말로 수혁이 살아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상태는 그녀와 약속을 했다.

만약 수혁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구해오기로.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체된다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었다.

“후우-”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쩔까?’

사실 방법은 알고 있었다.

신일서 구조 3팀만 현장에서 빼돌려 터널 쪽으로 진입을 시도하면 된다.

당연히 징계를 받겠지만, 수혁을 구할 수 있다면 그깟 징계가 대수일까?

하지만 박상태는 망설였다.

이것은 평소 그의 행동규칙과 맞지 않았다.

오히려 수혁에게 그런 단독행동을 하지 말라고 수도 없이 훈계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자신이 수혁과 같은 행동을 한다?

“아니지, 아니야.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다고.”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데 신념이나 자존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혼자 징계를 받는다면 상관없겠지만, 다른 부하들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김강식이라면 군말 없이 따라주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니다.

“얘기를 한번 해봐야 할까?”

부하들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여도 걱정이었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걱정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였지만, 박상태는 빠르게 고민을 끝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수혁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지금은 일단 수혁을 구하기 위한 방도를 강구해야만 했다.

‘그놈이 살아 있다면…….’

혼자만 생존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다른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놈은 그런 놈이었으니까.

그러니 더욱 서둘러야만 했다.

“여기로 모여.”

박상태는 무전기를 들고 자신의 대원들에게 조용히 전달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구조 3팀 전원이 박상태 곁으로 모였다.

그들의 표정은 썩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수혁과 인연이 깊은 김강식의 경우에는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는 것 같았다.

박상태는 그들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김수혁이 구하러 간다.”

“……예?”

박정우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 팀은 여기서 이탈해, 터널 쪽을 통해 진입을 시도할 생각이다.”

박상태의 말에 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임은 내가 질 거다. 최대한 너희에겐 아무런 피해가 안 가게 할 거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박상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위험할 수도 있다. 아니,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매몰돼서 모조리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고, 다행히 무사하다고 해도 이후에 징계를 당할 수도 있다.”

박상태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강요는 안 해. 갈 사람만 간다. 안 간다고 해서 비난할 생각도 없고.”

“전 갑니다.”

박상태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강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수혁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몸입니다. 이런 상황에 몸을 사리면 내가 개X끼지.”

김강식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저도요.”

이번엔 박정우였다.

그는 김강식과는 달리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에도 박상태와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그 새끼는 이런 데서 죽으면 안 되는 놈이에요. 저 같은 놈이랑은 다르게, 분명 나중에 큰일을 해낼 것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죽기엔 아까운 놈이니까…….”

“고맙다.”

박상태는 생각이 정리가 안 됐는지, 횡설수설하는 박정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죄송합니다.”

이재한은 거절이었다.

그는 거절하면서도 너무 괴로워 보였다.

“이해한다.”

이재한은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혼이다.

게다가 몸이 좋지 않은 홀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었다.

절대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재한의 결정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들도 이재한의 입장이었다면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테니 말이다.

“……너만 남았다.”

구조 3팀의 마지막 한 사람.

강효상.

평소에 말도 거의 없었고, 다른 대원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

박정우 바로 위 서열인 강효상은 이재한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좀…….”

강효상은 수혁과 그리 큰 인연이 없는 사이였다.

수혁의 이전 생에서도 그랬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그리 즐기지 않았다.

박상태는 처음부터 그런 강효상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혁을 구하러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박상태는 자신이 얘기한 것처럼 아무런 비난도, 아쉬움도 표하지 않았다.

그저 이해한다는 듯 이재한과 강효상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몸을 돌렸다.

“팀장님.”

뒤에서 이재한이 불렀다.

“조심… 하십시오.”

“그래.”

박상태는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가자.”

김강식과 박정우가 그 뒤를 따랐다.

* * *

“아…….”

수혁이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랜턴의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조금씩 깜빡거리더니 이내 꺼져 버렸다.

“폰에 배터리 좀 남았습니까?”

수혁이 뒤쪽을 향해 물었다.

“하아, 하아. 아, 아쉽지만 저는 잃어버려서…….”

수혁과 함께 부상자들을 옮기던 군인이 고개를 저었다.

첫 붕괴가 시작될 때, 그만 스마트폰을 놓치며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런.”

빛 한 점 없는 공간이다.

정말로 코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어쩔 수 없죠. 일단은 이렇게 이동합시다.”

다행인 건 지금 옮기고 있는 부상자가 마지막 사람이라는 것.

저쪽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제 혼자서도 충분히 올 수 있었다.

“힘드시죠?”

칠흑 같은 어둠.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군인은 지하철역 붕괴의 현장을 두 번이나 경험한 데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 아닌가?

자칫 잘못하면 패닉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다.

지금 옮기고 있는 부상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약 의식이 있었다면 수혁이 신경을 써야 할 사람이 두 명으로 늘어났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수혁은 군인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도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군인 역시 요구조자들 중 한 명이었으니, 위험에 처하도록 둘 순 없었다.

“괘, 괜찮습, 니다.”

그렇게 말하는 군인의 호흡은 거칠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잔뜩 일그러져 있을 게 뻔했다.

“이분이 마지막이에요. 이분만 옮기고 좀 쉽시다.”

“예.”

대답을 길게 할 힘도 없어 보였다.

‘음…….’

말이라도 걸어 의식을 좀 분산시켜 보려 했는데, 저래서야 말을 걸기도 미안했다.

“제가 허락할 테니까, 도착하면 가장 상태 좋은 좌석에 자리 잡고 누워요. 아까 보니까 그래도 쉴 만한 공간은 충분히 나올 것 같았으니까. 아, 대답은 안 해도 돼요.”

수혁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체력이 다한 건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살아서 나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도 말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가 사람 구하는 데는 우리나라 최고라고 자부하거든.”

수혁은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구조 경험들을 군인에게 늘어놓았다.

첫 출동에서 아이 두 명을 구한 일.

교통사고 현장에 나가 납치된 아이를 구한 일.

그 외에도 이전 생에서 겪었던 일들까지.

목구멍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갔다.

수혁의 이야기가 지속되는 동안, 군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간간이 부상자를 밀어주는 움직임이 아니었더라면, 정신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길 얼마나 됐을까?

갑자기 군인이 말을 했다.

“거짓말이죠?”

군인의 음성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어? 진짜인데요.”

“에이, 사, 사람이 어떻게…….”

약간의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진짜로 있었던 일들만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군인은 수혁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믿기에는 좀 허무맹랑한 게 많지.’

이전 생에서 수혁이 지금과 같은 말을 들었다면, 군인처럼 구라치지 말라며 코웃음 쳤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수혁이 해왔던 일들은 비상식적이었다.

“믿기 싫으면 마시고.”

수혁 역시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대충 목소리를 들어보니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얼마나 남았지?’

꽤 많이 이동했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다.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열 번이 넘게 왕복을 한 덕분에 대충 가늠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통로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후아-!”

수혁은 부상자를 끌어내 조심스럽게 눕혀놓고는 바닥에 벌러덩 쓰러져 버렸다.

군인 역시 한계에 다다랐는지, 그런 수혁의 옆에 쓰러지듯 누웠다.

“조금 쉽시다.”

아직 저쪽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젠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수혁은 10분 만이라도 좀 쉰 후에 움직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기절한 것처럼 누워 있던 군인이 수혁에게 말했다.

“감사는요, 무슨. 제가 감사하죠. 이렇게 힘든 일을 도와주셨는데.”

“아니요, 그게 아니라…….”

군인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쑥스러운지 수혁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저희를 구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이 군인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는 짧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아무리 많아도 스물다섯 살은 되어 보이지 않았다.

수혁의 입장에서 봤을 땐 젊디젊은 청년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젊은 청년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먼저 발 벗고 나섰다.

수혁은 그것이 너무도 기특했다.

‘이런 사람이 영웅이지.’

자신의 안위보단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것이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겠는가?

“그것도 제가 더 감사합니다.”

“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군인이 고개를 돌려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자 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올 때까지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말을 마친 수혁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빨개졌다.

설마 살면서 이런 말을 정말로 해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진심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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