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51화
“위치 선정은 어떻게 됐습니까?”
김강식이 박상태를 향해 물었다.
지금 구조대는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위해, 안전하고 빠르게 안쪽까지 파고들어 갈 곳을 찾고 있었다.
“아직 결정 안 났다.”
박상태의 표정은 어두웠다.
구조역학 전문가까지 초빙해서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통 의견이 일치되질 않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문제랍니까?”
벌써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그런데 진즉에 본격적인 구조가 시작되고도 남을 시간이었음에도, 아직까지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김강식은 짜증을 금치 못했다.
“의견이 갈리고 있어.”
위치 선정에 따른 의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위험을 최소화하며 작업해야 한다는 의견과 조금이라도 더 빠른 구조를 위해 터널을 통해 진입을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
두 의견 모두 장단점이 있었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거 결정하고 있을 시간에 구조 시작했으면 벌써 어느 정도 진행됐겠네!”
김강식이 답답한지 가슴을 두들겼다.
이게 문제다.
김강식 역시 그들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탁상공론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공무원 특성상 일의 진행이 너무 느렸다.
“어쩔 수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제수씨가 온 건 알고 계십니까?”
느닷없는 김강식의 말에 박상태가 멈칫했다.
“누가 왔다고?”
“수혁이 놈 여자친구요. 형님이 연락하셨다던데.”
박상태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랬지.”
자신도 이렇게 가슴이 뭉개질 것처럼 아픈데, 최은송이 어떤 기분으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았다.
“지금 어디 있어?”
“일단은 저희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얼굴을 보니 완전 넋이 나갔던데. 그 상태로 돌아다니다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겁나서요.”
“……잘했다.”
박상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직접 가서 이야기라도 해야 할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면할 순 없었다.
자신은 구조 3팀의 팀장이자 동료이며, 형이니까.
아무리 두렵다고 해도 외면해선 안 된다.
“다녀오마.”
박상태는 자신들의 구조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변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이런 현장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그 어지러운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최은송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락을 받자마자 급하게 왔는지, 일하던 차림 그대로 사색이 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수혁에 대한 걱정에, 차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못하고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박상태가 부르자 우뚝- 자리에 멈춰 선 최은송이 그를 돌아보았다.
“수혁 씨는요? 수혁 씨 찾았어요?”
최은송은 혹시 박상태가 수혁을 찾았다는 말을 전하러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급히 물었다.
“아직입니다.”
하지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제대로 된 구조 작업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까지 할 순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
최은송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구할 수 있는 거죠?”
박상태는 당연하다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했던 곳이다.
그런 상황에 추가 붕괴가 일어났으니, 경솔하게 확답해 줄 수가 없었다.
무거운 박상태의 얼굴을 본 최은송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렸다.
“제수씨!”
깜짝 놀란 박상태가 그녀를 부축했다.
“우리 수혁 씨, 못 구해요? 그런 건가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최은송이 묻자 박상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살아 있다면, 그놈이 아직 살아 있다면. 반드시 구할 겁니다.”
그것이 박상태가 최은송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살아 있다면…….”
긍정적인 대답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최은송은 박상태의 말에 희망을 가졌다.
“수혁 씨는 분명 살아 있을 거예요. 아시죠? 수혁 씨 대단한 거. 오빠가 직접 그렇게 칭찬했었잖아요.”
그랬었다.
수혁이 대단한 놈인 것은 신일서에서 일하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네, 살아 있을 겁니다.”
“그럼 꼭 구해주세요.”
무조건 박상태의 다짐을 들어야겠다는 듯, 최은송의 얼굴이 단호해졌다.
“그건…….”
“팀장님!”
박상태가 살짝 망설이는데,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박상태를 찾고 있는 이재한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이재한에게 손을 들어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시켜 준 박상태가 그에게 물었다.
“결정 났습니다! 팀장급 인원 지금 바로 모이시랍니다!”
그렇게 결론이 나지 않던 회의가 이제야 끝난 모양이었다.
박상태는 다시 최은송을 쳐다보며 말했다.
“구해오겠습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최은송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듯,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후우- 후우-”
수혁이 숨을 몰아쉬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움직이려니,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여긴 안 되고.’
손을 뻗으려던 수혁이 멈칫했다.
붉은 표시가 확- 하고 퍼지는 것이, 건들면 무너질 곳이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길을 뚫기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빨리 파야 해.’
숨이 차는 이유는 긴장으로 인한 체력 소모가 심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만큼 산소가 부족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그전에 뚫어야 할 텐데.’
이 방법이 유일한 희망이다.
실패한다면…….
뒷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혁은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돌들을 헤쳐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후우우…….”
잠시 움직임을 멈춘 수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온몸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수혁의 체력도 이제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손은 덜덜- 떨려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벌써 몇 번이나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뒤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요구조자들이 있다.
‘너도 겪어봤잖아.’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곳에서 죽어가는 느낌을 말이다.
두려움, 고립감, 억울함.
저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혁은 계속 움직였다.
정말로 한계에 다다랐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후두둑-
‘뚫렸다!’
쭉 뻗은 수혁의 손끝에 더는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 말은 더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하.”
수혁이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구멍을 넓힌 뒤, 그 안쪽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안?’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하늘이 그를 도운 것일까?
수혁이 연 길의 끝에는 문이 열려 있는 지하철 객실이 있었다.
붕괴로 인해 전력이 끊긴 탓인지 불빛은 없었다.
랜턴의 빛에 의지해 안쪽을 살핀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충분히 안전해 보였다.
그리고 쉴 만한 공간들도 넉넉했고.
요구조자들이 수혁을 기다리고 있는 좁디좁은 공간보단 몇 배는 컸다.
이 정도면 수혁이 탈출로를 만들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안쪽을 살핀 수혁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신경 써서 통로를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한 명이 고작 기어가는 정도가 끝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도 부상자들은 혼자 이동할 수가 없을 터.
특히나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데리고 와야겠지.’
솔직히 너무 지친 상태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의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옮기다 혹시 잘못될 수도 있었기에, 수혁이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끙끙- 거리는 신음과 함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이 쏟아졌다.
“성공한 거예요?”
“길이 뚫렸습니까?”
그들은 한껏 지쳐 있는 수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길을 뚫었는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이었으니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조금 씁쓸하네.’
한 명이라도 괜찮으냐고 물어봐 줄 줄 알았는데.
“조용히 좀 해보세요. 지금 소방관 아저씨 지친 거 안 보여요?”
뾰족한 음성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박수진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수혁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수혁은 속으로 허허- 하며 웃었다.
‘그래도 한 명이 있긴 하네.’
“괜찮습니다. 조금 지친 것뿐이니까.”
수혁은 박수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고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박수진의 핀잔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했다.
“성공했습니다.”
“와앗!”
“쉿! 조용!”
누군가 환호성을 지르려다 옆에 있는 사람이 만류하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일단은 부상이 심하신 분들부터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도와주실 분이 필요한데…….”
박수진이 수업시간 발표를 하듯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녀를 무시하곤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수진이 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그녀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사람을 옮기는 일이다 보니 힘이 좀 세야만 했다.
“아무도 없습니까?”
하지만 박수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혁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괜히 나서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제가 돕겠습니다.”
군인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뭔가를 결심한 듯 수혁을 향해 손을 들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형님보단 제가 그래도 낫지 않겠습니까?”
군인은 수혁에게 스스럼없이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박수진이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누군 형이라 부르고 누군 아저씨라 부르고.
괜히 박수진을 한 번 노려본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앞에서 이끌 테니까, 뒤에서 좀 받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들것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여기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날카로운 돌들이 널려 있는 맨바닥에서 질질 끌 수는 없었으니,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옷으로 바닥을 받쳐서 끌면 어때요?”
수혁에게 무시당한 박수진이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수혁의 고민을 눈치챈 듯 의견을 냈다.
“옷으로?”
“네, 이사할 때 아저씨들이 그런 방법 쓰잖아요. 가구 밑에 카펫 같은 거 깔아서 옮기는 거.”
“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부상자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진 못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럼 그렇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