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48화
깜깜한 어둠 속을 밝히는 몇 줄기의 빛이 주변을 훑었다.
전쟁 후 폐허의 모습이 이러할까?
이런 곳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이걸로 여섯 명.’
벌써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중 셋은 거동에 문제가 없어 보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탈출시키기로 했고, 다른 셋은 상세가 너무 좋지 않아 일단은 한쪽에 눕혀놓았다.
‘시간은 충분한데…….’
아직은 추가 붕괴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수혁의 기억에도 다시 붕괴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문제는 심하게 다친 사람들이야.’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밖에서 중장비를 이용해 길을 뚫지 않는 이상, 저 좁은 곳을 통해서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저들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뚫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테고.
‘결국은 여기서 버텨야 한단 말인데.’
수혁이 몇 가지 구급 약품을 챙겨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턱도 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조만간 추가 붕괴가 일어나고, 이 안에 다시 고립된 이들이 구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5일.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다.
지금은 생존자의 숫자가 30명이 넘게 있지만, 15일 후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고작 두 명이었다.
가뜩이나 부상 입은 상태에서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한 채 그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수혁은 그것을 대비해서 김강식을 통해 물자를 준비해 놓도록 부탁해 놓긴 했지만…….
“제때 도착할지 모르겠네.”
“네?”
수혁의 혼잣말에 박수진이 그를 쳐다보았다.
“아, 아닙니다.”
속으로 생각한 줄 알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모양이었다.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대충 얼버무린 뒤, 다음 사람이 있는 곳을 향했다.
“저……. 소방관 아저씨.”
그때 박수진이 뒤에서 수혁을 불렀다.
“아직 아저씨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닌데.”
속이야 충분히 아저씨겠지만, 일단 지금은 이십대 후반에 불과한 나이.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것 같은 박수진에게 아저씨라는 호칭을 듣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 진짜요? 전 아저씬 줄.”
괜히 마음이 아팠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오빠든 아저씨든 상관없다는 박수진의 태도가 왠지 더 상처가 되었지만, 수혁은 애써 웃었다.
“무슨 일 있어요?”
“저기 진상남이요.”
“진상남?”
그게 누군가하고 고민하던 수혁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분위기가 이상한 거 같은데.”
박수진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자, 수혁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음.”
박수진의 말대로 왠지 소란스러워 보였다.
처음 수혁이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던 덕분인지 고성은 오가지 않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느껴졌다.
“지금 싸우고 있는 거 맞죠?”
박수진이 물었다.
몸싸움까진 아니더라도, 실랑이가 오가는 것 같았다.
“제가 한 번 갔다 와야겠네요.”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구해야 할 사람이 많은데, 예상치 못한 문제까지 생기니 마음이 급해졌다.
수혁은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쉬고 있으라 말한 뒤, 혼자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순서 지켜요, 순서. 소방관이 정해준 순서 있잖아요. 왜 자꾸 그렇게 분란을 만들어요?”
중년 여성 한 명이 진상남을 향해 짜증 섞인 말투로 쏘아붙이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이러다 내가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아니면 그 소방관 나부랭이가 책임질 거야?”
“당신보다 더 다친 사람들도 많아요. 그 사람들이 잘못되면? 그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그 사람들보단 내가 살 가능성이 더 크잖아. 밖에 나가봤자 오늘내일할 것 같은 사람들보단 내가 나가는 게 더 나은 선택 아니냐고!”
“이 사람이 정말! 그게 할 말이에요?”
들려오는 소리에 수혁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중년 여성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저게 사람 새끼가 할 말인가 싶었다.
“아, 몰라! 난 여기서 먼저 나가야겠으니까, 나중에 법대로 처리하든 말든 알아서 해!”
진상남이 중년 여성을 옆으로 밀쳐 버렸다.
“어, 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고는 하지만, 그의 힘은 중년 여성이 막아내기에는 너무도 강했다.
“비켜!”
진상남이 구멍 안쪽을 향해 억지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와 동시에 수혁의 눈이 부릅떠졌다.
진상남이 구멍에 몸을 넣는 순간, 순식간에 붉은 표시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주변을 잠식했던 것이다.
키잉-!
“피해요!”
두통이 일어날 정도의 이명이 들렸고, 동시에 수혁은 사람들을 향해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수혁을 돌아볼 뿐, 몸을 피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서 피하라고!”
수혁이 다시 한 번 소리치자, 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심상찮다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었다.
진상남이 구멍 안에서 뭘 건드린 것인지,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도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이 공간 자체를 모조리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투둑- 툭-!
작은 돌멩이 몇 개가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손톱만 한 돌멩이였지만, 이내 조금씩 커다란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뛰어!”
사람들은 기겁하며 구멍과 반대쪽으로 뛰었다.
“자, 잠깐! 나도 데려가!”
수혁의 경고를 들은 진상남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구멍 밖으로 몸을 빼며 소리쳤다.
다리가 부러진 그는 무너지는 돌 더미를 피해 달릴 수가 없었다.
“젠장!”
수혁은 욕설을 내뱉으며 진상남에게로 돌진했다.
수혁은 구조 대원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고, 문제를 야기한 장본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눈앞에서 죽도록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빨리!’
그토록 빠르던 움직임이, 지금은 왜 이렇게 더디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진상남의 머리 위로는 크고 작은 돌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수혁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진상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고가 가속되며,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혁의 손이 천천히 진상남에게 다가갔다.
진상남 역시 손을 마주 뻗고 있었다.
“안 돼!”
쿠르르르릉-!
땅을 울리는 커다란 소음과 함께 진상남의 모습이 수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결국, 그는 피하지 못하고, 돌들에 깔려 버린 것이다.
수혁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그가 묻힌 곳을 쳐다보았다.
그야말로 바로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충분히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젠장, 젠장!’
그를 구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수혁에겐 자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저씨! 빨리 피해요!”
박수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붕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수혁을 향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수혁은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려 달렸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가슴이 아파왔다.
“안쪽으로 달려요!”
수혁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안전한 곳은?’
수혁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주변은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저기! 저쪽으로 가요!”
수혁은 붉은 표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표시도 없는 쪽을 가리켰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우르르- 그곳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수혁은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부상자들!’
수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구한 여섯 명의 부상자.
그들은 혼자의 힘으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만약 그들을 내버려 둔다면, 이번에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어디 가요, 아저씨!”
박수진이 수혁을 불렀지만, 수혁은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부상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수혁은 그들을 둘러업기 시작했다.
“아아악!”
뼈가 부러지고, 찢어진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아픈 것이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하지만 수혁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한들, 여섯 명의 사람을 모두 데리고 갈 순 없었다.
힘이 얼마나 세든, 수혁의 팔은 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명을 등에 업고는, 양손에 한 명씩 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다른 세 명은 도저히 옮길 방도가 없었다.
수혁이 잠시 멈칫- 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빨리!”
수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군인과 박수진, 그리고 지금까지 같이 사람을 구했던 나머지 두 명이 숨을 헐떡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업어요!”
수혁은 그들을 향해 소리치고는 그대로 세 명을 데리고 달려갔다.
쿠르르릉-!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간신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천장은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렸고, 그로 인해 주위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수혁이 앞장서고, 부상자들을 챙긴 다른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꺄아악!”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박수진이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더!”
콰과과과광-!
죽음이 그들의 뒤를 덮치기 직전.
간신히 안전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널찍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제대로 앉기도 힘들 정도로 좁아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으!”
부상자들을 억지로 데리고 온 탓에, 고통에 찬 신음 소리도 가득했다.
“사, 살았어…….”
누군가의 넋두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어두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고작해야 열여섯 명에 불과했다.
대체 지금 몇 명이나 죽은 것일까?
순간적으로 욕지기가 치솟아 올랐다.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간도 충분했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모두 죽었다.
단 한 명의 성급한 판단 때문에…….
‘아니, 나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했다.
진상남이 진상을 부릴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사항이고, 그것을 생각했다면 대책도 세워놨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았고, 별문제 없을 것이라며 방심했다.
수혁은 눈을 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 * *
콰과과과광-!
“무슨 소리야!”
중간 지점에서 요구조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던 박정우가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무너진다!”
방금 막 구멍에서 빠져나온 남자가 소리쳤다.
땅이 진동하고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우아악!”
응급처치를 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다.
또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덜덜 떨었다.
박정우는 빠르게 주변을 돌아보고는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긴 괜찮다.’
수혁이 장담한 대로, 붕괴가 여기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김수혁! 야, 김수혁! 대답해!”
무전기를 들고 소리쳐 봤지만, 지직- 거리는 거친 소음만 들려올 뿐, 수혁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뭔 개 같은……!”
박정우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는 구멍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