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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7화 (47/425)

레스큐 시스템47화

‘이곳 바로 너머다.’

‘생명 감지Ⅱ’ 스킬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고작해야 수혁이 서 있는 곳에서 1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 말은 곧, 눈앞에 있는 돌더미 몇 개만 치우면 된다는 뜻이었다.

수혁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박정우의 모습과 함께, 중간 지점으로 정한 공간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일단 중간 지점까지 가서 휴식을 취하며 응급처치한 다음, 밖으로 이어진 구멍을 통해 나가면 된다.

부상이 너무 심한 사람은 무리겠지만,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했다.

“정우 선배, 뒤쪽으로 조금만.”

뒤에서 따라오는 박정우에게 떨어지라고 손짓을 한 수혁이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돌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밖이었다면 두세 번의 도끼질만으로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자세가 나오지 않아 한참 동안이나 두들겨야만 했다.

캉캉캉-!

돌과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끼날은 뭉개져서 뭉툭하게 변해 버린 지 오래였다.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감지된 생명들이 정확히 수혁이 있는 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뒤쪽으로 물러서세요!”

‘위험 감지Ⅱ’ 스킬이 반응하지 않는 걸로 봐선, 무너질 위험은 없겠지만 수혁은 혹시 몰라 소리쳤다.

“구조대다! 구조대야!”

돌 너머로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괜찮은 사람이 많나 보구나.’

돌에 가로막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직 힘이 있는 듯 느껴졌다.

단순히 구조대가 왔다는 기쁨에 생기가 도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뒤로 물러서세요!”

다시 한 번 수혁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그제야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괜히 반대쪽에서 도와준답시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수혁은 힘을 내서 다시 팔을 휘둘렀다.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수혁이었지만, 몇 시간째 이런 식으로 이동하다 보니 조금 지쳤었는데, 요구조자들의 음성을 들으니 다시금 힘이 솟구쳤다.

캉, 캉, 캉-!

“흐읍!”

한계에 다다른 도낏자루가 뚝- 하며 부러져 버리는 것과 동시에 돌이 쪼개지며 틈이 벌어졌다.

수혁은 도끼를 옆으로 내려놓고는 손으로 돌을 밀었다.

쿠르르르-

앞을 막고 있던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리며 길이 열렸다.

‘됐다!’

마침내 요구조자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수혁은 지친 표정으로 구멍 밖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다.

‘응? 빛?’

수혁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자신을 비추고 있는 빛이었다.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일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밝았다.

“아…….”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한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트폰이었구나.’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괜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진짜 구조대야!”

“이제 살았어, 살았다고!”

갇혀 있던 사람들이 수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수혁은 구멍에서 급히 빠져나온 뒤에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너무 크게 소리 지르지 마세요.”

현재 이곳은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소리의 진동에 의해 무너져 버릴 가능성도 있었기에, 수혁은 일단 그들을 진정시켰다.

수혁의 행동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점차 잦아들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영화에 보면 그런 장면이 있지 않은가?

눈 덮인 산에서 큰 소리가 난 뒤, 눈사태가 발생하는…….

모르긴 몰라도 그 장면을 떠올린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몇 명이나 됩니까?”

박정우가 물었다.

일단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15명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 거동이 불가능해 이쪽으로 오지 못한 이들도 있을 터.

“저희가 확인한 건 스무 명 정도입니다.”

대답한 것은 군인이었다.

“그럼 다른 분들은?”

“다쳐서 누워계시거나, 아직 잔해 밑에…….”

“저 군인 총각이 애를 많이 썼다네. 그나마 멀쩡한 사람들을 모아서 다른 사람들도 구하러 다니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분이 군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혁은 진심으로 군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 아닙니다.”

군인은 쑥스러웠는지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둘이 온 거요?”

누군가 수혁에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바로 다리가 부러진 진상남이었다.

“일단은 저희뿐입니다만, 조금 있으면 지원이 올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런 구조 작업을 신일서 구조 3팀만의 힘으로 하기엔 무리였다.

지금 밖에서는 다른 서의 구조대와 함께 합동작전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중간 지점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구멍을 조금 더 넓히고, 안전하게 만들면서, 요구조자들을 이동시킬 계획을 말이다.

“고작 둘이서 뭘 어떻게 한다고…….”

진상남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저런 사람 꼭 있지.’

이전 생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 빠졌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두려움과 긴장감이 극에 달했으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피곤하지.’

저런 류의 사람들은 극도의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며 구조에 차질을 주기 일쑤였다.

주위의 반응을 보아하니, 수혁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몇 번이나 분란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수혁과 박정우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저희가 사람 구하는 데는 우리나라 1등입니다. 못 미더우시겠지만, 믿고 제 말에 따라주세요.”

수혁은 그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요구조자.

수혁이 구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웃기는 또 왜 웃어. 지금이 웃을 상황인가?”

진상남은 끝까지 투덜거렸지만, 수혁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럼 일단은 다치신 분들부터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수혁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 부상 입었지만 거동이 가능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제가 나온 곳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줄을 연결해 놨으니 그걸 붙잡고 이분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마음 같아선 수혁이 한 명 한 명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박정우가 있었으니, 그가 선두에서 이끈다면 충분히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좁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 내가 먼저!”

진상남이 손을 번쩍- 들었다.

누가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필사적으로 수혁을 향해 자신을 어필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더 심하게 다치신 분들이 계시니, 그분들 먼저…….”

“나도 다쳤다고! 다리 부러진 거 안 보여?”

“응급처치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썅! 내가 먼저 간다니까!”

“그만 좀 해요! 아까부터 진짜!”

누군가 진상남을 향해 소리쳤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많이 고생했는지 온몸이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는 여자.

박수진이었다.

“뭐, 뭐?”

“지금 아저씨 혼자 다쳤어요? 혼자 여기서 나가고 싶으냐고!”

박수진은 그간 참아왔던 화가 폭발했는지, 진상남을 향해 쏘아붙였다.

수혁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녀는 군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러 다녔다.

가뜩이나 무섭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 와중에도 혼자 이기적인 모습으로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그의 태도에 정말로 미칠 듯이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자신들을 구하러 온 소방관의 말도 듣지 않고 또 저딴 식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너 이년! 내가 누군 줄……!”

“그러니까 아저씨가 누구냐고! 뭐, 대통령이라도 돼?”

박수진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자, 기에 눌린 진상남이 어버버거렸다.

“누군지 말도 못 할 거면 입 닥치고 그냥 있어요. 괜히 다른 사람들 열받게 하지 말고.”

‘허허.’

수혁은 박수진의 모습에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거참, 당돌한 아가씨네.’

수혁이 하고 싶었던 말을 그녀가 대신해 주었다.

괜히 속이 통쾌해진 수혁은 슬그머니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진정하세요. 그쪽 아저씨도 진정하시고. 모두 여기서 나갈 겁니다. 나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애닳아 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선순위에서 좀 밀렸을 뿐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거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갈 수 있었다.

그 정도의 시간은 된다.

“순서를 정해 드리겠습니다.”

박정우가 나서서 부상의 정도와 나이를 고려해서 순번을 정해주고는 그 순서대로 이동하도록 했다.

진상남의 순서는 뒤에서 다섯 번째였다.

수혁을 도와 구조 작업을 하기로 한 네 명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마지막 순번이었다.

사적인 감정이 섞인 결정은 아니었다.

수혁과 박정우 역시 그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감을 가지고 이런 일을 결정할 정도로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수혁은 그가 마지막에 나가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정우 선배.”

수혁이 부르자 박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이동할 시간이었다.

“조심해라.”

“네. 선배도 조심하세요.”

박정우는 수혁의 어깨를 한번 두들겨 주고는 먼저 탈출로로 들어갔다.

“강식 선배, 응급 물품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준비 끝났다. 이제 옮기기 시작할 거야.]

“다른 지원은요?”

[청에서 세 개 팀 지원해 줬다.]

구조팀 세 개라면 열다섯 명이었다.

더 많으면 좋겠지만,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지원팀이 물자 옮기고, 그대로 그쪽 지원하기로 결정. 나머지는 통로 보수에 붙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수혁은 무전을 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게 커다랗던 플랫폼이 붕괴로 인해 사방이 막혀 버렸다.

“저희도 움직이죠.”

수혁은 자신을 돕기로 한 박수진과 군인, 그리고 다른 두 명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명 감지Ⅱ’ 스킬을 사용했다.

투웅-!

동심원이 퍼져 나가며, 생존자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서른두 명.’

수혁에게 감지된 생존자들의 숫자는 32명이었다.

지금 막 통로를 통해 이동하기 시작한 이들을 제외한 수였다.

“이쪽으로.”

수혁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생존자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여자 한 명이 커다란 돌덩어리에 깔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호흡은 있고.’

수혁은 여자의 상세를 살폈다.

다행히 호흡과 맥박은 정상이었다.

잔해에 깔리며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듯했다.

“여기부터 시작하죠.”

“저희 다섯 명으로 가능할까요?”

박수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들만으로 들기에는 여자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보단 힘이 좀 세서.”

수혁 혼자의 힘이라면 조금 무리겠지만, 다른 네 명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분은 여기, 다른 분은 저쪽을 잡으세요.”

수혁은 최대한 여자에게 충격이 가지 않도록 자리를 지정해 주고는 말했다.

“셋 하면 동시에 드는 겁니다. 하나, 둘, 셋!”

“흐으읍!”

수혁의 구령에 맞춰 사람들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어?’

박수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들어 올려진 것이다.

군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별로 안 힘들죠?”

수혁이 그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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