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45화
수혁이 구조 3팀을 데리고 향한 곳은 대형 쇼핑센터에서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그곳에도 부상자들은 있었다.
쇼핑센터에 있던 사람들이 다친 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저흰 이쪽으로 들어갈 겁니다.”
이전 생에서도 신일서의 구조 3팀은 이곳을 통해 구조 작업을 펼쳤었다.
하지만 그들이 구한 사람들을 몇 되지 못했다.
너무 시간을 지체한 바람에 추가 붕괴가 일어나며, 완전히 막혀 버렸던 것이다.
수혁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곳이 가장 안전하고 사람들이 매몰되어 있는 장소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지하철역 붕괴 사고에 대해 엄청난 고민과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박상태나 다른 대원들이 안전하게 구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이곳을 택한 것은 그 고민에 대한 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두 가지를 여기보다 나은 곳은 찾기 힘들었다.
“여기로 진입한다고?”
김강식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무너져 내린 잔해는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자신들만으론 그것들을 치우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일단 해봐야죠.”
김강식의 우려와는 다르게, 수혁은 자신 있었다.
비록 자신의 힘이 중장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저 정도의 잔해들은 충분히 치울 수 있었다.
박상태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말을 따르기로 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더 지체하지 말고 일단 움직여야 한다.
만약 무리라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철수하면 그만이다.
“장비 챙겨서 따라와.”
장비라고 해봐야 도끼나 곡괭이 같은 것들과 코어드릴 정도가 전부다.
구조 3팀의 대원들은 그것들을 들고 통로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수혁 일행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는 간절함과 응원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그들이라고 저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를까?
수혁은 그런 이들의 눈빛을 받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장비 연결하고, 작업 시작해!”
박상태의 명령에 김강식이 코어드릴의 연결을 시작했다.
수혁은 다른 이들과 함께 일단은 잔해들에 붙었다.
손으로 옮길 수 있는 잔해들을 미리 치워두기 위함이었다.
“흐읍!”
수혁은 자잘한 것들은 두고, 한눈에 보기에도 무게가 제법 나가 보이는 것들을 위주로 치우기 시작했다.
“야, 인마! 너 그러다 허리 나간다.”
박상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수혁을 만류했다.
하지만 수혁은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주었다.
솔직히 이 정도는 별로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쉽게 들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조금 힘겨운 듯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이 괴물 같은 놈.”
수혁이 아무리 힘든 연기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박상태는 수혁이 저런 돌을 든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이쪽은 저한테 맡기고 다른 분들 도와주세요.”
수혁이 손에 든 돌덩이를 한쪽에 던지며 말했다.
쿠웅-!
어찌나 무거운 돌이었는지, 돌이 떨어진 곳의 바닥에 쩍- 하고 균열이 갔다.
박상태는 그 모습을 보곤 더는 수혁을 걱정하는 게 시간 낭비임을 깨닫고 이재한을 돕기 위해 이동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웬만한 잔해들을 모두 치웠고, 이제 남은 것들은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들만 남았다.
수혁이 온 힘을 다하면 한두 개 정도는 옮길 수 있겠지만…….
‘미련한 짓이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돌 옮기기 대회가 아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남아 있었다.
시작에 불과한 지금 힘을 다 빼면, 박상태의 말대로 기다렸다가 구조하는 것만 못하다.
수혁은 뒤로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김강식이 차지했다.
박정우와 함께 커다란 유압 코어드릴을 든 김강식은 드릴 날을 사람만 한 크기의 돌덩이에 가져다 댔다.
“틀어!”
김강식의 신호에 수혁이 유압기에 시동을 걸었고, 김강식은 장비를 작동시켰다.
타타타타타-!
코어드릴이 돌덩이를 파고들었다.
그 충격에 단단한 돌의 표면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작업을 하자, 사람만 했던 돌덩이가 완전히 쪼개져 무너져 내렸다.
“치워!”
김강식이 드릴을 치우자마자 대원들이 달려들었다.
시간 싸움이란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들의 움직임이 1초라도 빨라진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니 느릿느릿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희도 도울게요!”
뒤쪽에서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물러서세요!”
하지만 박상태는 그들을 막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저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아직은 안전해 보인다고는 하지만, 언제 추가 붕괴가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다.
괜히 돕겠다고 달려들었다가,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박상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단호한 그의 외침에 의욕적으로 다가오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여기를 돕기보단 다친 분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빠져나가 주십시오. 그게 급선무입니다.”
박상태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 소방관의 말을 거부할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길고 긴 싸움.
그 싸움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이번 작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렸다.
수혁은 마음이 급해졌다.
* * *
“빨리 빼요!”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쇳덩이가 치워졌음에도, 남자는 뭉그적거리며 빨리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다리를 조금 움직이자, 통증이 온몸을 엄습해 온 탓에 끙끙거리며 천천히 다리를 빼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민폐 덩어리가!’
박수진은 하마터면 손을 놓아버릴 뻔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저리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다른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박수진의 힘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그제야 남자가 몸을 완전히 피했다.
“놔요!”
쇳덩이가 땅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박수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다리를 쳐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내 다리, 내 다리…….”
그의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내심 속으로는 아예 회생이 불가할 정도로 짓이겨져 있던 게 아닐까? 했던 박수진의 예상보다는 훨씬 괜찮은 상태였다.
그 남자보다는 주위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상세가 훨씬 위험해 보였다.
“다들 괜찮으시면 다른 사람들도 구하러 가시죠.”
군인 역시 못마땅한 눈으로 남자를 잠시 노려보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부상자를 돕기 위해 움직였던 사람들이다.
군인의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구조대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야 저희도 찬성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부터 파악을…….”
“자, 잠깐만!”
군인의 말을 다리가 부러진 남자가 끊었다.
“날 두고 그냥 간다고? 그럼 나는 어떡하고?”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아니, 나를 돌봐줄 사람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다리도 부러졌는데 여기 혼자 있다가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박수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숫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놨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란 식 아닌가?
“이 아저씨 웃기네.”
참다못한 박수진이 한마디 했다.
“뭐? 이게 어른한테 감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한테 저딴 말이라니…….
“조용! 지금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닙니다.”
군인은 격해지려는 분위기를 잠재우고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지금은 당신보다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더는 분란 일으키지 마세요.”
“구, 구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냐! 내가 누군 줄 알아?”
“아저씨가 누군데요.”
후덕한 덩치에 꽤 좋아 보이는 양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선, 돈깨나 있는 양반 같았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싸늘하게 묻는 박수진의 모습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지금 분위기가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군인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부터 파악한 다음, 한 명씩 구하도록 하죠. 조심히 움직이세요.”
군인의 말에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정지!”
수혁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김강식도 장비를 정지시켰다.
“왜? 여기만 뚫으면 될 것 같은데.”
“위험해요.”
김강식이 드릴 날을 가져다 대자마자, 이명과 함께 ‘위기감지Ⅱ’ 스킬이 발동됐다.
순식간에 붉은 표시가 퍼져 나가며 주변을 잠식했다.
김강식이 건드린 곳을 뚫으면 모두 무너져 버린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잠시 잔해들을 살펴보다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를 뚫어야 할 것 같아요.”
“뭐? 거기는 뚫어봐야…….”
한 사람이나 고작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구멍을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김강식이 고른 곳을 뚫는다면 꽤 큰 틈을 만들 수 있었고.
하지만 수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거긴 위험해요. 무너질 거예요.”
김강식은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김강식은 수혁을 믿었다.
“그럼 여기를 뚫으라고?”
“네, 부탁드려요.”
김강식은 수혁이 가리킨 곳에 코어드릴을 가져다 대고 장비를 가동시켰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돌들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빈 공간이 드러났다.
“팀장님!”
돌들을 옮기고 있던 박상태가 김강식의 외침에 손에 있던 돌을 내려놓고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생기긴 했다.
그런데…….
“너무 작은데?”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사람 한 명이 딱 들어갈 정도에 불과했다.
덩치가 큰 이재한 같은 경우에는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다.
박상태가 수혁을 불렀다.
“여기로 괜찮겠어?”
“충분해요.”
들어갈 사람은 박상태와 박정우, 그리고 자신.
세 명이면 된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계속해서 작업을 해줘야만 한다.
구멍을 넓히고, 조금 더 안전하게 지지대를 세워줄 사람도 필요하니까.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수혁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랜턴을 챙긴 뒤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았다.
구멍이 워낙 작았기에, 기어서 들어가야만 했다.
혹시 앞이 막혀 있을 때를 대비해 장비들도 몇 개 챙겨 끈으로 묶어놓았다.
“정우, 준비해.”
박상태 역시 수혁과 같은 준비를 하고는 박정우에게 명령했다.
“그럼 진입합니다.”
수혁이 구멍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머리에 매단 랜턴의 빛이 구멍 안쪽을 비추었다.
돌들 사이로 사람의 팔이 보였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돌에 그대로 깔려 죽은 모습이었다.
수혁은 그 팔을 보며 속으로 명복을 빌어주고는, 그대로 안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