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42화
발단이 된 것은 차선변경을 하던 고급세단이었다.
세단은 사이드미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 무턱대고 차선을 변경하다 뒤에서 오던 차와 충돌할 뻔했다.
깜짝 놀란 뒤차가 급제동했고, 그 탓에 차가 흔들리며 균형을 잃어버렸다.
보육원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바로 그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앞쪽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버스 기사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옆으로 꺾었고.
버스는 전복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돌.
쾅- 콰과광-!
버스 바로 뒤쪽에서 달리던 차들이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를 들이받았다.
“피해요!”
고가에 진입하자마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던 수혁은 재빨리 핸들을 붙잡고는 소리쳤다.
“꺄악!”
최은송이 비명과 함께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기다란 스키드마크와 함께 차가 미끄러졌고, 쿠웅- 하는 작은 충격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
“이, 이게 대체……?”
최은송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보다는, 버스가 전복됐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여기서 나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요.”
“수, 수혁 씨는요? 어디 가요?”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애들 구해야죠.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마요.”
수혁은 최은송을 안심시킬 틈도 없이 가방을 가지고 차 밖으로 튀어나왔다.
직접적으로 사고가 난 차량은 총 다섯 대.
그중 한 대가 전복된 버스의 하부를 들이받아 기름이 새고 화재가 발생했다.
아직 폭발하진 않을 것 같았지만, 화재로 인해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혁이 빠르게 버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옆에서 낯선 남자 한 명이 따라붙었다.
‘응?’
깔끔한 정장 차림에 뿔테 안경을 쓴 평범한 남자.
‘저 사람이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붙은 버스로 다가가 아이들을 구해내고 목숨을 잃은 그 사람이.
수혁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멈추세요.”
“아니, 저기에 사람들이…….”
“소방관입니다. 구조는 저희가 할 테니 한쪽으로 대피해 주세요.”
소방관이라는 말에 남자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그러고는 수혁의 말대로 더는 버스 쪽으로 다가가지 않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무리하게 나설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됐다.’
이번엔 의인이라는 명예는 얻지 못하겠지만, 대신 계속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편이 낫지.’
수혁은 남자가 완전히 물러선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버스로 다가갔다.
“콜록, 콜록-!”
버스 안에서 아이들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와! 천천히, 한 명씩!”
박상태의 외침도 들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의 창문이 조금씩 깨져 나갔다.
김강식이 버스 내부에 비치되어 있는 작은 비상 망치로 유리를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창문의 유리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
비상 망치로 아무리 내쳐 봐야 흠집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것의 올바른 사용법은 창문의 면이 아닌, 네 모서리를 쳐야 한다.
그래야만 창문을 부수고 탈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김강식은 힘겹게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지만, 버스가 넘어진 탓에 창문이 위로 나 있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버스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배낭 안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
김강식이 들고 있는 것과는 다른, 진짜 묵직한 망치였다.
“비켜요!”
수혁이 안쪽을 향해 손짓하자, 김강식은 재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쾅- 쾅-!
수혁이 망치로 몇 번 창문을 내려치자, 콰자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져 나갔다.
“이거 받아서 넘겨요!”
수혁은 방연 마스크 하나를 꺼내 쓰고는 배낭을 통째로 김강식에게 넘겼다.
배낭을 받은 김강식은 그 안에 방연 마스크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곤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들을 꺼내 아이들에게 빠르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애들 올려요!”
김강식은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웠고, 박상태는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번쩍 들어 위로 올렸다.
“으아앙!”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온 사방을 울렸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수혁은 박상태가 들어 올린 아이들을 받아 들며 차례대로 밖으로 꺼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
불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이런 속도라면 충분히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모두 내보낸 다음은 보육원장과 선생님들이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손 붙잡으세요.”
수혁은 최대한 덤덤한 음성으로 손을 내밀었다.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모습에 사람들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오자 남은 사람은 이제 버스 기사뿐.
그는 사고가 나며 머리를 부딪쳤는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박상태와 김강식이 양쪽에서 들어 수혁에게 올렸고, 수혁은 초인적인 힘으로 버스 기사를 받아 들고는 버스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버스에서 떨어지며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떨어져요! 버스에서 떨어져요!”
버스의 불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혹시 모를 폭발에 대비해 사람들을 대피시킨 수혁은 좀 전에 자신이 만류했던 회사원에게 다가가 버스 기사를 넘겨주고는 다시 버스로 달려갔다.
“상태 형!”
박상태와 김강식은 버스 안에 비치되어 있는 소화기를 꺼내 들고는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거 받아!”
박상태는 남는 소화기 하나를 수혁에게 던져 주고는 그대로 불길을 향해 자신의 소화기를 발사했다.
촤아아아악-!
작은 화재 정도는 순식간에 진압이 가능한 소화기를 셋이 동시에 뿜어대자,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셋이 소화기가 텅텅 빌 때까지 모두 사용하자, 불은 완전히 소화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후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해야 10여 분.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하고 바쁘게 움직였는지, 박상태와 김강식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와아아!”
뒤쪽에서 차를 멈춰 세우고 그들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허허.”
그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박상태가 허무하게 웃었다.
“너는 진짜…….”
수혁에게 뭐라 말을 하려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해 뭐 하겠냐.”
묻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물어봤자, 수혁의 대답은 언제나 했던 것과 똑같을 게 뻔했기에 포기했다.
수혁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김강식은 애초부터 질문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소풍은 물 건너갔네. 어쩌냐? 제수씨랑 좋은 시간도 못 보내고.”
“애들이 무사한 게 우선이죠.”
최은송과의 시간은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었다.
“수혁 씨!”
불이 꺼진 버스 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던 중에 최은송이 수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혁은 버스에서 내려와 최은송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떨까…….’
벌써 두 번째다.
수혁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 지 두 번이나 봤으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혹시나 그녀의 마음이 달라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수혁 씨! 괜찮아요? 어떡해! 어디 안 다쳤어요?”
수혁의 불안감은 괜한 우려였다.
최은송은 수혁에 대한 마음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달음에 달려와 그에게 안기고는 이내 수혁의 몸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런 최은송의 얼굴에는 오직 수혁이 다친 곳은 없는지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했다.
“하하하.”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괜찮아요. 다친 곳 하나 없어요.”
수혁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그녀를 껴안았다.
“아니, 잠깐. 이러지 말고 조금 더 살펴봐야죠! 지금은 흥분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됐기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최은송이 품 안에서 버둥거렸지만, 수혁은 그녀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좋을 때다.”
“그러네요.”
버스 위에서는 아저씨 두 명이 떨떠름한 얼굴로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애애앵-!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는 어째 쉬는 날이 더 바쁜 것 같다?”
박정우가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좀 쉬고 싶은데…….”
“퍽이나 그렇겠다.”
김강식에게 어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은 박정우는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가만 보면 너도 김X일이나 코X 과야. 아주 사건을 따라다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사건을 따라갔으니까.
“그나저나, 여자친구가 그렇게 예쁘다며?”
“예쁘긴 하죠.”
최은송 이야기에 수혁이 실실 웃으며 부정하지 않았다.
연예인들처럼 화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단아하니 보면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언제 한번 소개 안 시켜주냐?”
“글쎄요? 안 그래도 조만간 인사하러 한 번 들른다고 하긴 했는데…….”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수혁과 동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식당 아줌마들의 밥도 맛있긴 했지만, 그래도 최은송이 만들어준 밥이 더 맛있었다.
최소한 수혁의 입맛에는 그랬다.
“오, 좋아. 그런데 혼자 오신대? 다른 친구들은 같이 안 오고?”
박정우가 외로운 늑대의 눈빛으로 수혁에게 물었다.
“왜요?”
수혁이 짐짓 모른 척하며 되묻자 박정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야, 내 나이가 벌써 스물아홉이다. 이 불쌍한 형을 위해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그런 거 몰라?”
“네, 저는 모르겠네요.”
수혁은 박정우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멀리 떨어졌다.
뒤쪽에서 그가 헛웃음을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제는 그냥 친한 형 같았다.
이전 생에서도 그랬다.
바로 위 선배인 박정우는 언제나 수혁을 챙기며 형 노릇을 해주었다.
‘잘됐다.’
최소한 구조 3팀 내에서 더는 수혁을 경원시하지 않았다.
수혁은 그것이 너무도 고마웠다.
냐앙!
치즈가 다가와 간식을 내놓으라는 듯 거만하게 울었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1개월밖에 안 된 놈 주제에 벌써부터 주인 행세였다.
“지금 마음껏 즐겨라, 인마. 얼마 후면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될 테니까.”
수혁은 치즈를 향해 음흉하게 웃어주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간식은 챙겨줘야 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한가하네요.”
웬일로 출동이 적은 날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괜히 또 말이 씨가 된다.”
“이런 날도 있어야죠.”
어제의 일로 박상태와 김강식은 피곤에 전 얼굴이었다.
황금 같은 비번 날에 아이 수십 명을 들어 날랐으니, 지치지 않으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제발 오늘만큼은 별다른 일 없이 넘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물론, 그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아오, 저 주둥이를 진짜 확!”
박상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수혁을 노려보았다.
괜히 뜨끔해진 수혁이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저 먼저 갑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