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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0화 (40/425)

레스큐 시스템40화

수혁은 약속을 지켰다.

기껏해야 5분도 채 되지 않아 정말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수혁이 혼자 또 어디론가 가버리자 가슴이 철렁했던 박상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다녀온 거야?”

“동물 병원에요.”

“거긴 왜?”

동물 병원에 다녀왔다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구조하지도 못했는데 병원 예약이라도 하고 왔단 말인가?

“아!”

하지만 박정우는 수혁이 왜 거길 다녀왔는지 눈치챘다.

“이거 사 왔어요.”

수혁이 꺼내 든 것은 츄르.

고양이들이 환장을 하다못해 이족보행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바로 그 마성의 간식이었다.

박정우가 잘 생각했다는 듯 웃으며 수혁의 어깨를 도닥였다.

그 와중에도 박상태는 아직 이해를 못 한 상태였고.

“이게 고양이들한텐 직빵이에요.”

“그게 뭔데?”

“보시면 알아요.”

반려동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박상태는 궁금한 눈초리로 수혁의 행동을 지켜봤다.

수혁은 츄르의 봉지를 까서는 구멍 쪽으로 밀어 넣고는 뒤로 빠졌다.

“조금 물러서죠.”

아무리 마성의 간식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고양이는 절대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말이다.

셋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멍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다.

“오?”

박상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구멍 안쪽에서 손가락만 한 솜방망이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솜방망이는 경계하듯 츄르를 몇 번 툭툭 치더니, 이내 안심했는지 얼굴을 내밀었다.

수혁이 조심스럽게 구멍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 츄르를 붙잡아 조금씩 밖으로 당겼다.

냐앙-

고양이가 흠칫-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냄새의 유혹을 견디지는 못했는지 차마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다리를 쭈욱 뻗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양이가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다리를 붙잡고는 밖으로 꺼냈다.

냐아아아앙!

깜짝 놀란 고양이가 크게 울며 수혁의 손을 물고 할퀴기 시작했다.

“어이구, 놀랐어요?”

수혁은 최대한 고양이가 안심하도록 품에 안으며 우쭈쭈- 했다.

“치즈냥이네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고.”

“……많이 안다?”

“뭐, 저도 집사라서.”

고양이를 본 박정우는 눈에서 하트를 뿜어대며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얘 어떻게 할까요?”

수혁이 발버둥 치는 고양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물었다.

박상태의 시선이 국밥집 할머니를 향했다.

“저희는 못 키우는데……. 이놈아가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할머니가 고양이에게 다가가려는 손주를 잡아끌며 말했다.

“그럼 일단 저희가 데려갈게요.”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깽이를 길거리에 두고 갈 순 없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가게 냉장고에서 콜라 세 개를 가지고 왔다.

“그래, 고맙다. 잘 마실게.”

박정우가 냉큼 콜라를 받아 들고는 차로 돌아갔다.

“어디 아파 보이지는 않는데…….”

겉으로 드러난 상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피부병이나 눈병 같은 것도 없는 듯했고.

하지만 꾀죄죄하고 많이 야윈 것이, 꽤나 오랫동안 밥을 먹지 못한 것 같았다.

수혁이 손에 든 츄르를 짜주자 고양이는 정신없이 그것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일단 서로 돌아가서 얘기하자고.”

고양이의 거취 문제부터 시작해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고양이였네.”

서로 돌아온 수혁의 품에 안겨 있는 고양이를 본 김강식이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아깽이는 진리지.’

어느 동물이나 새끼 때는 다 귀엽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는 정말 귀여웠다.

“하이고, 요놈 더러운 것 봐라. 가서 좀 씻겨라.”

김강식은 손가락으로 고양이와 조금 놀아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이놈 어쩔까요?”

수혁이 데리고 가서 키우는 것은 무리였다.

고시원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저도 좀…….”

이미 고양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 박정우도 고개를 저었다.

“음.”

보통 이렇게 동물을 구조해 오는 경우에는 동물 병원이나 동물 보호소에 맡기거나, 임보(임시 보호)를 보낸다.

동물들을 구조해 올 때마다 소방관들이 데리고 가서 키울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박상태는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고양이를 안고 있는 수혁의 눈빛이 심상찮았다.

“이 녀석 우리가 키우면 안 돼요?”

“너 고시원 산다며.”

“아니요. 여기에서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인마, 여기서 고양이를 어떻게 키워.”

“밥 주고, 물 주고. 가끔 한가할 때 놀아주고. 사람도 24시간 내내 있으니까 외롭지도 않을 테고.”

“밥값이랑 그런 건 누가 내고?”

“제가 내죠, 뭐.”

박상태는 수혁이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깨달았다.

“아니, 그래도 소방서에서 고양이 키우는 건 좀…….”

“저도 찬성이요.”

박정우가 수혁의 지원을 나섰다.

이미 집에 몇 마리나 있어서 더 데리고 가진 못해도, 여기서 기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저랑 수혁이가 같이 돌보면 되겠네요. 2팀에도 고양이 좋아하는 분이 계시니까 그분도 같이요.”

박상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본래 동물과 친하게 지내본 적도 없었던 데다, 고양이는 조금 꺼려졌던 것이다.

특히나 발정기에 울어대 건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이 키우자고 하는데 대놓고 거절하기가 좀 그랬다.

“다른 팀들이랑 얘기 좀 해보고. 여기 우리만 쓰는 데도 아니니까.”

절반의 허락이었다.

수혁과 박정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음…….”

수혁은 고민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르고, 어느 보육원인지도 모르니, 방도가 없네.’

보육원 버스사고에 대해 수혁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장소뿐이었다.

그 사고가 났을 당시에 수혁은 비번이었기에 직접 출동을 하지 않아 정확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대책을 세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어떻게 한다?’

이런 걸 알 수 있는 스킬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그때, 다리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냐아앙.

수혁이 밑을 내려다보자, 얼마 전 구조해 온 고양이가 머리를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왜? 배고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양이는 신일서에서 맡아 키우기로 결정되었다.

사실 다른 대원들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반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 내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녀석을 키울 수 있게 된 이유는, 바로 서장이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의외이긴 했지만, 대빵이 키우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었다.

‘뭐, 이미지 때문에 그런 거지만.’

서장은 훼손된 신일서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데 고양이를 이용했다.

사진을 몇 장 찍으라고 지시하고는 그대로 신일서 SNS에 올려 버린 것이다.

귀엽기 짝이 없는 외모에다, 구조대원들이 직접 구조를 해서 키운다는 사실이 알려져 꽤나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서장의 의도대로 이미지가 제법 좋아지기도 했고.

“아까 밥 먹었잖아, 인마.”

바닥에 벌러덩 뒤집어 자빠지는 녀석의 배를 살살 긁어주자 고로롱- 소리를 낸다.

“치즈야아-”

녀석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박정우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고양이의 이름은 투표를 통해 결국 털 색에 어울리는 치즈로 결정되었다.

참고로 수혁은 빙구라는 이름을 건의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고 거부되었다.

‘하는 짓이 빙군데…….’

수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서랍에서 간식 하나를 꺼내 들었다.

“또 주냐? 아까 밥 먹였다며.”

“맛 들었나 봐요. 밥을 먹어도 꼭 이걸 찾네요.”

“너무 자주 주진 마. 그러다 살찐다.”

치즈는 간식을 꺼내자 미친 듯이 점프를 뛰며 수혁에게 안겼다.

“진정 좀 해라. 아주 먹을 거만 보면 사족을 못 쓰네.”

수혁은 들러붙는 치즈를 간신히 떼어내며 간식을 먹였다.

그때였다.

“전화가……. 응?”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폰을 꺼내 든 수혁은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어쩐 일이에요, 이 시간에?”

[그냥요. 조금 한가한 시간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지금 바빠요?]

음성의 주인공은 최은송이었다.

“아뇨, 저도 지금은 좀 한가하네요. 고양이 간식 주는 중이에요.”

[아, 전에 걔요? 귀엽게 생겼던데.]

둘은 치즈에 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최은송 역시 고양이를 꽤 좋아해서 언젠가는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 그건 그렇고. 수혁 씨 비번이 언제였죠?]

“내일모레이긴 한데, 왜요?”

[와, 잘됐네요. 다른 게 아니라, 전에 같이 간 밀알 보육원 있잖아요?]

“봉사활동 가시게요?”

[음, 봉사활동이긴 한데……. 이번에 거기 아이들이 소풍 가기로 했거든요.]

그녀의 말에 수혁이 퍼뜩- 자세를 바로 했다.

‘설마?’

[어느 좋으신 분이 버스도 대절해 주시고, 일체의 비용도 전부 대주시겠다고 해서. 저도 그날 따라가서 애들 밥 좀 먹이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물론이죠!”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그래요.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네.]

아하하- 웃는 소리에 역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그날 봐요. 네, 네. 그럼 수고해요.”

전화를 끊은 수혁은 메모지를 꺼내 들고는 다급히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뭐야? 무슨 중요한 약속 생겼어? 여자친구?”

수혁의 통화를 슬쩍 들은 김강식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 네. 비번에 같이 어디 좀 가자고…….”

평소였다면 조금 부끄러웠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들 겨를이 없었다.

사고가 나는 버스가 그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았다.

보육원, 버스, 소풍.

시기까지 생각하면 가장 조건에 맞아떨어진다.

“그래? 어디 좋은 데 가기로 했나 봐?”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박상태 역시 아재 특유의 흐물흐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데긴 좋은 데죠. 여자친구가 봉사활동을 다니는 보육원이 이번에 나들이 가기로 했는데, 거기 가기로 했어요.”

“오…….”

보육원 봉사활동이라는 말에 두 아저씨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제수씨가 좋은 일 하네. 너한텐 좀 과분한 거 아니냐?”

“그러게, 이놈은 사고만 칠 줄 알지.”

둘은 수혁을 놀리고 싶었는지, 주변을 맴돌며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이라면 모를까, 뼛속까지 아저씨의 감성을 지닌 수혁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저씨들의 재미없는 농담보다는 이번에 일어날 사고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다 뭔가가 떠올랐다.

“두 분. 비번에 뭐 하세요?”

“응? 나야 마누라랑 애들 등쌀을 이겨내고 행복한 휴식을 즐길 계획이다만.”

“나도 뭐…….”

다행히 별다른 계획은 없는 것 같았다.

“좋은 일 한번 하실래요?”

수혁이 꿍꿍이 가득한 미소를 활짝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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