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39화 (39/425)

레스큐 시스템39화

“요리사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순간 최은송의 관자놀이에서 핏줄이 솟는 것이 보인 것 같았다.

“누나라고 부르라니까? 아직 나 아줌마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거든?”

아이들은 최은송의 말에 와하하! 웃었다.

“야, 놀지 말고 이리로 와서 짐 옮기는 거나 도와. 내가 너희 밥해주는 것도 힘든데, 이런 것도 직접 해야 하니?”

최은송이 허리에 손을 얹고 짐짓 엄하게 말하자, 아이들이 잽싸게 트렁크 쪽으로 갔다.

“어? 아저씨는 누구세요?”

최은송과 달리 수혁은 아저씨라는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속은 아저씨가 맞았으니까.

“여기 이 아줌마 남자친구야.”

“아하하, 무슨 얘기실까?”

최은송이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지으며 다가왔다.

“남자친구래!”

“오올.”

개중에 머리가 제법 굵어 보이는 애들이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최은송을 쳐다보았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짐 날라!”

그녀의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솟아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최은송의 요리는 맛있었다.

레스토랑에서 하나하나 집중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20인분이 넘는 양을 조리했음에도 그랬다.

자신만만했던 모습이 허세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최은송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는, 익숙한 듯 보육원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빨래도 하고, 아이들도 씻기고, 놀아주기까지.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낯설어했던 수혁 역시 어느새 적응되었는지, 장난치며 즐겁게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네요.”

“언니, 집에 가?”

이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손에 때가 낀 토끼 인형을 든 자그마한 여자아이 하나가 최은송에게 다가왔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게, 어지간히 헤어지기 싫은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

“자고 가면 안 돼?”

한 손엔 토끼 인형을, 다른 한 손으론 최은송의 손을 붙잡았다.

“금방 또 올게, 세희야.”

최은송도 세희라 불린 아이가 눈에 밟혔는지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쳤다.

“몇 밤 자고 와?”

“음……. 열 밤?”

“그렇게 늦게?”

“그럼 세 밤으로 하자. 괜찮지?”

“응!”

세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은송은 그런 세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일어났다.

“이제 가죠.”

“저는 좀 더 놀아줘도 되는데.”

“힘들어서 안 돼요.”

최은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체력을 지닌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최은송은 꽤 지친 모습이었다.

‘하긴, 애들하고 놀아주는 게 쉬운 건 아니지.’

피곤해 보이는 최은송의 모습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보육원장은 선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뭘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죠.”

보육원장은 최은송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수혁을 쳐다보았다.

“은송 씨한테 이렇게 멋진 남자친구가 생겨서 다행이에요.”

“제가 아깝지 않아요?”

“무슨, 남자친구가 훨씬 아까운데.”

수혁을 사이에 두고 둘은 장난을 쳤다.

“감사합니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 수혁은 멋쩍게 인사를 했다.

“다음에도 은송 씨랑 같이 와요. 애들이 잘 따르는 것 같은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무 날이 아니라면 이렇게 한 번씩 와서 일을 돕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최은송과 데이트도 하고.

“그럼 저희 가요. 다음 달에 봬요.”

“조심히 들어가요.”

“누나! 또 와야 해!”

“맛있는 거 가지고!”

최은송에게 아줌마라 불렀던 녀석들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는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다음에 보자!”

수혁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차에 탔다.

“힘들었죠?”

“아뇨? 저 보기보단 체력 좋아서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수혁이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말하자, 최은송이 풋- 하고 웃었다.

“그나저나 데이트 같지 않아서 어떡해요?”

“전 여기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솔직히 말하자면 좋았다.

최은송의 의외인 면을 보기도 했고.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혼자선 힘들었는데, 그럼 종종 같이 와요.”

마치 계획에 성공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저녁이라도 같이하고 싶었지만, 최은송의 얼굴이 너무 지쳐 보여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조만간 또 보자는 약속을 하고는 헤어졌다.

고시원으로 돌아온 수혁은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생각에 잠겼다.

최은송이 보육원을 간다고 했을 때부터 수혁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

“그러고 보니 그 사건도 이때쯤이었지.”

한 보육원에서 휴일에 소풍을 나갔다가 벌어진 참변이었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대절한 버스가 고가도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키며, 화재가 발생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대신,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일반인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지.”

남들은 연기를 피해 터널 밖으로 도망치기 바빴지만, 그는 달랐다.

10여 명의 아이를 버스에서 모두 대피시킨 그는, 안타깝게도 유독가스를 너무 많이 마셔 사망하고 말았다.

“그것도 막아야 할 텐데.”

아이들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꿀 정도로 의로운 사람을 죽게 놔둘 순 없었다.

“……설마 그 보육원은 아니겠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하루 종일 놀아주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잘 쉬었냐?”

“네, 형은요?”

“나야 뭐…….”

말끝을 흐리는 박상태의 모습은 그리 잘 쉰 것 같진 않았다.

“병원은 다녀왔고?”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아프기는커녕, 팔팔했다.

공장 안을 수색하며 입었던 약간의 화상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의사들이 보면 경악할 만한 회복력이었다.

“새끼, 말 진짜 더럽게 안 들어.”

“말 안 듣는 게 제 특기잖아요.”

“잘 났다, 이 새끼야.”

박상태는 수혁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인수인계를 끝마친 구조 3팀이 각자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자, 주목.”

들어온 사람은 신일서의 서장이었다.

갑자기 웬일로 서장이 구조대에 찾아왔는지 의아한 대원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아침부터 이런 소식 전하는 게 좀 갑작스러운데…….”

서장은 잠시 말꼬리를 흐리다가 혀를 차며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구조대장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있던 수혁조차 놀랄 일이었다.

기사가 나간 지 고작해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에다, 국민청원까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그만큼 위에서도 안 좋게 봤다는 뜻인가?’

소방관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신임 대장은 아직 계획이 없고, 당분간은 1팀장이 대행을 하기로 했으니까 괜히 어수선하게 굴지들 말고, 업무에 집중하도록.”

서장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수혁이 고개를 돌려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때마침 박상태 역시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상태에게, 수혁은 어깨를 으쓱- 하며 웃었다.

“뭔 일이에요?”

“공장 폭발 때 명령 때문인 것 같은데.”

김강식과 박정우가 속삭였다.

“저놈, 저거 이제는 대장도 날려 버리네.”

박정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수혁을 가리켰다.

“옷 안 벗은 게 다행이지, 뭐.”

구조 3팀의 대원 중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통쾌하다는 분위기였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구조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고한선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그들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테니까.

“소란 피우지 말고 일이나 해. 서장님 말씀 못 들었어?”

박상태가 책상을 두드리며 말하자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고한선이 다른 곳으로 발령 난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을 굳이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괜한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수혁아, 우리 운동이나 갈까?”

본인 업무를 다 끝냈는지, 김강식이 수혁을 향해 물었다.

“운동이요?”

소방관들은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체력 단련실에서 보낸다.

특히나 구조대는 더욱 그랬다.

체력이 좋아야 요구조자도 구하고, 자신 역시 살아나올 확률이 높아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목숨 바쳐 하는 일이긴 했지만, 정말로 죽고 싶은 구조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까요?”

사실 체력 단련실에서 하는 운동은 수혁에게 그리 의미가 없었다.

수혁의 육체는 그런 운동으로 단련이 되기에는 너무도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운동하는 것보다 퀘스트를 깨서 레벨 업을 하는 쪽이 훨씬 큰 성장을 할 수 있었고.

하지만 수혁은 김강식을 따라 체력 단련실로 갔다.

그것이 가만히 책상머리 앞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으니 말이다.

고한선이 사라지고 나서 기분이 좋아 몸을 좀 움직이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였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수혁과 김강식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하늘은 그들이 한가롭게 운동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듯했다.

구조 3팀은 밖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수혁이었다.

구조차에 탑승한 수혁은 재빨리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사이 도착한 박상태가 상황실과 무전을 시작했다.

[가게 벽 사이에 고양이가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동물 구조 신고다.

박상태는 뒷좌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 내려. 나랑 김수혁, 박정우만 간다.”

동물 구조라면 대원들 전부가 출동할 필요는 없었다.

맹수도 아니고, 고양이를 구조하는 것이라면 이 세 명이면 충분했다.

다른 대원들이 내리고 난 뒤 출발한 차가 잠시 뒤 도착한 곳은 근처의 재래시장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방차의 출연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혹시 무슨 사고가 벌어진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쪽이에요!”

차에서 내리자 누군가 손을 흔들며 대원들을 불렀다.

이제 막 중학생이나 됐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박상태가 가장 먼저 그쪽으로 다가갔고, 수혁과 박정우는 몇 가지 장비를 챙겨 그 뒤를 따랐다.

아이가 안내한 곳은 순대국밥을 파는 작은 가게였다.

아이의 할머니가 하는 가게 같았다.

“아이고, 괜히 이런 일로 신고를 해서 안 그래도 바쁘신 분들을 이렇게…….”

“아니에요, 할머니. 이것도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할머니는 고작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119 신고를 했다는 게 민망했는지, 연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신고는 할머니의 손주가 한 것 같았다.

“어느 쪽이니?”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긴장했는지, 고양이는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좀 전까지 이 벽 안에서 울고 있었어요.”

아이의 말에 수혁이 벽 쪽으로 다가가 살폈다.

석고 자재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벽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수혁이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박정우가 랜턴을 들어 구멍 안쪽을 비춰보자, 그제야 고양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한 마리네.”

“새끼죠?”

“그런 것 같다.”

“구멍이 너무 작은데?”

고작해야 주먹 두 개가 들어가면 끝일 것 같았다.

사람을 경계하는 길고양이를 이런 작은 구멍을 통해 구조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손 넣어봐.”

박상태의 말에 박정우가 몸을 수그려 구멍 안쪽으로 팔을 집어 넣어봤다.

하지만 고양이가 있는 곳까지 닿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시야를 확보할 수도 없었으니 올무나 집게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벽을 부숴야 하나?”

그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긴 했다.

하지만 남의 가게를 멋대로 부술 순 없었다.

박상태와 박정우가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수혁이 뭔가를 떠올렸다.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요.”

“또 어디 가려고!”

“금방 올 거예요!”

또 혼자 어디 간다고 하자 기겁하는 박상태였지만, 수혁은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흔들고는 어디론가 빠르게 달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