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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8화 (38/425)

레스큐 시스템38화

-이게 나라냐?

-사람을 구하러 간다고 해도 말려야 할 판에, 저딴 로봇 하나 구하라는 명령을 했다고?

-미쳤네, 진짜.

-제발 세금 좀 국회에 앉아 있는 놈들 말고 소방관 분들한테 좀 쓰자.

-명령 내린 사람 잘라라.

-개발비 수십 억ㅋㅋㅋ. 첫 출동에 고장ㅋㅋㅋ. 헬조선이 헬조선했네.

인터넷이 뜨거워졌다.

기사들은 순식간에 온갖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고한선을 맹비난했고, 그것은 조금씩 윗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소방관들의 이미지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공무원들 중 신뢰도 면에선 따라올 부서가 없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는 데다, 대우까지 박하니 민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미지가 박살이 나고 있었다.

일선에서 직접 발로 뛰는 소방관들에겐 여전히 우호적이었지만, 소방청과 고위급 인사들에게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효과가 너무 좋은데?”

수혁이 노트북을 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하니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고한선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화재 현장에 구조대원을 투입한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청원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 정도까지 사람들이 분노할 줄은 몰랐다.

“옷을 벗을 수도 있겠어.”

수혁이 바란 것은 그저 인사이동이나 감봉 정도였는데, 잘하면 그 이상의 징계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기가 자초한 거니까, 뭐.”

수혁은 노트북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준비해야지.”

오늘은 오랜만에 최은송과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연락은 자주 했지만, 사실 서로 너무 바빠서 그동안 몇 번 만나지 못했다.

“뭘 입고 가야 하나?”

수혁은 패션 센스가 그리 좋지 못했다.

멋을 부리고 다니기에는 그간 여유가 너무 없었다.

비번엔 집에서 쉬기 바빴고, 밖에 나간다 해도 그저 편한 트레이닝복을 선호했다.

하지만 오늘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갈 순 없었다.

“흐음…….”

좁디좁은 고시원 방의 붙박이장을 열어봤다.

몇 벌 되지도 않는 옷들이 걸려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근무복을 입고 나갈 순 없었기에 수혁은 그나마 상태가 좋아 보이는 것들을 골라 입었다.

“좀 편한 옷을 입고 오라고 했으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최은송은 수혁에게 활동하기 좋은 옷을 입고 나오라는 부탁을 했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옷들이 전부 그런 것들밖에 없긴 했지만…….

수혁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충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이 지긋지긋한 고시원도 진짜 나가야 하는데.”

매번 출근할 때마다 하는 소리였다.

이전 생에서도 죽을 때까지 이 손바닥만 한 집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 지겨울 만도 했다.

“문제는 돈이지.”

이런저런 수당까지 합치면 그리 적지 않은 월급을 받긴 했지만, 아직 집을 옮기기에는 요원했다.

“무슨 청년 전세 대출 같은 걸 받아야 하나?”

이전 생에서는 집은 잠만 자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래도 좀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그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지금은 최은송과의 약속이 우선이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은 여유로웠기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한 수혁이 정류장을 향해 갈 때였다.

갑자기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응?”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들고 확인해 보니 최은송이었다.

“여보세요?”

[수혁 씨, 출발했어요?]

“아, 지금 막 집에서 나왔어요.”

[다행이네요. 집 앞에서 조금만 기다려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살짝 당황했다.

“저희 집은 어떻게……?”

수혁이 묻자 최은송이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승우 씨한테 물어봤죠. 아무튼 거의 다 와가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를 끊은 수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시원 쪽으로 되돌아갔다.

‘진짜 집을 옮기긴 해야겠네. 이거 쪽팔려서…….’

고시원 생활을 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조금 좁긴 하지만, 보증금도 없고, 월세도 싼데다, 결정적으로 밥도 나왔으니까.

하지만 여자 친구에게 보여주기엔 확실히 좀 그랬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부족해 보일 테니까.

고시원 건물 앞에서 뺨을 긁적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하얀색의 잘빠진 외제차 한 대가 그 앞에 섰다.

수혁이 설마 하며 그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며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혁 씨!”

최은송이었다.

혹여 뒤의 차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수혁은 빠르게 차로 달려가 탔다.

“오랜만이에요.”

최은송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러게요. 그동안 너무 바빠서…….”

“수혁 씨만 바빴나요.”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건만, 수혁은 조금의 어색함도 느끼지 못했다.

확실히 최은송은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러고 보니 최은송의 복장이 좀 이상했다.

간만의 데이트라고 한껏 힘을 주고 나올 줄 알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수혁처럼 편한 복장이었다.

“미리 뭘 좀 준비 했어야 했는데, 제가 오늘 늦잠을 좀 자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수혁 씨랑 같이 준비하려고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를요?”

“가보시면 알아요.”

왠지 짓궂어 보이는 미소와 함께 최은송이 차를 몰았다.

“어……. 여긴?”

잠시 후 차가 멈춘 곳은 한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바로 예전에 수혁이 납치된 아이를 구한 그곳.

수혁은 최은송이 왜 여기를 왔는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장 좀 같이 봐요.”

“장이요?”

오늘 데이트하는 날 아니었나?

갑자기 장이라니…….

뜬금없는 부탁에 수혁은 더욱 당황했다.

‘설마하니 밥을 해준다는 소린가?’

괜히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김칫국이었다.

최은송이 사는 재료들의 양은 수혁에게 해주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카트 두 대가 고봉밥처럼 가득 찰 정도였으니까.

“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많이 사는 거예요?”

장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여자와 이렇게 나란히 장을 본다는 행위 자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같이 장을 보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많이 사는 것인지 아직 알려주지 않았기에 궁금증은 계속 커져만 갔다.

“봉사요.”

“……봉사요?”

심 봉사 할 때 그 봉사는 아닌 것 같고.

“네.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봉사를 가는 곳이 있거든요. 오늘이 그날이라서…….”

최은송은 말을 하며 수혁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기분 상하신 건 아니죠?”

마치 강아지처럼 자신을 쳐다보는 최은송의 모습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제가 왜 기분이 상해요?”

“모처럼의 데이트인데…….”

“저도 좋아해요, 자원봉사. 잊었어요? 저 소방관이에요.”

직업 자체가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소방관이다.

재난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뿐만 아니라, 잠긴 문을 따기도 하고, 벌집도 제거하고, 심지어 고양이도 구조한다.

비번이긴 했지만, 최은송과 같이하는 봉사라면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다행이네요.”

살짝 조심스러웠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둘은 그렇게 엄청난 양의 재료들을 사서 다시 차로 돌아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구입한 것을 보면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려는 것 같은데.

“보육원이요.”

“아…….”

보육원이라는 말에 수혁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역시 고아였다.

이쪽 동네는 아니고, 지방의 작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덕분에 그곳 아이들의 생활이 어떤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애들이 좋아하겠네요.”

“그렇죠?”

보육원은 항상 부족하다.

적게는 십여 명에서 수십 명까지 공동생활을 해야 하니,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특히 음식.

옛날과는 달리 간식도 자주 나오고 밥도 잘 나온다고는 하지만, 한창때의 아이들에게는 턱도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보육원의 아이들은 매달 오는 최은송을 눈알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수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은송을 쳐다봤다.

몰고 있는 차를 보면 꽤나 잘사는 집안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최은송 자체가 능력이 있거나.

둘 중 어느 것이라 해도 직접 나서서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려고 마음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요? 새삼 반했어요?”

너무 빤히 쳐다본 탓일까?

최은송이 밝게 웃으며 수혁을 쳐다봤다.

“누, 누가 반했다고. 그냥 얼굴에 뭐 묻어서 본 거거든요?”

“어머, 뭐가 묻었어요?”

“아름…….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뻔했던 수혁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아재 감성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니, 아재 개그는 둘째치고,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할 뻔했으니…….

괜히 민망해진 수혁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은 어느새 빌딩 숲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보육원이니 시내 쪽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안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외진 곳이었다.

“보육원이 이렇게 멀리 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도시 개발이다 뭐다 해서, 여기까지 밀려났다고 하더라고요.”

“쯧.”

급격한 신도시 개발에는 이런 단점도 있었다.

“애들 학교 다니려면 고생 좀 하겠네.”

“다행히 등교는 다른 봉사하시는 분이 맡아주셨어요. 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데다, 학교까지 거리도 꽤 돼서…….”

최은송의 말에 따르면 그분은 시내에서 커다란 학원을 운영하시는 분이란다.

학원 픽업 차량으로 애들 등교를 돕는 거고.

물론 하교 시에는 학원 업무를 봐야 하니, 그것까지는 해줄 수 없는 것 같았다.

“좋은 분이시네.”

“그렇죠?”

최은송의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이 계시니까.”

수혁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리 빡빡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좋은 사람도 많았다.

의인(義人)이라 불리는 분들.

이전 생에서도 많은 의인이 있었다.

화재, 지하철 낙하, 교통사고 등등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들이다.

그들 중에서는 대신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최은송의 말대로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한 곳 같았다.

“이제 다 왔어요.”

최은송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수혁이 앞을 보자, 작은 간판이 하나 보였다.

[밀알 보육원.]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적힌 그것은, 제대로 된 보수를 하지 않았는지 온통 녹이 슬어 있었다.

“와아아!”

보육원 안쪽으로 차가 들어가자,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역시 한두 번 와본 것이 아닌지, 아이들은 최은송의 차를 알고 있었다.

“애들이 참…….”

“활발하죠?”

활발하다고 해야 할까?

그것보단 간식 냄새 맡은 강아지들의 모습 같았다.

“먹을 거다!”

“고기다! 고기!”

“은송 씨보단 먹을 거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요?”

“제 요리가 좀 맛있죠.”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최은송은 재치 있게 맞받아쳤다.

“전 못 먹어봐서 모르겠네요.”

“오늘 드셔보세요.”

차 밖으로 나간 최은송은 몰려드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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