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35화
“전 안 들어갑니다.”
가장 먼저 반대한 것은 김강식이었다.
그는 바로 얼마 전 죽다 살아났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죽었거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번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딸을 보지 못할 뻔했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공장 안에서 구해야 할 것이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김강식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기계 따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가 웬만하면 명령을 듣고 싶은데…….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박정우는 연신 헛웃음을 내뱉었다.
“막말로 들어갔다가 공장 터지면? 이건 명예고 뭐고, X도 아닌 거예요.”
대원들이 반발하자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대장이 정확히 뭐라고 하는데요?”
어이가 없어서 가만있던 수혁이 물었다.
박상태는 수혁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과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해 보십쇼.”
옆에서 침을 찍찍- 뱉고 있던 이재한이 재촉하자,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니들 몸값보다 비싼 거니까 꼭 가지고 나오란다. 니기미.”
“돌았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한선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구조대에서 가장 막내인 수혁이 감히 구조대장에게 욕을 했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역시도 참지 못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터트리고 있었으니까.
“안 합니다, 안 해요.”
고한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제발 가지고 나와달라고 사정을 해도 내키지 않을 판에 뭐?
니들 몸값보다 비싸니까 가지고 와야 한다고?
그딴 말을 듣고 공장 안으로 들어갈 대원들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지 마. 내가 책임질 테니까.”
박상태는 열불이 나는지 방화복을 벗어던졌다.
‘이거 진짜로 미친놈이네.’
이름이 복잡해서 외우지도 못할 그 구조 로봇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전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첫 투입에서 고장이 났다.
하지만 그 대처는 지금과는 완전 정반대였다.
조연서의 구조대장인 김철중은 고한선과 다르게, 화재가 진압된 후에야 장비를 회수했다.
그러곤 이딴 불량품을 보급한 소방청에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하마터면 이 불량품 때문에 자기 새끼들이 위험할 뻔했다면서 말이다.
고한선에게 그런 액션까지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몸값 운운하는 건 정말로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그때였다.
박상태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든 박상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아-”
‘고한선이네.’
그의 표정만 봐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박상태는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뭐요?”
당연하게도 박상태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퉁명하기 그지없었다.
“못 들어간다니까. 아니, 안 들어간다고! 거기 들어갔다가 우리 애들 죽으면? 그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예?”
“자기 평가 내려갈까 봐 저 지랄하는 것 같다.”
박상태의 통화를 듣고 있던 김강식이 수혁에게 속삭였다.
“평가요?”
수혁은 모르는 척 되물었다.
“저 로봇이 현장에 투입되는 건 전국에서 우리가 제일 처음이란다. 모르긴 몰라도 꽤나 많은 사람이 관심 가지고 있을 거야. 저기만 봐도 알 수 있지.”
김강식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는 으레 기자들이 붙게 마련이지만, 평소보다 많아 보였다.
“아마 위쪽에서 보낸 기자들이겠지.”
그러니까 홍보용이라는 뜻이었다.
개발에만 수십억.
대당 4억이라는,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장비가 첫선을 보이는 현장이었으니…….
만약 그 로봇이 제대로 작동만 했다면 꽤나 큰 홍보 효과를 누렸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게 발목을 잡겠지만.
“그런 상황에 로봇이 고장 나서 홀라당 불탔다고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되겠냐?”
“욕 좀 들어먹겠네요.”
“대장에 대한 평가도 꽤나 떨어질 테고. 우리 대장, 그런 거 싫어하잖아.”
고한선은 출세 지향보단 안전제일을 선호한다.
확실히 공무원 마인드였다.
그런 고한선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는 꼴을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화를 참지 못한 박상태가 다시 소리쳤다.
한쪽은 무조건 로봇을 가지고 나오라는 입장이고, 다른 한쪽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으니 대화가 끝날 리가 없었다.
수혁은 가만히 생각하다 손을 들었다.
“제가 가져올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노려보다 전화를 끊고는 다가왔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걸 네가 왜 가져와?”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대당 4억이라는데, 그런 걸 그냥 두고 나올 순 없죠.”
수혁이 씨익- 하고 웃으며 말하자, 대원들의 시선이 변했다.
마치 ‘저 미친놈이 또?’라는 눈빛.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며 수혁의 팔을 붙잡고는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생각이야? 공장 곧 터질 것 같다며?”
“네. 아마 얼마 안 있으면 폭발할 거예요.”
“그런데 거길 왜 기어들어 가? 진짜 미쳤어?”
박상태가 걱정스러운 낯빛을 했다.
수혁은 그런 박상태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전에 빠져나올 수 있어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알아요, 형.”
수혁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그냥 대장한테 빅엿 좀 먹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수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괜찮겠냐?”
“네, 괜찮아요. 적어도 제가 나올 때까진 폭발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대체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다들 그러려니 했다.
“그럼 같이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 어차피 시간이 좀 남았다면 그렇게 하는 게 더 빠를 테고.”
“아니요, 혼자 갈게요. 그게 편해요.”
박상태와 대원들은 그런 수혁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수혁이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위험해 보였다.
사실 그들의 걱정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공장이 폭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수혁이 빠져나오는 것보다 폭발이 일어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수혁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스킬이 생기다니…….’
수혁은 조금 전 요구조자들을 구조한 뒤 나타난 퀘스트 완료 보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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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성공!
*당신은 퀘스트를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필요 경험치 충족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 업!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레벨 15가 되었습니다.
*화상을 입을 확률이 소폭 감소합니다.
*스킬 ‘실드I’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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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드’라…….’
스킬을 얻자 수혁은 곧장 사용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지속 시간은 최대 5분. 그 시간 동안에는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
그것이 화염이든, 열기든, 그도 아니면 무너져 내리는 천장이든.
그 어떤 것도 수혁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살면서 핵에 맞을 일이 있기나 할까.’
화학 공장의 폭발력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긴 하겠지만, 수혁은 ‘실드’가 그것을 완벽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네 말을 믿기는 한다만……. 그래도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싶으면 그냥 바로 내빼. 나는 저딴 깡통 따위보다 내 대원이 백만 배는 더 중요하니까.”
“알았어요.”
수혁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박상태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고는 20㎏이 넘는 장비를 매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수혁은 대원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공장 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한창 방수하고 있던 화재 진압대의 대원들이 그런 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불을 끄느라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예상을 했다.
구조대 대장 고한선이 어떤 사람인지는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일부는 안쓰러운 얼굴로, 또 다른 일부는 분노한 얼굴로.
화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계단이 이쪽이었던가?’
공장 안은 조금 전 돌입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화재로 인해 내부 시설이 무너져 내리며 구조가 바뀐 탓이었다.
수혁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굼뜨게 행동했다간 그대로 통구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열기였다.
‘내가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이런 불 속에선 견디기 힘들지.’
수혁은 넘실거리는 화염의 틈을 찾아 이동하며 어디선가 나뒹굴고 있을 로봇을 찾았다.
‘분명, 이 근처일 텐데.’
로봇을 2층으로 보내려던 와중에 고장이 났으니, 이 근방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설마… 어디 묻혀 있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그 안에 깔려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젠장.”
설마 했던 상황이었다.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들어왔으니,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얼굴을 일그러뜨린 수혁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실드’가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5분이다.
5분이면 충분히 몸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빨리 찾아야 돼!’
수혁은 약간의 무리는 감수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퀘스트를 깨며 화상에 대한 저항력이 적게나마 상승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수혁은 무서운 속도로 잔해들을 파헤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손을 가져다 댈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수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크윽!”
수혁이라고 해서 뜨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들보단 덜 할 뿐, 타오르는 듯한 작열통이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수혁은 참았다.
박상태에게 말했듯이, 고한선에게 빅엿을 먹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고한선이 다시는 이런 일로 대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로봇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큰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로봇을 찾는 편이 더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불 속을 헤맸을까?
수혁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저거다!’
불에 타서 제 형체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로봇.
‘내연성 신소재라더니!’
그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고장이 난 이유도 열기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수혁은 헛웃음을 지으며 로봇을 집어 들었다.
꽤나 무거웠지만, 수혁에게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였다.
로봇을 찾은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슬슬 때가 됐군.’
타이밍이 좋았다.
때마침 로봇을 발견하자마자, 온 사방이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실드’.’
우웅-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수혁을 중심으로 둥글게 만들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