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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2화 (32/425)

레스큐 시스템32화

“1분 28초.”

딱 수혁이 생각해 둔 기록이었다.

이 기록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지만, 수혁에겐 별것 아니었다.

사실 그가 마음을 먹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른 기록도 가능했으니까.

“이 정도면…….”

수혁이 슬쩍 최철호를 쳐다보았다.

최철호는 턱이 빠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입을 벌린 채, 수혁과 초시계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래, 이해한다.”

수혁도 자신이 얼마나 사기적인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엔 막 하늘도 날아다니고 하는 거 아니냐, 이거?’

새로운 스킬은 아직 없었지만, 이대로 계속 레벨이 높아지다 보면 언젠간 그런 스킬이 나올지도 몰랐다.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하늘을 나는 스킬이 생긴다 해도 대놓고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랬다간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잡혀,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생체실험 같은 걸 당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런 능력이 있으면 고층빌딩 같은 곳에서의 구조가 훨씬 수월해질 테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고.”

수혁은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최철호를 향해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어준 후에 자리를 옮겼다.

이제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2코스 경기를 치러야 했다.

2단계 코스는 장애물.

3단계는 타워.

마지막 4단계는 계단 오르기였다.

수혁은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모든 경기를 마쳤다.

다른 소방관들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진이 다 빠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수혁은 자신의 기록을 살폈다.

“음…….”

5분 37초.

수혁은 2단계 코스부터 일부러 기록을 살짝 늦췄다.

1단계 호스 끌기에서 너무 많은 집중을 받은 탓에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수혁 다음 순위인 최철호의 기록이 6분대였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록.

최철호는 수혁의 앞에서 이전처럼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혁은 시상식이 끝나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던 최철호에게 말을 건넸다.

“아, 예. 감사합니다.”

최철호는 우람한 근육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끼며 우물쭈물 고개를 숙였다.

“1위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았죠, 뭐.”

이게 운으로 될 일인가?

웃으며 말을 하는 수혁의 모습에 최철호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강현 선배가 말씀하신 대로 정말 대단하시네요.”

최철호는 더 이상 이강현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축소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분 37초라면 세계 신기록과 비교해도 2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 대기록을 세워놓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모습이었으니, 충분히 괴물이란 소리를 들을 만했다.

최철호는 수혁에게 인사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부끄러웠다.

수혁 같은 괴물을 비꼬며 도발했으니, 똑바로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빠르게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수혁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원래는 이렇게 주목을 받을 생각은 없는데…….’

이런 기록을 세웠으니 위에서도 수혁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 뻔했다.

그런 관심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박상태가 자신을 위해 가져다준 기회였다.

그를 생각해서라도 대충 넘길 생각은 없었다.

“전국 대회는 한 달 뒤.”

평범한 소방관이라면 대회준비에 정신이 없겠지만, 수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수혁은 기억을 더듬어 앞으로 어떤 출동이 있었는지를 떠올리며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수혁이 사무실에 들어서며 힘차게 인사했다.

산불이 발생한 이후, 한 달 만의 출근이었다.

그런데 사무실 안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반가운 인사 정도는 오갈 줄 알았다.

‘어느 정도 풀린 줄 알았는데……?’

수혁이 병원에 입원한 사이 병문안도 꽤 많이 오고 그래서 이제 다시 이전의 삶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며 출근을 했건만.

사무실 내의 분위기는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수혁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서 앉았다.

구조 3팀뿐만 아니라, 전 근무였던 구조 2팀 역시 수혁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분위기에 수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야, 괴물!”

갑자기 박상태가 수혁에게 소리쳤다.

“……예?”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며 수혁에게 다가왔다.

“1등 했다며!”

“이 괴물 새끼.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기록 실화냐? 5분 37초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우하하-! 웃으며 수혁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 이게 무슨?”

수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어-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까는 보이지 않던 박정우가 손에 케이크를 들고 수혁에게 다가왔다.

“뭐긴 뭐야. 네 퇴원 축하 파티지.”

“얘 놀란 거 봐라.”

“저거 몸만 괴물이지, 아주 순진해 빠졌어.”

대원들은 수혁의 모습에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몸은 다 나았냐?”

박상태가 물었다.

“다 나았으니까 퇴원했겠죠.”

“아니, 어제 대회 기록 듣고서도 그런 걸 묻습니까?”

어제 경기에서 수혁이 세운 기록은, 평범한 사람도 세우지 못할 대기록이다.

몸이 다 낫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기록인 것이다.

“네. 여러분 덕분에…….”

수혁은 살짝 울컥한 기분에 말꼬리를 흐렸다.

“몸도 다 나았고, 어제 대회에서 입상도 했고.”

박상태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수혁에게 말했다.

“이제 사고 치지 마라. 아니, 사고 칠 거면 미리 말하고 쳐. 그래야 커버를 쳐주든 말든 하지.”

입원했을 때도 몇 번이나 들었던 당부였다.

그리고 수혁은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일단 케이크 먹고, 인수인계하자.”

사무실 안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출근할 때만 해도 그 싸늘한 분위기에 심장이 철렁했다.

그런데 지금은 벅차올랐다.

드디어 자신이 구조 3팀에, 신일서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요구조자를 구조한 것과도 같은 감동과 보람이 느껴졌다.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상태 형 말대로 조금 자중은 해야겠지만.’

* * *

“그러니까 이게 뭐라고?”

“인명구조 로봇이요.”

“로봇?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박상태가 발밑의 기계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막 변신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내가 애냐, 새꺄?”

박상태가 김강식의 머리를 때렸다.

“아, 진짜. 저 몸 다 나은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막 때리고 그러시면 안 돼요.”

“네가 다친 게 다리지, 머리야?”

“어쨌든요.”

잠시 실랑이를 하던 둘은 다시 기계에 집중했다.

“이게 뭐라고?”

“……인명구조 로봇이라고요.”

기계는 커다란 바퀴 두 개가 달려 있었고, 중심에는 랜턴과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걸로 어떻게 인명을 구조하는데?”

“뭐, 화재 현장에 투입해서 요구조자를 수색하는 용도로 쓴답니다.”

김강식의 짧은 설명에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람이 진입하기 전에 미리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면 구조가 훨씬 편해질 것이다.

“근데 왠지 믿음이 안 가게 생겼다.”

“그렇죠? 20억이나 들여서 개발한 거라는데…….”

이것보단 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가 더 튼튼하고 좋아 보였다.

“또 헛짓거리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돈 날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수십억 씩 썼지만, 정작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박상태는 이 로봇 역시 그것 중 하나가 되는 게 아닌가, 심히 걱정되었다.

“대대적으로 홍보도 하고 그랬으니, 이건 좀 괜찮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제법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이게 제대로 작동한다면 말이다.

박상태는 컨트롤러를 들고 이리저리 조종을 해보았다.

마치 RC카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움직이긴 하는데…….”

화재 현장은 지금처럼 평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했다.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긴 했지만, 과연 이것이 그런 장애물들을 타고 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시범 영상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박상태의 걱정을 눈치챈 김강식이 설명을 덧붙였다.

“흠.”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장비 투입하자고. 대장님도 허가했으니.”

“알겠습니다.”

김강식은 왠지 들뜬 표정으로 로봇을 챙겼다.

마치 장난감 선물을 받은 아이들 같은 모습이었다.

“뭡니까?”

때마침 밖으로 나온 수혁은 희희낙락하고 있는 김강식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새 구조 장비란다.”

박상태의 대답에 수혁이 김강식이 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

수혁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저거 그 골칫덩이지?’

기억하기로는 개발비에 수십억씩 들었고 대당 가격도 4억 정도 하는, 그야말로 비싼 쓰레기였다.

‘저게 왜 우리 서에 들어왔지?’

이전 생에서는 신일서에 보급되지 않은 장비였다.

신일서보다 큰 센터인 조연서에 한 대가 보급되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수혁이 저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워낙 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거 쓰실 거예요?”

수혁이 혀를 차며 묻자, 박상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니까.”

“위에서요?”

“대장이 쓰란다. 까라면 까야지. 뭐, 잘만 쓰면 도움이 될 거 같긴 하니까.”

‘저거 도움 안 됩니다.’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왜 신일서에 배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의 기억대로라면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내가 쓰지 말자고 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텐데.’

박상태나 구조 3팀이라면 수혁의 말을 무시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대장인 고한선이라면?

‘화나 안 내면 다행이지.’

안 그래도 그에게 찍힌 상태다.

소방 기술 경연 대회에서 엄청난 기록으로 1위를 했어도 마찬가지였다.

고한선은 여전히 수혁을 싫어했고, 그의 말이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이건 수혁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저 저 애물단지가 이번 생에서는 제대로 잘 작동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넌 왜 나왔냐? 사무실 청소 다 했어?”

“다 했어요.”

오늘은 웬일로 한가했다.

출근한 지 벌써 세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단 한 번도 출동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했을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수혁을 비롯한 대원들은 밀린 서류작업과 정비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어떻게 매일 생사를 오가는 싸움을 할까?

가끔은 이렇게 한가한 날도 있어야 재충전을 할…….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아, 젠장.”

“욕할 시간에 뛰어, 인마!”

하늘은 수혁이 쉬는 것을 바라지 않는 듯했다.

수혁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박상태의 뒤를 쫓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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