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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1화 (31/425)

레스큐 시스템31화

대회는 마치 축제 현장을 연상시켰다.

경기를 준비하는 소방관들과 대회 관계자들,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저 많은 사람이 모두 이걸 보러 온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주말과 겹쳐 외출을 나온 사람들이 생소한 광경에 발걸음을 멈췄다가 구경까지 하게 된 것 같았다.

대회를 주관하는 곳에서도 이런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들어 산불을 비롯한 여러 재난이 많이 발생해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대회를 공개적으로 열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한다면, 소방관에 대한 신뢰도도 상승할 것이다.

‘머리 잘 썼네.’

이전 생에서는 이런 대회에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때 당시의 수혁은 아직 한창 박상태에게 구박받으며 일을 배우고 있는 어리바리한 신입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경기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출전을 하게 된 소방관 두 명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탕-!

출발을 의미하는 총성이 터지자, 그들은 빠르게 앞에 있는 소방차를 향해 뛰었다.

몸에 장비들까지 착용하고 있는 터라 꽤나 무거웠을 텐데도, 둘은 순식간에 10m 앞의 소방차에 도달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다음 단계에서 실수가 나왔다.

호스를 펌프 토출구에 연결해야 하는데, 한 명이 계속해서 실패했다.

‘저런.’

평소에도 수없이 반복했던 행위였겠지만, 긴장으로 떨리는 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듯했다.

한참 만에 가까스로 연결을 성공한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힘내라!”

“소방관 아저씨, 파이팅!”

구경하던 이들이 소리를 치며 그를 응원했다.

소방관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남은 코스를 수행했다.

같이 경기를 시작한 다른 한 명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었다.

이미 패배는 확정된 상황.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끈기와 인내.

소방관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들이었다.

힘들다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요구조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마음을 비운 그는 빠르게 남은 코스를 완수하고는 초시계를 터치했다.

기록은 1분 59초.

상대의 기록은 1분 51초였다.

“와아아!”

짧은 경기였지만, 두 사람 모두 기진맥진한 표정이었다.

‘저 정도인가?’

수혁은 자신이라면 대충 어느 정도의 기록이 나올지 예상해 보았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원래부터 긴장하진 않았지만, 수혁은 한결 더 편해진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이어진 이들의 기록은 평균적으로 1분 50초 정도였다.

그보다 조금 빠른 사람도 있었고, 실수를 연발한 탓에 늦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빠르면 1분 40초에서, 아무리 늦어도 2분 내외의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1단계 코스를 완료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이들이 2단계 코스를 시작했고, 수혁의 차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제 차례네요.”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우람한 근육질의 최철호가 보였다.

그는 굳이 경기 전에 수혁을 찾아와 말을 걸었다.

“아, 네. 좋은 성적 내세요.”

수혁은 왠지 찝찝한 미소를 짓고 있는 최철호를 보며 격려를 해주었다.

‘왜 자꾸 말을 거는 거지?’

최철호는 수혁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서로 이강현을 알고 있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아는 체를 하니, 괜히 부담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수혁 씨도 곧 경기시니, 힘내십쇼.”

최철호는 마치 수혁이 자신의 아랫사람인 것마냥 어깨를 두드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수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허, 참.”

신일서에서도 수혁에게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박상태조차 최철호처럼 수혁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고작해야 2, 3년 차 정도에 불과한 최철호는 수혁을 대놓고 자신의 아랫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당연히 수혁은 기분이 상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다.

혼자 발끈해서 사고라도 쳤다간…….

‘상태 형한테 면목이 없지.’

사고 친 거 만회하라고 보내놓은 곳에서 또 사고를 치면, 진짜로 박상태에게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수혁은 불쾌한 기분을 애써 털어내고는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이번에 출전한 것은 방금 전 자신에게 왔다 간 최철호였다.

그는 다른 소방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방화복 너머로도 그가 얼마나 많은 운동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특채인가?’

구조대에는 특채가 있었다.

특전사나 UDT 같은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이 지원했다.

그들의 단련된 육체는 구조 활동을 하는 것에 적합했으니, 일반 공무원시험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다.

군에서 질리도록 훈련을 받아온 이들이었으니 당연했다.

수혁은 최철호가 그런 특채 출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타- 앙!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준비가 끝났는지 총성이 터져 나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자, 최철호는 그 육체에 걸맞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사실 근육 탓에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반대로 그 근육 덕분에 등에 진 산소통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최철호는 같이 출발한 소방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코스를 완주했다.

아니, 지금까지 경기를 치른 그 누구보다도 빨랐다.

“1분 39초!”

“오오!”

“1등이다!”

구경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금까지 가장 빨랐던 사람보다 무려 5초나 빨랐다.

‘허세는 아니었네.’

은근히 수혁에게 내비치던 자신감이 근거 없는 허세는 아닌 듯싶었다.

남은 코스가 세 개나 있으니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최철호가 종합 우승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최철호라면 이런 시도별 예선에서 충분히 1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없다면 말이지.’

최철호가 놀라운 기록을 보여주긴 했지만, 사실 수혁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수혁은 1단계 코스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며 이쪽을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철호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왜 자꾸 신경을 건드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도발을 해오니 상대를 해주는 것이 도리일 터.

‘1분 39초라고 했지?’

수혁은 사실 크게 뛰어난 기록을 세울 생각은 없었다.

대충 1분 40초 초중반을 노릴 생각이었다.

괜히 힘 뺄 이유도 없었고, 3위 안에 입상만 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었다.

“내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

이번 생에서는 사고도 많이 치고 골치도 썩이긴 했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전 생에서 수혁은 그야말로 불같은 성격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신일서 내에서 그의 별명이 대쪽이었을까?

성정이 올곧아서 그런 것이 아닌, 수틀리면 대가리를 쪼개 버린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수혁은 슬슬 몸을 풀며 자신의 경기를 준비했다.

“37번, 38번!”

자신의 번호가 호명되자 준비를 마친 수혁이 출발선에 섰다.

옆에 선 상대 역시 꽤나 좋은 몸을 하고 있었지만, 수혁은 그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지금 수혁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과연 기록을 어느 정도나 내야 하는지였다.

너무 괴물 같은 기록은 안 된다.

평균적으로 1분 50초 정도의 기록이 나오는 상황에 혼자 1분도 걸리지 않는 기록을 세운다면,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약물을 복용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조절은 해야만 했다.

‘적당히. 하지만 압도적으로.’

수혁은 어느 정도의 기록을 세울 것인지 속으로 생각해 두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닷-!

수혁의 발이 땅을 박찼다.

등에 맨 장비와 호스의 무게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장비를 풀로 착용하고 마라톤도 뛸 수 있을 정도인데, 이 정도는 우습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소방차에 도착한 수혁은 빠르게 호스를 결합을 시작했다.

이것 역시 수혁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온 짓이다.

일말의 긴장도 하지 않은 수혁은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결합을 끝내고 움직였다.

수혁과 동시에 출발한 상대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자신은 이제야 소방차에 도착해 호스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수혁은 이미 끝내고 다음 코스로 넘어간 것이다.

‘저게 사람이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속도에 의욕마저 꺾일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수혁의 기록이 얼마나 나올지 구경하고 있던 최철호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미쳤…….”

그의 선배인 이강현이 수혁에 대해 한 말을 그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못했다.

그냥 달려도 힘든 산길을, 장비를 매고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달렸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까?

당연히 과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가운데, 호스를 말아 상자에 넣고 도착지점에 도착한 수혁이 초시계를 눌렀다.

기록은 1분 28초.

“마, 말도 안 돼.”

진행위원들은 그들이 내뱉은 말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록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저 정도면 세계 신기록 아닌가?”

“그러니까,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소방 쪽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수혁의 기록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와, 1등이 또 바뀌었어!”

“엄청 빠르던데?”

그저 웃고 즐길 뿐.

사람들의 환성을 들으며 수혁은 장비를 벗었다.

“여기요.”

“아, 네네.”

수혁이 벗은 장비를 받아 든 이들이 급히 서류를 뒤져 수혁의 정보를 확인했다.

[신일서 구조 3팀.]

[소방사 김수혁.]

이름을 확인한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신일서에 괴물이 하나 있다더니.’

‘그게 저 사람이었구나.’

‘과장된 소문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뇌리에 수혁이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

“지금쯤이면 경기 시작했을 텐데.”

박정우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궁금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 녀석, 잘하고 있을까요?”

“걱정할 놈을 걱정해라.”

박상태는 박정우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수혁은 과연 경기를 잘 치를지, 못 치를지가 아니라, 과연 기록이 얼마나 나올지가 관건이었다.

“입상은 기정사실일 테고…….”

옆에 있던 이재한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막 세계 신기록 같은 거 세우고 그러는 거 아니겠죠?”

“세계 신기록이 몇인데?”

박상태가 묻자 박정우가 재빨리 검색하고는 대답해 주었다.

“5분 35초네요. 독일 애가 보유 중이고요.”

“5분 35초라…….”

박상태는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도 예전에 최강 소방관 경기에 나간 적 있었다.

그때 박상태의 기록은 5분 52초.

아쉽게도 전국 대회 입상에 실패해 세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록도 신일서 역사상 가장 좋은 기록이라며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5분 35초라니.

무려 20초에 가까운 차이였다.

1초를 단축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박상태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라면 그 정도는 하지 않을까?”

의외로 대원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박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라면 불가능한 기록이었지만, 수혁이라면…….

“모르지. 그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물론 이번에 말하는 사고는 좋은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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