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30화
1월 10일.
드디어 대회 날이 다가왔다.
수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가볍게 집 주변을 돌며 몸을 풀었다.
구조 3팀 대장 고한선은 수혁이 소방 기술 경연 대회에 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이미 신청은 해둔 상태였고, 참가를 막을 명분도 없었기에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으로 근무에서 빼주었다.
그렇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구조 3팀은 근무 날이라 응원을 오진 못 했다.
‘사실 그렇게 아쉽진 않지.’
경기를 응원하러 오기로 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지만, 수혁은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을 얻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최은송이었기 때문이다.
“냄새나는 아저씨들이 떼로 몰려와서 소리치는 것보다야 은송 씨 한 명이 낫지.”
‘고럼, 고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따운 여자 친구와 수염이 숭숭 난 아저씨들이 비교가 될 리가 없었다.
수혁은 며칠 만에 최은송을 만난다는 생각에 살짝 들떴다.
앞으로 해야 할 경기보다 그녀를 만나는 것을 더 기대하고 있을 정도였다.
“진정하자.”
괜히 들뜬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경기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부상당할 수 있도 있었으니, 붕- 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찬물로 샤워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수혁은 옷을 챙겨 입고는, 경기가 열리는 레포츠 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는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가족나들이를 나온 김에 겸사겸사 대회 구경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수혁은 즐거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미소 지었다.
그가 이토록 힘겹게 사람들을 구하는 이유는 바로 저 모습 때문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과 걱정과 근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움.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수혁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사람들을 쳐다보던 수혁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네.”
2백 명에 가까운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방 기술 경연 대회는 구조대원만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
화재 진압, 인명구조, 응급처치 등의 총 열한 개의 종목이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개인전은 물론이고, 팀 단위의 전술 경기도 있었으니, 백 명이라는 숫자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수혁이 있는 신일서에서도 참가하는 사람이 열 명이 넘었다.
구조 3팀에서는 수혁 혼자 참가했지만, 다른 대와 구급대, 화재 진압대에서도 출전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주변 인근 도시의 소방관들도 참가한데다, 의용 소방대까지 있었으니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서울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소방관이 참가한 지역이 아닐까 싶다.
“최강 소방관 종목에 출전하시는 분들은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시청 공무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다 아쉬운 표정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집합 전에 최은송을 보고 가고 싶었는데, 아직 도착하지 못한 듯했다.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최은송은 엄연한 직장인이다.
일반 회사와는 달리 요리사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시간을 빼기 힘들었다.
그래서 수혁은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리긴 했는데,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빼서 오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알겠다고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조금 늦어지는 듯했다.
수혁은 괜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합장소로 향했다.
소방 기술 경연 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최강 소방관 종목이었기에 참가하는 이들이 50명에 가까웠다.
하나같이 몸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수혁의 몸 역시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정도이긴 했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은 무슨 보디빌더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들 같았다.
구조대원들 중에는 특채로 들어온 이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체로 특전사를 비롯한 특수부대 출신들로,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련된 이들이다.
그리고 최강 소방관 종목에 신청한 사람들은 그런 특채 출신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엄청난 육체미를 자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수혁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저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수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수혁이 신일서에서 괴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경기는 점심시간 후, 1시 30분부터 시작합니다. 한 분씩 호명하면 나와서 번호표 받아가세요.”
공무원은 참가자 명단을 들고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신일서 김수혁 씨!”
“예!”
수혁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대답하며 곧장 그에게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37번입니다.”
번호표를 받아 든 수혁이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사람들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쟤가 그 스파이더맨인가 뭔가 하는 애야?”
“이번에 조연산 화재에서도 꽤 활약했다던데.”
“활약은 무슨. 내가 듣기론 아주 개판을 쳐놨다더만.”
지금까지 수혁이 했던 행동들에 대한 소문이 돌았던 것일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하긴, 소문이 안 나면 이상하지.’
생각보다 소방 조직은 좁았다.
특히나 이런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지게 마련이었다.
신일서에서 아무리 쉬쉬- 하며 입을 조심한다고 해도, 막을 순 없었다.
덕분에 수혁은 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소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혁이 그동안 친 사고들이었다.
명령을 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구조 방법을 사용하는 등.
도저히 좋게 봐줄 수가 없는 소문들.
하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의 내용도 있었다.
“선배 구하려고 목숨까지 던졌다는 이야기도 있어.”
“며칠 전에도 시내에서 활약했다는 얘기도 있고.”
지금까지 수혁이 구조해 낸 요구조자의 수가 수십 명이다.
이번 산불만 하더라도 캠핑장에 있던 요구조자가 30명이 넘었으니…….
그들을 구조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수혁에 대한 좋은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수혁은 당황했다.
설마하니 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수혁은 어색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에서 벗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수혁에게 집중하고 있기에는 대회의 긴장감이 너무 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예선을 통과해 전국 대회에 출전, 입상하게 되면 1계급 특진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상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관심이 조금 사라진 틈을 타, 자리를 이동했다.
경기 시작까지 시간은 꽤 여유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같은 서의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였겠지만, 아쉽게도 수혁은 그러지 못했다.
신일서에서 최강 소방관 종목에 출전한 사람은 수혁 혼자뿐이었고, 다른 종목에 출전한 사람들은 수혁이 모르는 이들뿐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다시 주변을 돌아보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최은송의 전화였던 것이다.
“여보세요?”
수혁이 밝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수혁 씨, 죄송해서 어떡하죠?]
“예?”
[오늘 약속 못 지킬 것 같아요. 도무지 시간을 뺄 수가 없어서…….]
최은송의 음성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수혁은 그녀가 오지 못한다는 말에 약간 서운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잘됐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수혁은 그녀가 무리해서 시간을 내서 응원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괜찮아요. 일이 바쁜 건데 어쩔 수 없죠. 대신 퇴근하면 저녁이나 같이해요.”
[정말 죄송해요.]
최은송은 거듭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수혁은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통화가 끝나자 수혁은 입맛을 다셨다.
최은송이 오지 못한다는 것은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혼자 시간을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때였다.
괜히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어 머리를 긁적이던 수혁의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신일서의 김수혁 씨 되십니까?”
뒤를 돌아보자 우람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웬 근육질의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
수혁이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반갑다는 듯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조연서에서 근무하는 최철호라고 합니다. 강현 선배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조연서의 강현이라면 이강현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강현 선배가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딱히 칭찬받을 일을 한 건 아닌데요, 뭘.”
솔직히 말하자면 이강현이 수혁에 대해 욕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토록 고생을 시켰으니 말이다.
“아닙니다. 조연산 화재에서 수혁 씨가 보여준 모습은, 듣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확실히 이강현의 입장에서 바라본 수혁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랑 같이 경기를 하게 되다니, 이것 참 영광입니다.”
이어지는 최철호의 말에 수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분명 예의를 지키고, 웃는 낯으로 말을 하긴 하는데…….
‘왠지 비꼬는 느낌이야.’
수혁의 느낌은 정확했다.
최철호는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지만, 수혁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전에 구조 3팀이 수혁을 멀리했던 것과는 다른 이유였다.
바로 질투.
칭찬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그의 선배, 이강현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수혁에게 그는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별로 잘나 보이지도 않는구만.’
최철호는 근력과 체력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조연서 내에서는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탑급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조그만 놈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겉으로 보이는 육체로는 수혁이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더욱 가소로웠다.
‘강현 선배 눈이 삔 거지.’
이강현이 말해준 수혁의 활약상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과장이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수혁을 본 순간, 그 생각을 확신했다.
‘이놈은 별 볼 일 없는 놈이다.’
어떻게 이강현을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에 수준 차이를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강현 선배도 생각이 바뀌겠지.’
속으로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를 모두 끝낸 최철호가 수혁을 향해 씨익- 웃었다.
“우리 같이 좋은 성적을 냅시다.”
“……그러죠.”
수혁은 찝찝한 표정으로 최철호와 악수하고는 헤어졌다.
“마음에 안 드네.”
수혁은 최철호의 눈동자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기색을 느꼈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았지만, 그동안 구조대 안에서 눈칫밥을 먹었던 경험은 쉽게 그것을 캐치해 냈다.
기분이 좀 안 좋긴 했지만, 따로 피해 준 것도 아니었기에, 수혁은 굳이 따지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디서 시간을 때운다?”
주변에는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다른 종목들의 경기가 슬슬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혁은 혼자 쓸쓸하게 경기들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1시.
이제 슬슬 경기를 준비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