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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8화 (28/425)

레스큐 시스템28화

“의외인데?”

실제로 소방 조직은 딱딱하다.

그 뿌리가 경찰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덕분에 계급 간 상명하복이 분명하고, 분위기 자체가 유연성 없이 무거웠다.

최근에야 그것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지만, 아직까지는 분명 딱딱한 조직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도 대회를 이런 식으로 기획한 걸 보면 달라지고는 있는 것 같고.”

수혁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대회라면 자신 역시 즐겁게 임해도 될 것 같았다.

대회에 대한 정보들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커피잔이 바닥을 드러냈다.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나가면 얼추 맞겠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수혁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과는 달리, 밖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슬슬 점심시간이 다 되기도 했으니까.’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나, 아직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커플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좋을 때다.”

수혁은 자신의 앞에서 꽁냥거리는 어린 커플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도 조금 있으면 저런 모습…….

“아니지, 아니야. 너무 앞서가지 마라.”

수혁은 머릿속에 슬그머니 떠오른 생각을 억지로 지웠다.

“아직 얼굴 한 번 못 봤는데 손주 이름까지 지을 뻔했네.”

이런 자신이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어버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지하철역 앞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방금 전 커피 한 잔을 비우긴 했지만, 수혁은 망설임 없이 약속 장소인 카페로 들어갔다.

“10분 남았나?”

현재 시각 11시 20분.

최은송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11시 30분이었으니, 10분 정도 남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온 수혁이 본능적으로 가게 내부를 슥- 훑는데, 한 여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이 딱 마주치자 수혁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화려하기보단, 차분하고 단아한 분위기의 여성은 한눈에 봐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시선을 돌리지 못한 것은 그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그녀가 최은송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아 비어 있는 테이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 역시 수혁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수혁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최은송 씨?”

“네, 맞아요.”

역시나 수혁의 생각은 맞았다.

테이블 맞은편 자리에 앉은 수혁은 최은송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긴요. 10분 전인데. 제가 일찍 온 거예요.”

최은송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통화할 때는 좀 강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보니 순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아니,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이었다.

어젯밤 수혁에게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수혁은 왠지 모르게 평온하게까지 느껴지는 최은송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커피 한 잔 시킬까요?”

카페에 들어와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그냥 나가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감도 있었고.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려요.”

최은송과 자신의 커피를 주문한 수혁은 자리에 앉아 긴장하고 있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수혁이라고…….”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최은송이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와서요?”

재미있다는 듯 눈웃음 짓던 최은송은 계속해 보라며 수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승우한테 들으셨겠지만, 나이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됐고. 소방 공무원으로 근무 중입니다.”

“소방관이셨어요?”

최은송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혹시 승우한테 못 들으셨나요?”

“네, 전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은 살짝 불안해졌다.

경찰과 마찬가지로, 소방관은 그다지 좋은 배우자가 되지 못했다.

언제나 위험한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직업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수혁은 고승우가 당연히 자신의 직업을 말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수혁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식으로 지인들에게 여자를 소개받은 적은 이전 생에서도 몇 번 경험한 적 있었다.

하지만 그 만남이 긍정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혁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직업이 소방관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그녀들은 부담을 느꼈다.

그럴진대, 최은송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수혁의 불안함은 이어진 최은송의 말에 눈 녹듯 사라졌다.

“와, 저 진짜 소방관분들 존경해요.”

눈동자를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부담스럽거나 그러진 않으세요?”

“부담이요? 왜요?”

“보통 소방관이라고 하면 다들 만나는 걸 꺼리시는데.”

“아…….”

최은송은 수혁의 말에 뭔가를 알았다는 듯 잠시 생각을 하더니 씨익- 웃었다.

“저는 상관없는데요.”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수혁은 왠지 점점 그녀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던 둘은, 점심을 함께 먹고 영화까지 한 편 봤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수혁은 최은송이라면 계속해서 만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최은송 역시 수혁이 나쁘지는 않은 듯한 눈치였고.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둘은 시내 한복판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저기 저 건물 보이죠?”

수혁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높은 빌딩 한 채가 서 있었다.

“제가 저기서 사람을 구했다는 거 아닙니까.”

수혁에게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바로 그 빌딩이었다.

“정말요?”

최은송은 대단하다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떻게 구했어요?”

최은송이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지만, 수혁은 두루뭉술 넘어갔다.

괜히 그날 자신이 했던 행동을 알게 되면, 이 좋은 분위기가 깨질 것만 같았다.

“그냥 비번 날에 서점이나 갈까,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키이이잉-!

이명이 울렸다.

[스킬 : ‘위험 감지Ⅱ’가 발동됩니다.]

‘아, 왜!’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만큼은 제발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하늘은 수혁이 놀고 있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 듯했다.

수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수혁 씨? 무슨 일…….”

콰앙-!

“꺄아아악!”

“뭐, 뭐야! 저 미친놈!”

“피해요!”

갑작스러운 수혁의 행동에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던 최은송은, 한쪽에서 뭔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비명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수혁이 고개를 돌리자, 1톤 트럭 한 대가 사람들을 치며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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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폭주하는 트럭을 멈춰라!

*내용 : 트럭 운전사가 의식을 잃었다. 제어가 불가능해진 트럭이 폭주하고 있다. 이미 부상당한 사람들이 생긴 상태! 더 많은 부상자가 나오기 전에 트럭을 멈추고, 운전자를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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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상황이 심상찮았다.

트럭 운전사가 자동차 액셀을 밟은 채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운전자도 위험했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었다.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끝낸 수혁은 점퍼를 벗어 최은송에게 주며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으세요.”

“수, 수혁 씨?”

최은송이 당황한 음성으로 수혁을 불렀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수혁은 저 트럭을 향해 움직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 그녀는 수혁을 말리려 했지만, 수혁의 행동이 한 발 빨랐다.

최은송의 손이 수혁의 팔을 잡기 전에, 그는 이미 트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빠르게 트럭에 접근하던 수혁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분명 최은송과의 분위기는 좋았다.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여자를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그녀가 본다면…….

분명 마음이 변할 것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이야기로 듣는 것과 실제로 목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으니까.

수혁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을 최은송이 알면, 지금까지 수혁이 경험했던 다른 여자들처럼 그를 부담스러워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그는 소방관이었다.

“한쪽으로 피해요!”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친 수혁은 주변을 빠르게 살피며 트럭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처음 치인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부상당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벽을 이리저리 치며 발광하고 있는 트럭은, 사람들이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였다.

건물 안으로 피하던가 해야 할 텐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치일 것이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지 구경하기 바빴다.

그들의 모습에 수혁이 혀를 찼다.

아무리 봐도 이 나라는 안전불감증이라는 뿌리가 너무도 깊게 박혀 있었다.

‘어떻게 할까?’

트럭은 이제 수혁의 정면으로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무리 수혁이라도 저 트럭에 받히면 절대로 멀쩡할 수 없었다.

수혁이 엄청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차를 세워야 한다는 건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스킬을 떠올렸지만,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위험 감지Ⅱ’가 발동되며 위험한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해 주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트럭을 세우는 것에는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아니, 이거 잘하면 될지도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충돌을 한 덕분에 트럭의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저 정도의 속도라면 평범한 사람은 무리겠지만, 수혁이라면 어떻게든 트럭에 올라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시도한다면…….

‘좋아, 해보자.’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기에, 수혁은 방금 떠올린 계획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못되면 또 병원 신세다.’

퇴원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에 땀이 났다.

다치는 것도 다치는 것이었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경기도 출전할 수 없게 될 테니, 절대로 성공해야만 했다.

수혁은 길 한복판에 마련된 화단에 올라섰다.

그리고 트럭이 스쳐 지나갈 때.

타이밍에 맞춰 뛰어오를 생각이었다.

‘제발…….’

어느새 수혁의 머릿속에는 최은송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어떻게 해서든 트럭을 세우고 운전사를 구해야겠다는 일념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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