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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5화 (25/425)

레스큐 시스템 25화

가장 궁금했던 것은 김강식의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간호사가 풀어주었다.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바로 자신들이 어떻게 구조되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박상태는 수혁의 질문에 피식- 웃었다.

“그게 왜 궁금하냐?”

“네? 아니 뭐. 구조해 주신 분들한테 커피라도 사려고…….”

실없는 대답에 박상태는 수혁의 머리통을 한 번 더 때렸다.

이번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은, 가벼운 딱밤이었다.

“너 인마, 강식이 등에 업혀 있었단다.”

“……네?”

그 반대가 아니고?

분명 수혁이 기억하는 마지막은 자신이 김강식을 등에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것이었다.

그런데 김강식이 자신을 업고 있었다니?

“아니, 강식 선배 발목도 다쳤는데 저를 어떻게 업어요?”

“나무로 부목대고. 아주 발목이 아작났는데도, 그 상태로 너 업고 산 밑까지 내려왔다더라.”

수혁이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부목을 댔다 한들,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화재 진압대 만났고, 근처 구조대한테 무전 쳐서 둘 다 들것에 실려서 내려왔지.”

그제야 수혁은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다행…….”

그런데 박상태의 표정이 어두웠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왠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혹시 무슨 일 또 있어요?”

설마 구조대에 다른 부상자나 순직자가 나왔다거나…….

박상태의 표정은 그 정도로 좋지 않았다.

수혁의 질문에 박상태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심각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 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방문객들로 인해 박상태의 입은 다시 다물어졌다.

“상태 형?”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구조 3팀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다가 박상태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안으로 들어왔다.

“어, 왔냐?”

수혁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정신을 잃은 3일 동안 구조 3팀 대원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병을 왔다.

박상태만 빼고 말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병을 오지 않던 박상태가 병실에 앉아 있었으니, 그들로선 놀랄 수밖에.

대원들은 박상태와 서로 눈인사를 하고는 바로 수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혁을 쳐다보는 그들의 표정은 묘했다.

어떻게 보면 기뻐하는 것도 같았고,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색한 듯도 했다.

수혁은 설마 대원들이 자신에게 문병을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고.

사실 수혁이 생각하는 문병을 올 만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박상태와 김강식 정도뿐이었으니까.

“……괜찮냐?”

어색한 분위기가 짧게 흐르고, 가장 먼저 수혁에게 말을 건넨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건 놀랍게도 바로 박정우였다.

구조 3팀.

아니, 신일서 내에서도 수혁에게 가장 큰 악감정을 지니고 있던 박정우가 수혁에게 먼저 말을 걸 줄이야.

수혁은 어찌나 놀랐는지 제때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박상태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아, 네. 걱정해 주신 덕분에…….”

그리고 숨 막히는 어색함이 흘렀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자 그것이 답답했던지, 이재한이 앞으로 나섰다.

“그만하니 다행이다.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식겁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재한이 물꼬를 틀자 뒤에 있던 다른 대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화의 내용은 대부분이 수혁에 대한 걱정과 산불에 대한 이야기였다.

산불은 날이 밝은 뒤, 소방 헬기가 투입되고 인근 도시의 지원을 받아 진압했다.

사망자는 총 세 명.

모두 근처에 사는 주민들로 운동하러 나왔다가 봉변당했다.

화재가 시작된 장소와 원인은 아직 경찰에서 조사 중이고, 재산 피해 역시 파악 중이었다.

심각한 이야기에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들 하시고, 지금은 이 미친놈 얘기 좀 들어봅시다.”

대원 중 하나가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지 밝은 음성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네가 캠핑장 요구조자들 대피시켰다며. 장비도 미리 준비해 뒀고.”

“요구조자들 위치는 어떻게 안 거냐? 방법 좀 알려주라.”

떠들썩한 질문이 쏟아졌다.

분위기 전환용 질문이었지만, 대답하기 참 난감한 것들이기도 했다.

수혁은 박상태의 눈치를 살피며 대충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대피 장소나 경로는 그냥 혹시 몰라 평소에 공부해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장비 역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했다는 둥.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파고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수혁이 혼자 구조대를 이탈한 것조차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수혁은 그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갑자기 대원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한창 수다를 떨다 보니 대화 주제가 바닥이 났는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때, 다시 박정우가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미안했다.”

갑작스러운 말.

“물론 아직도 네가 한 행동들이 모두 맞다고는 생각 안 한다. 하지만 그간 네가 혼자 우리에게 민폐나 끼치는 꼴통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무겁게 이야기를 꺼낸 박정우는 수혁에게 허리를 굽혔다.

“강식이 형을 구해줘서 고맙다.”

“왜, 왜 이러세요?”

당황한 수혁은 그런 박정우를 말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른 대원들의 인사였다.

“진짜 고맙다.”

“그리고 오해해서 미안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들의 행동에 수혁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들과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저도… 죄송합니다.”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나,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대원들은 많은 피해를 봤을 것이다.

소방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팀워크였으니까.

그것을 지키지 않고 혼자 특별하다며 행동하는 자신의 행동이 불편하기도 했을 테고, 가슴 졸이기도 했을 것이다.

수혁은 갑갑했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수혁과 대원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박상태가 입을 열었다.

“아주 꼴값들을 떨고 있네.”

훈훈했던 분위기가 아작났다.

“야, 김수혁. 넌 앞으로 뭘 하든 혼자 할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보고해. 그게 황당하고 이상한 거라고 해도, 일단 보고한 뒤에 움직이라고.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

박상태가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이 새끼 말 잘 들어. 이놈 아무래도 진짜 신기 있는 거 같으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대원들은 누구 하나 박상태의 말에 태클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긴 했지만, 수혁이 산불 현장에서 보여주었던 것들은 정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수혁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저렇게 말한다고 될 일인가? 싶었지만, 실제로 납득하고 있었으니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김수혁.”

박상태가 황당한 눈으로 대원들을 쳐다보고 있던 수혁을 불렀다.

왠지 심상찮은 표정에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박상태는 깊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너 징계위원회 열릴 거다.”

“……예?”

살짝 놀라긴 했지만, 그것은 여기서 이야기를 들을 줄 몰랐기에 그런 것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분명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그것을 감안하고 행동한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덮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본 사람이 너무 많았다.

구조 3팀만이라면 박상태가 어떻게든 처리했을 테지만, 그 주변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조 3팀 대장 고한선이 박상태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위쪽에 보고를 올려 버렸다.

때문에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씁쓸할망정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런데 박상태의 말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인데.”

박상태가 주머니 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들었다.

‘종이?’

그것은 꾸깃꾸깃하게 접혀 있는 종이였다.

“너, 여기 나가라.”

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를 받아 펼쳐 보았다.

그것은 포스터였다.

그리고 그 포스터의 가장 상단에는 ‘세계 소방관 경기대회’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여길 나가라고요?”

“그래. 정확하게는 그중에서 최강 소방관 경기 종목에 나가라.”

최강 소방관 경기.

일명 TFA.

정해진 코스를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들어오는지 시간을 재는 경기다.

코스는 호스 끌기, 장애물, 타워, 264개 계단 오르기로 총 4단계.

세계 소방관 경기대회의 꽃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수혁 역시 이 대회를 알고 있었다.

이 대회가 올해, 한국에서 열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굳이 이런 대회에 나갈 이유도, 여유도 없었기에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제가 여길 왜요?”

이야기에 맥락이 없었다.

징계위원회 얘기를 하다가 왜 뜬금없이 최강 소방관 경기로 빠진단 말인가?

“각 시도별 예선을 통과해서 지역 입상자들끼리 소방청 주관 소방 기술 경연 대회를 연다. 그리고 거기에서 3위 안에 입상하면 부상이 주어지지.”

솔직히 수혁은 그렇게 자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전 생에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새 장비라도 줍니까?”

관심이 없었기에 수혁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박상태의 말에 갑자기 없었던 관심이 확- 생겨버렸다.

“1계급 특진이다.”

“……특진?”

그것을 수혁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대원들도 모두 솔깃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박상태는 그런 대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수혁에게만 말을 했다.

“너라면 여기서도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거다. 일단 소방 기술 경연 대회 본선에서 입상하면 1계급 특진을 받을 수 있고, 세계 소방관 경기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최강 소방관 경기 종목에서 입상하면…….”

박상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잘하면 징계위원회 정도는 무마할 수 있을 거다.”

박상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것을 막진 못했지만, 만약 세계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다면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예상되는 징계 수위가 감봉 정도가 아니었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공을 쌓아야 한다.

윗분들 중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수혁이 세계 대회에서 입상한다면 다른 국가들 눈을 봐서라도 징계 자체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도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징계 수위가 낮아지던가.

수혁은 박상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주머니에서 이 포스터가 나왔다는 것은,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박상태가 자신을 위해 알아봤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속이 썩을 대로 썩었을 것임에도…….

수혁은 박상태의 그런 노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이었지만, 수혁은 박상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나갈게요. 최강 소방관인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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