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4화
“으음.”
북적거리는 소리에 수혁이 몸을 뒤척였다.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고3 수험생처럼 계속 밍기적거리던 수혁은, 결국 소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아, 좀 조용히… 음?”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뜬 수혁은 이곳이 자신의 손바닥만 한 고시원 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수혁이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다가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에 신음을 내뱉고는 도로 누워버렸다.
“윽, 여기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병실이었다.
북적거리던 소음은 같은 병실을 쓰고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이 대화하는 소리였고.
그제야 수혁은 상황파악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그 불길을 피해 빠져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살았다는 게 중요했다.
‘아, 강식 선배는?’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보면 김강식도 구조되긴 했겠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몽땅 날아가 버린 탓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수혁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수혁이 신음하며 일어나자 갑자기 대화 소리가 뚝- 끊기며 주변이 조용해졌다.
수혁이 뭐지? 하며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방관 양반 드디어 정신이 들었네.”
“다행이에요.”
“몸은 괜찮으세요?”
갑작스러운 질문 세례에 수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속사포처럼 질문해 대던 사람들은 이내 의사를 부르기까지 했다.
어안이 벙벙하던 차에, 환자들의 소리를 듣고 간호사 한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김수혁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간호사는 팔뚝에 꽂혀 있는 수액을 한번 체크하고는 다행이라는 듯 웃어주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간호사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듣기로는 산불을 끄시다가 다쳐서 오셨다고 하던데요. 몸이 많이 상한 상태셨어요.”
당시 수혁의 몸 상태는, 단순히 많이 다쳤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심각했다.
만약 수혁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사망에 이르렀을 정도인 것이다.
“제가 얼마나…….”
“소방관 양반, 내리 사흘이나 잤어. 난 자네가 영영 못 깨어날 줄 알았다니까?”
“아니, 이 양반이.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지!”
대답은 간호사가 아닌,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중년의 남자에게서 들려왔다.
대답한 대가로 아내에게 등짝을 얻어맞긴 했지만, 수혁은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다행이군.’
무슨 영화나 소설처럼 몇 년씩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건 아니었다.
“혹시, 저 말고 다른 분도 같이 오지 않았나요? 김강식이라고, 저랑 같은 소방관인데.”
수혁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지만, 간호사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수혁이 실망하려는데, 간호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네. 의사 선생님들도 꽤 심각하게 보는 눈치였는데.”
“감사합니다.”
수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예의 중년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산불 나면서 피해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더라고. 죽은 사람도 여럿 되고…….”
남자의 말에 수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뛰어다녔건만, 결국에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내 들어보니까 자네 아니었으면 더 큰일 났을 거라고 하더마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뉴스에 그런 보도가 나올 리도 없고.
“자네가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사람들 많이 다녀갔어. 같이 근무한다는 소방관들하고 높으신 양반들도 왔었고. 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자네가 꽤 큰일을 했다고 하던데.”
“음…….”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박상태나 이강현을 통해 이야기가 퍼진 듯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번 현장에서 수혁이 한 행동은 징계감이었다.
그것도 감봉 1, 2개월 가지고는 턱도 없을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켰다.
물론 수혁은 징계에 대해 그리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혁이 불안한 것은 구조 3대 동료들의 시선이었다.
이번 일로 또다시 자신의 평가가 바닥을 쳤을 테고, 동료들의 싸늘한 눈빛을 받을 걸 생각하니 침울해졌다.
수혁이 한숨을 쉬는 사이, 밖으로 나갔던 간호사가 되돌아왔다.
“확인하고 왔어요.”
“어, 어떻습니까?”
미소 짓고 있는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 김강식이 무사하다는 것을 눈치챌 법도 했건만, 수혁은 긴장한 표정으로 간호사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무사하시네요. 발목 골절만 제외하면 크게 다치신 곳도 없고. 오히려 김수혁 환자분이 더 심각했어요.”
수혁은 긴장했던 몸이 축- 쳐지는 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의 곁에 있던 김강식이 살았다는 사실에 더없이 크게 안도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수혁의 눈앞에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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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성공!
*당신은 퀘스트를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필요 경험치 충족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 업!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레벨 14가 되었습니다.
*화상을 입을 확률이 소폭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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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레벨이 두 개나 올랐다.
그만큼 많은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레벨보다 다른 글자에 주목했다.
*당신은 퀘스트를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습니다.
이 말은 곧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수혁은 꽤 많은 숫자의 퀘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항상 완벽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완벽하지 못했다.
‘사망자…….’
옆 침대의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의 목숨도 놓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런 다짐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실패했다.
사실 수혁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었다.
수혁이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신이 아닌 이상은…….
퀘스트를 주는 존재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퀘스트 내용이 ‘모든 요구조자를 구조하라!’가 아닌, ‘최대한 많은 요구조자를 구조하라!’였겠지.
캠핑장에 있던 사람들과 정상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김강식까지.
이전 생에서는 구하지 못했을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을 구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회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 더 많은 준비를 했다면.’
그랬다면 죽은 사람들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수혁을 괴롭혔다.
“김수혁 환자분?”
간호사는 갑자기 수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점점 표정이 굳어지자 눈을 가늘게 뜨며 수혁을 불렀다.
“어디 안 좋은 곳 있으세요?”
수혁의 표정이 나빠지자, 혹시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수혁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간호사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선생님 오실 거예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선생님께 여쭤보시면 될 거예요.”
“네.”
수혁은 애써 표정을 풀었다.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자책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러기엔 지난 생에서 수혁이 겪어온 경험들이 너무도 많았다.
“후우-”
그래도 가슴이 답답하긴 했다.
시간이 지나고, 저녁 시간이 되자 간호사가 말했던 것처럼 의사 한 명이 수혁을 찾아왔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처음 수혁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는 꽤나 심각한 상태였다.
김강식도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지만, 수혁은 정말로 위험했다.
온몸의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켰고, 소량이지만 연기도 들이마신 탓에 중독 현상까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심각했던 것은 탈수와 탈진이었다.
만약 병원으로 오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다신 일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괴물이란 별명이 있는 수혁이 그 정도 상황까지 갔으니, 지난 산불에서 그가 얼마나 무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혁은 자신이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해 보면 죽지 않고 살아나온 것이 용했다.
대체 그곳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의사가 나가고,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뒤.
수혁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어? 상태 형!”
바로 박상태였다.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병실 문에서부터 수혁이 누워 있는 침대까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그대로 손을 들어 수혁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악!”
박상태가 다짜고짜 달려와 머리를 때렸다.
사실 그리 세게 때리진 않았지만, 수혁은 찔리는 것이 있어 엄살을 부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너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냐? 대체 왜 그래!”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박상태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자, 잠깐만요, 형!”
박상태가 재차 손을 들자 수혁은 필사적으로 박상태를 막았다.
아직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아팠지만, 박상태의 주먹은 더욱 아팠던 것이다.
“형이라고 부르지도 마, 이 새끼야.”
박상태는 흥분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수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시선을 받은 수혁은 찔끔- 하며 박상태의 눈치를 봤다.
박상태가 이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박상태의 행동을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맞은 곳이 아프기는 했지만, 수혁은 오히려 박상태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김강식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박상태가 받았을 충격을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수혁은 그런 박상태에게 사과했다.
그냥 말뿐인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였다.
박상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수혁을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간이침대를 빼내 그 위에 앉은 박상태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을 보며 물었다.
“몸은 어떠냐?”
화가 나는 것은 나는 것이고, 걱정은 걱정이었다.
수혁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박상태가 이렇게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근육통이 좀 심하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요.”
박상태가 화를 푼 것 같자 수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러자 박상태는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는 정말로 수혁과 김강식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저, 그런데…….”
수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대체 어떻게 구조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