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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3화 (23/425)

레스큐 시스템 23화

“젠장.”

수혁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귀에서는 쉴 새 없이 이명이 퍼져 나갔고, 눈앞에서는 ‘위험 감지Ⅱ’ 스킬이 발동됐다는 글자가 계속 떠올랐으며, 사방은 붉은색으로 도배가 된 듯했다.

벌써 세 번째.

수혁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허억-!”

목구멍이 찢어지고 폐가 터질 것만 같았다.

10레벨이 넘은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날 내려.”

“헛소리 헉- 그, 그만하라고. 흐읍- 했습니다하!”

도저히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김강식은 등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수혁이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단숨에 거절한 수혁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불길은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만약 수혁의 체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그래서 속도가 지금보다 느렸더라면.

벌써 불 속에 갇혀 재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 체력이…….”

“문제없어요!”

수혁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한계다.’

아무리 태연한 척한다고는 하지만, 수혁은 조금씩 자신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위험 감지’와 ‘생명 감지’.

이 두 가지 스킬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킬들은 분명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주고 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젠장.’

다시 한 번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제 붉은 표시가 없는 곳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췄다가는 죽을 판이었으니, 수혁은 쉬지 않고 다른 방향을 향해 다시 달렸다.

‘설마 정말로 강식 선배가 위험에 빠질 줄이야.’

설마 하는 생각은 하긴 했다.

하지만 상황도 변했고, 위치도 변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컸던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김강식은 이번에도 위험에 빠졌다.

수혁이 아니었으면 김강식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는 건가?’

분명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음에도 똑같이 죽을 뻔한 상황이 들이닥쳤다.

마치 김강식이 위험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만약 그렇다면, 수혁이 지금까지 구한 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쇼핑몰에서도, 빌딩에서도, 지하주차장에서도.

그들은 분명 이전 생에서는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혁이 개입을 하며 살아났다.

만약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그들 역시도 똑같이 희생되었어야 했다.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야.’

이번 일은 수혁 자신과 김강식의 운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옳았다.

“조심해!”

체력의 한계를 잊기 위해 잠시 딴생각하고 있던 수혁의 등 뒤에서 다급한 김강식의 외침이 들려왔다.

화르르륵-!

돌풍이라도 불었는지, 갑자기 불길이 커지며 수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흐읍!”

수혁은 간신히 발을 멈추며 불길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진 않았다.

면체 마스크가 아닌, 휴대용 방연 마스크였기에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온 불의 열기는 피할 수가 없었다.

숨이 턱- 하고 막히며, 얼굴이 화끈해졌다.

“괜찮냐?”

김강식의 비명과도 같은 질문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진 않다.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물집이 잡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고통스러웠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화상으로 인한 통증은 그 강도가 높았다.

아무리 작은 화상이라 할지라도 그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죽하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작열통(灼熱痛)이라고 할까?

참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수혁은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저쪽!”

주변에 가득했던 붉은 표시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돌풍으로 인해 크게 불어났던 불길이 사그라지며 몸집을 줄인 덕분이었다.

“숨 참아요!”

수혁은 틈을 놓치지 않고 김강식을 향해 소리치며 그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크으읍!’

폐가 목구멍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 숨을 쉬면 이 뜨거운 열기에 폐가 익어버릴 것이다.

정신이 조금씩 몽롱해졌다.

가뜩이나 체력도 없는데다, 호흡까지 달리는 차에 숨을 멈추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은 흐려지는 시선에도 더욱 빠르게 땅을 박찼다.

그리고…….

“크허억! 허억-!”

간신히 불의 장벽을 뚫고 바깥으로 빠져나온 수혁은 그야말로 숨을 토하듯 몰아쉬었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무리한 보람이 있었다.

이 뒤쪽은 그나마 불길이 많이 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불의 진행 방향이었던 것 같았다.

수혁은 덜덜 떨려오는 다리와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더는 달릴 수가 없었다.

수혁의 체력도, 기력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저 등에 업은 김강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부여잡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갈 뿐이었다.

“야, 야! 김수혁!”

김강식은 수혁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등에서 내리려 했다.

걷는 것이 힘겹긴 했지만, 이대로 업혀 가는 것보다야 차라리 내려서 부축하는 편이 수혁의 체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김강식의 허벅지를 감싸고 있는 수혁의 팔은 절대로 풀리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정신차려! 김수혁!”

김강식이 재차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누구지?’

수혁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몽롱하기 짝이 없는 그의 의식으로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지금 수혁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등 뒤에 요구조자가 업혀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요구조자를 무사히 구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외에는 수혁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수혁은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뒤에서 계속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 걱정 마세요. 제가, 제가 구해 드리겠, 습니다.”

수혁은 반사적으로 요구조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내뱉었다.

“이, 이 미친놈…….”

그런 수혁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김강식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분명 수혁은 의식이 없었다.

그것이 체력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연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 중 뭐가 되었든 위험한 것은 똑같았다.

지금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제정신으로 하는 행동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분명했다.

김강식은 수혁의 헬멧을 내려치며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정신을 차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야단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혁이 위험했다.

김강식은 뭔가를 결심했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수혁의 머리를 내려쳤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기절이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쿵-!

헬멧 위로 가격하긴 했지만, 그 충격이 작지는 않았는지 수혁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으으윽!”

김강식은 그 충격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혁의 팔에서 몸을 빼낸 김강식은 수혁을 바로 눕히고 상태를 살폈다.

수혁은 기절한 상태였다.

다행히 호흡은 거칠었지만 제대로 하고 있었다.

“휴우.”

김강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불길이 이쪽을 향해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주변을 훑어 적당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찾아낸 김강식은 그것을 발목에 대고는 자신의 옷을 찢어 칭칭 감기 시작했다.

“으으윽.”

부목을 만든 김강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부목을 댔다고 한들, 뼈가 상한 이상 고통을 없앨 순 없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김강식은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결국 수혁을 등에 업었다.

그래도 수혁이 불길을 뚫고 빠져나온 덕분에, 이대로 이동한다면 산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조금만 더 버텨라.”

김강식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수혁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 * *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전이 들어왔다.

[현재 상황 어떻습니까?]

신일서 상황실에서 온 무전이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산불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박상태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무전기를 들었다.

“현재 구조한 인원 36명입니다.”

다른 쪽은 모르겠지만, 구조 3대가 파악하고 구조한 사람들의 숫자는 36명이었다.

캠핑장 쪽 32명과 정상 쪽 네 명.

그러고 보니, 그 36명을 모두 구조할 수 있던 것도 수혁 덕분이었다.

새삼 수혁의 능력을 떠올린 박상태의 얼굴이 다시 조금씩 일그러졌다.

[알겠습니다. 다른 특이사항 없습니까?]

있다.

그것도 너무도 큰일이 있었다.

하지만 박상태는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박상태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자, 상황실에서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박상태는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고는,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구조 중 실종 두 명 발생했습니다.”

잠시 무전기가 침묵했다.

그리고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다시 보고해 주세요.]

“구조 중 토사 붕괴가 일어났고, 미처 피하지 못한 두 명이 그것에 휩쓸렸습니다. 아직 둘의 생사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실종자는 구조 3대 김강식, 그리고 김수…….”

침통한 얼굴로 보고하던 박상태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목이 메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발견했기에,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수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다시 상황설명 부탁드립니다.]

무전기에서는 상황실의 음성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박상태는 그것을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온통 저 앞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것에 실려 구급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두 명의 모습이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박상태가 그곳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 김강식! 김수혁!”

갑작스러운 박상태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구조 3대 대원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들은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박상태를 발견했고, 곧이어 그가 향하는 곳에 뭐가 있는지 발견했다.

“서, 선배!”

“강식이 형!”

“야, 김수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동시에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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