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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2화 (22/425)

레스큐 시스템 22화

끝이 보인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단순한 짐작이 아니었다.

‘이제 빨간색이 거의 안 보여.’

위험지대임을 알리는 붉은 표시가 이제는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 말은 흙더미가 무너져 내릴 위험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였고, 곧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강식 선배.”

수혁이 뒤쪽을 향해 말했다.

“그래…….”

거친 숨소리와 함께 김강식의 대답이 들려왔다.

김강식은 수혁이 파낸 흙을 뒤로 넘기며, 힘겹게 기었다.

조금씩 이동할 때마다 발목이 욱신거리고 온몸이 아팠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다.

지금 앞에 있는 수혁은 자신보다 몇 배는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울 테니까.

그런 상황에 자신이 힘들다고 불평을 내뱉을 정도로 김강식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안 힘드냐?”

김강식은 수혁에게 미안함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힘들긴요.”

아무리 수혁이라 해도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출동한 지 벌써 여섯 시간은 넘게 흘렀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무리 괴물 같은 체력을 지니고 있는 수혁이라 할지라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김강식은 선배 구조대원이 아니다.

자신이 구해야 할 요구조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요구조자 앞에서 힘든 내색하는 소방관은 아무도 없었다.

“제 별명 아시죠? 다른 선배들이 저보고 다들 괴물이라고 부를 정돈데, 이 정도야 껌이죠.”

수혁의 대답에 김강식은 쓰게 웃었다.

귀를 닫고 사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고맙다.”

김강식은 계속해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고맙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약간 쑥스러워하는 기색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김강식은 진심으로 수혁이 고마웠다.

만약 수혁이 없었다면 자신은 홀로 흙더미에 깔렸을 테고, 빠져나오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쓸쓸히 죽었을 것이다.

아니, 빠져나올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수혁이 자신을 감싸 안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아마도 최초 충격에서 정신을 잃은 뒤에 그대로 세상을 떠났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고마움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때였다.

“어?”

수혁이 의문성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야?”

김강식은 혹시 일이 잘못됐나 싶어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밖이에요.”

김강식이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자, 뻥 하니 뚫린 구멍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제 손 잡아요.”

먼저 밖으로 빠져나간 수혁이 구멍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자신의 손을 붙잡은 김강식의 몸을 쑤욱- 하고 끄집어냈다.

“으윽!”

격한 움직임에 발목에서 칼로 저미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질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김강식은 그 와중에도 웃었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살아나오지 못했을 현장에서 빠져나왔으니, 이깟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강식을 밖으로 꺼낸 수혁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찌어찌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갇혀 있는 동안, 화재가 이곳까지 번진 상태였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이 있었지만, 시간을 지체했다간 꼼짝없이 불길에 둘러싸일 것이 분명했다.

흙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또다시 불속에 갇힐 순 없었다.

수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김강식에게 등을 내밀었다.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 주변의 상황에 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던 김강식은 그런 수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업고는 못 빠져나가.”

불길이 완전히 번지지 않은 지금이라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몸 상태가 멀쩡했을 때의 일이었다.

땅에 발만 디디는 것조차 힘든 김강식은 절대로 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업는다면 수혁도 절대 무사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수혁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또다시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빨리 업혀요. 시간 없으니까.”

“야, 내 말 못 들었어? 내가 업히면 너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업히라니까!”

수혁이 더는 김강식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여기서 선배 두고 혼자 가서 살면, 내가 편할 거 같아요? 오늘 딸 생일이라면서. 딸 생일에 아빠 제사상 차리게 만들 겁니까?”

김강식이 흠칫했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날을 평생 동안 슬픈 날로 만들 생각 아니면 업혀요.”

김강식은 머뭇거리다 결국 수혁의 등에 업혔다.

“내가 선배 살립니다. 살릴 수 있어요. 그리고 평생 고맙다는 소리 들을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수혁은 김강식을 등에 업은 채, 불길이 가장 적은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살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박상태는 자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구조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면서 조연서의 구조대원들에게 그들을 구급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명령한 뒤, 장비를 벗어던졌다.

그러곤 장비들을 재점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박상태만이 아니었다.

산속을 빠져나온 구조 3대 전원이 박상태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지휘부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던 조연서 구조대장 김철중이 그런 박상태를 발견하고는 안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요구조자들도 모두 무사하고, 저희 대원들도 챙겨주셔…….”

연락이 두절되었던 이강현과 다른 대원들이 모두 무사히 복귀한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려던 김철중은 박상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혹시 다른 요구조자를 발견하신 겁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서둘러서 장비를 재점검할 이유가 없었다.

“저에게 알려주시면 다른 구조대를 파견하겠습니다. 일단은 조금 쉬셔야 할 것 같은데.”

산불이 난 산속을, 이런 밤에 헤매고 다니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구조자들의 안전도 신경써야 하고, 장비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상태로는 더욱더.

방금 전까지 산을 헤집고 다녔으니, 체력이 바닥났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었다.

쉴 시간이 없었다.

김강식과 수혁은 이미 죽었겠지만…….

적어도 시신만이라도 데려와야 한다.

그쪽까지 불길이 퍼졌으니, 더 늦었다간 아주 오랫동안 두 사람을 그곳에 방치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인원 몇 명만 지원해 주십시오.”

박상태는 대충 준비를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철중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김철중은 왠지 비참해 보이기까지 하는 박상태의 표정에 덩달아 심각해졌다.

“우리 애들을 그곳에 두고 올 수 없습니다.”

김철중은 그 한마디에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구해야 한다가 아니라 두고 올 수 없다.

그 말의 뜻은 굳이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의미가 명확했다.

“하아-”

김철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태가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몇 명의 동료들을 잃은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박상태와 다른 대원들을 산속으로 다시 들여보낼 순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도 위험했다.

“화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빠져나오신 길로는 되돌아가실 수 없을 겁니다.”

김철중이 파악한 바로는 그랬다.

만약 이대로 들어갔다가는 희생자의 숫자만 늘릴 뿐이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허락할 수 없습니다.”

현재 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김철중이었다.

박상태가 아무리 베테랑이고 경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조대장인 김철중의 명령을 무시할 순 없었다.

“지금 화재 진압을 위한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꼭 가시겠다면, 불이 꺼진 뒤에 가세요.”

박상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김철중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으니까.

“장비 풀고, 휴식을 취하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김철중의 말에 박상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현장 지휘를 맡고 있는 김철중이 명령을 내린 이상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박상태는 고개를 저으며 매고 있던 장비들을 풀었다.

구조 3대 대원들 역시 그런 박상태의 모습에 암울한 표정으로 장비를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김철중이라고 저들의 심정을 어찌 모를까.

그렇다고 그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었기에, 김철중은 박상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큰 상실감에 감정을 앞세워 행동하려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김철중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다른 대원들마저 위험에 빠트릴 뻔했다.

김철중이 무거운 표정으로 되돌아가자, 박상태는 구조차 옆으로 돌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자책했다.

‘내려오면 뒤지게 패주려고 했는데…….’

이제 더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박상태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봤다.

구조 3대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 옆에서 같이 살아 숨 쉬고 움직이던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요구조자들을 빨리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애써 외면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흐윽.”

누군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대원들의 눈에서 재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허흐흑!”

그것은 박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구조 3대는 불타오르는 산을 뒤로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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