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1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건가?’
의식적으로 눈을 다시 떠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앞은 어두웠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으윽!’
몸을 움직여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뿐이었다.
수혁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떠올랐다.
눈앞을 덮쳐 오던 토사.
재빨리 몸을 피하려 했지만, 등에 업힌 김강식과 그의 장비가 걸림돌이 되었다.
자신을 덮쳐 오는 흙더미를 보며 수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김강식을 품에 안았고, 마치 자동차에 치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살았네.’
한 번 죽어봐서 안 것일까?
수혁은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식 선배는…….’
온몸을 엄습해 오는 통증을 참으며 손을 움직였다.
‘하아- 다행이다.’
손끝에서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김강식이 느껴졌다.
그리고 작지만 분명 호흡하고 있는 것도 들렸다.
일단 자신과 김강식 모두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수혁은 슬쩍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수혁은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파묻혔나 보다.’
수혁의 생각대로였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가 수혁과 김강식을 집어삼킨 상태였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은 수혁은 ‘생명 탐지Ⅱ’를 발동했다.
하지만 이 주변에서 감지되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시간이 꽤 흘렀어.’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에 박상태와 다른 이들은 이동한 듯했다.
물론 자신들을 구하지 않고 그냥 갔다고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붕괴된 토사에 깔렸으니,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대피시켜야 할 요구조자가 수십 명이 있지 않은가?
박상태의 결단은 당연한 것이었다.
수혁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똑같이 결정했을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이제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냐는 건데…….’
몸을 비틀어 공간을 조금 넓힌 뒤 품을 뒤져 봤지만, 난리통에 무전기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손전등밖에 없었다.
수혁은 혀를 차며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미친.”
나무 두 그루가 교묘하게 얽혀 수혁과 김강식을 둘러싸고 있었다.
만약 기적적으로 같이 쓸려온 나무들로 인해 이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둘은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압사하던가,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하던가.
마른침을 삼킨 수혁은 김강식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강식 선배, 일어나 보세요.”
“으음…….”
김강식은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는지 조금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선배, 선배.”
계속해서 김강식을 부르자 굳게 닫혀 있던 두 눈이 번쩍- 하고 떠졌다.
“허헉!”
수혁의 얼굴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린 것인지.
김강식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경악성을 터트렸다.
“저예요, 저!”
수혁은 김강식이 패닉에 빠지기 전에 얼른 그를 진정시켰다.
“여, 여기는?”
수혁의 노력이 통했는지, 사정없이 흔들리던 김강식의 눈동자가 조금 안정이 됐다.
“아무래도 토사에 깔린 것 같아요.”
수혁이 손전등을 돌려 주변을 비추었다.
“으음.”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은 김강식이 신음을 흘렸다.
“그래도 붕괴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니까,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온몸에 찌릿한 통증이 몰려오고, 마음대로 운신조차 할 수 없는 이 좁은 공간에서 탈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할 수 있었다.
“몸 상태는 어떠세요?”
“바, 발목이…….”
토사에 깔리기 전, 김강식은 발목을 다쳤다.
통증의 정도를 봐선 부러졌거나, 최소한 금이 간 상태일 것이다.
“다른 곳은요?”
“거기 빼면 괜찮은 것 같다.”
잠시 몸을 뒤척이며 몸을 점검한 김강식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사실 온몸이 아프긴 했지만, 굳이 타박상을 입은 것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불행 중 다행이네요.”
만약 갈비뼈가 부러졌거나, 다른 부위도 다쳤더라면 탈출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일단 제가 탈출로를 만들 테니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사방팔방 모두 막혀 있으니 산소도 희박할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괜찮았지만, 산소가 모두 소진되기 전에 탈출하지 못하면 큰일이었다.
김강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몸을 움직여 최대한 수혁이 행동하기 쉽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수혁은 손을 내밀어 대각선 위쪽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조, 조심해.”
김강식이 보기엔 수혁이 흙더미를 파내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마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퍼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저런 식으로 하다간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하지만 수혁은 담담했다.
마치 아무런 걱정도 없는 듯 보였다.
물론, 수혁도 붕괴의 위험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흙을 파내야 안전한지 알고 있었다.
바로 ‘위기감지Ⅱ’ 스킬 덕분이었다.
단순히 위험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그쳤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수혁의 시야에는 군데군데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들이 보였다.
아마도 저곳은 건드리면 위험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수혁은 붉은 표시가 있는 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쪽을 파냈다.
붉은 표시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안전하다는 것을 아는데, 굳이 천천히 주의하며 행동할 이유가 없었다.
망설임 없이 흙을 파헤치는 수혁의 모습에 김강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흙더미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김강식은 결국 허허-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도 수혁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의 목숨이 그의 손에 맡겨지자 더욱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수혁은 혼자서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되돌아왔다.
비록 실패해서 이렇게 갇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수혁도, 김강식도 아는 사실이었다.
김강식은 고마움과 미안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있는 놈이다.’
그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건 사람을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을까?
본래도 별다른 악감정이 없었던 김강식은, 수혁에게 신뢰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 * *
‘젠장, 젠장!’
박상태는 속으로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조 3팀 대원들이나 대피하고 있는 요구조자들 역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두 명이다.
구조대원 두 명이 흙더미에 묻혀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박상태는 요구조자고 뭐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그 둘을 구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다.
수혁과 김강식을 덮친 흙더미의 양으로 봐선, 이미 사망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실낱같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조하기엔 늦었다.
언덕이 무너져 내리며 그 위쪽에 있던 불길이 아래까지 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수혁과 김강식을 구조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면, 불길에 갇힐 수도 있었다.
자신들만 있었다면 그것을 감수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32명의 요구조자가 있었다.
그랬기에 박상태는 둘을 포기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망할 놈. 왜 거기서 자빠져서는!’
김강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오늘이 그놈 딸내미 생일인데…….’
며칠 전부터 입가에 미소를 달고 살던 김강식이다.
딸 선물로 뭘 해주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덕분에 모를 수가 없었다.
‘제수씨한텐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흐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수혁이 떠올랐다.
‘그 미친놈.’
설마 수혁이 그 붕괴에 휘말릴 줄은 몰랐다.
그토록 대단하던 놈이 대체 왜 그것을 피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두 사람이 흙더미에 집어삼키기 전.
분명 수혁은 김강식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 말은 김강식이 거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었고, 수혁은 그를 구하려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뜻했다.
‘결국, 그놈 말이 맞았어.’
김강식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던가?
반신반의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수혁은 김강식을 구하지 못했고, 자신 역시도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까.
“……형님, 괜찮으세요?”
박상태의 옆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던 박정우가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한 명은 박상태와 긴 시간을 함께해 온 동료였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부사수였다.
구조 3팀 내의 대원 중에서도 각별한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잃었으니, 괜찮을 턱이 없었다.
박정우는 박상태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수혁이 마지막으로 한 행동을 두 눈으로 지켜본 그로선 더욱 그랬다.
후방에 위치해 있던 박정우는 김강식이 쓰러진 것을 봤다.
하지만 그는 김강식의 등 너머로 보이는 토사 붕괴에 감히 돌아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김강식을 구하러 갔다가는 자신 역시 죽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김강식을 외면하고 앞으로 도망치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수혁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김강식을 향해 뛰어갔다.
자신이 죽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않는지, 수혁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단 김강식을 구해야겠다는 의지밖에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박정우는 가슴속에 쿵- 하고 바위가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는 수혁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악의마저 품었다.
팀워크는 개나 갖다 주고, 혼자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며, 다른 동료들에게 폐나 끼치는 꼴통.
그것이 박정우가 수혁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었다.
물론 수혁이 신입답지 않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박정우는 수혁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하러 가는 수혁의 등은 그 누구보다도 소방관다웠다.
최소한 자신보다는 훨씬 소방관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박정우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수혁에 대한 감정은 단순히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갓 배치된 신입이,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활약상을 보이는 것에 대한 질투와 시기.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김강식을 향해 달려가는 수혁의 등이 떠오를 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다.
‘동료에게 폐를 끼친다고? 팀워크를 해친다고?’
누가? 김수혁이?
더는 박정우의 머릿속엔 수혁을 향한 악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제발 수혁과 김강식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