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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9화 (19/425)

레스큐 시스템 19화

씹어뱉는 듯한 박상태의 음성에 수혁이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각오하고 벌인 일이긴 했지만, 확실히 무단으로 구조 3팀을 떠나 혼자 활동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박상태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반면,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거친 목소리를 들은 이강현은 흘깃- 수혁을 쳐다보았다.

좀 전 무전할 때도 생각한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수혁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신일서에서 원하던 것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수혁은 자신의 부하 대원이 아니다.

혼을 내도 그의 선배들이 해야 할 일이었고, 징계를 내려도 신일서에서 해야 했다.

혀를 찬 이강현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구조자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그리고 그사이, 구조 3팀이 도착했다.

다짜고짜 다가와 수혁을 한 대 쥐어박으려던 박상태는 뒤쪽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멈칫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요구조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혁을 타박할 순 없었다.

그것은 신뢰의 문제였다.

만약 구조대원인 수혁이 자신에게 혼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준다면, 수혁에 대한 믿음이 옅어질 수가 있다.

앞으로 산을 빠져나갈 때까지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들이 수혁을 믿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있다.

“끄응.”

박상태는 인내심을 발휘해 화를 가라앉히며 수혁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내려가서 보자.”

협박 아닌 협박을 한 박상태가 슬쩍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숫자는 넷.

그리고 다른 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구조대원 하나.

“통성명은 나중에 하도록 합시다,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니.”

이강현과 악수하며 그렇게 말한 박상태는 시선을 돌려 요구조자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저희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박상태의 말에 요구조자들의 표정에 안도가 서렸다.

그들은 처음 수혁과 이강현을 만났을 때, 구조대가 고작 두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조금 불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구조대원들을 만나자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다른 요구조자는?”

“일단은 이분들까지요.”

전생에서 이 산불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었다.

그리고 그 인명피해 중 사망자는 모두 캠핑장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분명 다른 쪽에도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사망까지 이르진 않을 것이다.

다른 구조대에서 그들을 구조할 테니까.

“제가 가르쳐 드린 좌표에는…….”

“강식이랑 애들 몇 명 보냈다.”

혹시나 하는 질문에 대한 박상태의 대답이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김강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역시 그쪽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이쪽의 요구조자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했으니, 한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물론 그것은 박상태가 수혁의 말을 믿는 전제조건이 선행되어야 했지만, 다행히 박상태는 믿어주었다.

“그쪽엔 몇 명이나 있냐?”

“32명이요. 상황실에서 얘기해 줬잖아요.”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 까먹고 있었지만, 분명 출동 당시에 상황실에서 브리핑해 준 내용이었다.

“너무 많은데…….”

수혁이 가르쳐 준 좌표로 간 구조대원은 김강식을 포함해 다섯 명이다.

경험이 많은 이들이었으니 딱히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구조대원의 수가 적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식 선배라…….’

본래대로였다면 김강식은 이쪽을 구조하러 왔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 김강식은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부상을 피할 수 있을 것이지만, 수혁은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안 돼.”

수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상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수혁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또 마음대로 움직이게 놔두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했다.

지금은 자신의 시야 안에 두고 산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박상태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저랑 같이 가던가요.”

이곳에는 요구조자가 네 명밖에 없다.

그리고 구조대원은 그보다 많았다.

수혁과 박상태가 빠진다 하더라도 이들을 충분히 산 밖으로 탈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그쪽에 인력이 더 필요한 건 사실이잖아요.”

“다른 녀석들을 보내면 돼.”

박상태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아-”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같아선 이대로 혼자 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수혁은 따갑기까지 한 그들의 눈빛에 살짝 우울해졌다.

“상태 형.”

수혁이 더는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던 박상태의 팔을 잡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네가 뭐라고 해도 마음 안 바뀐다.”

수혁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겠다고 마음먹은 박상태는 절대로 설득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수혁은 그런 박상태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신기 있는 거 아시죠?”

“신기는 무슨.”

난데없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 감이 안 좋아요. 제가 안 가면 그쪽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수혁은 최대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정말로 일이 생길지 안 생길지는 수혁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그가 겪은 전생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이전의 생처럼 김강식이 부상을 입는다면 큰일이었다.

김강식이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 구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수혁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가정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김강식이 부상을 입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수혁은 만에 하나라는 아주 작은 가능성조차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생기긴 무슨 일이 생긴다고 그래. 그쪽에는 강식이가 갔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그 강식 선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면요?”

박상태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너 인마,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이런 현장에서 그와 같은 불길한 말은 절대로 내뱉어선 안 될,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혁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을 한 것은, 박상태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 증거로 수혁이 무슨 말을 해도 절대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았던 박상태가 노려보고 있었다.

“느낌이 안 좋아요. 그쪽으로 가야겠어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는 잠시 주저했다.

방금 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로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는 대로 된다면 점쟁이를 하지, 왜 소방관 짓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동안 수혁이 보여준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 수혁이 한 말 중 허튼소리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닌 말로, 수혁의 말대로 해서 나빴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도움이 되면 되었지.

물론 그 과정에서 마찰과 갈등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수혁은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뭔가가 있다는 건데…….’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박상태가 입을 열었다.

“만약 별일 없으면 넌 진짜 뒤질 줄 알아라.”

그 말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허락이었다.

“나도 같이 간다.”

수혁은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쪽에 문제가 터진다면, 수혁 혼자 있는 것보다 박상태가 함께하는 쪽이 훨씬 나았으니까.

박상태는 이재한을 불렀다.

일전에 납치사건 때도 함께했던 그는, 이곳에서 박상태를 제외하면 가장 경험이 많은 인물이었다.

“나는 저놈이랑 다른 쪽으로 갈 테니까, 여기는 네가 맡아라.”

갑작스러운 변경에 이재한의 눈이 수혁을 향했다.

둘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수혁이 또 뭔가를 저지른 것이 틀림없었다.

“알겠습니다.”

사실 이재한은 수혁에게 큰 악감정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수혁을 신뢰하는 쪽에 가까웠다.

납치사건과 그 이후에 수혁이 보여준 모습은, 절대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했다.

물론 소방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팀워크를 해치는 것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수혁이 항상 옳았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니 신뢰감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몇몇을 제외하면 이재한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분위기상 그런 말을 내뱉진 못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때문에 이재한은 순순히 박상태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사이 수혁은 이강현에게 다가갔다.

“저는 다시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이강현은 수혁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그럴 체력이 남질 않았다.

수혁을 따라 움직인 것만으로도 완전히 지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쪽에 있는 우리 애들도 좀 챙겨줘.”

“알겠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는 다시 박상태에게로 돌아갔다.

“가시죠.”

“그래.”

지금쯤이면 슬슬 캠핑장 쪽 요구조자들도 이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예상 대피경로 쪽으로 바로 이동하는 편이 합류하기 편할 터.

잠시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려 본 수혁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수혁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출동 후, 지금까지 계속 산속을 달리며 헤매고 다닌 사람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빨랐다.

“저 괴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중얼거렸다.

이재한과 구조 3팀 대원들 역시 그것에 동의한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냐, 이건?”

김강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머리를 긁적였다.

수혁이 말해준 좌표에 정말로 요구조자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긴 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상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말고 다른 구조대가 왔었나?”

“그러게 말입니다.”

한쪽에 모여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한 명도 빠짐없이 방연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무려 32명이었다.

조연서에서 나온 구조대원 두 명이 있긴 했지만, 그 두 사람만으론 저만큼의 장비를 챙겨올 수가 없었다.

요구조자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 중에는 휴대용 산소통도 몇 개 있었으니 말이다.

저 많은 것을 고작 두 명에서 옮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강식은 궁금증이 몰려왔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조금 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은 저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불길이 이쪽까지 닿기에는 아직 여유가 있긴 했지만, 조금씩 연기가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장비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김강식은 지도를 펼치고 대피 경로를 살펴보았다.

이쪽으로 오면서 화점과 불길을 표시해 두었으니, 그쪽을 피해 이동하면 되었다.

“음…….”

지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강식이 지도를 접었다.

그러곤 요구조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대원들을 향해 이동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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