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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7화 (17/425)

레스큐 시스템 17화

수혁은 빠르게 나무 사이를 질주했다.

방금 전까지 사람 한 명을 등에 업고 한참 동안이나 이동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덕분에 그 뒤에서 따라가는 이강현만 죽을 맛이었다.

‘대,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수혁은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수혁이 괴물로 보일 지경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조금만 방심하면 그대로 속에 있는 내용물을 게워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강현은 조금 쉬었다 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앞서 달려나가는 수혁의 뒷모습에서 도저히 쉬자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다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같은 구조대원으로서, 더욱 서두르지는 못할망정 그런 수혁의 발을 붙잡을 순 없었다.

‘그래, 오늘 한번 죽어보자!’

이강현은 뛰다 숨이 막혀 죽는다 해도 수혁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강현의 그 다짐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엥?”

갑자기 수혁이 걸음을 멈춘 것이다.

덩달아 멈춘 이강현의 얼굴에서 맺혀 있던 땀방울이 후드득- 하고 떨어져 내렸다.

“흐어억, 허억!”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공기가 폐를 찢을 듯이 몰려들었다.

뒤돌아 그런 이강현의 모습을 확인한 수혁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 가죠.”

“나, 나는 괜찮……!”

“그냥 쉬세요.”

손을 내저으며 휴식을 거부하려 했지만, 수혁은 억지로 이강현을 앉혔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로 들릴 정도였는지라, 이강현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못 따라오시면 버리고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오시더라구요.”

수혁은 이강현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실제로 수혁은 이강현을 따돌리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구조 3팀에서도 그런 수혁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박상태 정도가 유일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강현은 따라붙었다.

비록 반쯤 실신할 지경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같이 행동할 만하겠어.’

수혁은 이강현을 인정했다.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저렇게 폐가 터져 나가라 숨을 몰아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 물 좀 드세요.”

수혁은 공터에서 챙겨온 물통 하나를 건넸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타는 듯한 목을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이강현은 지친 표정으로 수혁을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받아들었다.

“켈룩- 큽!”

물을 마시던 이강현은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해댔다.

그러다 진정이 되었는지 거칠게 입가를 닦으며 수혁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해야 체력이 그렇게 좋은 거지?”

운동이라면 자신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다른 베테랑 소방관들에 비하자면 아직 젊었고, 특전사 출신인 데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단련해 왔다.

때문에, 체력 하나는 자랑할 만했는데, 수혁에 비하자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아니, 같은 거리를 같은 속도로 달려왔는데 호흡도 안 흐트러지는 게 말이 돼?’

이강현은 죽다 살아날 정도인데 말이다.

“타고났나 봅니다.”

수혁이 피식- 웃으며 반쯤 농담으로 대꾸했다.

확실히 레벨 업을 통한 신체 능력 상승은 어마어마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수혁이었으면 이강현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을 텐데, 지금은 조금 지친 것을 제외하면 팔팔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진 않았다.

“이제 움직일까요? 호흡도 돌아오신 것 같은데.”

헉헉대던 이강현의 숨소리가 어느새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끄응, 그래야지.”

마음 같아서는 한 시간 정도 푹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있을까?”

수혁이 다른 사람들을 구조하러 간다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누구를, 어디로 구하러 가는지에 대해선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산 정상 쪽에 고립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실 나온 어르신들인 것 같은데, 불이 나는 바람에 내려오지 못하고 계실 겁니다.”

이강현은 듣지 못한 정보다.

아니, 사실 상황실이나 지휘부에서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수혁이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전생의 기억 덕분이었으니까.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이 화재 현장에서 수혁은 캠핑장 사람들과 방금 말한 요구조자들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캠핑장 사람들은 너무도 큰 희생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었고, 산 정상에 있는 이들은…….

‘강식 선배가 부상을 입지.’

전생에서 김강식은 뒤늦게 들어온 구조요청에 대원들을 이끌고 산 정상으로 향했다.

그때 수혁과 박상태는 다른 구조팀과 함께 캠핑장 쪽을 향했기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당시 요구조자가 몇 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김강식이 그들을 구하다 폐에 큰 데미지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뜨거운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기에 폐가 견디지 못하고 익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김강식은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였고, 결국에는 살아나긴 했지만 소방관을 은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딸의 생일에 말이다.

수혁은 이번 생에서도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쌓인 정이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김강식은 그렇게 쓰러져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구조요청이 들어왔나 보지?”

“네, 뭐…….”

수혁은 이강현의 질문을 얼버무렸다.

“정상 쪽은 좀 힘들 텐데.”

이제 불길을 예측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불똥들이 무차별적으로 화재를 키우고 있었다.

초기 진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분명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 가는 길에도 화점이 몇 군데나 있었다.

거기다 산자락을 타고 연기가 퍼져 나가고 있을 테니, 결코 쉽게 접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겠습니까? 힘들어도 가야죠.”

최소한의 장비는 갖추었다.

방연 마스크도 있고, 등짐 펌프도 있다.

게다가 이강현이라는 생각지도 않은 조력자도 생겼으니, 당초 계획보다는 조금 수월할 터.

문제는 이강현의 체력인데…….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정상에 도착한다고 해도 문제다. 우리 둘만으론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빠져나올 수 없어.”

체력에는 자신 있던 본인도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라면, 체력적인 한계가 따를 것이 분명했다.

수혁과 이강현이 보조를 한다 해도 말이다.

“지원을 부르면 되죠.”

수혁의 태연한 말에 이강현이 표정이 마치 ‘그게 뭔 개소리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변했다.

“그게 뭔 개소리야?

그리고 이강현은 그것을 표정으로 끝내지 않았다.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했다.

“지원 요청이 되면 벌써 했지.”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무전기까지 말썽이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원 요청이 가능했으면, 산속에서 그렇게 헤매고 다닐 것이 아니라 벌써 다른 구조대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강현은 수혁의 이어지는 행동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품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든 것이다.

“너, 너……!”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사용이 가능한 무전기 같았다.

“그런 게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그랬으면 괜한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말씀드리잖아요.”

어차피 캠핑장 사람들은 그쪽으로 대피했어야 했다.

그곳이라면 불과 연기 속에서도 안전할 테니, 지금 무전을 통해 알려도 충분했다.

수혁이 그동안 무전기를 꺼둔 이유는 단순했다.

박상태에게 쉴 새 없이 무전이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도망치듯 빠져나온 바람에 구조 3팀은 현재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수혁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무전을 할 것은 뻔한 일이었고.

하지만 이제는 켤 때가 됐다.

이강현의 말대로 지금부터는 자신들의 힘만으론 구조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수혁은 황당해하는 이강현을 뒤로하고 무전기를 켰다.

“상태 형.”

무전기의 전원이 들어오자 수혁은 송신 버튼을 누르고 박상태를 불렀다.

그리고 동시에…….

[야, 이 새끼야! 너 어디야!]

박상태의 고함이 무전기를 타고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박상태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수혁은 놀란 기색도 하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정상 쪽으로 요구조자들 구조하러 가는 중입니다. 그쪽으로 지원 좀 보내주세요.”

[이 미친놈이……!]

“화나신 거 이해하는데, 좀 급해요. 나중에 혼날 테니까 지금 바로 출발해 주실 수 있어요?”

너무도 태연한 수혁의 말에 무전기 너머에서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상태 형?”

수혁이 다시 한 번 부르자 박상태의 체념한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아, 너 진짜 두고 보자. 이번에는 정말 그냥 안 넘어가.]

박상태의 한숨 소리가 무거웠다.

실제로 그냥 넘어가기엔, 이번에 수혁이 저지른 일은 가볍지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너 찾으러 움직이는 중이다. 요구조자들 어디 있다고?]

“정상 부근일 겁니다. 숫자는 아직 파악 못 했어요. 그래도 최소한 세 명 이상은 될 겁니다.”

[알았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향할 테니까, 거기서 보자.]

“그리고 또 있어요. 제가 부르는 좌표 쪽에 캠핑장에서 대피한 요구조자들이 모여 있어요. 그쪽도 좀 부탁드립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캠핑장?]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수혁은 지도를 꺼내 요구조자들을 모아놓은 공터의 좌표를 불렀다.

구조 3팀은 수혁의 말대로 정상 쪽을 향해 올 테니, 그쪽은 다른 구조대가 향할 것이다.

“안전한 곳이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좀 서둘러 달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아무리 많은 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산불이다.

언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랐으니 최대한 빠르게 구하는 것이 좋았다.

“아, 그리고 상태 형.”

무전을 종료하려던 수혁이 뭔가 생각했는지 다시 박상태를 불렀다.

그러곤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사과.

그것을 들은 박상태는 퉁명한 음성으로 답했다.

[됐고, 몸조심해라. 괜히 또 혼자 나대다가 죽지 말고.]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저희도 이제 출발하죠.”

무전기를 집어넣은 수혁이 이강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수혁과 박상태의 대화를 들은 이강현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너 설마…….”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수혁은 혼자 구조대를 이탈해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이강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 설명도 나중에. 일단은 사람들부터 구하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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