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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3화 (13/425)

레스큐 시스템 13화

“후욱- 후욱-”

마스크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산불 현장에 무거운 봄베를 매고, 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쓴 상태로 돌아다닐 순 없었다.

그것은 엄청난 신체 능력의 소유자인 수혁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분명했으니까.

때문에 수혁은 작은 방연 마스크와 등짐 펌프 하나만을 착용한 채 숲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캠핑장.

수혁은 박상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현장을 빠져나온 것이다.

지금 곧바로 캠핑장으로 가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말을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신일 소방서의 구조 3팀은 조연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곳에 있는 구조대는 그들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막무가내로 들어가 봐야 방해만 될 뿐이었다.

박상태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후방 지원에 집중할 것이다.

전생에서도 그랬으니까.

물론 박상태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박상태와 구조 3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수혁은 이번 생에서도 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다.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가?

같은 선택을 해봐야 같은 결과만 도출될 뿐이었다.

수혁은 잠시 발을 멈추었다.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벌써 불이 여기까지…….”

조연산의 지리를 미리 숙지해 둔 수혁은 캠핑장까지 갈 수 있는 최단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길이 끊겼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간 산불은 수혁이 상정해 두었던 길을 모조리 집어삼킨 상태였다.

도착하자마자 1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달려왔건만, 너무 늦은 듯했다.

“젠장.”

작게 욕설을 내뱉은 수혁이 뒤로 시선을 돌렸다.

등에 매달려 있는 등짐 펌프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용 개인 진화 장비인 등짐 펌프는 산불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였다.

하지만 그것도 보충이 가능하고, 집단을 이룰 수 있는 상황에서나 통용되는 말.

물 보충이 불가능한 지금 시점에서는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일회용 장비였다.

그것도 고작해야 물 15ℓ가 전부인.

‘가능할까?’

과연 15ℓ의 물로 저 화염을 뚫고 지나갈 수 있을지 고민되었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불길을 피해 크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릴수록, 요구조자들의 안전이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한다!’

가능, 불가능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다른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수혁은 호스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노즐을 조정해 분사식으로 맞춘 후, 피스톤을 밀어 넣었다.

쏴아아아아-!

호스 끝에서 안개와 같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수혁이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으윽!’

물안개를 방패 삼아 움직였지만, 고작 그 정도만으로 이 거대한 산불의 열기를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면체 마스크가 아닌, 단순한 방연 마스크였기 때문에 얼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발을 놀리며 피스톤을 압축했다.

키이잉-!

[스킬 : ‘위험 감지Ⅱ’가 발동됩니다.]

귀를 울리는 이명과 함께 글씨가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수혁이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콰드드득-!

화염에 휩싸인 나무 하나가 방금 전까지 수혁이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을 향해 쓰러졌다.

쿠웅-!

쓰러진 나무에서 날파리 같은 불똥들이 튀며 허공을 수놓았다.

‘큰일 날 뻔했다!’

만약 ‘위험 감지’ 스킬이 한 단계 레벨 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피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스킬 레벨이 오르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이 위험한지도 표시가 되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

불타는 산속은 너무도 위험했다.

불과 연기, 그리고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르는 화염의 잔해까지…….

엄청난 신체 능력과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수혁이 위험을 느낄 정도였으니, 평범한 사람은 오죽할까?

“서둘러야겠다.”

수혁의 눈빛이 더욱 다급해졌다.

* * *

“팀장님!”

구조 3팀의 대원 중 하나가 다급한 음성으로 박상태를 불렀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박상태가 그 소리를 듣고는 얼굴을 구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다급한 상황에 일을 방해하고 있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대원의 말에 박상태는 얼굴을 더욱 구길 수밖에 없었다.

“김수혁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대원들이라면 그리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딴 길로 샌 것이 아닌, 그저 이 복잡한 상황 속에 묻혀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할 테니까.

그런데 수혁은 아니었다.

대원의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하나.

‘또 사고 쳤구나, 이 새끼!’

오늘 하루 종일 이상했던 수혁의 행동이 떠올랐다.

물론 그것과 지금 수혁이 사라진 것을 연관 짓기는 어려웠지만, 박상태는 왠지 수혁이 지금 이때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어?”

일단은 수혁을 찾아야 한다.

수혁이 괴물 같은 놈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만에 하나 이렇게 개인행동을 하다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10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젠장.”

10분이면 자신들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는 말이다.

박상태의 의심은 더욱 크기를 더해갔다.

“너는 강식이랑 몇 명 더 데리고 가서 그놈 찾아. 캠핑장 쪽으로 향했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박상태는 구조차 안에서 지도를 확인할 때, 수혁이 망설임 없이 캠핑장을 가리켰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녀석은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 썩을 놈.”

박상태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찾기만 한다면, 그리고 무사하기만 하다면.

이번엔 뺨다구라도 한 대 치면서 단단히 혼을 내야겠다.

“무슨 일 있습니까?”

박상태가 수혁을 향해 이를 갈고 있을 때, 뒤쪽에서 박상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박상태를 부른 사람은 조연산 일대를 관할로 두고 있는 조연 소방서의 구조대장인 김철중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치고는 표정이 심각해 보이시는데.”

아닌 게 아니라, 박상태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입 한 명이 사고를 좀 쳐서……. 그보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신입이 사고를 쳤다는 말에 김철중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서에 있는 신입도 곧잘 사고를 치고는 했기에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낀 것이다.

본래 신입이란 그런 존재니까.

“고생 많으시네요. 궁금한 게 뭡니까?”

“조연산에 캠핑장이 있다고 하던데.”

“아, 예. 맞습니다. 현재 그쪽으로 저희 구조대원들 몇 명이 출동한 상태입니다.”

김철중의 대답에 박상태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리 험한 산이 아니어서 산악구조대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을 관할로 두고 있는 서였으니 아는 것이 많을 터였다.

“혹시 그쪽에 문제없습니까?”

박상태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지금까지 봐온 수혁은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할 놈이 아니었다.

첫 출동에서도 그랬고, 대형 마트 지하 주차장에서도 그랬다.

막무가내로 혼자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골치입니다.”

“예? 그게 무슨?”

“불길이 캠핑장을 감싸 안은 형태로 번지고 있습니다. 조금 전 그쪽으로 간 대원들한테 무전이 왔는데, 대피가 어려운 상태라고 하더군요.”

‘이거구나!’

박상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은 그들을 구조하러 간 것이 틀림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서 지금 캠핑장 쪽으로 갈 구조대원들을 편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서에서도 인원을 차출하겠습니다.”

수혁의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신일서에서요?”

의외라는 듯, 김철중의 눈이 살짝 커졌다.

모르긴 몰라도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험할 터였다.

불길을 뚫고 들어가야만 했고, 그 안에 있는 수십 명의 요구조자를 데리고 나와야 했으니 말이다.

캠핑장이 아니더라도 구조대원들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 상황에, 굳이 그런 위험한 곳을 자처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누구라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박상태의 모습에 김철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일서의 구조대원들을 포함해서 구조팀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준비 마치는 대로 찾아뵙죠.”

“예, 그럼.”

김철중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돌아갔다.

“후우-”

머릿속이 복잡해진 박상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놈을 찾는 거고…….’

그 후에는 구조에 집중한다.

혼낼 건 혼내더라도, 일단은 구조가 우선이다.

수혁이 이렇게 행동한 것을 보면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았으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식아!”

박상태는 급히 김강식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김강식이 이미 출발했다는 대답이었다.

아차-! 한 표정을 지은 박상태는 남은 대원들을 향해 장비들을 챙기라 명령했다.

그러고는 무전기를 들어 곧바로 김강식을 호출했다.

[지금 캠핑장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직 김수혁은 찾지 못했는데… 여기 상황이 좀 심각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나오는 김강식의 음성은 심각해 보였다.

“일단 돌아와. 네 말대로 그쪽 상황이 안 좋아서 구조팀 짜서 돌입하기로 했다.”

[수혁이 놈은요?]

“구조팀과 함께 수색한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다행히 김강식과 다른 대원들이 그리 멀리까지 간 것 같진 않았다.

박상태는 구조 장비들을 챙기며 고개를 돌려 산 쪽을 쳐다보았다.

산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의 채취가 묻어 있는 아름다운 단풍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붉은 화마였다.

그것을 본 박상태의 얼굴이 굳어졌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조대 활동하면서도 몇 번 보지 못한 큰 불이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것 중 가장 커다란 규모의 산불이기도 했다.

박상태는 왠지 오늘 밤이 길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 확실하겠지.’

화재의 규모만 보자면 예감이 예감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지금도 지원을 온 다른 관할의 펌프차가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이 화재가 얼마나 대규모인지 알 수 있었다.

결코, 단시간 내에 끝나진 않을 터.

‘체력 싸움이 되겠군.’

박상태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혁에 대한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사고를 친 빌어먹을 놈이라 하지만, 수혁은 자신의 대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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