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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1화 (11/425)

레스큐 시스템 11화

12레벨.

정신이 나갈 정도의 출동을 거듭해 온 결과였다.

아쉽게도 새로운 스킬을 얻진 못했지만, 모두 한 단계씩 레벨 업을 했고, 레벨이 오르며 상승한 신체 능력이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우선 40㎏이 넘는 장비가 더는 수혁의 육체를 짓누르지 못했다.

구조 작업 도중 장비를 풀로 착용한 채 날아다니는 수혁의 모습에, 출동했던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구경할 정도였다.

지금이라면 장비를 착용하고도 100m 달리기 기록이 20초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체력 역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수혁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소방서까지의 거리는 대략 5㎞ 정도.

수혁은 출근할 때 버스를 타는 대신, 직접 달렸다.

그럼에도 소방서에 도착한 수혁의 얼굴에는 땀은커녕, 호흡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인간 같지도 않은 육체 능력이었다.

선배들은 그런 수혁을 흡사 괴물 보듯이 쳐다보았다.

도저히 수혁이 인간처럼 보이질 않았다.

덕분에 수혁의 별명이 구조 3대의 ‘꼴통’에서 ‘괴물’로 바뀌었다.

수혁의 행동 역시 달라졌다.

처음 며칠간 저질렀던 막무가내식의 행동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오히려 그 어떤 신입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매뉴얼대로 행동했으며, 선배들의 지시 역시 어기는 법이 없었다.

고승우와의 만남 이후로 수혁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수혁의 평판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핀잔을 주는 일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피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나마 박상태나 김강식이 아니었다면, 소방서에서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할 뻔했다.

어찌 되었든 수혁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물 만난 고기처럼 움직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출동했던 현장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혁의 활약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신체 능력과 10년간의 구조 경험.

그것이 없었다면 이런 성과를 내기 힘들었을 터였다.

구조 3팀의 대원들도 그런 수혁의 활약을 외면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오늘이지?’

침대에서 일어난 수혁의 가슴이 뛰었다.

그것이 기대나 설렘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불안감.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구조에 앞장섰고, 가끔 떠오르는 퀘스트를 단 하나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다.

수혁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자신의 힘을 믿었다.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짜악-!

수혁은 두 손을 펼쳐 자신의 뺨을 때렸다.

“일단은 출근부터.”

사람 한 명 누우면 끝인 작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수혁은 대충 샤워를 마친 뒤,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워 입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주황색 상의에는 검은 때가 꼬깃꼬깃 끼어 있었다.

왠지 좋지 못한 악취에 수혁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간 너무 바빴던 탓에 제때 세탁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 전에 해놨어야 했는데…….’

수혁은 코끝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향기에 이맛살을 구겼다.

그나마도 이 옷이 가장 상태가 좋았기에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고시원을 나섰다.

12월의 얼어붙은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스트레칭을 한 수혁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수혁의 신형이 앞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온 힘을 다해 달리는 것도 아니고, 조깅하듯 가볍게 뛰는 것에 불과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았다.

수혁은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매일같이 지옥 같은 검은 연기 사이를 누비는 것과 비교하자면,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후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며 달렸더니, 어느새 저 앞에 소방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조용해 보이는 전경.

잠시 후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막했다.

수혁은 짧게 심호흡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수혁이 전번 근무자들을 향해 인사를 했지만, 그들은 흘깃-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구조 3팀의 박정우처럼 악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역시 수혁을 꺼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예상했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구조 3팀의 대원들이 출근을 시작했고, 곧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

“오늘은 좀 한가하려나?”

“설마요.”

박상태의 중얼거림에 김강식이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번 근무자들도 아주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새벽에 나간 구조출동만 다섯 번이래요, 다섯 번.”

구급도 아니고 구조대 출동이 다섯 번이나 된다는 것은 확실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것도 새벽 시간에만 그 정도였으니…….

“저희는 그것보단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겠죠.”

김강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도 바쁘기로 유명한 관할이긴 했지만, 요즘 들어선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네요.”

김강식은 한쪽 책상에 앉아 업무준비를 하고 있는 수혁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들 애써 말을 하지 않고는 있었지만,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전원 구조는 불가능했겠지.’

김강식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수혁의 신입답지 않은 정확한 판단력과 사람 같지 않은 신체 능력이 아니었다면, 몇몇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야. 그렇지?”

김강식의 시선이 수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박상태가 속삭였다.

“아, 네. 배치받은 지 이제 갓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녀석이 분명한데, 하는 행동을 보면 저보다도 능숙할 때가 있어요.”

“그렇지. 나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으니까.”

박상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혁은 너무도 노련했다.

첫 출동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수혁은 마치 이 바닥에서 몇 년 동안은 구른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도 자주하긴 했지만 말이다.

“대체 뭐 하던 녀석이랍니까?”

“별것 없어. 그냥… 평범해.”

수혁의 거침없는 행동에 놀란 박상태는 남몰래 그의 뒷조사를 해보았다.

뒷조사라고 해봐야 수혁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 몇 장을 보는 것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로 수혁은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특이사항이라고 해봐야, 어린 시절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 정도뿐.

그 외에는 특별할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해.”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온 수혁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긴 하죠.”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준 것은, 이전에 말했던 ‘감’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애초에 10년이 넘게 구조 활동을 해온 박상태와 김강식보다도 더 뛰어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그래도 요즘은 좀 얌전하니 다행이네요.”

근래의 수혁은 성실과 순종의 아이콘이었다.

자신의 평판을 신경 쓰기라도 하듯, 혼자서 폭주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 봐야 워낙 저지른 일들이 있었기에, 아직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긴 한데……. 좀 불안해.”

“뭐가요?”

“글쎄, 마치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박상태는 무거운 눈동자로 수혁을 바라봤다.

반면 수혁은 그 둘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출근한 뒤, 그의 신경은 줄곧 조금 있으면 일어날 산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캠프장은 여기고…….’

수혁의 책상에는 지도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소방서에 비치되어 있는 그 지도에는 화재가 일어날 산의 모습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다.’

험준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높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얕볼 수는 없는 게, 넓이가 어마어마했다.

그 안에 캠핑장과 등산로가 크게 형성되어 있었고, 심지어 아파트와 고등학교까지 산자락에 인접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인명피해도 꽤 크게 일어났지.’

겨울의 건조한 대기 덕에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당연하게도 그 모든 시설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 바로 캠핑장.

연말을 맞아 단체로 겨울 캠핑을 온 이들이 제때 피신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캠핑장으로 가는 거다.’

수혁은 지도를 보며 차근히 계획을 되뇌었다.

화재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상황에 대비해 탈출로를 구상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 정도라면 희생자를 만들지 않고 모두 구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혁의 시선이 박상태 쪽을 향했다.

그는 김강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에 대한 것 같았다.

지금도 흘깃거리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수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단단히 찍히겠어.’

수혁이 짠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독행동이었다.

현장에서 수혁의 의견이 통해 공식적으로 구조대가 움직인다면 모를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말은 곧, 이번에도 수혁은 매뉴얼을 무시하고 혼자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수혁이 저질렀던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군대로 따지자면 근무지 무단이탈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니까.

분명 행동에 대한 책임이 따라올 것이고, 그것은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서워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과거로 돌아와, 알 수 없는 글자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난 소방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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