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0화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했고, 길거리에선 조금씩 캐럴이 들려왔다.
“어우, 춥구만.”
몸을 파고드는 싸늘한 바람에 수혁은 옷깃을 여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과 복귀를 반복하던 하루 속에서 오랜만에 맞이한 평화로운 일상이었지만, 수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2주밖에 안 남았다.’
앞으로 2주 후.
산불은 그때 시작된다.
크고 작은 부상자가 30명 이상 발생하고, 사망자가 다섯 명이나 되는 대형 화재.
“막을… 순 없을 테고.”
일주일 후에 산에서 불이 날 거라고 경고를 해봐야 미친놈 취급이나 받을 게 뻔했다.
혹시 수혁에게 신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는 박상태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재가 일어나기 전, 미리 가서 조기 진압을 한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겠지만, 그 넓은 산에서 발화지점이 어디인 줄 알고 찾는단 말인가?
“인명구조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겠어.”
수혁은 일단 화재의 진화보단 인명구조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수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수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거리는 연말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체 이놈은 언제 오는 거야.”
수혁은 실로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근 5년 만인가?’
전생에서의 시간까지 합치면 그 정도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다들 결혼을 하고, 수혁 역시 일로 바쁜 와중이었기에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유부남의 농담 섞인 투정을 받아주며 짜증을 냈었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수혁만이 결혼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수혁의 뒤에서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야! 김수혁!”
수혁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한껏 멋을 부린, 그리고 젊어진 얼굴의 친구가 있었다.
“아직 살아 있네?”
“그게 친구한테 할 소리냐?”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십년지기, 고승우의 질 낮은 농담에 수혁이 웃으며 대꾸했다.
“못할 건 또 뭐고.”
곁으로 다가온 고승우는 주먹을 들어 그대로 수혁의 옆구리를 퍽- 하고 쳤다.
“윽!”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통증에 깜짝 놀란 수혁이 소리를 치려다,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그 동영상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아냐?”
“……봤냐?”
“보기만 했을까? 아주, 내 컴퓨터에 박제해 놨다, 이 새끼야.”
수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승우가 말하는 동영상이란 바로 얼마 전, 수혁이 빌딩에서 구조하는 영상이었다.
수혁에게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던.
인터넷 상에서 꽤나 퍼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고승우가 봤을 줄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그 영상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했다.
“신기하긴 뭐가 신기해. 네 신상 이미 다 떴어.”
네티즌 수사대라고 했던가?
그들은 그 짧은 영상 하나만 가지고 수혁의 신상을 밝혀낼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
“그때 심장 철렁한 걸 생각하면 진짜……. 아오!”
분통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쾅쾅- 두들기는 고승우의 모습에 수혁이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네가 내 애인인 줄 알겠다.”
“이게 확!”
고승우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지만, 이번엔 손쉽게 피해냈다.
“그래서 만나자고 한 거냐?”
갑자기 연락해서는 다짜고짜 얼굴 한 번 보자고 한 게 이상하다 싶더니…….
“쯧,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불렀다.”
고승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수혁은 알고 있었다.
저래 보여도 자신이 걱정되어 만나자고 한 것임을 말이다.
“네가 쏘는 거냐?”
“뭔 소리야? 당연히 네가 쏴야지.”
“내가 돈이 얼마나 있다고. 나 아직 첫 월급도 못 받았다.”
“어휴, 이 지지리 궁상아.”
고승우가 얼굴을 구기며 앞장섰다.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중견기업에 입사한 놈이었으니 주머니 사정은 수혁보다 그가 나았다.
“그래도 다행이네. 난 네가 꽤 많이 다친 줄 알았거든.”
소주를 세 병이 비운 뒤에야 고승우는 숨기고 있던 걱정을 드러냈다.
사실 많이 다친 것은 맞다.
최소한 한 달 이상 요양했어야 할 부상을 입었으니까.
하루 만에 멀쩡해지긴 했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지, 뭐.”
“그 운이란 거……. 너무 믿지 마라. 그거 믿고 나대다가 한 방에 훅 간다, 너.”
고승우의 걱정스러운 말에 수혁은 소주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그래.”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
‘조금은 반성해야지.’
그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 말미암아 지인들이 힘들어하는 것 역시 보고 싶진 않았다.
구조대가 구조해야 할 것은 요구조자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도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와야만 한다.
구조대원 역시 살아남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니까.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소방관은 세상의 칭송을 받지만, 그 가족과 동료들에겐 씻을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다.
전생에서 자신이 그 빌딩 속에서 숨졌을 때.
고승우는 그의 영정 앞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그의 동료였던 이들은 또 얼마나 슬퍼했을까?
같은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해보았기에, 수혁은 마음이 무거웠다.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고. 요즘 만나는 여자 없냐?”
고승우가 소주를 따르며 은근히 물었다.
“여자는 무슨.”
전생에서도 여자와의 인연은 좀처럼 이어가기 힘들었다.
연애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까지 성공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새끼, 형이 그럴 줄 알고 너를 위해서 지금 수소문하고 있다는 거 아니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기다려 봐. 내가 조만간 좋은 소식 하나 들고 연락할 테니까.”
고승우는 낄낄거리며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
“자고 가라니까.”
“됐어, 인마. 그 코딱지만 한 고시원에서 둘이 어떻게 자냐? 난 여기서 택시 타고 갈란다.”
고승우가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찻길에 섰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미소가 떠올랐다.
‘뭐라도 좀 해주고 싶은데…….’
수혁은 자신이 걱정돼서 먼 길을 찾아온 친구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로또 번호라던가, 주식 정보라던가.
직장생활이 힘들다며 한탄하던 친구를 위해 그런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수혁에게 기억이 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희미하게 떠오르던 기억들이, 그날의 선택 이후로 모조리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음……. 아!’
고승우가 택시를 잡기 위해 서성이는 사이 고민을 하던 수혁이 뭔가를 떠올렸다.
“승우야.”
“어? 너 아직 안 갔냐?”
알딸딸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고승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 무시하지 말고 잘 새겨들어라.”
수혁은 그런 고승우를 향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볼 땐 대머리가 될 상이니까, 앞으로 관리 잘해.”
“……이, 이 새끼가?”
“난 분명히 말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꼭 관리 잘해야 해!”
말을 끝낸 수혁이 뒤를 돌아 냅다 도망쳤다.
“너 거기 안 서냐!”
전생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의 고승우는 심각한 탈모로 인해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지난 일주일 동안 거의 백 번에 가까운 출동을 나갔고, 퀘스트 역시 열 개가량 완료했다.
‘지금 레벨이 몇이지?’
수혁의 생각과 동시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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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수혁.
*나이 : 26세.
*레벨 : 10.
*등급 : 동네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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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귀했을 때의 레벨이 4였으니, 벌써 6레벨이나 올랐다.
박상태보다도 3이나 높은 레벨.
레벨로만 따지자면, 이 소방서 내의 그 누구보다도 높았다.
‘신체 능력도 올랐어.’
퀘스트를 완료할 때마다 신체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더니, 이제는 소위 ‘괴물’이라 불리는 박상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딱히 별다른 훈련을 하지 않고, 고작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제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됐지.’
수혁은 주머니에서 5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힘을 주자…….
끼기기긱-!
동전이 반으로 접혔다.
마치 종잇장을 접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꾸준하게 좋아지던 신체 능력은 10레벨이 되자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만약 이대로 계속 레벨이 상승한다면…….’
고작 10레벨에 이 정도다.
그런데 20레벨, 30레벨이 된다면?
‘정말 초인이 될 수도 있겠어.’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 힘과 능력.
하늘을 날아다니고, 망치로 번개를 부리며 지구를 구하는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절망에 몸을 떠는 사람들 몇 명을 더 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다들 그만 멍때리고 슬슬 인수인계 준비해.”
박상태가 사무실로 들어오며 퇴근 시간이 임박했다는 말을 꺼냈다.
대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퇴근이구나.”
“요즘 출동이 이상하게 많아진 것 같지 않아요?”
“몰라, 인마. 그런 거 일일이 셀 정신이 어디 있어.”
박정우가 퇴근 준비를 하며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은근히 수혁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이, ‘마치 너 때문이다’라는 것 같았다.
수혁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진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네.’
전생에서도 처음엔 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기는 했다.
실제로 수혁이 배정을 받은 뒤로 사건, 사고가 확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말로 수혁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눈칫밥을 먹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도 더욱 안 좋은 상황이었다.
‘어휴, 저 웬수’라는 귀여운 신입 수준에서 ‘어디서 저딴 새끼가?’라는 수준까지 격하된 것 같았다.
수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고는 다음 근무자들을 위한 인수인계를 준비했다.
아직 신입에 불과한지라 수혁이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난 경험을 살려 나름대로의 준비를 끝마쳤다.
“정렬.”
다음 근무자들이 모두 출근하고, 인수인계를 위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구조 3팀의 대원들은 이제 곧 퇴근이라는 생각에 조금 전보다 훨씬 생기가 도는 표정이었다.
수혁 역시 빈번한 출동으로 꽤나 피곤했는지라 들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퇴근을 앞둔 이들의 달콤한 기대는 인수인계가 시작되기 직전, 무산되고 말았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출동을 알리는 명령이 터져 나왔다.
“아, 젠장!”
“욕할 시간 있으면 뛰어!”
출동을 위해 달려나가는 구조 3팀 대원들의 얼굴에 짜증이 잔뜩 서렸다.
코앞에 둔 퇴근을 잡지 못하고 다시 현장에 나가야 하는 그들의 기분이야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구조 3팀의 그 누구도 굼뜬 움직임을 보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마치 방금 출근한 사람처럼,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나중에 빠져나온다.
소방관의 행동원칙이며, 소방관이 지켜야 할 정신.
수혁은 뛰어가는 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구조 3팀의 대원들은, 수혁이 아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그 말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