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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9화 (9/425)

레스큐 시스템 9화

“벌써 몇 번째 허탕이야!”

구조 3팀 소속의 대원 김강식은 투덜거리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비철(현장 도착 전 출동이 취소되는 상황)이었다.

하루 평균 1, 20회 정도의 출동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허위, 오인 신고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

그래도 오인 신고는 좀 낫다.

하지만 허위 신고는 솔직히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허위신고자들에게 나는 화가 더욱 컸다.

만약 허위 신고에 출동했다가 정작 필요한 사람을 돕지 못한다면?

억측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인재였다.

김강식은 허위신고자들에 대한 처벌이 지금보다 백배는 강력해졌으면 하고 바랐다.

진심으로.

“근데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투덜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던 김강식은 왠지 싸한 사무실 분위기에 멈칫했다.

평소에도 그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웃음도 터지고 잡담 정도는 하던 곳이었다.

그랬던 사무실이 지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만약 눈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대원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도 없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적막은 김강식의 물음에도 깨지지 않았다.

뭔가 심상찮음을 느낌 김강식은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박정우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무슨 일 있어? 뭐, 구조 나가서 희생자라도 생긴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분위기가 싸늘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박정우는 김강식의 생각과 다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구조는 성공했어요.”

“그런데 왜 이래? 꼭 누가 죽은 것 같네.”

“그게……. 일이 좀 있었거든요.”

“일? 무슨 일?”

김강식의 호기심 서린 질문에 박정우는 난감하다는 듯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저희가 나간 급발진 사고의 차량 운전자가 유괴범이었습니다.”

박정우의 말에 김강식의 얼굴이 확- 하고 구겼다.

“애는? 구했어?”

“네, 구하긴 했는데…….”

대답하는 박정우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욕까지 하며 막았던 수색 아니었던가?

고작 신입이라며 수혁의 말을 무시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후우-”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스스로가 한심하다거나 수혁에 대한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자신의 말이 백번 옳았고, 합당한 절차였으니까.

다만, 수혁의 행동을 끝끝내 막았다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뉴얼대로, 적법한 절차를 따랐더라면 유괴되었던 아이는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니,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혁의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상반된 생각에 박정우는 머리가 활활 타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 잘 됐구만, 웬 한숨을 그렇……. 또 신입이냐?”

말을 하다 말고 수혁을 향하고 있는 박정우의 시선을 본 김강식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수혁은 이미 신일 소방서 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꼴통’으로 말이다.

출동 첫날부터 사고를 친 데다, 비번 날까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다행히 인명구조에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실패했다면 단순한 문책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베테랑 구조대원들이나 다른 구급대, 화재 진압대의 대원들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며 수혁을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저놈이 또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응? 뭐라고?”

“요구조자 구조가 끝나고 복귀하려는데… 갑자기 신입이 나서서 아이를 발견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또? 거참, 신통방통한 녀석일세.”

김강식은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벌써 세 번째.

근무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음에도, 굵직굵직한 구조를 벌써 세 번이나 성공했다.

그것도 거의 혼자 해내다시피 한 것이었으니, 이제 갓 배치를 받은 신입이 보여줄 수 있는 성적이 아니었다.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쌍욕을 해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갑니다.”

박정우가 복잡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구조 3팀의 대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수혁은 그런 분위기에도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수혁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수혁 역시 사무실 내 분위기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이 상황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지만, 생명을 구했으니까.

전생에서는 구하지 못했던 생명을 말이다.

게다가 수혁에겐 사무실 분위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기억해 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언제였더라?’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았다.

수혁이 배치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인 것은 분명했다.

대충 기억나는 것을 조합해 보면 올해 안에 벌어질 사건.

그것은 수혁이 가장 처음 만난 대형 화재 현장이었다.

첫 출동이었던 쇼핑몰 화재와는 그 규모도, 피해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화재.

수혁은 그 화재가 대략 올해 일어난다는 것은 떠올릴 수 있었지만, 정확히 그것이 언제 일어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면 수혁의 기억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수혁은 기억해 내기 위해 애썼다.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긴 했지만…….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박상태가 들어오며 수혁을 불렀다.

“김수혁, 이쪽으로 와봐.”

순간 대원들의 신경이 수혁과 박상태에게 집중됐다.

“무슨 일인데요?”

수혁은 깊게 빠져 있던 상념에서 깨어나 박상태에게로 다가갔다.

설마 또 혼나나? 싶은 생각에 살짝 긴장했다.

그런데 박상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혁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네가 구한 아이, 부상이 좀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사하다고 연락이 왔다. 흉터나 후유증도 남지 않을 것 같단다. 트라우마가 문제긴 한데……. 병원 측에서 정신과 치료에도 신경을 쓴다고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고. 아, 그리고. 아이 부모가 너한테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연락 왔다.”

슬쩍 미소까지 지으며 말하는 박상태의 모습에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속이 벅차올라 입을 열면 환호성이라도 지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거지!’

소방관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

그것은 월급도 아니었고, 상급자의 칭찬도 아닌, 바로 자신이 구조한 이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이었다.

수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박상태는 그 마음을 짐작한 듯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방법에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그래도 말하는 건 좀 잘 듣고.”

그 말을 끝으로 박상태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수혁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감격에 젖어 있었고, 다른 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평소 다른 신입 대원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거리낌 없이 다가가 칭찬과 축하를 해줬을 테지만, 그 대상이 수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에게 수혁은 선배 대원들의 말을 무시한 채 자기주장만 펼치는 꼴통이었다.

그런 수혁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또한, 박상태에게 칭찬을 들은 마당에 나서서 거들었다가, 수혁의 행동이 더욱 심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혁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벅찬 감동은 사라지고, 씁쓸함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그때 누군가 적막을 깨고,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이야, 배치된 지 얼마 안 됐는데 감사 인사도 듣고. 대단한데?”

바로 김강식이었다.

수혁은 혹시 그가 비꼬는 건가 싶어 시선을 돌렸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대단하다는 듯, 감탄이 엿보였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순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김강식은 웃으며 수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비결이 뭐냐?”

“예?”

갑작스러운 물음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신통하게 요구조자들을 찾아내는 비결 말이야. 너 이번에도 단박에 찾아냈다며?”

“아…….”

김강식의 질문을 이해한 수혁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고, 레벨 업이나 퀘스트, 스킬 같은 이상한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다간 정신 병원 가기 딱 좋지.’

수혁은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감이요. 어렸을 때부터 감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한 대답임에도, 수혁은 민망했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의외로 김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이라……. 중요하지.”

김강식이 10년이 넘게 구조대 활동하며 깨달은 것은 매뉴얼 못지않게 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감이라는 것을 믿고 움직인 덕분에 구조에 성공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김강식이나 다른 구조대원들이 느끼는 감은 경력에서 비롯된 경험과 노하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단순히 ‘이쪽일 것 같아’나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따위의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수혁은 경험도, 경력도, 노하우도 일천한 신입 구조대원에 불과했다.

그런 수혁이 오직 감만으로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찾아낸다?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 김강식은 그런 수혁에게 화를 내는 대신 호기심을 보였다.

“막 느낌이 오고 그러냐? 무슨 전기 오듯 찌릿찌릿한 게 느껴져?”

김강식은 정말 궁금한 표정이었다.

더욱 난처해진 수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왠지 그쪽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수혁은 대답을 회피했다.

거짓말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도 없었고.

“이야, 나도 그런 능력 있었으면 바랄 게 없겠다. 화재 현장 같은데 나가서 요구조자 수색하려면 얼마나 똥줄이 타는 줄 아냐? 진짜 온갖 신한테 기도를 다 한다니까?”

수혁은 몸서리치며 말을 하는 김강식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 역시 전생에 수도 없이 했던 기도였으니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사실 수혁은 김강식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수혁이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부상을 당하고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김상식의 부상이 공상처리가 되지 않아 한동안 시끄러웠다는 것과 하필 다치게 된 날이 딸의 생일이었다는…….

‘어?’

수혁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그러곤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김강식을 향해 다급히 물었다.

“선배님, 혹시 자식 있으신가요?”

난데없는 질문에 김강식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대답해 주었다.

“응? 어, 있지. 이번에 다섯 살 된 딸. 어찌나 귀여운지…….”

“조만간 생일이죠?”

단순한 궁금함에 물어보는 것이 아닌, 확신에 가득 찬 질문이었다.

“……어떻게 알았냐?”

김강식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따님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김강식이 구조 중 부상당 한 날.

그날은 김강식의 딸의 생일이었고, 수혁이 조금 전까지 기억해 내려 애썼던 그 산불이 일어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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