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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화 (5/425)

레스큐 시스템 5화

사이렌이 울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통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구조차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리에 짜증을 내는 대신, 긴장감을 잔뜩 끌어올렸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지직-

무전기에서 거친 잡음과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일동의 고층빌딩에서 가스 폭발로 예상되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연쇄 폭발의 가능성이 보고되었습니다. 빌딩 내 인원은 긴급 대피 중이지만, 아직 정확한 숫자와 상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

“가스 폭발이라…….”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린 이수열은 무전을 끊고 뒤를 돌아봤다.

방화복을 입은 채 긴장한 얼굴로 장비를 점검하는 대원들이 보였다.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그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방화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컸던 것이다.

이수열은 대원들의 얼굴을 한 번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성우랑 기현이, 그리고 인철이는 도착 즉시 곧바로 장비 챙겨서 나랑 빌딩으로 돌입한다. 나머지는 호스 잡고 화재 진압하면서 요구조자 정보 파악해.”

“예.”

“알겠습니다.”

굳은 표정의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탓에, 대원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게다가 이번엔 고층빌딩 화재.

장비를 메고 계단 오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근육이 쑤셔오는 듯했다.

“아직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단 얘기는 모두 들었을 거다. 힘든 건 알지만, 정보가 없는 이상 수색에 빈틈이 있어선 안 돼. 조금 더 힘내자, 알겠지?”

이수열이 힘들어 보이는 대원들을 향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하자, 대원들 역시 씁쓸한 미소로 화답했다.

“도착했습니다!”

“자, 자, 빨리 움직여!”

구조차 기관원이 도착을 알리자 이수열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이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각자 맡은 곳으로……!”

차에서 뛰어 내리며 대원들에게 명령하려던 이수열이 입을 닫았다.

“와아아아아아-!”

밖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생소한 광경이었다.

평소였다면 늑장을 부렸다며 역정을 내는 소리와 제발 구해달라며 울부짖는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을 텐데.

이런 환호성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뭐야?”

처음 보는 광경에 대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그 환호성의 주인이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이 아닌 빌딩 위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수열이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화염에 휩싸인 빌딩이 보였다.

가스 폭발의 영향인지 깨진 유리들이 곳곳에 보였고, 검은 연기가 그곳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급박한 화재 현장.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의 뭔가는 보이지 않았다.

‘불구경하는 초딩들도 아니고, 대체 뭐야?’

가끔 철없는 아이들이 화재 현장 근처에서 불구경하며 즐거워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초딩이 아닌, 다 큰 성인들이었다.

‘모르겠군.’

뭔가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데 투자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뭐 해! 빨리 움직여!”

머뭇거리고 있던 대원들을 향해 수열의 호통이 떨어지자, 깜짝 놀란 대원들이 흩어졌다.

봄베와 도끼 등의 장비를 챙긴 대원들이 빌딩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 * *

밑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수혁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아래를 쳐다봤다.

고층 화재를 감안한 고가 사다리 펌프차를 비롯한 장비들이 빌딩 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으윽! 이제야 왔나?”

첫 폭발이 일어난 지 십여 분.

가장 가까운 소방서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5분 이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10분 이상이 걸렸다는 것은…….

‘또 길이 막혔다는 거겠지.’

재난 현장에서 속도는 곧 생명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판에, X같이 설계된 도로는 언제나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원흉이었다.

심지어 이 정도가 평소보다 빠른 것이란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이 자리에 수혁이 없었다면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겼을 것이 분명했다.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위험 감지’ 스킬은 발동하지 않고 있었지만, 언제 다시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누워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크으윽!”

작은 움직임에도 몸이 박살 나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팔과 복부, 등 쪽의 근육이 모조리 찢어진 것 같았다.

“안 죽은 게 다행이지.”

달랑 소방 호스 하나에 의지해 빌딩 아래로 뛰어내렸던 장면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았다.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말 그대로 천운이었다.

“레벨 업하면 회복 같은 거 안 되나?”

보통 게임에선 레벨이 오르면 피통이나 마나 같은 것도 꽉꽉 채워주고 그러던데…….

하지만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했다는 것 외에 회복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수혁은 아쉬움에 혀를 차며 요구조자를 들쳐 맸다.

의외로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통증에 그대로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흐읍!”

수혁은 심호흡하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러곤 앞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내디뎠다.

마음 같아서는 구조고 뭐고, 그냥 자리에 쓰러져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지금까지 폭발한 횟수는 세 번.’

폭발이 더는 없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요구조자를 1초라도 더 빨리 빌딩 밖으로 옮기는 것이 나았다.

“아저씨, 왜 그런 데서 기절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운 좋은 줄 아쇼.”

수혁은 계단을 내려가다 혹여 정신을 잃진 않을까 두려워, 부축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내가 거기에 없었어 봐. 아저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니까?”

전기가 모두 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계단에서 기절한 사람을 업고 내려오는 일은 고역이었다.

게다가 수혁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으니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수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느릴지언정, 꾸준히 1층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밑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어둠을 뚫고 산란하는 랜턴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수혁이 인명구조 활동한 세월은 10년이 넘는다.

하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 수혁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안도.

구조대원이 아닌, 구조를 받는 입장에서 느낀 이 생소한 감정은 수혁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이런 기분이구나…….’

절망의 끝에서 허우적거릴 때, 누군가가 내민 희망이라는 이름의 손을 본 기분은!

치밀어 오르는 격한 감정에 수혁은 힘없이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요구조자 발견! 두 명입니다!”

순식간에 수혁이 있는 곳까지 올라온 구조대원들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괜찮으십니까?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지금부턴 저희가…….”

긴장의 끈이 풀려서일까?

간신히 붙잡고 있던 수혁의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대장님! 요구조자의 의식이 점점…….”

왠지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채,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요구조자 두 명 발견, 요구조자 두 명 발견. 현재 두 명 모두 의식 불명 상태고, 육안으로는 심각한 부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후송조치 시작하겠습니다.”

이수열은 무전기를 들어 현재 상황을 보고한 뒤,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박성우, 이기현, 장비 내려놓고 구조자 후송해. 인철이는 나랑 같이 수색을 계속한다.”

이수열은 계단에 앉은 채로 기절한 수혁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등에 중년의 남자를 업은 채 쓰러진 그의 모습이, 마치 남자를 구조해서 내려오다 힘이 다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수열은 마침 수혁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박성우에게 말했다.

“그 청년은 구급대에 인계하고, 인적사항 좀 파악해 달라고 전해.”

“인적사항 말씀이십니까?”

“그래,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박성우는 이수열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만약 저 청년이 구해서 내려온 거라면 표창이라도 하나 줘야겠어.’

얼굴을 보아하니 한창 취업 준비에 힘을 쏟을 나이인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 보잘것없긴 하지만, 119구조대의 표창장을 받는다면 조금이나마 취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 사람이라면, 그럴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수열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특하다 여긴 이 청년이 자신과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입 구조대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왜 위를 보며 환호했는지 알았더라면.

절대로 수혁에게 표창장을 주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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