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11화 (211/226)

< 72. 위기를 기회로 (3) >

-북미의 TBM, 한국에 부트캠프를 차리다-GLG, ‘한국은 연습하기 위한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중국의 , 더 나은 팀이 되기 위하여 한국행 결정.

월챔 시즌이 다가오자 월챔에 참가하는 여러 팀들이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동안 몇 개의 해외 대회를 거치며 북미가 세계 최고의 지역이라는 것은 옛말이 된지 오래였고, 최고의 지역이라 함은 중국과 한국의 2강 구도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정명이 속해있는 팀인 ATX는 윈터리그에 이어 스프링, 섬머 리그까지 연속으로 제패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구단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정명 본인 또한 팀과 동료의 굳건한 신뢰를 받는 리더로써 승승장구 해나가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구단은 다음 계약 때 정명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겠다며 공공연히 언급하기도 했다.

늦은 저녁.

정명은 시스템 창을 띄워놓고 신중하게 스탯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포인트를 사용한 정명은 상태창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몇 년을 빌빌거리며 완성한 스탯을 여기 와서는 1년 만에 뚫어버렸네.”

[현재 능력치]

피지컬 (91/100)

정신력 (90/100)

오더 (90/100)

판단력 (90/100)

[잔여 포인트 : 340]

피지컬을 먼저 올릴까 했으나 어차피 최종 목표는 모든 스탯을 100으로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적당히 골고루 올렸다.

지금 시점에서 잘 하는 사람을 꼽는다고 해 봐야 스탯이 80대 중반이었으므로 뭘올리든 여유가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 주 뒤, 정명은 한국에서의 연습을 마무리하고 월드챔피언십을 치르기 위하여 비행기를 탔다. 정명이 이곳으로 와서 겪는 첫 월드챔피언십이었다.

월챔이 열리는 장소는 스페인.

가는 데만 해도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고, 때문에 정명의 팀 동료인 김진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야, 정명아. 우리 달달한 것 좀 먹자. 이러다가 경기하기도 전에 맛탱이 가겠다.”

“네가 사는 거지?”

“와, 돈도 많이 버는 게. 오냐, 내가 산다. 죽을 거 같으니까 과일주스 하나 빨자.”

그런데 희희낙락하며 공항 내의 가게에서 주스를 하나 구입하려던 진수의 표정은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해외 간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했던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여기가 어디 촌구석 지방도 아니고 스페인 수도 공항이잖아. 그런데 직원이 영어를 못 한다고?”

“쩝...”

“야, 너 혹시 스페인어 할 줄 아냐?”

그동안 영어에 이어 중국어까지 유창하게 하는 정명의 모습을 봐왔기에, 진수가 약간의 기대를 품고 정명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정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몰라. 한 마디도 몰라. 저기요!”

정명과 진수는 결국 이거, 이거 하면서 베이비 토크를 한 끝에 겨우 주스를 살 수 있었다. 고작 주스 하나 산건데도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까 들어보니 스페인에선 스페어만 쓴대. 영어 잘 안 쓰고...여기선 호텔 안에만 있어야겠어.”

“그러게. 하니가 기념품 사오라고 했는데.”

“하니? 혹시 애인이야? 애인이지? 와, 이름만 들어도 예뻐 보인다.”

“그게 아니라...”

“재주도 좋지, 이렇게 바쁜데 애인은 또 언제 사귀었냐? 동네 사람들 보소! 유정명이가 글쎄....”

정명의 혼잣말에 진수가 호들갑 떨며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지만, 정명은 피식 하며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글쎄. 초등학생을 애인이라고 한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을 것 같네.”

“오, 귀엽다. 진짜 귀엽다!”

“그치? 아역배우 하는 앤데, 이제 TV에서도 볼 수 있을 거라더라.”

왁자지껄 떠들던 둘은 곧바로 버스에 올라타서 다른 팀원들과 함께 호텔로 향했다.

어차피 관광을 온 것도 아니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 불편할 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마침내 월드챔피언십이 시작되었다.

정명의 팀 ATX는 한국에서처럼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성적 덕분에 그들이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완전 괴물이네요. 저 선수를 감히 누가 꺾겠습니까? 혼자서 2:1을 해버리는데요.

-트리플 킬! 역시 아자토스 선수의 바니걸 검사의 플레이는 정말 보면 볼수록 명품이라니까요!

상대는 피지컬로 유명하던 중국의 유명 게이머.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피지컬이 80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평균 능력치가 90을 넘어가는 정명으로써는 별 어려움 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됐다! 우리가 이겼다!”

“야야! 아직 안 끝났어!”

넥서스가 깨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진수가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넥서스를 확실히 깬 나머지 팀원들이 차례로 의자에서 일어나, 진수처럼 소리를 질렀다.

“잘했다. 진짜 잘했다! 월챔 우승이다!”

“대박 힘들었어!”

‘힘든 건 내가 다 했지만. 하하.’

이내 감독과 코치까지 들어와 서로를 끌어안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는 동안 정명은 자신의 시야에 뜨는 메시지를 흘끗 바라봤다.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했습니다!]

최고의 리그라 불리는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했습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팀을 꺾고 우승을 쟁취한 당신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100만 포인트가 지급되었습......

백 마디 축하인사보다 더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월챔에서 우승하면 받을 수 있는 포인트는 무려 100만.

이 보상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나중에 리그의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어 개나소나 피지컬이 90을 넘어도 문제없이 대처할 수 있을 듯 했다.

“야 정명아! 멍하니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나가자. 팬들한테 인사 드려야지.”

........

그 다음 날.

우승 기념 파티를 끝낸 정명은 혼자 있을 여유가 생기자마자 곧바로 시스템창을 불러와 능력치를 올렸다.

이 시점에서 다른 잡다한 아이템이나 스킬 따위는 필요가 없다.

정명은 한 우물만 파듯 스탯에만 포인트를 몰빵했고, 그 결과 스탯은 이미 90을 돌파하여 95에 다다르고 있었다.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스탯이었다.

‘그럼 이 다음은....’

스스로의 성장을 거의 다 끝낸 정명은 이제 다른 팀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보기로 했다.

정명이 하고 있는 이 게임은 5:5 팀 게임이었으므로, 혼자서는 결국 한계가 보이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포인트를 좀 써서 다른 팀원들을 키울 수는 있어. 그런데 다른 팀원을 키워보려고 해도 어차피 뿔뿔이 흩어질 확률이 높단 말이지.’

열심히 포인트를 사용하여 선수를 육성했는데, 나중에는 적으로 만난다면?

그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자신만의 팀을 모아보려고 해도, 예전 NHG 애들은 지금 코흘리개 꼬꼬마들이었기 때문에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연습은커녕 아동 노동법 위반으로 잡혀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기에 정명의 고민이 깊어졌다.

‘나이 패널티가 나오는 것은 30살 넘어서부터였지. 반대로 얘기하면 30살 전엔 능력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군대 갔다 오면 폼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래, 지금 어차피 팀원도 못 모으는 거 차라리....’

...........

그날 오후.

월챔이 끝났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귀국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스페인 관광을 하기 위하여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는데, 그것은 정명의 동료인 김진수도 마찬가지였다.

“너 정말 가이드 안 불러도 돼?”

“어. 가이드 부르는 건 취향에 안 맞아.”

“맘대로 해. 그럼 휴가 잘 보내라!”

기껏 12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왔는데, 스페인 관광 한 번 못 하고 간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원활한 관광을 위하여 가이드를 부르거나 몸뚱아리 하나만믿고 근처 관광지로 떠났다.

관광을 하고 싶은 것은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명 또한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급하게 섭외했다.

다만 김진수처럼 현지인 가이드가 아니라 정명과 무척 친한 사람이었다.

“저엉며엉아아!”

정명이 약속 장소로 나간 순간, 멀리서부터 긴 금발의 꼬마가 오도도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정명은 허겁지겁 달려오던 쿠론을 탁, 하고 받아서 안아 올렸다.

“이게 어디서 정명이라고 불러. 내가 네 친구냐?”

“헤헤. 보고 싶었어요!”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 사람들은 무슨 외국어를 배울까?

정답은 스페인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언어였다.

때문에 에리와 쿠론은 어느 정도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정명이 그런 둘을밖으로 꼬셔내었던 것이었다.

“킁킁. 좋은 냄새 난다....”

쿠론이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조금만 지나면 이렇게 어린아이 취급하며 안아주기에는 조금 곤란할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물겨운 가족상봉을 멀뚱멀뚱 지켜보던 에리는 조금 질투심이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혹시 애들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애들이야 좋아하지. 귀엽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좋아하냐는 에리의 뜬금없는 물음에, 정명이 펄쩍 뛰었다.

“아니거든? 대체 무슨 헛소리야?”

“아님 아닌거지 이게 왜 화를 내? 너 그러니까 더 수상한데?”

‘아니 이 아줌마가 진짜...’

원래는 쿠론만 불렀는데 에리가 자신도 따라가겠다며 나섰다.

쿠론이 정명을 엄청 따르게 된 이후로 에리는 절대 쿠론을 혼자서 내보내지 않았는데, 사실 이것 또한 모두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티격태격 하던 것도 잠시.

곧바로 즐거운 스페인 관광이 시작되었다.

쿠론, 정명, 에리 세 명은 누가 봐도 사이좋은 가족 여행객이었다.

“나 저거 먹고 싶은데.”

“응! 나한테 맡겨! 주문하고 올게!”

쿠론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 분위기가 싫었던 정명은 적당히 말을 꺼냈다.

“한국 놀러 오지 않을래?”

“안 가. 귀찮아.”

“칼 같네. 생각 바뀌면 내년에라도 와. 나 군대 가면 한국 와도 안내 못 해주니까.”

“군대?”

“어. 1~2년 내로 갈 거야. 이제 슬슬 가야지.”

시큰둥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에리가 그 말에 관심을 보였다.

“....농담이지?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게이머를 그만 두겠다고?”

“아니, 계속 해야지. 그런데 군대 다녀와서 한다고.”

“그게 그 말 아니야? 말 똑바로 안 할래?”

대화의 핀트가 맞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은 정명은 그제야 자세히 설명했다.

“그게 아니라 한국 남자들은 있지...”

2년 동안 복무해야 한다, 어떠한 생활을 하고 어떠한 대우를 받으며 운 나쁘면 가끔 사고가 일어난다 등등.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에리의 표정이 눈에 띌 정도로 굳었다.

“잠깐. 말도 안 돼.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21세기에?”

“믿기 힘들겠지만 그래.”

“인터넷에 올려! 난리가 날 거라고!”

한국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고 올린다고 바뀌는 건 없다.

그것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자 정명은 정말 드물게도 에리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문을 하고 돌아온 쿠론은 엄마가 뭐에 놀랐는지 모르겠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만 살폈다.

그리고 에리는 무릎에 안고 있던 쿠론을 만지작거리며 흘리듯 말을 꺼냈다.

“너, 미국으로 건너올 생각은 없어?”

“미국으로?”

“북미 팬들이 무척 좋아할 거야. 넌 영어도 잘 하니까 분명 잘 적응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음....”

“우리 팀은 어때? 이번에 성적이 썩 좋지는 않지만, 페이는 나쁘지 않아. 그리고....쿠론도 널 자주 보고 싶어 하고.”

방금 전까지는 즐거운 관광이었는데 분위기가 급격히 다운되었다.

정명은 헤헤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당연히 농담이지. 요즘 세상에 그런 데가 어딨어? 감옥 가는 것도 아니고.”

“아니 이런 개새끼가 진짜...밥값 네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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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1년이 지났다.

한 번의 월드챔피언십이 또다시 끝났고, 연습실 사람들은 간만의 휴가를 맞이하며 희희낙락 들뜬 분위기 속에서 휴가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정명은 비장한 표정을 한 채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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